정경호 교수가 만난 신학자
정경호 교수의 생명이야기
내가 미국에서 풀타임으로 공부하면서 정신없이 담임 목회하던 시절에 아버지 어머니의 고희 잔치에 갈 수가 없었다. 공부도 공부이지만 목회하는 교회를 비우기가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축하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그 편지의 제목을 "내가 만난 신학자"였다, 우리 7남매를 위하여 교회 관리(당시엔 사찰집사로 불렀음)를 하셔는데 두분 다 찬송을 하면서 교회를 청소하셨고 기도로 의자를 닦았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 몸에 땀흘려 봉사하셨다.
난 이 두분들을 내가 "만난 신학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나에게 지금까지 큰 감동으로 다가와 "난쟁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 편지가 1990년에 4월 28일에 있을 고희 기념예배에 맞춰 쓴 편지이니 벌써 23년이 지난 낡고 때묻은 편지이다.. 그러나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하나님곁으로 가신 아버님을 그리며 약간의 치매로 나를 아즈바님으로 부르다가 형으로 착각하다가 한참만에 둘째 아들로 겨우 알아보시는(물론 금방 잊어버리지만) 어머님을 생각하며 다시 나의 가슴에 새겨보려고 그 때 그 편지를 펼쳐 읽어본다.
내가 만난 신학자
저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효도하지 못한 자신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먼 이역만리의 땅에서 말입니다. 저의 공부 때문에 70회 생신과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금혼식 일정마저 늦추신 체 저를 기다려 주셨지만, 저는 마지막 박사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 안간힘을 쏟아야 했고 또한 뉴욕 주의 올바니 한인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터라 당장 고국으로 달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죄송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었으나 그 대신 지금까지 만난 신학자들 가운데서 가장 감동적이며 잊지 못할 신학자 두 분을 소개하면서 아버님과 어머님의 생신과 금혼식에 인사를 대신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 저는 상상도 못할 언어의 장벽과 싸워 나가야 함은 물론이지만 세계의 신학을 이끌어 가고 있는 신학자들의 사상을 헤치고 나간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매번 실감했습니다. 더욱이 말로만 듣던 신학자들을 직접 대하여 강의를 들을 때나, 만나서 서로의 관심을 토로해 볼 때 그들의 학문의 깊이와 넓이에 머리를 수그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관심은 그러한 신학자들의 깊은 이론적 체계나 그들의 학문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입이 아니라 그들이 처해 있던 독특한 사회의 정황 속에서 어떠한 신학적 고뇌를 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들의 구체적인 삶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학문의 우수성이 탁월하다 하드라도, 그 학문이 무르익어 신학자들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성숙한 인격으로 연결되지 않거나, 그리고 그들이 처한 사회의 독특한 정황 속에서 예언자적인 삶이 결여되어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신학자는 아니라고 하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에서 제가 만난 세계적인 신학자들에게 질문을 제기하면서 그들의 장점과 동시에 그들의 약점들을 집고 넘어 갔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저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감동을 주고 있는 신학자들이 여럿이 있는데 그 중에 잊을 수 없는 신학자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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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세계의 신학을 한때 주도했던 유럽의 신학자가 아니며, 오늘날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북미의 신학자도 아닙니다. 그들은 흑인들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신학을 창출한 흑인 신학자가 아니며, 역사의 주체로서의 여성이란 시각으로서, 남녀의 성 차별에서 오는 말 못할 수모와 한을, 그리고 여성의 사명을 신학화한 여성 신학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남미나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독특한 경제적 가난과 사회의 모순에서 오는 고통의 현실에서 신앙을 표현하고 있는 신학자도 아닙니다. I
제가 만난 신학자들 가운데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은, 70년 평생을 이름 없이 살아오신, 저의 부모님이신 정동철님, 이복생님 이 두 분입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다른 그 어떤 사람보다도 이 두 분을 통해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생생하게 비추어지기 때문입니다. 저의 어릴 때의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밤마다 들려주던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고전 소설에 나오는 임꺽정, 홍길동과 같은 정의로운 사람들을 위시해서 숨죽이며 듣던 삼국지와 수호전 같은 신바람 나는 이야기며, 빅터 유고의 레미제라불과 더불어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거의 빼놓지 않고 들은 것 같습니다.
저희들뿐만이 아니라 외할머니께서는 겉적삼을 벗어 놓으시고서 이야기를 듣다가 밤이 늦어 집으로 못 가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들은 것이 아니라 모두들 마음 속 깊이에서 오는 감동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들었습니다. 서로의 눈물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쓰던 어릴 때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물론 성서의 인물 이야기는 듣고 또 들었지만 그때마다 다른 방법으로 음향효과까지 동원하신 아버지의 독특한 방법에서 매번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그 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께서는 그가 당면한 뼈아픈 가난한 삶의 현장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으며, 십수 년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해 나가시던 아버지의 쓰라린 삶 속에서 무한 인내와 삶의 지혜를 최대한 발휘하셨습니다. 교회의 사찰로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교회를 쓸고 닦으시면서 저희들에게 겸손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신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 옛날 감동을 자아내게 하던 아버지의 이야기 솜씨가 무르익어 이제는 그의 삶 자체가 감동을 던져 주는 이야기, 곧 귀한 간증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입으로 하던 이야기가 이제는 완숙하여져서 몸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즈음의 신학자들 중에는, 특히 아시아나 아프리카 그리고 중․남미의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고통과 슬픔, 억눌림과 가난 속에 담겨 있는 삶의 이야기를 신학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그 속에 담겨 있는 무한한 힘과 용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깨닫게 해주며 그 말씀을 실천함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느끼게 해주는 신앙의 방법 즉 참신한 신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온몸에 베어 있는 삶의 이야기에서 정의로운 인간의 삶을 배웠으며, 가난하며 소외된 자의 이웃이 되는 길도 배웠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신비한 힘이 있어서 약하지만 강한 삶을 살게 했으며, 한 푼의 돈이 없어도 비굴하지 않게 당당히 사는 신앙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참신한 신학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저의 신학 방법은 아버지의 방법을 토대로 한다고 할 정도로 생생한 삶과 연결되지 않는 신앙이나 신학의 방법은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요즈음 강조되고 있는 바처럼, 신학을 신앙의 표현이라 할 때 우리 인간들이 처한 구체적인 역사와 삶에 연결되어 있어야 그 신학이나 신앙은 바로 서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아버지야말로 저의 신학 주임교수라 서슴없이 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II
제가 만난 신학자중 한 사람은 제 어머니입니다. 저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의 독특한 웃음의 기술입니다. 저희들이 가난의 제일 밑바닥의 생활을 할 때에나 가난하고 못 배우신 부모님을 향해 원망을 할 때도 그는 웃는 데 충실했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으며 시퍼런 멍이 들게 하여도 그는 웃는 데 최선을 다 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여 순식간에 집이 없어져 버려도, 이 집 저 집, 수차례의 이사를 다녀도 그리고 대명동의 넝마주이 집으로 이사를 갈 때도 그는 웃었습니다. 그 집마저 길이 나서 뜯겨도, 한겨울 불을 때지 못해 저희 온 가족이 냉방에 잘 때에는 더더욱 너털웃음을 웃었습니다. 어머니의 웃음의 열기 때문인지 그 누구도 추워 떨거나 아파 누워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따금씩 큰 웃음 때문에 아버지께로부터 책망을 받았을 때도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더 크게 웃었습니다.
더 이상 잠잘 자리가 없다고 형님께서 군에 갈 때나, 그 다음해 저 역시 어린 나이에 군에 갈 때도 역까지 따라 나오셔서 제 손에 오백 원 쥐어 주며 웃었습니다. 사찰 집사의 아내로 신분이 바뀌어 아버지와 함께 구석구석 청소할 때도 그리고 저희들도 시간 내어 강대상 청소, 교회 실내 청소, 변소 청소를 거들 때에도 무엇이 그렇게 기쁘고 감사한지 연방 웃었습니다. 저희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고학으로, 독학으로 공부를 마칠 때나 나름대로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할 때는 천지가 떠나갈 정도로 웃었습니다. 제가 이곳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졸업하여 박사 과정에 입학할 때는 이곳까지 오셔서 코 큰 미국 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로 너털웃음을 웃으셨습니다.
그때는 아버지도 따라 너털웃음을 웃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웃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수없이 닥쳐와도, 괴로운 일 이나 마음 깊숙이에서 상처를 받아 도무지 웃을 수 없는 그 때도 웃는 은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를 통해 저희들에게 웃는 은혜는 물론이지만 수백 명, 수천 명을 웃길 수 있는 은혜까지도 주셨습니다. 이러한 웃는 은혜 때문인지, 아니면 웃기는 은혜 때문인지 오늘의 저희들이 이렇게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가만히 살펴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들려오는,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이제는 더 큰 것으로 맡기겠다”고 하시는 칭찬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너털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저희들은 어머니의 웃음소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웃음소리를 듣는 무언의 신앙의 훈련을 지금까지 받아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모습을 갖춘 사람이란, 매 순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칭찬의 소리, 하나님의 웃음의 소리가 저희 인간 속에 넘치는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볼 때마다 웃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웃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 가라고 하시는 힘찬 설교가 들려집니다. 그 누구에서도 감히 들어보지 못한 생생한 삶의 설교 말입니다. 이러한 그의 웃음이 저희들의 아픈 가슴들을 치유할 수 있는 신앙의 방법 곧 힘찬 신학이 되어 주셨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여성 신학자가 제 가까이에 계시는 것, 저는 무한한 하나님의 축복이라 믿어 마지않습니다.
III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은 우리 민족의 고통의 절정인 1920년대에 똑같이 출생하셔서 일제로부터 억압과 고통, 갖가지의 가난과 역경을 다 겪으셨으며 가난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도 하지 못 하여서 겨우 초등학교를 마친 것이 그들의 최종 학력입니다. 그러나 두 분께서는 가난을 헤쳐 나가는 인내와 지혜가 넘쳤으며, 가난을 통해 훈련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신 신앙의 눈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그것을 파헤쳐 나가는 용기가 넘친 분들이었으며, 그리고 삶의 어떠한 순간에서라도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신학을 갖추고 있었든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기 때문에 이 두 분은 저의 신학의 주임 교수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저희 집은 내리막길로 달리고 있었으며 하루에 한 끼를 굶는 것은 보통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하루의 전 끼니를 굶은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는 솥에 물을 붓고서 불을 때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양식을 구하러 나가셨다가, 못 구한 나머지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께서는 끝이 없는 눈물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무 바쁘셨든지 아니면 가만히 쉬고 계셨든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신비한 기적이 당장 내려오지 않아 저희들은 모두 굶었습니다. 저희들은 이 두 분을 마음껏 원망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나 두 분의 주장은 숨 막히는 당시의 현실이 하나님의 훈련이란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불확실한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수 없이 들려주었으며,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로서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특히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통해 채소를 먹고도, 오히려 건강하고도 강인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과, 그의 세 친구들이 풀무 불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야기며, 사자 굴속에서도 살아남은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의 사건에 대한 이 두 분의 입장은 실로 놀라울 정도의 탁월한 성서 해석학의 차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예리한 신학적 성찰이 있어야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두 분께서는 가난을 통해 이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셨습니다.
저희들은 가난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훈련이라 어렴풋이 생각한 그때부터 남들이 먹지 못한다고 버리려는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 먹는 즐거움과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이것 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처럼 저희 모두 영육으로 건강한 것은 하나님께서 두 분들의 아픔과 고통에 함께 해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난의 한 복판에서 표현한 두 분의 고귀한 신앙에 머리가 저절로 수그려 집니다. 이러한 훌륭한 신학자가 저희 가장 가까이 계시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IV
저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과 같은 무명의 신학자들에게서 무한한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신앙의 내용은 물론이지만 신학의 방법론까지 모두 값없이 그저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신학과 캐나다와 이곳 미국에서 익힌 신학의 눈으로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름다운 입체 그림 한 폭이 간직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두 분의 가슴속에는 영원히 길이 남을 불후의 명화도 보이며, 그 속에 민중의 한과 민중의 우렁찬 함성 소리도 들리기도 합니다. 또한 그 속에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의 멜로디가 가득 담겨 있으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새롭게 시작하는 인내와 끈기도 담겨 있습니다. 그 속에는 누구든, 만나는 사람에게 훈훈한 감동을 줄 수 있는 힘이 있으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해주는 살아 있는 신앙도 담겨 있기도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숨 막히는 가난과 역경을 갈고 닦아 만든 값진 보석들이 가득 쌓여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두 분의 속사람에게서 진실한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믿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실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 이 두 분을 통해서 보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부드럽고 온유하며, 이웃을 섬기며 받드는 마음과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모습을 두 분에게서 마음껏 볼 수 있기에 저는 자신 있게 오늘을 살아가는 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루 빨리 하던 공부를 끝내고서 귀국하여 두 분에게 빚진 것들을 갚으려 합니다. 두 분께서 원하시는 바처럼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와 이웃에게 봉사하는 겸손한 일군이 되려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생명력을 잃어 가는 우리의 사회에 새 바람을 일으켜 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생생한 삶의 신앙을 저희들에게 보여 주시고, 특히 저의 신학적 삶에 가장 좋은 가르침을 주신 두 분의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러한 두 분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여생 더더욱 하나님께 영광 드리며 사시는 믿음의 삶이되시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