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기독교 생명농업 포럼 제 4회 모임

스리랑카에서 열려

아시아농업포럼이 원래 인도에서 열리기로 했다가 사정상 스리랑카로 바뀌어 17일 부터 21일 까지 열렸다. 스리랑카는 불교국가이기도 하지만 기독교 역사도 만만치 않다. 이들 지도자들 가운데는 아시아의 유명한 신학자들도 나왔고 CCA총무를 지낸 분도 있다. 작지만 CCA 설립 초기부터 참여해온 교회들로 에큐메니칼한 역사를 갖고 있다.

* 한국 참가자들

현지 수도 콜롬보에는 스리랑카한인교회서 은퇴한 최도식선교사가 계신데 스리랑카한인 사회와 선교기반의 초석을 놓은 분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여러면에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최선교사는 장청 총무를 지내신 분으로 오래전 스리랑카에 파송받아 오늘의 선교현장을 이뤄내는 데 크게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전체 참가자

기조 발제는 스리랑카교회협의회(NCCSL)회장 Sivanaya 목사가 했다. 동시 통역은 한국측 안태주 목사가 그러나 이 과정은 대단히 복잡한데 강사는 영어로 하지만 스리랑카가 쓰는 타밀어와 싱할라어로 한다. 두 나라가 모였지만 4언어가 동원되었는 데 영어, 타밀어, 싱할라어, 한국라고 한다.

이 포럼은 지난 2013년 한국 산청의 민들레 공동체에서 3회가 열렸었다. 1회는 CCA 총회가 열리는 메탄에서 열렸고 이후 2010년 11월 스리랑카에서 제2회 생명농업포럼이 열렸다. 당시 주제는 “세계화의 상황에 따른 생명의 지역 경제의 강화” 였으며 자본의 세계화속의 아시아의 상황과 대안공동체로서 생명농업공동체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 스리랑카 각 교단의 지도자들

한국측에서는 포럼 대표 한경호 목사와 포천 평화농장 김중권선생과 부인인 원혜덕 여사도 참여하였다. 이외에도 상주에서 농사를 짓는 인도선교사를 지낸 정호진 목사등이 참여했다 전체 실무는 안재학목사(농촌과 목회 편집장)과 이원영목사(총회 농어촌선교센타 원장) 태국 선교사 허춘중목사도 참석했다.

중요 유적지로는 여시기리야 사자 바위 궁궐로 1,500년 전에 지었다는데 200m 높이로 솟아있는 바위 위에 요새 겸 궁궐을 지은 곳인데 국제 유네스코에 등재 된 유적이다. 또 담불라 석굴 사원은 위 시기리야 사자 바위 궁궐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기원 전 1세기부터 17~18세에 걸쳐 완성된 석굴 사원. 바위 동굴 속 불상과 벽화의 규모가 유명하다.


스리랑카의 지정학적인 위치 

스리랑카는 원래 영국이 인도를 지내하면서 함께 지내던 나라들이었다. 그러나 종교문제로 첫째로 파키스탄이 분가를 하면서 둘로 나뉘웠다. 그리고 부ᅟᅳᆫ가한 집안에서 언어와 문화 차이로 다시 방글라데시가 독립해 셋으로 나뉜다. 그리고 인도 밑에 있던 스리랑카는 좀 달랐지만 인도와는 종교문제로 지금은 원수사이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1947년 이전까지 ‘브리티시 라지(British Raj)’, 즉 영국령 인도라는 하나의 거대한 식민지로 영국은 약 200년간 지배했다.

당시 스리랑카는 실론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식민지였지만 행정적으로는 인도와 분리되어 관리되었다. 영국은 이 거대한 땅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을 사용했는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증폭시켜 민족의 힘을 약화시킨다. 이렇게 제국주의는 지배를 위하여 내부를 균열시켜 자기들 끼리 싸우게 하여 통치하기에 용이하도록 한 것이다.

스리랑카는 인도의 힌두교와 달리 불교가 다수인 국가다. 국민의 약 70%가 불교 신자이며, 기원전 3세기에 전파된 상좌부 불교의 전통이 사회와 문화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론티(Ceylon Tea)의 본고장이자, 고대 인도의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스리랑카는 힌두교 중심의 인도,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는 완전히 다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독자적인 나라다.

한인사회
1977년 우리 나라와 정식 국교가 수립되고 당시 스리랑카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FTZ(자유무역공단) 설립을 기점해 70년대 말 경부터 한국업체들이 진출하기 시작하였는데, 덕성무역(의류), 경덕상사(양말), 동양고무(신발) 등 제조업과 종합상사 지점으로 진출한 효성, 두산 그리고 중동행 중간 기착지로 주 1회 운항되던 대한항공의 지점, 스리랑카 건설시장의 파이어니어경남기업의 인력들이 한국인의 스리랑카 장기체류의 기원이 되었다.

그 후 80년대 초부터 개인사업자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종합상사인 대우와 삼성도 이시기에 추가 진출하였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세라믹월드, 영안모자, C&H, 갑을방직, 동양나이론 등 많은 한국업체들의 투자 진출이 이루어졌다. 당시의 한인 구성원들은 대부분 투자업체의 직원들로써 가족단위 보다는 개인 체류인이 많았는데, 현재는 개인보다 가족단위의 장기 거주인들이 대부분의 한인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한인회

1979년 한인들의 친목도모와 권익보호를 위해 몇몇 뜻있는 유지들에 의해 발족된 스리랑카 한인회는 1990년에 새로운 회칙과 규모들 갖춘 한인회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주요 행사로는 ‘한인 체육대회’, ‘한인 송년의 밤’ 연례 행사로 한인사회의 융합과 친교의 마당 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조국과 현지국가에 수해 등 어려움이 발생하면 적극 동참하여 구호품 및 의연금을 전달하며 고통을 나누고 있다. 한때는 2000여명의 교민수가 지금은 6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대부분 한인회에 가입되어 있다. 한인회원의 년간 회비는 성인 일인당 3천루피이다.

한인학교와 선교

1983년 2세들의 한글교육을 목적으로 시작된 주말 한글학교가 ‘스리랑카 한인학교’로 개명하면서 스리랑카에 거주하는 재외동포 자녀들의 한국어와 한국 문화 및 역사 등에 대한 이해와 자국민의 자긍심 고취와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곳이다. 대사관와 재외동포재단에 한글학교로 등록된 교육기관으로 설립초기 6학급으로 시작하여, 교민수가 많았던 때는 유치부에서 고등학교 학급까지 100여명의 학생들과 20여명의 교사들이 있었다고 한다.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 8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의 불교 유학생들이 오기 시작하여 1992년도에는 한국 사찰인 보현정사가 설립 된다. 기독교의 스리랑카 선교활동은 90년대에 들어 활성화 되었으며 불교국의 특성상 선교사들의 체재나 활동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현재 10여명의 선교사가 각지에서 여러 분야에 봉직하고 있다. 그리고 1989년에 설립된 스리랑카 한인교회와 1993년에 설립된 콜롬보 연합교회에는 200여명의 교인이 예배와 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종교 

스리랑카는 인구의 약 70%가 불교, 12%가 힌두교, 9.7%가 이슬람(대부분 수니파), 7.4%가 기독교, 시크교 신자들과 조로아스터교 신자들(파르시)도 있지만, 앞서 말한 종교들에 비하면 존재감이 없는 편이다. 민족별로 종교 분포가 갈라지는 편인데 스리랑카 인구의 7할을 차지하는 다수민족에 해당하는 싱할라인 대다수가 상좌부 불교를 믿고 있다. 반면 타밀족 인구 대다수는 힌두교를 믿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는 소수종교에 속한다.

무슬림 인구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역사에서 보듯 상당히 유서가 깊으며 상좌부 불교 자체가 스리랑카에 기원을 두며 스리랑카에서 발전한 것이다. 스리랑카의 비구니들은 대체로 한국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았다. 서쪽지방에서는 불교가 우세하고, 동쪽지방에서는 힌두교, 이슬람이 우세하다.

스리랑카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AD 70년경 예수의 부활을 의심했던 제자 도마가 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이에 따라 해양 실크로드에서 빠트릴 수 없는 콜롬보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성 도마교회가 있지만, 역사적 혹은 고고학적인 확실한 자료가 없다.  이런 역사를 인정한다면 한국 땅에서 기독교가 불교보다 약 330년 앞서서 전파되었다는 기록이다. 그는 선교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 총회에 선교 보고를 하러 가던 길에 인도에 들러 허황옥을 가야의 김수로 왕에게 중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 550년경 페르시아 상인들이 기록한 문서 크리스천 분포도라는 글에 페르시아의 네스토리안(Persian Nestorian) 크리스천이 스리랑카에 살면서 기지를 세웠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시리아 페르시아로부터 일어난 네스토리안 선교운동이 아누라다푸라에까지 전파되었으며, 트링코말리에 본부를 세웠다고 보고하였다. 네스토리안 십자가가 발견된 고고학적 증거도 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인들에게 어떻게 선교했는지에 대하여는 보고되어 있지 않다. 스리랑카의 기독교 역사는 대체로 450년간 이어진 식민지 역사와 함께 시작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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