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노회 주경덕 목사 소천

                  주경덕 목사(대영교회 원로) 별세(향년 92세)

안양노회 원로 주경덕목사가 지난 17일(목) 별세해 오는 21일(월) 시무후 은퇴한 대영교회장으로 9시 30분에 예식 후 발인해 수원연화장을 거쳐 국립 이천호국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현재 빈소는 안양 샘병원 장례식장에 계시며 상주로는 장남 과천교회 주현신목사와 가족들이 계시다. 고인은 안양노회장과 한국장로교출판사 이사는 하였지만 교회개혁의 관점에서 노회내  청목회의 후견인으로 또 예장목회자운동에 잠깐 참여하신 바 있지만 교권과는 거리가 멀게 오직 목양에 전념하신 분이다. 

주 목사는 인자하시고 늘 편안하게 동역자들을 대하시는 전상 목회자로 이북 태생으로 6.25때 월남해 부산에서 활동하던 호주선교사 맥켄지 자매를 만나 신학에 입문한다. 이후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병원등에서 일하며 부산신학교(당시 교장 서두화 목사)를 졸업하여 안수도 받는 다. 이후 장남 주현신 목사가 당시 부산장신 초대 교장을 하던 서두화목사가 본국으로 가서 멜번에 세운 최초의 한인교회의 목회자가 되자 방문하여 당시 부산 경남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과 해후한다.

   
* 왼쪽 주현신목사 부부,매혜란,매혜영 선교사,서두화 목사 부부,주경덕목사,주목사 손자

호주교회 파송 서두화(Alan Stuart)선교사 

부산경남 지역은 호주연합교회가 담당하였는 데 은사 서두화목사는 1956년 한국선교를 자원하고 사모 리타도 부산에 호주교회가 처음으로 파송한 빅토리아노회 소속이다. 리타사모도 벤디고 장로교회 출신으로 멜본대에서 교육학을 공부후 교사를 하다가 로랜드여성신학교를 나와 여전도사(Deaconess)로 사역하다가 1955년 마산선교부 선교사로 파송되어, 창신학교와 마산지역 농촌사역 등을 하면서 서두화목사와 편지로 연애를 한 후 결혼한다.

1957년 10월 서두화는 목사안수를 받고 멜본 노스 박스힐의 쿠낭하이트 장로교회에 잠시 목회를 하다가, 특별한 훈련은 없이 바로 멜본의 캔터베리장로교회에서 파송예배를 파송된다. 한국에 온후 2년간 한국어 습득에 전념하였는 데 1년간 감리교 선교회가 서울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다가, 연세대 부산캠퍼스가 생기면서 첫 학생으로 자리를 옮겼고, 네 번째 학기는 인천에서 연세대 학생들과 같이 기숙하면서 서울에서 공부를 한다.

당시 한국선교부는 딕 케년 선교사가 가장 선임이었고 정기모임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주요결정은 호주본부에서 직접 내렸다. 그런데 1959년부터 통합측과 합동측 장로교의 분열사태가 일어나는 데 경기노회의 임원선거에서부터 연유하는 데 선거부정 시비가 있었고, 미국의 보수선교단체인 NAE의 지원을 받은 그룹이 주도권을 잃어가면서 선거를 거부함으로서 갈등이 심화된다.

60년에는 마산노회에서 부산노회로 이적했고, 현재 부산장로회신학대학의 전신인 부산신학교와 고등성경학교(같은 학교에서 다른 과정으로 제공)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한다. 부인 후 4.19혁명(1960년)이 일어나고 마산서 고문으로 죽은 김주열 열사 시신 발견으로 학생들에 이어 국민 데모가 시작된다.

   
 

주경덕목사 배민수 목사와 삼애농장서도 동역해 

이후 주목사는 대전에서 농민학교 사역을 하다가 1959년부터 총회 농촌부 초대 총무 배민수목사가 세운 고양 삼애농장에서 함께 농민학교 운동에 동역한다. 이 학교는 ‘하나님, 농촌, 노동을 사랑하자’는 삼애(三愛) 정신으로 이후 연세대 신학과에 기증되고 현재는 삼애교회(연대서 담임으로 교목실 목사를 파송)로 지역교회로도 모인다.

배민수 목사는 소천하시면서 자신의 땅인 이곳에 묘역을 쓰고 삼애농장을 가족이나 총회에만 맡기지 않고 연세대와 공동으로 농촌과 지도자들 교육과 후견을 하라고 기증한다. 그리하여 연세대는 한 때 화훼과와 농과(이후 연세우유로 분가)를 두워 2년제 연대 농업개발원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후 신입생이 줄고 땅값이 오르자 연대는 매각 혹은 개발을 원하지만 우리 총회와 미국의 자녀들이 반대하여 현재 까지 그대로 방치되여 있다.

   
               * 주경덕목사와 아들 주현신목사 

장남 주현신목사

주현신목사는 서울사대 졸업후 구로중학교 윤리교사를 하다 전교조운동에 참여해 해직를 당하기도 한다. 이 때 현재 사모를 만난다. 당시 전교조가의 가사를 차봉숙이 쓰고 주현신이 작곡했다고 한다. 주현신은 음대는 안나왔지만 음악적 재능이 있어 대학생 때 1986년 장청노래선교단서 ‘한반도의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부활노래’, ‘새 날에 선 겨레여’ 등의 초기 민중찬양가을 작곡한다.

이후 전교조 문화국원으로 활동하다 장신대 신대원 88기로 졸업하고 호주 Melbourne College of Divinity에서 공부하고 멜번 한인교회 목사가 된다. 이후 2010년 1950년 설립된 과천교회 김찬종목사 후임인 4대 목사로 청빙 받아 목회중이며 실천신학대학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WCC 부산총회시 예배음악위원으로 활동도 했으며 이후 교회 음악에 기여하여 한 때 교회학교 공과에 그의 노래가 수록되기도 했다. 총회서는 장신대 이사를 지냈지만 교권과는 거리를 두고 10여 년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뜻이 맞는 동역자들과 ‘아드폰테스’(처음으로 돌아가자라는 라틴어)라는 개혁모임을 조직하여 대표를 지냈다. 

   
 

서두화목사도 주목사와 같은 날 소천

주경덕목사와 인연이 있어 언급한 서두화목사는 은퇴후 호주에 계신 데 주경덕목사와 소천한 이튿날인 7월 19일(토)에 소천하신 것으로 공지되였다.  99세 생일을 5일 앞둔 것으로 고동원목사(전 호주 멜버른교회 목사, 현 호주연합교회 부총회장)가 페이스 북에 공지한 추모 글을 소개한다. 

Tribute to the Late Rev. Alan Stuart (1926–2025) 한국어 추모의 글을 밑에 덧붙입니다.

It is with deep respect and gratitude that I pay tribute to the life and legacy of Rev. Alan Stuart, who passed away on 19 July 2025—just five days short of his 99th birthday. A faithful servant of God, Alan lived a life shaped by mission, humility, and an unwavering commitment to the Gospel.
Born in Horsham in 1926, Alan responded to God’s call as a Presbyterian minister and served as a missionary and theological educator in South Korea from 1957 to 1968—just before I was born— during a formative period in the life of the Korean church and society. His cross-cultural ministry, faithful witness, and deep love for the Korean people left a lasting impact.

In 1973, while serving under a Victorian Presbyterian Church Assembly appointment, he became the founding minister of the Korean Church of Melbourne—the first Korean Christian church in Australia—where he served until 1976, before taking up a new appointment at the parish of East Ringwood. Years later, I would follow in his footsteps as the 8th minister of that same congregation. During my tenure, it was a great joy to invite him back to preach at the church’s 40th Anniversary celebration in 2013.
It has been one of the great blessings of my life to have known Alan. Even in his 90s, his faith remained active and vibrant—he continued leading worship in churches and aged care facilities. His joyful spirit left a lasting impression on all who knew him. I’ll never forget the delight on his face when he tried a Segway for the first time in 2018—his joy and curiosity as fresh as ever.

Alan was a man of deep humility and quiet wisdom. When I first met him, I addressed him respectfully as “Reverend Stuart.” But he gently said, “We can’t be friends unless you call me Alan.” And so, Alan he became. When I visited him in 2015, he gifted me his handwritten diaries from 1957 to 1960—a priceless record of his missionary years in Korea, now preserved in the History Hall of the Korean Church of Melbourne for future generations.

Rev. Stuart’s life also had a deeply personal impact on my own. When I stepped down as Senior Minister of the Korean Church of Melbourne, Alan said something that redirected my ministry:
“Paul, I believe that God sent you to Australia not just to share the gospel with Koreans, but with all peoples living in this country.”

That Spirit-filled encouragement has shaped my journey ever since. Since then, I have served Anglo, multicultural, and Fijian Uniting Church congregations in Melbourne. I now serve in the South Australian Synod, and last year I was elected President-elect of the Uniting Church in Australia.
When my family and I visited his humble home in Newcastle in 2016, Alan welcomed us with a home-cooked meal, complete with steamed rice. At the time, I was near burnout and asked him, “What has sustained you in your lifelong ministry?” He paused for a moment, then answered quietly and simply:
“Jesus. He has sustained me in my life and ministry.”

That answer has remained etched in my heart ever since.
Alan’s legacy lives on in the lives he nurtured, the churches he served, and the vision he passed on—a vision of a church open to the world, grounded in love, and called to embrace all peoples as friends.
Let me conclude this tribute with one verse from Romans that Alan most favoured:
“May God, the source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Romans 15:13)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Rest in peace, and rise in glory, dear friend.

                    故 앨런 스튜어트 목사님(1926–2025)을 추모하며

2025년 7월 19일, 99번째 생신을 불과 닷새 앞두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故 앨런 스튜어트 (한국명 서두화) 목사님의 삶과 유산을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추모합니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셨던 목사님은 선교, 겸손, 그리고 복음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1926년 호샴(Horsham)에서 태어나 장로교 목사가 되신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용기와 확신으로 응답하셨습니다. 1957년부터 제가 태어나기 직전인 1968년까지, 그는 한국교회와 사회에 있어 중대한 시기에 선교사이자 신학교육자(현재 부산장로회신학대학 학장) 로서 사역하며 큰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그의 문화 간 선교, 신실한 복음증거, 그리고 한국인들에 대한 깊은 사랑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1973년, 빅토리아 장로교회 총회에서 일하시는 동안 호주 최초의 한인교회인 멜본한인교회의 창립목사로 1976년까지 섬겨주신 후 이스트 링우드(East Ringwood) 교구로 옮기시면서 후에 장로회신학대학 교수가 되신 고 김이태 목사가 제 2대 목사로 부임합니다. 몇 십년 후, 저는 그 분의 뒤를 이어 이 교회의 제8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사역 중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는 2013년 멜본한인교회 40주년 기념예배에서 그분을 모시고 말씀을 전해주신 일이었습니다. 4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부산장신대학교에 "서두화 목사 기념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서두화 목사님을 알게 된 것은 제 삶에서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였습니다. 9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은 여전히 활기차고 생생했으며, 교회와 요양원에서 예배 인도를 계속하셨습니다. 2018년 처음으로 세그웨이를 타보시며 아이처럼 기뻐하시던 그의 얼굴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깊은 겸손과 조용한 지혜를 지닌 분이셨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 저는 예의를 갖추어 “목사님”이라고 불렀지만, 그는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친구가 되려면 나를 앨런이라고 불러야 해요.” 그때부터 저는 그를 ‘앨런’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2015년 그분을 방문했을 때, 목사님은 1957년부터 1960년까지 한국에서의 선교 사역을 기록한 친필 일기 세 권을 제게 주셨습니다. 이 귀중한 기록은 지금 멜본한인교회 역사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제가 멜본한인교회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을 때, 목사님은 제 사역의 방향을 바꾸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폴, 하나님이 너를 호주에 보내신 것은 단지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만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믿어요.”

이 성령의 감동에서 나온 말씀은 호주에서의 제 사역 방향을 새롭게 잡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저는 멜번에서 앵글로(Anglo), 다문화, 그리고 피지안(Fijian) 교회를 섬기게 되었고, 현재는 남호주 주총회(South Australian Synod)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호주연합교회(United Church in Australia) 차기 전국총회장(President-elect)으로 선출되었습니다.

2016년, 저와 가족이 뉴캐슬에 있는 목사님의 소박한 집을 방문했을 때, 목사님은 직접 지은 밥과 함께 정성껏 점심을 차려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사역의 탈진을 느끼던 시기였기에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평생 사역을 지탱해준 힘은 무엇이었나요?” 목사님은 잠시 멈춘 뒤, 조용히 그리고 단순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내 삶과 사역을 지탱해주셨지.” 그 말씀은 제 마음 깊이 새겨져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유산은 목사님이 양육한 사람들, 섬긴 교회들, 그리고 목사님이 남긴 비전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 비전은 세상에 열린 겸손한 교회, 사랑에 뿌리내린 교회, 그리고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맞이하는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추모의 글을, 앨런 목사님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로마서의 한 구절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소망의 하나님께서 믿음 안에서 여러분에게 모든 기쁨과 평화를 충만하게 하시어,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빕니다.” (로마서 15장 13절),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여"(마 25:21) 

                   사랑하는 친구 목사님, 평안히 쉬시고 영광 가운데 부활하소서.  고동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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