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 목요강좌’는 누구보라는 얘긴 지?
지성과 영성의 만남은 아직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다.
양화진 100주년 기념교회의 양화진문화원(원장 박흥식)은 지난 27일 오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에서 ‘노아’를 주제로 성서 스토리텔링 다섯번째 대담을 진행했다.
이 목요강좌는 이 시대의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지성 이어령 박사를 강사로 초빙하여 이 교회의 이재철 목사가 대화의 형식으로 진행하는 강좌형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강좌는 그 대상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어딘 가 누군가를 향해서 나는 제명을 당했어도 건재하며 잘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행사는 다분히 정치적인 성격으로 보여진다.
성경의 난해한 부분이나 기독교내의 예민한 논점들을 놓고 서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풀어나가는데 주관과 객관 사이의 경계를 오가며 인문학과 신학의 울타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이 프로가 의도하는 주 독자층이 누구인지? 어디인지는 잘모르겠다는 것이다. 방송국에서 녹화하여 전국으로 중계하는 것으로 보아 내부용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향한 발언은 틀림없다.
제 5회 담화 "노아"
이번에 제 5회째 대담에서 노아의 방주 문제를 이어령 박사는 “지금까지 수많은 신학자들이 노아의 방주를 과학적으로 풀어왔지만 절대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우리 기독교인들이 과학과 안티기독교인들과 맞서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이나 로마군사들이 찾아왔을 때 걸려든 것처럼 그들의 논리에 걸려들고 만다”고 말했다.
성서는 과학적, 문화적, 종교적 담론으로 보면 각각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읽고 받아들여서는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박사는 해석의 과정에서 각각의 담론들이 충돌하는 것을 두고 성경의 메시지를 왜곡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강조한다.
이재철 목사도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주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그 메시지를 설명해 주는 내용”이라며 “성경은 과학이나 의학 텍스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경전이다. 하나하나의 단어가 경전의 어디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알게 되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노아가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셨다고 생각한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자력 구원의 종교가 되고 만다”며 “노아도 죄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노아의 방주에는 세상을 향한 창문이 없었고, 오직 하늘로만 뚫린 창문 하나만 있었다. 노아와 가족이 방주 안에서 보낸 시간이 1년 17일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동물들을 돌보는 중노동을 견디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하늘로 향한 유일한 창문 때문이었다”며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게 하심에 있어, 1년여 동안 하나님과만 눈을 맞추는 훈련을 시키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령 박사는 “노아의 방주가 지금 필요하다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많은 정보들 속에서 진짜와 가짜, 생명과 죽음의 정보를 가려내야 할 것”이라며 “세상과 단절돼 있었지만 천창 하나로 죽지 않고 새로운 희망과 생명을 잉태할 수 있었던 방주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밝은 정신이 그릇된 정보들을 걸러내고 하나님과 눈을 마주치며 살아야 한다. 교회가 이 일을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령 교수를 통하여 드러내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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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령 교수 | ||
그러나 이 토론을 보면 내용이 대담도 아니고 강좌도 아니다. 수준있는 평신도라도 소화하기에는 난해하고 목회자들이 듣기에도 매우 현실성이 없으며 일반 지성인들에 듣기에도 사전이해가 없이는 뜬구름 잡는 소리다. 이런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방송하지 하려면 거액이 들 것으로 단순히 매주하는 방송설교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 기획의 이면은 이 목사의 현재 처지와 상관이 있다. 그가 성장했던 교단의 야박한 처사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은 교단의 노회로 부터 면직을 받았지만 한때 이 목사는 통합측에서 안수 받고 명성도 얻고 대중도 얻었고 부와 명예도 얻은 최고의 인기 강사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재미를 본 사람인데 스타일 구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100주년 교회는 재력도 충분하고 자력으로 교회당을 사든지 건축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교회인데 왜 양화진으로 들어가서 그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것도 선교사들이 이미 기득권을 갖고 버젓이 예배하던 곳을 처음에는 빌렸다가 숫자가 많으니 밀어내고 주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데 사람들은 법적으로는 누가 옳은지 그른지는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 다만 이재철 목사가 왜 그런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목사가 노회에 항명하기는 쉽지 않아
목사의 소속은 노회인데 노회는 개 교회의 목회권을 참견하거나 관여하지 않는 다. 오히려 목회자들이 노회 법을 어기거나 치리에 불응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이유로 이 목사도 보통 교회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여 (장로교회의 근간인 당회를 무력화 시키고 장로 호칭) 남발하였다) 그렇게 해서 이재철 목사는 노회는 물론 총회와 대결한 사람이다. 그만큼 자신있고 힘이 커졋다고나 할까. 만약 작은 교회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까? 그런면에서 그는 강자다. 노회와 교단을 상대로 싸을 만큼 거물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를 면직한 노회의 처리도 다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일로 인하여 사회적인 이미지의 실추와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인 여론들을 씻어낼 의도로 만든 감이 없지 않은 것이 바로 이 대담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자신의 건재함을 드러내고 문제가 없다는 식의 모습을 보이는 것인데 사실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그 강좌는 수단일 뿐이고 강사도 이용거리다. 나는 면직을 당했어도 사람들은 모인다. 나는 계속 이길을 간다. 교단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교단이 없어도 나는 무엇이 든지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조짐은 대형교회들에게서 많이 나타날 것이다.
이번에 이 강좌에 주 강사인 이어령교수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최고의 강사료를 주어야 하는 인물이다. 1934년 1월 15일 충남 아산 출생으로 부여고교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1956)하였으며 1959년에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경기고교 교사, 단국대 전임강사,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문학사상』 주간, 문화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언론계에도 몸담아 서울신문외 중앙일보의 논설위원 시절에 5공 출범시 문화공보부 장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역시 우리 사회의 주류 지식인들이 그러하듯 양지만 쫓아서 살아 온 사람이며 그동안 한번도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반성하는 말을 듣지 못했고 자중하지도 않고 있다.
보여주기식의 개종
이 교수가 기독교계에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그의 딸 고 이민아 목사(미국 검찰청 검사 출신) 실명과 암 투병으로 인한 딸의 간곡한 권유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부터다. 그리고 그의 세례식을 하용조 목사가 단독으로 집례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보여주기식의 퍼포먼스형식으로 일본선교를 위한 “러브 소나타” 의 성공을 위한 준비로 연출된 것이다. 그 후 이 박사는 “지성에서 영성” 으로 라는 간증서에서 자신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전후 사정을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세례식이 잘못되였다는 말이 아니다. 하여간 하용조 목사는 이 박사의 사회적 지명도를 이용하여 무신론자의 대표적인 지성인 그를 기독교로의 개종의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하여 본인의 동의 아래 그의 세례라는 종교의례를 선교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한것이다.
이어령 교수는 구원투수
이어령 교수가는 젊은 시절 동경대학에 교환교수로 지내는 동안 한일관계사를 많이 연구하고 책도 집필하여 명성을 얻기 시작하여 대표적인 일본통으로도 통한다. 일본에 대한 방대한 역사 문화적인 저작들(축소지향의 일본인등)로 인하여 이미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저술들은 한일관계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BIBLE 수준이다. 한일관계를 가장 독창적으로 접근한 학자로 전무후무하게 일본을 가장 세심하고 깊게 본 한국인으로 이미 세계의 일본연구 학자들에게나 일본 지식인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도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전두환 군사정부에 뭐가 모자라서 그들식의 정의구현 사회를 위한 호국정신 문화 창달의 첨병으로 나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잠시 조용하다가 몇년전 부터 기독교계의 인기 강사가 되어 그의 특유의 언어화술과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기성 신학자 이상의 지적인 능력과 분석으로 그동안 시도 되지 않은 눈으로 성서와 신앙문제에 접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식자우환, 알아도 못할 말이 있다.
그러나 70이 넘어서 기독교에 귀의한 그가 생각하는 기독교와 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다분히 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역시 창조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분답게 많은 유행어를 낳고 있다. 한편 문화목회에 대한 연구와 홍보를 하고 있는 예장통합 총회문화법인이 마련한 ‘문화목회의 소통과 공감-시대와 문화코드’라는 제목으로 한 세미나에서는 [인터페이스]를 강조하였다.
인터페이스[interface]란 컴퓨터 용어로 서로 다른 두 시스템, 장치, 소프트웨어 따위를 서로 이어 주는 부분. 또는 그런 접속 장치를 말합니다. 사람과 컴퓨터를 접속시켜주는 키보드 역시 인터페이스의 하나입니다. 이 박사는 교회의 목회자는 인터페이스 즉 신도와 하느님을 연결하는 하나의 접속자의 역할을 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설교’라는 일방적인 소통대신에 ‘접속’이란 말을 더 적합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화코드가 쌍방향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문화코드에 맞추려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설교’라는 말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은 ‘접속’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접속해 주는 키보드 역할을 목사님들이 해 주셔야 합니다.” 라고 주문하였다.
설교에 대해 말하기는 아직 이른 분
그러나 이런 글이나 말은 깊은 내용을 분석하고 평론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나 사실 설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물론 할수도 있지만 이분은 설교를 설득 혹은 홍보와 선전쯤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그렇게 사용하는 목회자가 없는 것은 아님) 그러나 설교란 목회자의 삶이며 고백이고 선포이다. 토론과 질문을 전제로 하지 않는 다. 모든 설교가 다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심정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접속" 운운 하는 것은 컴퓨터를 너무했던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면 설교는 강연이나 설명으로 전락된다.
그러니 설교 전달을 위하여 시청각자료나 동영상이나 자료들을 활동하는 목회자가 늘지만 설교는 그 자체로써 완벽한 내용과 전달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내용과 진실이 부족하고 약화되니 보조 자료를 쓰고 영상과 음악에 의존하고 장비가 동원된다. 그러다가 한개만 문제가 되어도 그 설교는 리듬이 깨지고 실패한다.
그래서 강단에서의 전달은 심플해야 한다. 사실 마이크와 목소리로로 승부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전기가 나가거나 마이크에 문제가 생겨도 당황지 않고 육성으로 가는 것이다. 누구를 의지하거나 다른 기계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요즘 좋은 음향장비와 기계들이 생기니 영상 띄우고 음향조절하고 하는 일들에 사람이 배치되어 불필요한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 일뿐이다.
이재철 목사가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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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철 목사 | ||
이제 결론으로 말해서 영화진에 있는 100주년 교회와 이재철 목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 본다. 이재철 목사는 신학교에 오기 전 그의 부인과 홍성사라는 출판사를 통하여 좋은 도서들을 많이 출판하여 돈도 벌고 명성을 얻은 분이었다. 감성적으로 탁월한 안목에 사업가로써도 성공한 셈이다. 그런 그가 뒤늦게 신학을 졸업하고 개척한 주님의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는데 기성교회와 다른 페턴의 설교와 목회운영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처음 선언한 대로 10년 간 목회후 사임을 한다는 약속을 지킨 몇안되는 목사다.
그리고 이때의 주옥같은 설교와 강연을 책에 담아서 더욱 유명해졌다. 아마 그가 출판한 책의 인세만도 대단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초창기에 주님의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거의가 새 신자라기 보다. 소문과 이름 듣고 온 수평 이동한 교인들이 대다수다. 심지여 어떤 분들은 자기 교회에서 낮 예배 드리고 오후에는 주님의 교회로 모인다는 것이다. 김진홍 목사네 교회도 그렇고 그런 교회들의 특징은 기성교회와 목회자를 적당히 비판하며 교인들을 선동하여 자기대중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류의 교회들은 기성교회의 문제에 기대여 재미보는 교회들이다.
그러나 그는 말뿐이 아니라 자신이 선포한 10년 목회의 약속을 지켰고 후임으로는 존경하는 영락교회의 임영수목사를 모셨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그 분도 사임을 하고 지금은 미국 시카코에서 목회하던 박원호 목사가 시무를 한다. 그리고 지금도 이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정신여고에 강당을 지어주고 그곳을 사용하고 있다. 그 후 이재철 목사는 스위스 제네바 한인교회를 시무하다가 귀국하여 100주년 기념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재철 목사는 엣날의 이재철 목사가 아니라는 말들을 한다. 이제 그는 겸손하고 무릎을 끓는 목사가 아니라 권력을 갖은 목사라고 말한다. 교권과 싸워서도 패배하지 않고 건재하고 공 교회가 그의 목사직을 면직했어도 개의치 않는 다. PCK의 권징은 그에게 있어서나 100주년 교회의 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재철 목사와 100주년 교회는 교단이나 노회가 없어도 목사이고 교회이고 승리한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강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