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글을 소개한다. 한 개는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찾아보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척하여 세상 말로 성공적인 목회를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누리고 만족하지 않고 내려온 경우다 쉽지 않은 일이다.
또 하나는 실명 글이다. 젊은 분으로 개척에 대한 실랄한 평이다. 실제 개척 경험은 없지만 남양주에서 1년간 부교역자로 현장을 본 분으로 개척목사는 모든 것을 털어 넣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당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일단의 젊은 목회자의 말이니 들어 보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2007년 1월 용인시 기흥구에 기독교대한감리회 ㅇㅇ교회를 개척했다. 목사가 교회를 개척한다는 말의 의미를 아시는지? 이는 새로 가게를 여는 것과 비슷하다. 상가 한 칸을 임대한다. 인테리어를 한다. 간판을 단다. 설교대, 장의자 등 필요한 집기를 마련한다. 어떤가? 자영업자의 출발과 같지 않은가? 개업 이후 가족의 생계를 오롯이 자신이 운영하는 교회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동일하다.
그렇게 자영업자가 상점을 오픈하듯 나는 담임목사로 이 모든 과정을 주관하며 교회를 개척했다. 문득 궁금하다. 다른 종교인도 이런 식으로 절이나 성당을 시작하는지. 암튼 그 시절 몇몇 동네 사람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사장님!” 이런이런…… 목사에게 사장님이라니!
교회를 개척한 이후 정기적으로 자문했다. 나는 성직자인가, 사업가인가? 나는 목사인가, 사장인가? 교회 신도 수가 빠르게 증가한 2010년 즈음부터 나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들은 나를 종교사업가로 간주하고, 내가 사업을 잘한다고 칭찬했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ㅇㅇ교회라는 사업체의 사장이었다. “우리 목사님은 성공하셨지.” 교회에도 이런 말을 하는 교우가 생겨났다.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목사인가, 아님 사장인가?’
지난 15년을 바친 교회. 별의별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맨땅에서 시작하고 내가 여기까지 끌어왔다. 지난 세월 숱한 문제를 몸소 감당한 이도 나였다. 바로 내가 헤쳐 나왔다. 40-55세까지 이내 생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바친 교회. 목사들의 시쳇말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이 와도 나는 갈 생각이 없었다. OO 교회는 나의 왕국이었다. 나의 체액으로 흠뻑 적셔진 ‘나의 나라.’ 내 뜻을 거역할 사람 하나 없는 나의 왕국이 개척자인 담임목사의 위치요, 나의 권력이다. 그러므로 새벽에 눈을 떠 이 장소, 이 공동체를 향해 걸음을 내딛지 않는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어느새 나는 교회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괴물이 되어 가던 것이다.
교회 건물의 등기 서류에 내 이름이 올랐고, 교회 거래 계좌가 내 이름으로 된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는 행정 편의를 위한 것이지 교회가 담임목사의 소유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당시 내 위치를 망각했다. 괴물이 무엇인가? 다수가 기이하다고 여기는 생명체가 아닌가. 기독교인들은 다 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가 아니라는 것을. 교회는 종교사업체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므로 나는 괴물이었다. 기이하게 변한 괴물.

그날 이후 교우들에게 교회 규약을 개정하겠다고 알렸다. 중직들로 이루어진 ‘교회규약개정위원회’를 한 달 만에 꾸렸다. 우리는 1년여간 교회의 주인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정관 개정을 연구했다. 그 결과로 ‘담임목사 임기제’를 내놓았다. 교파는 다르지만 담임목사 임기제를 성공적으로 시행하는 송파구 소재 OOO교회를 참고했다. 그 교회는 임기를 10년으로 했지만, 우리는 13년으로 정했다. 처음에 나는 10년을 꺼냈다. 위원들은 너무 짧다며15년을 제안했다. 나는 경험상 15년이면 담임목사가 주인으로 변질하기에 충분하다며 반대했다. 옥신각신하다 절충안으로 1년의 안식년을 포함한 13년으로 중지를 모았다.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이는 6년 시무 후에 1년의 안식년을 갖고, 다시 6년 시무 후에 퇴임하기로 정해진 것이다. 이는 그해 말 신도들의 총회인 당회에서 절대 다수의 지지로 통과되었다.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비롯됐다. 규약이 통과되던 시점 나는 담임목사로 16년 넘게 재직 중이었다. 임기를 13년으로 정했으니 당장 그만두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사표를 당장 내는 것이 맞지 않나?” 나의 질문에 대부분의 성도는 새로 제정된 규약은 다음 담임목사부터 적용되어야 한다고 반응했다. 당신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이니 교단법에 따라 정년인 70세까지 담임목사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답했다.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일지 좀더 고민해보자.” 내 안에는 양가감정이 일어났다. 신도들이 나의 사임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함과 더불어 불편한 마음이 고였다. 동시에 나는 70세까지 30년간 담임을 하고는 후임자에겐 13년만 하라기엔 불편했고, 이미 주인의 맛을 본 내가 청지기로서 담임목사직을 수행할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2024년 말 당회가 열렸다. 나는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조만간 퇴임하겠다 발표했다. 후임자부터 물색하겠다고 했다. 후임자와 내가 1년 정도 함께 목회하다가 물러나겠다고. 신도들은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나의 퇴임이 가져올 교회의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했다. 내가 자신들을 버리려 한다는 서운함도 가졌다. 그들은 내가 퇴임하지 않기를 바랐다. 일부는 우리 가정 형편도 가늠하는 듯하다. ‘설마 그만둘까. 아직 공부시킬 자녀도 있는데 정말로 그러진 못하겠지.’ 그들은 생활인으로서 목사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이런…… 내 퇴임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잖아요!” 나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