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의 고백

두개의 글을 소개한다. 한 개는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찾아보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척하여 세상 말로 성공적인 목회를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누리고 만족하지 않고 내려온 경우다 쉽지 않은 일이다. 

또 하나는 실명 글이다. 젊은 분으로 개척에 대한 실랄한 평이다.  실제 개척 경험은 없지만 남양주에서 1년간 부교역자로 현장을 본 분으로 개척목사는 모든 것을 털어 넣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당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일단의 젊은 목회자의 말이니 들어 보자   

우리나라의 교회개척은 사실상 스타트업 창업과 비슷하다. 목사님들이 모든 것을 갈아 넣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어떻게 그가 하는 가에 따라 초기에 교회의 존속 및 부흥여부가 결정된다. 개척 신화를 쓴 사람들의 간증은 스타트업 성공담과 비슷하다. 밤낮없이 기도하고 전도했더나 하나님이 사람들을 막 붙여 주시더라는 식의 말이 주를 이룬다. 유투브 장사의 신 은현장씨의 성공방식과 비슷하다.
 
이런 식으로 교회를 키워놨으니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교회를 이어 받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럽다. 말 그대로 내가 다 했는데, 이걸 왜 내가 남에게 넘겨주냐는 생각이다. 그들에게는 상식이다.  남양주의 10명 남짓한 교회의 전도사 생활을 한 1년 했다. 목사님은 거의 70세가 되셨고, 하도 가난하셔서 교회에서 사모님과 숙식을 하셨다. 그래도 매주 복음을 전하시고 큰 감동을 많이 받았다. 그 교회는 그 목사님이 몇 십년 버텨서 계속 존속이 가능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교회 개척을 계속 한다면 세습이건 은퇴후 개척자금을 요구하건 뭐라 말할 것은 없다고 본다. 애시당초 내가 내 맘대로 주물러 보고자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교회를 세웠는데, 맘대로 주무른다고 무슨 문제가 될까.  이런 문제는 개척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성도가 부르기 전에 목사가 깃발을 꼽고 스타트업식의 개척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정 지역에 믿는 사람이 없다면, 전도목사를 파송하고 그가 전도에 전념하도록 교단이 돈을 대줘야 한다. 그가 개종자를 많이 만들면, 개종자들이 노회 등에 다른 목회자를 청빙하게 해야 한다.
지금은 전도하는 사람이 먼저 교회를 세우고 전도로 사람을 채우면서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니, 누가 나의 세운 교회를 가져간다 생각이 들면 악에 받치는 것이다.  한 지역에 교회가 많다면 개척을 왜 해야 하는가? 할 이유가 없다. 공 교회를 고백한다면,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을 고백한다면 아무리 교회가 다 헛짓을 하는 것 같아 보여도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믿고 자신은 교회가 없지만 목사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지역으로 가야 한다.

성도들이 자신을 부르는 곳이 없다면 다른 직업을 찾으면 된다. 내적 소명은 있으나 외적 소명은 없기 때문이다. 목사가 성도가 있어야 목사지, 성도가 없다면 목사로 불리기 어렵지 않은가. 버스기사라는 부르심이 어떤 버스라도 핸들을 잡고 있어야 기사가 되는 것이지, 버스가 없으면 1종 대형면허를 보유하고 있어도 아무도 버스기사로 부르지 않는다.

목회자들은 나름대로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한 번 띄워 보고 싶어 한다. “개혁교회”,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 “제대로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 “다음 세대가 살아 숨쉬는 교회” 등 훌륭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목사님들이 제대로 한 번 해서 차별점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큰 유익을 주고 싶다는 좋은 취지이다. 그러나 이런 취지는 은퇴 이후 성도들도 목사님이 저정도 인생을 갈아 넣었으면 전별금 몇 억은 가져가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성도들이 모든 것을 준비해 두고 목사를 예컨데 어느정도 성장한 기업의 CEO와 같이 고용한다면, 전별금과 같은 것들이 나올 여지가 없다. 계약에 따라 사례를 주고, 계약이 끝나면 끝이다. 물론 목사님들은 이런 위치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대 주주가 되어야 마음껏 방해없이 다른 이들은 다소 부족하여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본인의 목회철학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존경받는 옥한흠 목사님도 원로목사로 사셨다.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로 조기 은퇴는 했지만, 원로목사의 대우는 계속해서 누렸다. 교인 모두가 교회의 대부분의 지분이 그의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원로목사가 된다고 했을 때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다. 

박영선 목사님이 이제 와서 특별하게 비판받는 것이 참 의아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개척 목사님=교회 최대 주주”라는 사고방식들은 수십년간 용인되어왔고, 원로목사제도로 합법화가 되었다. 1000억중에 40억원을 요구한다면 그 분의 입장에서는 10억 자산의 교회 담임목사가 4천만원의 전별금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정도는 이미 모두 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은 사제들이 초임일 경우 월 130만원에서 150만원 내외를 받고, 경력사제는 호봉에 따라 월 200만원 이상 받지만, 연 1만원씩 인상된다고 한다. 퇴직금은 월 3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바티칸에 재직하는 추기경의 월급은 약 5000유로 수준이다. 한 800만원정도라 할 수 있다. 대신 주거와 의료비를 전액 지원받는다고 한다. 이들에게 교회는 거쳐가는 곳이다. 주임사제의 근무기한은 5년 내외라 한다. 그야말로 계약직 직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2007년 1월 용인시 기흥구에 기독교대한감리회 ㅇㅇ교회를 개척했다. 목사가 교회를 개척한다는 말의 의미를 아시는지? 이는 새로 가게를 여는 것과 비슷하다. 상가 한 칸을 임대한다. 인테리어를 한다. 간판을 단다. 설교대, 장의자 등 필요한 집기를 마련한다. 어떤가? 자영업자의 출발과 같지 않은가? 개업 이후 가족의 생계를 오롯이 자신이 운영하는 교회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동일하다.

그렇게 자영업자가 상점을 오픈하듯 나는 담임목사로 이 모든 과정을 주관하며 교회를 개척했다. 문득 궁금하다. 다른 종교인도 이런 식으로 절이나 성당을 시작하는지. 암튼 그 시절 몇몇 동네 사람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사장님!” 이런이런…… 목사에게 사장님이라니!

교회를 개척한 이후 정기적으로 자문했다. 나는 성직자인가, 사업가인가? 나는 목사인가, 사장인가? 교회 신도 수가 빠르게 증가한 2010년 즈음부터 나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들은 나를 종교사업가로 간주하고, 내가 사업을 잘한다고 칭찬했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ㅇㅇ교회라는 사업체의 사장이었다. “우리 목사님은 성공하셨지.” 교회에도 이런 말을 하는 교우가 생겨났다.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목사인가, 아님 사장인가?’

개척한 지 15년이 지난 2022년. ㅇㅇ교회는 수지구와 기흥구의 45개 감리교회 중 5번째로 큰 규모의 교회로 성장했다. 어엿한 단독 건물을 가진 교회이기도 했다. 그해 어느 날 집을 나서 교회로 출근하던 길이었다. 문득 깨달음이 날 건드렸다. ‘ㅇㅇ교회가 없는 나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구나!’ 그랬다.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나는 내 교회를 사랑했다. ㅇㅇ교회가 나였고, 내가 ㅇㅇ교회일 정도로 말이다. 말 그대로 내가 곧 교회였다.
 

지난 15년을 바친 교회. 별의별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맨땅에서 시작하고 내가 여기까지 끌어왔다. 지난 세월 숱한 문제를 몸소 감당한 이도 나였다. 바로 내가 헤쳐 나왔다. 40-55세까지 이내 생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바친 교회. 목사들의 시쳇말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이 와도 나는 갈 생각이 없었다. OO 교회는 나의 왕국이었다. 나의 체액으로 흠뻑 적셔진 ‘나의 나라.’ 내 뜻을 거역할 사람 하나 없는 나의 왕국이 개척자인 담임목사의 위치요, 나의 권력이다. 그러므로 새벽에 눈을 떠 이 장소, 이 공동체를 향해 걸음을 내딛지 않는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어느새 나는 교회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괴물이 되어 가던 것이다.

갑자기 괴물이라니? 의아한 독자를 위해 부연하자면, 목사는 종교인이며 성직자다. 그것이 나의 정체다. 성직자는 신을 모시고 산다. 그분의 뜻을 살피고 전하고 실행한다. OO교회의 담임목사? 이는 한시적 직분에 불과하다. 내 정체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교회는 신의 뜻을 따르려는 신자의 모임이다. 따라서 교회는 목사의 사업체가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내가 모시는 신이요, 담임목사는 일종의 매니저일 뿐이다. 고용주는 신이고 나는 피고용인이다. 목사인 내가 개척했고, 내 돈으로 상가를 얻었고, 내 돈으로 집기를 구입했더라도 내가 주인은 아니다.
 

교회 건물의 등기 서류에 내 이름이 올랐고, 교회 거래 계좌가 내 이름으로 된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는 행정 편의를 위한 것이지 교회가 담임목사의 소유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당시 내 위치를 망각했다. 괴물이 무엇인가? 다수가 기이하다고 여기는 생명체가 아닌가. 기독교인들은 다 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가 아니라는 것을. 교회는 종교사업체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므로 나는 괴물이었다. 기이하게 변한 괴물.

그날 이후 교우들에게 교회 규약을 개정하겠다고 알렸다. 중직들로 이루어진 ‘교회규약개정위원회’를 한 달 만에 꾸렸다. 우리는 1년여간 교회의 주인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정관 개정을 연구했다. 그 결과로 ‘담임목사 임기제’를 내놓았다. 교파는 다르지만 담임목사 임기제를 성공적으로 시행하는 송파구 소재 OOO교회를 참고했다. 그 교회는 임기를 10년으로 했지만, 우리는 13년으로 정했다. 처음에 나는 10년을 꺼냈다. 위원들은 너무 짧다며15년을 제안했다. 나는 경험상 15년이면 담임목사가 주인으로 변질하기에 충분하다며 반대했다. 옥신각신하다 절충안으로 1년의 안식년을 포함한 13년으로 중지를 모았다.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이는 6년 시무 후에 1년의 안식년을 갖고, 다시 6년 시무 후에 퇴임하기로 정해진 것이다. 이는 그해 말 신도들의 총회인 당회에서 절대 다수의 지지로 통과되었다.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비롯됐다. 규약이 통과되던 시점 나는 담임목사로 16년 넘게 재직 중이었다. 임기를 13년으로 정했으니 당장 그만두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사표를 당장 내는 것이 맞지 않나?” 나의 질문에 대부분의 성도는 새로 제정된 규약은 다음 담임목사부터 적용되어야 한다고 반응했다. 당신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이니 교단법에 따라 정년인 70세까지 담임목사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답했다.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일지 좀더 고민해보자.” 내 안에는 양가감정이 일어났다. 신도들이 나의 사임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함과 더불어 불편한 마음이 고였다. 동시에 나는 70세까지 30년간 담임을 하고는 후임자에겐 13년만 하라기엔 불편했고, 이미 주인의 맛을 본 내가 청지기로서 담임목사직을 수행할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2024년 말 당회가 열렸다. 나는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조만간 퇴임하겠다 발표했다. 후임자부터 물색하겠다고 했다. 후임자와 내가 1년 정도 함께 목회하다가 물러나겠다고. 신도들은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나의 퇴임이 가져올 교회의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했다. 내가 자신들을 버리려 한다는 서운함도 가졌다. 그들은 내가 퇴임하지 않기를 바랐다. 일부는 우리 가정 형편도 가늠하는 듯하다. ‘설마 그만둘까. 아직 공부시킬 자녀도 있는데 정말로 그러진 못하겠지.’ 그들은 생활인으로서 목사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이런…… 내 퇴임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잖아요!” 나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2025년 6월 후임자를 정했다. 지금은 내가 그와, 그가 나와함께 한다. 2027년 3월 첫 주, 나는 담임목사 직에서 내려온다. 괴물이 인간으로 돌아가는 시간. 다행히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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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뉴스 편집자 계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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