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이 있어야 진보한다.
루터교는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로부터 연유된 교파이다. 독일에서 시작된 개신교회지만 독일주변의 북유럽과 미국으로도 진출을 했ㅎ다. 한국에서의 대표적인 교회인 중앙교회와 교단본부가 있는 한남동은 지난 1967년 1월 29일 중구 도동2가 91번지에 미국 루터교회 미주리 시노드 소속 박덕인 선교사가 창립하였는 데 당시 교회명은 삼위일체교회였다. 그후 일본 유학을 마친 지원상 목사가 부임해 1975년 중앙교회로 바꾸고 루터교센터를 짓고 교회도 입당한다. 이곳에는 루터란 아워라는 방송국도 운영중이다. 현재 최주훈 목사가 담임이다. 교세가 작지만 진보와 중도 보수 개신교 교단 목회자들의 모임인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회원이며 NCCK 에도 회원교단이다. 한 때 벧엘성서연구라는 이름으로 성서연구의 풍토를 조성하기도 했다.
한국의 루터교는 미국 루터교로부터 시작되었는 바 컨콜디아라는 출판사로 유명하며 미국에서는 신학교도 따로 있지만 보수적이다. 그러나 독일을 비롯하여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등에서 개혁교회의 유일한 교단이다. 장로교는 영국 스코틀랜드와 미국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한국에서 큰 교단들이지만 유럽에서는 개혁교회로 부르며 WCC나 WCRC에서는 중심교단이다. 다음은 최지훈목사가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교단 이길주목사의 반론 글을 소개한다. 논쟁을 붙이려는 것은 아니다.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최주훈 목사 (중앙루터교회, 저서 루터의 재발견, 예배란 무엇인가, 루터의 대교리문답, 루터의 소교리문답 해설, 최주훈의 명화이야기, 프로테스탄트의 기도, 루터 95개 논제, 하나님이 일하신다, 모두를 위한 루터 등)

“땡, 땡, 땡. 다같이 묵도하심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수십 년간 반복된 이 문장은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익숙한 신호였다. 종이 세 번 울리면 회중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예배가 시작된다. 너무 익숙해서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 ‘묵도’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성경에 근거가 있는가. 초대교회가 이렇게 예배를 시작했는가.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것인가. 답은 모두 ‘아니오’다.
앞서 입당송을 이야기하면서 예배의 첫 순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초세기 교회는 말씀의 낭독으로, 4세기 이후 교회는 시편 입당송으로, 종교개혁자들은 회중찬송으로 예배를 열었다. 형식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원리는 같았다. 예배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이 회중을 부르는 은총의 행위, 혹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회중이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행위였다. ‘침묵 속에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예배를 연 전통은 기독교 2,000년 역사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묵도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묵도’라는 말의 이력서
이 용어의 이력을 추적하면 불편한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묵도(默禱)’라는 단어가 공적 의례 용어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12년 일본이다. 메이지 일왕의 기일에 교통기관을 멈추고 3분간 참배한 것이 기사화되었고, 1914년 일왕의 왕후 기일부터 묵도는 일본의 국민의례로 자리 잡았다. 이후 묵도는 신사참배, 궁성요배와 함께 일본 신도(神道)의 종교의식의 일부로 자리잡게 된다. 일본에서 ‘묵도’란 신사의 신령 앞에서, 혹은 황궁을 향해 고개 숙여 경배하는 종교적 행위였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 “묵도 = 신사참배 잔재”라는 공식이 한국교회 안에서 널리 퍼져 있지만, 이 공식에 균열을 내는 자료가 있다. 1925년에 발행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예식서에 이미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는 순서가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1938년 신사참배 공식 수용보다 13년이나 앞선 시점이다.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 중 누구도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고, 선교 초기 예배순서에 묵도는 없었다. 그럼에도 1920년대에 이 용어가 교회 예식서에 등장했다는 건, 직접적인 신사참배 강요 이전에 이미 일제 치하의 식민 문화가 한국 사회의 의례 언어 전반에 스며들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학교에서, 관공서에서, 각종 공식 행사에서 ‘묵도’로 시작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환경 속에서, 교회도 그 언어를 자연스럽게 흡수한 것이다.+
1938년, 묵도의 변질
1938년 이후 상황은 질적으로 달라진다. 조선총독부가 매월 1일을 애국일로 지정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예배당에도 국기가 게양되고, 예배 전에 국기에 대한 경례, 황궁요배, 기미가요 제창, 황국신민서사 암송이 이루어진 뒤 ‘묵도’가 행해졌다. 이제 묵도는 더이상 모호한 침묵의 기도가 아니었다. 일왕과 황군을 위한 참배 행위 그 자체였다. 일제 말기 한국교회의 주일예배는 대동아전쟁 필승기원 묵도로 시작되었고, 그 뒤에야 비로소 찬송과 기도와 성경봉독이 이어졌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일왕의 신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던 것이다.
해방 이후 황궁요배는 사라졌고, 기미가요는 더이상 불리지 않았다. 그러나 묵도는 살아남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묵도라는 행위가 겉으로 보기에 ‘조용한 기도’와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어감, 비슷한 자세, 비슷한 분위기, 기원이 무엇이었든 ‘경건한 침묵’으로 포장되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고, 지금도 기원과 의미를 따지지 않는다. 그렇게 묵도는 신사참배의 외피를 벗고, ‘예배 준비를 위한 경건한 순서’라는 새 옷을 입은 채 수십 년을 버텼다.
침묵은 죄가 없다, 그러나
공정하게 말하자면, 예배 전 침묵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서양 예배 전통에서도 침묵의 시간은 존재한다. 죄의 고백 후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침묵, 성찬 직전 경외 속에 머무는 침묵, 이런 침묵에는 분명한 신학적 위치와 맥락이 있다. 문제는 한국교회의 묵도에는 그 맥락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침묵인지, 누구 앞에 선 침묵인지, 아무런 신학적 안내 없이 그저 “고개를 숙이세요”라는 지시만 있다. 이것은 침묵이 아니라 진공이고 공백이다.
입당송이 회중을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데려가는 통로라면, 묵도는 그 통로 대신 빈 방 하나를 끼워 넣은 것과 같다. 그날의 말씀과 연결되지 않는, 교회력의 리듬과 무관한, 회중을 어디로도 인도하지 않는 시간이 묵도의 시간 아닐까. 이 빈 시간이 예배의 맨 앞에 놓여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회중은 예배의 첫 순간부터 길을 잃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예배의 주도권이 하나님에게서 개인의 내면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미 사라진 것, 아직 남아 있는 것
흥미로운 것은, 현재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한국 대부분 주요 개신교 교단 공식 예배·예식서에서 묵도는 이미 삭제되었다는 사실이다. 교단 차원에서는 이미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현장은 다르다. 여전히 수많은 교회에서 “다같이 묵도하심으로”라는 문장이 매주일 반복된다. 예식서와 현장 사이의 이 간극은 한국교회 예배 문화의 관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어떤 교회에서는 묵도를 빼고 바로 예배의 부름으로 들어가면 이단 취급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묵도’ 대신 ‘묵상’이나 ‘조용한 기도’로 용어만 바꾸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을 비켜가는 처방이다. 문제는 용어가 아니라 구조다. 예배가 무언가를 잘 준비해서 복을 얻어가는 사람의 행위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무력한 죄인을 불러모아 말씀과 성찬으로 은총을 베푸시는 사건인가. 예배는 사람의 행위인가 하나님의 행동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뀌지 않는 한, ‘묵도’를 ‘묵상’으로 바꾸어도 빈 방은 여전히 빈 방이다.
예배의 첫 말은 누구의 것인가
결국 묵도 문제는 예배의 시작에 대한 근본적 물음으로 되돌아간다. 3~4세기 교회에서 집례자가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하면 회중이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응답하며 예배가 열렸다. [루터교회에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종과도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전례를 중시하는 교회들은 지금도 이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회개의 기도와 사죄의 선언으로 예배를 시작했다. 어느 전통에서든, 예배의 첫 말은 인간의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회중이 응답하는 것. 이 순서가 뒤집어지는 순간, 예배는 인간의 종교 행위가 된다.
아직도 종을 세 번 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면, 그 익숙한 순간에, 어쩌면 가장 낯선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누구 앞에 서 있는가.
우리 예배순서에 있는 ‘묵도’가 일제 식민주의의 잔재인가?
이길주목사(서북노회 길목교회 목사)

* 화면에 선 이가 이길주목사
우연히 페북에서 한 루터교 목사님께서 묵도가 일제 신사참배로 인한, 더 앞서서는 일제 식민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좀 이상하다 싶어서 자료를 찾아보니 묵도 순서가 신사참배의 영향아래 생긴 것이라는 논의가 이미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바탕에서 우리 예배에서 묵도 대신에 예배로 부름, 나아감 등의 순서로 이름이 바뀌어졌음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래 제가 찾은 자료를 정리한 글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예배전 고요히 묵상하며 예배로 나아가는 묵도(默禱), 이 순서가 1912년 일왕의 죽음을 기리며 시작된 일본 국가 의례로 인한, 신사참배의 잔재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로 부름 등의 순서로 교체하자는 논의가 있어왔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배중의 묵도는 그렇게 시작된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묵도는 일본이 강요하기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을 대면하고자 했던 우리 신앙 선배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1905년 감리교 찬미가 서문에 나타난 묵도
묵도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기도 전인 1905년 감리교 『찬미가』 서문에서 이미 발견됩니다. 이 예배 지침에는 “회당에 들어온 즉시 엎드려 기도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례 시간은 미리 쟉뎡로 시쟉고 교우들이 회당에 드러온 후에 즉시 업드려 긔도 지니라.”
뎨일: 풍류로 노 (제일: 풍류로 노래함 – 풍금 반주)
뎨이: 교우들이 서셔 찬미가를 노 (제이: 교우들이 서서 찬미가를 노래함)
뎨삼: 긔도 (제삼: 기도)
뎨사: 셩경 낭독 (제사: 성경 낭독)
뎨오: 목사가 텬쥬의 도를 젼파고 (제오: 목사가 하나님의 도를 전파함/설교)
- 1800년대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기록
1920년 5월23일 동아일보의 기록은,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득도한 1860년의 신비로운 순간을 묘사하며 ‘묵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庚申(경신) 四月(사월) 初五日(초오일)에 龍潭(용담)에서 默禱(묵도)를 하다 하나님께 親(친)히 道(도)를 받드니 ‘人乃天(인내천)’이라는 宗旨(종지)로 우리의 敎(교)가 發生(발생)하야
이는 묵도가 일본에서 수입된 외래어가 아니라, 이미 우리 민족의 언어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이것이 신사참배에서 비롯된 의식에서 비롯된것이었다면 민족의 종교였던 천도교에서 사용했을리 만무합니다.
- 1921년 기독교인들의 일상적인 습관
가장 감동적인 증거는 1921년 3월1일자 기사, 3.1운동 2주년기념으로 쓴 서대문형무소의 기록입니다. 3.1 운동으로 투옥된 신앙의 선배들 중 기독교인들은 일제의 감시 아래서도 “말없이 묵도를 올리고 성경을 읽으며” 그 고난의 시간을 견뎌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교도는 말업시 默禱(묵도)를 올니고 聖經(성경)을 항상 읽으며 哲學(철학)이나 修身(수신)에 관한 것, 語學(어학)에 관한 것이 만슴니다.”
- 1922년 상해 임시정부 주변의 ‘평화의 묵도’
1922년 상해에서 열린 평화기념예배에 참관한 기록입니다. 1차세계대전 종전 4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예배에서 ’11시 정각 종소리에 맞추어 회중이 2분간 묵도로 기도를 시작했다’는 기록입니다.
十一點(십일점)을 땡치자 會衆(회중)이 起立(기립)하야 二分間 默禱(이분간 묵도)하는 것과 상해에서 열린 예배였기 때문에 일제의 영향 아래 묵도가 생겨났다기 보다 오히려 서구 선교사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의 의식이 한국에서도 행해졌음을 말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묵도는 신사참배로 시작되고 오염된 의식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처음부터 가졌던 영적 의식의 시작으로 볼수 있고, 독립을 염원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내 소리를 죽이고 주님을 간구하는 거룩한 의식으로 시작되었음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묵도가 일제의 영향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사용하자는 주장이나, 또 오히려 그것이 기반이 되어서 예배는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한다는 논거도 그리 타당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오히려 침묵하여 비는 뜻의 묵도는 우리 민족에게 아주 딱 맞는 원래부터 우리 것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