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부자, 대형교회

어리석은 부자, 대형교회

△ 김태복 목사(홍익교회 원로) hipc6012@daum.net 

김태복 목사께서 Voice라는 웹진(인터넷 매거진)에 쓰신 기사이다. 

김 목사님은 서울노회 홍익교회에서 은퇴하시고 현재 유경재 목사님과 함깨 "한국교회 길을 묻다" 라는 팟케스트 방송(https://itunes.apple.com/…/25-osaegmoghoeui-te…/id588275665…)을 하시는 데 은퇴하신 원로들중 한국교회의 사표가 되신 분들을 엄선하여 대담을 운영하고 계시다. 현재 29분이 이 방송인터뷰에 응하셨다. 김목사님은 국민방송 김용민 PD의 부친이기도 하시다.

지금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많은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대형교회들이 일으키는 공해가 가장 큰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성장에는 대형교회들이 역할이 대단히 컸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교회의 선두주자였던 대형교회들이 지리멸렬에 빠짐으로 한국사회로부터 신뢰도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더욱 젊은 세대로부터 ‘개독교’라는 치명적인 호칭까지 듣게된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대형교회들 중에 건강한 교회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로 많지 않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이 분규로 인한 법정시비, 세습문제,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갈등, 담임목사의 부도덕 문제, 담임목사의 건강문제 등등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를 주도해 오던 대표적인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일으키는 추태가 한국교회 신뢰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있다.

지난 2월, 세계최대의 교회라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배임·탈세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 원을 선고받았고,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됨으로 한국교회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좋은 의미에서 한국의 대표교회로 인식되어 왔던 ‘사랑의 교회’는 담임인 오정현 목사로 인해서 최근에 많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오 목사의 논문표절과 교회신축 과정에서 불법과 재정유용, 교회 정관 개정 등으로 수천 명의 교인들로부터 반대를 만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5월에는 MBC ‘pd 수첩’을 통해서 그 실상을 방영함으로 한국교회 신뢰도는 또 한 번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급성장한 세계최대의 장로교회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밑에서 교회 재정 외에 별도로 ‘비자금’을 관리해 왔던 박00 장로가 투신자살하면서 검찰의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김삼환 목사는 교단총회장, 한기총 회장, NCC 회장, WCC 세계교회협의회 10차 총회의 준비위원장을 맡는 등 한국교회 대표적인 인물로 뉴스의 주목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결과에 따라 한국교회 신뢰도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교회가 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 눅12:13-21에서 예수님이 경고한 ‘어리석은 부자’의 길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는 나름대로 큰 사명이 있다.

때로 보면 중소 교회들이 하지 못하는 큰 사역을 대교회들이 감당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귀해 보인다. 수많은 농어촌교회 보조, 불우이웃기관 보조, 학원과 군대 선교, 해외선교 등 엄청난 사역을 감당함으로 한국교회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큰 그릇이 못되는 자가 어쩌다가 큰 교회를 물려받거나 아파트단지 중심부 목 좋은 곳에서 교회를 개척함으로 기성 교인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대교회의 목회자가 되면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다.

눅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꼴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교인들을 모으고 볼 일’이라는 파행적인 목회 윤리를 가지고 닥치는 대로 교인들을 모으기 바쁘다. 교인의 한 영혼이라는 개념보다는, 무슨 곡식처럼 여기어 교인의 머릿수를 세기에 바쁘고, 큰 곳간을 짓듯이 멀쩡한 교회당을 헐고 주체할 수 없이 쌓이는 헌금으로 더 큰 교회당을 건립하고 최고의 화려한 건물과 화려한 치장들, 편이 시설들을 마련한다.

그리고 막대한 비용을 퍼부어 최고의 성가대와 화려한 관현악단을 만들어 예배를 빛나게 하고, 축복을 물 붓듯이 부어 주는 기복주의적인 설교들로 다른 교회의 기성 교인들을 향해 유혹의 손길을 펼친다. 마음껏 사기 치고 도둑질하고 간음(姦淫)하다가 왔을지라도 ‘이 음란하고 패역한 자여. 회개하라.’고 외치기보다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속량(贖良)의 성수(聖水)를 부어 주는 교회이니 구속당하기 싫어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몇 부 예배 중 자기가 가장 편리한 시간을 골라서 주보나 강단 스크린에 적힌 대로 따라만 하면 된다. 아름다운 음악, 위로의 기도, 명예박사 후드로 화려하게 장식한 설교자의 위로와 용기, 속량과 축복을 물 붓듯이 부어 주는 듯한 설교를 듣고 헌금을 적당히 내고 돌아오면 훌륭한 성도의 자격을 부여하는 교회를 누가 싫어하겠는가? 어제까지 출석하던 작은 교회와는 얼마나 대조적이다.

그 동안 농촌 교회, 혹은 개척 교회, 중소 교회에서 ‘충성하라. 새벽기도 참석하라. 십일조와 건축 헌금하라. 구제하라.’고 강요받던 그 지겨움, 그 율법적인 설교의 지루함에 비하면 이 화려한 교회의 생활은 천국적인 삶이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대형교회는 교인을 자꾸 쌓아 두려는 데만 관심을 가질 뿐, 교인들을 양육하여 제자로서 세상 속으로 파송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어리석은 부자 같은 교회의 교인들은 어떻게 변할지 불을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창고에 켜켜이 쌓인 곡식이 상하듯이 엄청난 교인들이 구경꾼 신자, 쭉정이 신자로 변질될 것이 분명하다. 어제까지 작은 교회에서 불철주야 충성하던 교인들도 이런 교회에서 1-2년만 맛들이다 보면 영적으로 깊이 잠든 요나꼴이 되기가 쉬운 것이다. 더 나가서는 그런 식으로 대형교회를 이룩한 목사 자신도 어떻게 변질될지 뻔하지 않겠는가?

당회장실을 대기업 사장실처럼 화려하게 꾸미고 부교역자들을 종놈 부리듯 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은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 된다. 또한 교회에 쌓인 물질을 자기 사욕이나 과시용으로 쓰기를 다반사로 한다. 대형교회 목회자 중에 이런 졸부같은 자들이 많다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아마, 어리석은 부자의 잘못은 많은 수확을 거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거둔 수확을 나누지 못하고 제 이름만 높이고 제 사욕만 채우려는 데 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여, 어리석은 부자의 탐심을 버리고 이제는 창고를 활짝 열고 선교와 봉사 등 나누는 일에 힘쓰라. 목회도 나누어서 하라. 그 길만이 한국교회가 살고 한국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한 길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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