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들어 가면 언론아냐
정의란 무엇인가? 많은 역사 철학자들도 그렇고 죤롤스나 마이클 샌달교수의 저서와 강연서도 말하지만 정의는 악한 자를 벌하고 선한 자를 보호하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공정한 것, 그것이 바로 정의라고 한다. 성경에도 정의와 공정이 정오의 해같이 빛나게 하라는 의미의 말씀이 있다. 하지만 이상에 머물고 마는 이유는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먼져 정의에 기초한 삶을 살아야 하는 데 그렇치 못하니 "먼저 인간이 되라" 하는 말이 나온다.
그리스어원에서 유래한 "삶이 법(nomos)과 정의(dike)에서 이탈하면 단두대가 기다린다" 는 말이있다. 지연된 정의는 여전하지만 정의는 실현되어야 한다. 그래서 역사청산 혹은 과거청산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정의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보복의 악순환이 된다. 남아공의 백인통치시절의 아파트헤이트를 끝낸 흑인 최초의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그래서 만든 것이 ’진실과 화해위원회‘다.
처벌이 먼저가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의 객관적 조사위원회의 복기다. 그리고 당시 법과 윤리에 걸맞는 징벌적 조치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입법이다. 아르헨티나의 민간인 학살이나 한국에서의 1980년 신군부에 의한 광주학살에 대한 평가도 모두 그런 절치를 따라서 이뤄졌다. 아직은 헌법전문에는 들어가지 못하여 미완에 머물러 있지만 반드시 들어가야 완결된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황하게 무슨 정의 얘기냐? 하겠지만 요즘 언론도 정의를 기초로 한다면서도 팩트가 아닌 선동과 설교조의 글이 난무하니 독자들 이해를 돕기 위해 정리를 해본다. 최근 예장뉴스 글에 대하여 과분하게 관심갖은 분들중 비판적 반론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정확하게 사실을 들어하기보다 하고 싶은 말만 한다. 한가지만 항변하면 화곡동교회 후임 목사 결정 권한은 그 교회에 있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화곡동교회 비판자들의 윤리성 바닥
그리고 그것을 허락하는 것은 해 노회 일 것이다 그럼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났는 가? 그렇치 않다. 그런데도 이를 막으려는 이들에 의해 화곡동교회와 교인들은 또 다시 구설수에 오르고 분열을 맛보는 중이다. 거기는 내부 일을 갖고 나가는 분들도 문제지만 그것을 증폭시키는 것은 기독언론이 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운동장 선수들이 시원찮다고 심판이 뛰어들면 그건 안될 일이다. 언론이 어떤 사안을 공론화와 하고 비판하는 것은 허용된 것이지만 직접 고발자가 되고 나가 시위까지 하고 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것일 수 있다.
그런 데 지금 화곡동교회를 향해 몇 개의 언론사들이 또 다시 교회 분란을 하는 중이다. 교회와 당회원은 이를 경계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있다. 예장뉴스는 그런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한경국목사를 두둔하기 위하여 총회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피하려고 하는 노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아예 무시하고 미리 교인들 선동을 하여 막자는 것인데 그건 언론이 할일은 아니다.
최근 화곡동교회를 표적화하여 시비를 거는 언론사 대표들의 뇌물조성의혹 보도가 나왔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보도된 것만 봐도 이것이 사실이면 윤리적 사법적 책임을 넘어 언론으로 퇴출되야 할 사안이다. 정의를 기초로 남을 비판하면서도 그 방식이 부정의하고 불의한 방법을 쓴 것이라면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을 넘어 예단하고 선동하고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 분들은 과거 김의식목사를 노회와 총회에 고발하는 데도 관여했고 기소를 위하여 별별 수단을 다 쓴 모양이다. 필자 개인적으론 총회서는 상징적으로 최소한으로 어떤 권징이 나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가부동수로 부결된 것은 아쉽다는 기사를 쓴 적도 있다. 그런 전력이 있는 분들이 계속해서 김의식 목사도 모자라 화곡동교회에 과몰입한다는 비판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전의 행위와 연결하여 언론보도를 가장한 비판에 지겨워 하는 것이다.
평가와 결론(사랑만이 모든 것을 이긴다)
독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신학자 폴 틸리히는 그의 저작 ’사랑, 힘, 그리고 정의'(LOVE POWER AND JUSTICE)에서 힘(power)은 물리적인 힘(force)이나 강제력(compulsion)도 있지만 정의(옳음)가 더 강한 힘이고 그 보다 더 숭고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물리적(군대나 무력)이고 강제력(법과 경찰력)도 힘이지만 이것은 우리 기독교가 추구하는 힘이 아니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힘을 위해 이론을 만들고 추종하는 집단을 이뤄 결합, 유지시켜 목표를 이루려고 한다.
어느 조직이든지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하여 정의를 표방하지만 반드시 그렇치만은 않다. 1980년 신군부가 만든 민주정의당(민정당)이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본질은 정권탈취였고 권력나누기였음에도 당시 지식사회와 다수 언론은 이를 거부 비판하지 못한 체 순응하여 향유한다. 사랑이나 정의을 기초로 한 국민 통합이 아닌 통치를 위하여 이념문제를 이용하고 상층부의 이익을 위하여 하층민을 노예화하며 상위 학문과 지식인 종교는 이런 것에 복무해왔다.
교회도 잘못할 수 있고 목사나 장로도 실수 할 수 있다. 그러면 합당한 책임을 지면 되는 것으로 목사의 사임은 가장 무거운 징벌로 이전에 누렸던 모든 존경심은 파탄나는 것이다.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처벌을 더 하자는 것은 교회 역할이 아니다. 김의식 목사는 일탈로 인한 책임감으로 압박이든 자의든 총회장직도 목사직도 내려놨다. 그럼에도 더 공개적으로 벌을 줘야 한다고 하는 것은 교회나 신자의 할 일이 아니라 법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것도 피해갔더라도 그것으로 끝을 내야 한다.
그것이 못마땅해 교회와 지도자들을 흔들고 교회분란을 부추키는 것은 그 교회 교인으로는 몰라도 외부인이나 언론이 할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의와 공의를 핑계를 대지만 저의는 분노와 보복으로 보는 분들이 많다. 문제는 이제 그 타켓을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과 신앙적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을 이룬 한경국목사 후임자 불가는 도를 넘어 선 것이다. 따라서 노회도 그렇고 총회는 불법을 용납해서는 안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외부 세력과 결탁해 비판을 넘은 고소나 고발로 부터 지교회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