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사 관점에서 본 여성 직분 문제와 한국교회 과제
임경근 목사, 고신대학 B.A., 고려신학대학원 M.Div., 네덜란드 Kampen/Apeldoorn 교회사/교의학
시작하는 말
여성안수 문제가 20세기 네덜란드 교회로서는 혁명과 같았다. 이것은 교회 직분에 여성을 허용한 교회뿐만이 아니라, 허용하지 않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네덜란드 개혁교회 가운데 여성안수를 허용하지 않은 교회는 아직도 이 문제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최근 21세기 초에 루터교회와 가장 큰 두 개혁교회가 연합했는데 이 교회들은 여성안수를 오래전부터 허용하고 있다.
초대교회 이후 20세기를 지나오는 동안 교회는 교회 직분을 여성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어떻게 여성 안수를 허용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본인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여성 직분을 허용한 교회들이 총회 차원에서 논의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조사해 보았다.
이 논문 목적은 여성안수에 대한 논의 과정이 어떠했으며, 어떤 논점들이 여성안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원론적인 부분들이 충분히 논의되고 고려되었는지 밝히는 것이다. 결론은 성경의 원론적인 것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상황적이고 실제적인 것들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1. 여성에게 교회 직분을 허용한 세 교회
(1) 루터교회
루터교회는 1922번에 별다른 반론이나 어려움 없이 여성 의 교회 직분 허용을 결정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는 이보다 더 일찍 이 여성 직분을 허용한 교회가 있었다. 항존파교회(Remonstrants Broederschap)는 1915년 여성의 교회 직분을 허용했다. 이 교회는 ‘자유와 관용’이 가장 중요한 교회 원리였기 때문에 쉽게 허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 역사에 최초로 여성안수를 허용 교회는 재세례파(Doopsgezinde Broederschap) 교회다. 이 교회는 1905년 여성에게 교회 직분을 허용했다. 재세례파 교회는 지역교회가 곧 최고 기관이기 때문에 교리와 정치에 독립적이다.
앞서 언급한 이들 세 교회는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였기 때문에 여성안수 결정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므로 특별히 논의의 과정도 없었고 그냥 한순간 여성안수가 결정됐다.
(2) 국가 개혁교회
국가 계혁교회(De Nederlandse Hervormde Kerk, 이하 NHK)는 여성 안수 문제로 85년 동안(1892-1977년) 씨름했다. 1892년 처음으로 총회에 교회 여성 사역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여성 선거권이 아직 없었던 시대였기에 1897년 먼저 여성 선거권 허용이 발의되고 1923년 결정되었다.
여성 선거권 획득을 위해 수많은 논점이 논의되었는데 여기에는 후에 여성 피선거권 즉 여성 직분 허용을 위한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성경의 원론적인 연구위원회는 구성되지 않았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선거권 문제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1905년부터 여성 피선거권 문제가 선거권 문제와 동시에 총회 안건으로 상정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이것은 선거권 문제가 빨리 처리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Utrecht 대학에서 신학 공부 중이던 헐링스(A. C. E. Gerlings) 여사가 여성 직분 허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NHK는 개 교회 성도가 총회에 안건을 직접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헐링스는 자신의 제안을 매년 총회에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 기각되고 성공하지 못하자 1914년부터 여성들로 교회 사역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시도를 했다. 예로서 신학교 여학생들에게 교회에서 종교 교사(한국 여전도사)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안건은 총회에서 곧바로 기각되었다. 이유는 그렇게 되면 여성 신학생들이 결국에는 강단에까지 오르게 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1921년 여성 종교 교사가 교회를 개척 최소한 10년 사역 후부터는 그 교회에서 보조 목사로 설교가 아닌 교훈적 말씀을 전할 수 있었고 공(公) 예배를 인도와 결혼식 집례 권한이 주어졌다. 그리하여 1923년에는 신학교 교육을 마친 여학생들에게 ‘목사보조사’(Hulppredikerschap)의 권한이 공식적으로 부여되었다.
한편 네덜란드 왕립대학교는 일종의 국립대학으로 목사 양성을 위한 신학과는 교회와 연계해서 교육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학생은 목사가 되려면 교회(교단) 지원을 받아야 했고 반드시 교회에 등록해야만 했다. 이에 여자도 등록이 허락되고 총회가 시행하는 졸업 예비 시험 응시도 허락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설교시험’이 여학생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목사 직분 허락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1924년부터 1938년까지 계속 여성안수 안이 총회에 상정되고 논의되었으나 부결되었다. 그리고 NHK 교회는 1939년 이후 1974년까지 여성의 교회 직분에 대한 직접적인 제안과 논의는 없었다. 이렇게 교회 직분에 여성 참여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자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즉 여성들이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다방면으로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940년 총회에 신학교 여학생들에게 교회에서 일할 수 있도록 총회가 결정해 주도록 요청했다. 1941년에는 교회에서 여성의 사역 일거리 창출 위원회 구성도 요청했다. 같은 해 총회에 ‘개혁 여성 봉사회’(Hervormde Vrouwen Dienst, HVD)가 조직되어 1951년까지 사역했다. 결국 1947년 총회는 ‘교회 보조 사역자’(Een kerkelijk medewerker) 개념을 도입하여 실시하기로 결정 드디어 교회의 다양한 일들이 여성에게 공적으로 맡겨지게 되었다.
NHK 교회 여성들은 이 운동을 통해 교회 내 여성 사역을 상당히 향상시켰다. 특히 신학을 한 여성 신학자들이 ‘목사보조사’ 직무에 열심히 일함으로 여성이 강단에 서는 것에 대한 일반적 염려를 많이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여성과 직분의 문제는 1950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1950년 연구위원회 논문이 발표되고 1957년에 또 다른 한 연구위원회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제까지 산발적으로 논의되던 ‘여성과 직분’에 관한 논쟁이 이 두 논문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됨으로 체계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총회 대표단들과 분과위원들이 토론한 결과 총회의 과반수 이상이 ‘여성 직분 제도’에 동의했다. 새롭게 등장한 상황을 고려하는 성경 해석학이 전통적인 성경에 대한 견해를 무력화한 것이다. 결국 성경에 대한 전통적 견해와 새로운 해석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됨으로써 여성안수 관련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석의 불확신이 상당히 팽배하게 되었다.
또한 새롭게 등장한 ‘직분’에 대한 성경적 개념이 여성의 직분에 대한 길을 넓혀 주게 된다. 곧 ‘직분’이란 다스리고 권위를 행사하는 게 아니라 섬기는 것이라는 개념이다. 더 나아가 실제적이고 상황적 요소들이 여성 직분 허용에 큰 역할을 한다. 이런 요인들이 함께 작용 결국 1966년 여성에게도 전면적으로 교회의 직분을 허용하도록 NHK 총회에서 결정했다.
NHK 교회 중 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개혁연맹’(Gereformeerde Bond)이라는 상당히 보수적 그룹은 여성안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단을 탈퇴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총회가 여성 직분 허용을 개교회 결정에 맡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연맹’은 지금까지도 여성 교역자를 강단에 세우지 않는다. 다만 결혼한 여성이 남편을 따라 함께 사역할 때는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면 NHK 교회에서 여성안수 문제 제기와 결정까지의 과정에 나타난 특징들을 정리해 보자.
▸ 여성안수에 대해 장시간의 논의를 거치면서 하나하나 진행 됐으나 계속되는 반대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 여성이 점차 교회 여러 일 참여로 여성 역할이 커지면서 이것이 여성 직분 허용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 NHK 교회는 집사와 장로 직분보다 먼저 여성 목사 안수 문제가 논의되었다. 즉 여성의 목사직 허용과 함께 여성 장 로와 집사직도 허용되었다.
▸ 여성안수에 대한 새로운 해석 잣대 사용으로 신자들의 전통 적인 여성안수 반대 생각이 흔들리게 되었다.
▸ ‘성령의 자유하심’이 논쟁의 중요 논지였는데 투표 결과 다 수가 성령의 역사라고 했다. 즉 총회 결정이 곧 성령의 역 사라는 것이다.
▸ 시대적 상황 변화는 곧 성령의 자유로운 결정과 연결되어 여성안수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경적 원리가 절대적인 것에서 상대적 인 것으로 바뀌었다. 즉 남녀의 차이를 절대적이 아닌 상대 적인 것으로 보았다. 즉 교회 직분을 만인 제사장 관점에서 단지 은사로만 보았다.
▸ 교회가 여성안수를 허락했다고 여성에 대한 성경의 금지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즉 고린도전서 14:34,35과 디모데 전서 2:11-15이 바울 당시에만 해당이 되는지 아니면 영원 히 유효한지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 성경적 교회 직분에 대한 논의도 분명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 NHK 교회는 여성에 대한 직분을 논의하면서 세계 어떤 교 회의 논의와 상황도 참고하지 않았다.
(3) 네덜란드 개혁교회
네덜란드 개혁교회(De 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이하 GKN)는 여성의 직분 문제를 1923년부터 1985년까지 62년간 총회 차원에서 논의했다. GKN은 먼저 1923년부터 교회에서 여성의 선거권 허락 문제를 논의했다. 그리고 1952년 여성의 선거권을 허락했다. 이를 위해 근원적인 연구논문 세 편이 출판되었다.(1927,1930,1952/53) 이 논문에는 이미 여성의 피선거권에 대한 논의도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었다. 먼저 여성과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 논의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 선거권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선거권에 대한 인식 변화였다. 선거는 권위 행사라는 생각이 점점 바뀌어 권위 행사가 아니라는 은사라는 쪽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여성의 피선거권에 대한 논의는 아직 없었다.
1961년 GKN 총회에서 여성의 피선거권 논의가 처음이었다. 신학교를 나온 라프쁘래인(A. Ravestein) 양이 목사 보조로 등장하면서 총회에 질의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GKN 선교와 교회 내에서 여성들 사역이 점차 증가하자 교회의 분위기가 여성에게 교회의 직분을 허용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런 가운데 1965년 총회에 제출된 ‘여성과 직분’에 관한 연구 논문은 여성에게 교회의 모든 직분을 허용하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총회 연구위원회의 여성안수 연구 논문으로 여성에게 직분을 허용하도록 결정하게 된 배후에는 여성의 선거권에 대한 연구 논문이 이미 세 편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여성과 직분’이라는 연구 논문은 다음 몇 가지 요소에 기초하고 있다.
▸ 남성과 여성의 상부상조 관계 강조
▸ 성경의 시대 제한을 강조하는 새로운 성경 해석 적용
▸ 교회 직분의 은사로서 섬김 성격을 강조
▸ 교회 여성 사역의 활성화
1965년 총회에서 여성안수는 결정되었으나 ‘개혁연합공의회’(Reformed Ecumenical Counsel, REC)에서 여성안수에 대한 논의결과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1968년에 가서야 시행되었다. REC에서 특별한 도움이 되는 결론이 없다고 생각한 GKN은 1965년 결정한 대로 자신의 길을 갔다. 즉 GKN은 1969년 여성에게 교회의 모든 직분을 허용했다. 약간의 불합리한 제한이 남아 있었으나 그마저도 1985년 모두 폐지함으로 남성과 여성은 교회 직분에 아무런 차이도 없게 되었다. 이처럼 GKN의 교회에서 여성의 직분 문제 논의는 반대도 거의 없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쉽게 가결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GKN은 총회에서 교회법을 바꾸기에 비교적 쉬웠다.
▸ 여성과 직분에 대한 논의가 많이 없었음에도 이미 진행된 여성 투표권에 대한 논의와 여성들의 국내 교회와 외국에서 의 활발한 사역이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 GKN은 직분에 대한 논의가 현실적인 필요에서 시작되었고 허용 결정도 상황적인 요인이 컸다.
▸ 그와 동시에 원리적인 논점들은 절대적인 것에서 상대적 가 치로 전락하고 강조점이 상대적으로 변하면서 결정이 가속 되었다.
▸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한 강조점은 점점 상호 보완적 관 계로 강조점이 변동되었다.
여성 직분을 허용해야 할 결정적인 근거가 없다는 처음 주장에서 여성 직분 허용에 어떤 결정적인 반대도 없다고 주장한다. 직분 개념도 지배적 기능에서 섬기는 기능으로 강조점이 변동되었다.
▸ 교회 직분에 대한 급진적 성경해석으로 여성 직분의 전통적 견해와 개념을 변질시켰다.
여성 직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GKN에서 여성을 직분 허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교회의 직분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일 뿐이라는 견해다. 완전한 성경해석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교회의 직분은 단지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이 직분을 가져도 다스리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교회 직분을 단지 섬김으로 이해한 것은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온 교회 직분의 다스리는 기능을 오해한 것이다. 이런 새 직분 개념은 디모데 전서 2:11-13의 창조 질서에 호소한 바울의 직분에 대한 견해를 가벼운 것으로 여기게 된다.
GKN 교회는 여성 직분 문제가 상황과 현실 요인들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즉 상황적 현실적 요인들에 의해서 원리적인 논지들이 밀리게 된 것이다. 결국 원론적인 논점들이 깊게 연구되지 못하고 논의되지 못했고 그림에도 불구하고 총회의 결정은 여성에게 직분을 허용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 참고 > 디모데전서 2:12의 여자가 남자를 ‘주관한다’의 그리스어 ‘αυθεντειν’(authentein)는 ‘주권을 행사하다’ ‘지배하다’ ‘영향력을 행사하다’ 등의 의미다. 당시 에베소교회의 상황에서 여성이 공적인 예배나 가르치는 자리에서 남성들에게 권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하는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남녀의 역할과 질서에 대한 권면이며 여성의 남성에 대한 개인적인 가르침이나 지배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행위를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2. 세 교회의 여성 직분 논의 공통점
첫째, 여성 직분에 대한 논의는 여성이 고등 교육을 받게 되면서 총회에 나타나게 된다. 19세기 말엽부터 여성들도 고등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첫 네덜란드 여성 목사는 재세례파 교인이었다. 1911년 만꺼스(A. Mankes-Zemike)는 신학교를 졸업했다. 1905년 항존파 신학대학원에 세 여학생이 신학을 했다. 1921년 듀푸(C. Dufour)가 루터교 교단 레이든(Leiden) 신학교에서 시작했다. NHK 소속 헐링스(A. C. E. Gerlings)는 1906년 위트레히트(Utrecht) 대학에서 신학을 시작했다. 여성안수 문제는 이렇게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던 여권 신장 곧 여성해방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둘째, 여성 선거권 문제는 형식적으로 피선거권과 전혀 다른 문제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선거권은 피선거권과 관련이 있다. 여성 선거권 문제를 토의할 때 나타난 논점들이 피선거권 논의에도 여전히 등장 서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대한 의견이 두 교회가 일치한다. 그들은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과 차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여성안수 찬성자와 반대자의 결론 유추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은 강조점의 이동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처음에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점을 강조했는데 나중에는 그 동등성을 강조하면서 지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넷째, 새로운 성경해석의 등장은 여성에게 직분을 허용하는데 성경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 사도 바울의 몇몇 성경 구절에 대한 전통적 성경해석에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섯째, 이 새로운 성경해석의 등장은 원론적인 논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아니나 단지 생각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러한 전환은 현대세계의 상황과 실제적인 논지가 가세하여 여성안수 결정을 이끌었다. 현 사회 정황과 실제 상황은 여성들이 교회 사역에서 도외시되고 있는 교회 현실과 다르며 특별히 성경의 원론적인 논점과 다르다. 사회에서 여성들이 많이 진출하고 교회에서도 여성들이 많이 활동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원론적인 성경의 논점에 상당한 변화를 준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원론적인 성경의 논점들이 상대화되었다.
여섯째, NGK와 GKN는 여성과 직분에 대한 초대 교회와 종교개혁 시대 관점에 대해 전혀 연구하지 않고 논의도 하지 않았다. 단지 현재 사회적 실제 관심에만 집중했다.
3. 세 교회의 여성 직분 논의 차이점
여성과 직분에 대한 세 교회의 논의가 공통점이 많으나 차이점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여성과 직분에 대한 논의가 각각 다르게 진행됐다.
NHK는 여성 선거권이 1897년 총회에 안건으로 처음 상정되었고 1923년 허용했다. NHK는 이미 1902년 여성 피선거권(여성안수) 문제를 총회에서 논의한 바가 있다. 그리고 1923년과 1950년 사이에 여성을 ‘종교 교사’와 ‘목사 보조사’로 허용했다. 그리고 여성안수에 대한 논의는 195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GKN는 NHK가 여성 선거권을 허용한 1923년 여성 선거권 안건이 처음으로 총회에 상정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1930년까지 논의한 후 1930년부터 1949년까지 19년 동안 논의가 총회에 등장하지 않았다가 1953년 여성에게 선거권을 허용했다. 그리고 여성 피선거권(여성안수)은 1961년부터 1965년까지 4년 논의 후 원리적으로 허용했다.
둘째, 두 교회는 안건 상정 후 결정에 차이가 있다.
NHK는 총회 기관 안에 안건이 상정될 수 있다. 그러나 GKN는 노회에서 논의된 안건만 총회에 상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NHK는 GKN 보다 여성과 직분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일찍 논의될 수 있었다. 그러나 NHK는 GKN 보다 여성과 직분에 대해 훨씬 오랫동안 논의했다. 이것은 총회 절차와 그 결정 과정의 차이에 기인한다. NHK는 교회법 개정을 위해 총회 2/3 찬성 후 다음 해 산하 노회의 과반수 찬성으로만 개정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GKN는 총회에 안건이 올라오기만 하면 2/3의 총회의 결의로 교회법을 개정할 수 있었기에 쉽게 진행될 수 있었다.
셋째, 교회의 다양성과 하나 됨이 여성 안수 결정의 속도에 영향을 주었다.
NHK는 총회 내 선학적으로 다양한 견해로 인해 여성과 직분 문제가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다. NHK 산하 ‘개혁연맹’은 비교적 큰 세력을 자랑했는데 그들의 반대는 큰 걸림돌이 되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그에 비해서 GKN는 신학적으로 1944년 이후 일치된 관점을 갖게 된다. 왜냐면 신학적으로 다른 한 그룹이 1944년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자유화되기 시작한 GKN는 여성 직분 허용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1969년 여성 직분을 최종적으로 허용한 후 어떤 반대나 항의도 없었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사실 GKN는 오랫동안 정통 개혁신앙을 잘 유지해 왔는데 1944년 다른 의견을 가진 총회 산하 1/3의 교회가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남은 교회가 1963년 여성 직분 의제가 총회에 상정되자 곧바로 결의했다.
넷째, 여성안수 연구 논문에서 차이를 볼 수 있다.
NHK는 여자 직분과 관련한 총회적 차원의 두 편의 폭넓은 연구 논문이 나왔으나 GKN에서는 총회적 차원으로 한 개의 연구 논문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여성의 선거권에 대한 세 편의 총회 차원의 연구 논문이었을 뿐이다.
다섯째, GKN 직분 개념이 NHK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
GKN에서는 교회 직분이 단지 섬기는 기능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NHK는 교회 직분이 다스림과 섬김의 기능이라고 주장했다. 즉 직분 자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대리자임과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교회의 대리자임을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여성안수 허용 과정이 교회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사실은 여성과 직분 문제 논의 과정에서 각 교회의 독특한 특징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여성과 직분에 대한 성경적 논점들이 충분히 만족할 만큼 논의되지 못했다.
여성과 직분에 관한 중요한 원론적인 논점인 ‘여성과 남성과의 관계’가 여성에게 직분을 허용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상황적 논지’와 ‘실제적 논지’들이 ‘원론적 논지’를 뛰어넘어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즉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여성들이 사회와 교회에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성경의 원론적인 것들을 가볍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저명한 성경 신학자 리델보스(Herman Nicolaas Ridderbos, 1909-2007)는 자신의 교회가 여성 직분을 허용해야 할 시기가 가까웠음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성경적 원론에 합의 없이 결정되게 된 상황을 ‘강요 된 결혼’으로 비유했다. 그는 디모데전서 2:11-15에서 여성에게 가르치는 것과 복종해야 하는 것이 단순히 시대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남녀 창조 질서’에 근거한 것임을 분명하게 말했으나 총회 논의는 신학자의 말을 경청할 여유가 없었다. 성경을 가장 중요한 근거로 여기는 교회는 성경의 원론을 가장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4. 여성안수에 대한 세계 교회의 논의
(1) 세계교회협의회(WCC)
세계교회협의회(WCC, Wor1d Counsil of Churches)는 일찍이 여성들에 관심을 보였고 지속적인 논의가 있었다. 이 논의 발전에 대해 파비(Constance F. Parvey, 1931-2011)가 쓴 ‘에큐메니칼 관점에서 본 여성 인정 : 교회의 미래를 위한 워크북’(Qrdination of Women in EcumenicalPerspective: Workbook for the Church’s Future, Faithand Order Paper 105 WCC Geneva 1980)에 잘 서술되어 있다.
WCC 내에서 여성들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이미 19세기에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던 자들이 있다. 19세기 말 블렉웰(Antoinette Brown Blackwell, 1825-1921)은 여성 해방론자로서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게 죄라고 주장했다. 1984년 Gordon-Conwell대학 창시자 중 한 사람인 고든(A. J. Gordon)은 ‘여성 사역’(The Ministry of Women)이라는 책에서 교회는 여성에게 직분을 허용하라고 주장했다. 1920년 미국에서 여성 투표권 쟁취에 큰 역할을 한 샌저(Margaret Sanger)의 ‘여성과 새로운 인종’(Women and the New Race)라는 책이 유명하다. 이러한 기독교 사회 내에서의 여성운동은 자연스럽게 WCC로 들어오게 되었다.
1910년 ‘에든버러 국제선교대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nference in Edinburgh, IMC)에서는 선교를 위한 여자의 기도 사역에 부정적이었으나 1921년에는 긍정적으로 논의되었고 1923년에 ‘선교 현장에서 교회 내 여성의 위치에 관한 연구’(A Study on the Place of Women in the Church in the Mission Field)라는 연구 논문이 제출되었다. 1917년 트니버빌(Picton Tniberville)이라는 여성이 ‘교회 내 여성의 위치’(The Place of Women in the Church)라는 책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하게 주장한다.
1927년 시작된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운동에서 ‘여성안수’ 문제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의제였다. 1927년 처음 스위스 로잔에서 400명 대표 중 7명이 여성이었는데 이들은 여성의 교회에서의 사역과 역할에 대해 적극 질문했다.
1937년 The World Conferences on ‘Life and Work’ and on ‘Faith and Order’가 영국에서 WCC를 조직할 것을 동의했으나 세계 제2차 대전 발발로 1948년으로 미뤄지게 된다. 전정 후 제네바에 있는 WCC 사무실에서 일하는 네덜란드 목사인 후프트(Dr. W. A. Viser’t Hooft) 박사의 주선으로 여성들이 WCC 사역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YWCA 전국 위원인 카베르(Samuel Cavert) 여사가 WCC를 방문 여성의 역할을 강조 1949년 WCC에 여성위원회(An Official Commission of the Life and Work of Women in the Church)가 생겼다. 또 1952년 WCC가 선정 최초로 출판한 책이 블리스( Kathleen Bliss)의 ‘교회 내 여성의 봉사와 지위’(The Service and Status of Women in the Churches, SCM Press London 1952)였다.
이렇게 여성운동은 점차 방향을 틀어 남성과 여성의 관계성으로 나아가게 되어 위원회의 이름을 ‘Department of the Man-Woman Relationship in Church and Sodety’에서 ‘Department of the Cooperation of Men and Womenin Church and Sodety’로 1954년 변경했다. 이 위원회는 세계 각 곳에서 논의를 계속하면서 1961년 뉴델리 대회에서는 최초로 회원으로 가입된 그리스 정교와 대화를 하면서 그리스 정교 내 여성의 역할도 연구했다.
이렇게 ‘교회 여성의 역할’만 논의하다가 드디어 1967년부터 ‘여성안수’ 문제를 신앙과 법제 위원회에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8년 웁살라(Uppsala) 대회 이후 ‘여성안수’ 문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1975년 나이로비(Nairobi) 제5차 총회에서는 WCC 회장단 6명 중 2명이 여성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1978년에는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이 추진된다. 파비(Dr. Constance Parvey) 목사가 책임을 맡아 ‘교회 내 여성과 남성 공동체’(The Community of Women and Men in the Church)라는 주제의 연구를 시작했다.
이렇게 진행되는 여성과 남성과의 관계 연구는 WCC에서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 연구들은 결국 여성안수를 허용하지 않은 회원교회에 직간접적으로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WCC 회원교회가 168개였는데 이 중 48개 교회가 여성에게 모든 직분을 허용했고 9개 교회가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21세기에는 훨씬 더 많은 교회가 여성에게 교회 모든 직분을 허용하게 될 것이다.
(2) 개혁 에큐메니칼 공의회(REC)
개혁 에큐메니칼공의회(Reformed Ecumenical Council, REC)는 1946년 창설되어 개혁 신앙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연합기구다. 주로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이민 교회들이 발기인이다. 그 후 세계 많은 개혁교회가 회원으로 가입하여 2004년 현재 39개 교단 교회가 회원이다. 1953년 에든버러(Edinburgh) 대회에서는 북미 기독교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 CRC)가 질의한 ‘여성 선거권’을 의제로 다뤘다. CRC는 1947년 몇몇 교회가 ‘여성 선거권’을 주었다. 이것이 1950년 총회에서 논란이 되었고 찬반으로 나뉘었다. 그래서 결정을 미루고 REC에 상정하여 다른 교회의 의견을 묻기로 한 것이다.
REC는 이 문제를 연구하며 여성들이 성찬 참여가 허락 없이도 가능하듯이 여성의 투표권 역시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에 기초하여 선거권을 주는 것이 가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왜냐면 투표는 권위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REC가 다룬 문제는 ‘여성과 직분’(여성안수) 문제였다. REC는 1958년 포체프스트룸(Potchefstroom) 대회애서 네덜란드 개혁교회 제안으로 ‘교회 직분의 기능’을 연구하여 여성에게도 교회의 직분을 허용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도록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1963년 그랜드 래피즈(Grand Rapids) 대회에 논문을 제출하지 못해 재차 연구위원회를 구성The Committee for the Women and Qffice라는 새 이름을 주었다. 이 위원회는 1968년 암스테르담(Amterdam) 대회에 논문을 제출하여 여성에게 안수 집사 직분과 모든 직분에 여성을 허용할 수 있을지 다시 연구위원회 구성을 요청했다.
REC는 토의 후 신약 성경에 나타난 여성과 직분에 관련된 것을 연구하도록 다시 연구위원회를 구성하고 여성에게는 가르치고 다스리는 직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가하되 교회의 덕을 위하여 여성을 성경이 가르치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 활동할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그러자 내덜란드 개혁교회는 1968년 REC에서 여성 직분 허용 결론을 기대했다 실망하고 돌아가 이 대회로 미루었던 ‘여성과 직분’에 대한 REC의 결정을 따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1972년 시드니 대회에 ‘Office in the New Testament’라는 이름의 연구 논문이 제출되었다. 대회는 이 논문을 가지고 토의 결과 여성에게 직분을 허락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1968년 여성 안수 집사 직분을 허용한다는 것도 뒤집고 불가하다고 했다. 단지 여성들에게 다양한 교회의 사역에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후 REC에서 ‘여성과 직분’에 대한 큰 논의는 없었다.
(3) 성경적 평등 기독교인(CBE)
① ‘여성해방주의’(feminism)
성경적 평등 기독교인(Christians for Biblical Equality, CBE)과 성경적 남성 여성 협의회(Council on Biblical Manhood and Womanhood, CBMW)의 교회 여성 권리 찾기 운동은 19세기 말엽부터 시작 20세기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계속되었으나 본격적인 운동은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1960년대를 지나면서부터다. 서구사회는 전반적으로 권위에 대한 불신과 자유로운 생각과 활동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시위를 주도하면서 히피족들이 거리를 휩쓸던 시절에 여성들도 여성해방 운동을 시작했다. 이를 ‘여성해방주의’(feminism)라 한다.
② 제1차 물결(First wave feminism
이 영향력은 교회에까지 스며들어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여성 불평등을 파헤치고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과 노력을 시도한다. 이들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적인 기준으로 접근했다. 이때 수많은 책이 출판되었다.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급속히 확산이 되었다. 이것을 ‘제1차 물결’(First wave feminism,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법적, 정치적 평등을 위한 운동)이라고 한다.
③ 제2차 물결(Second-wave feminism)
이 운동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며 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을 역설했다. 이들을 ‘복음적 여성해방주의’(Evangelical feminism)라고 한다. 이들은 성경을 연구하면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과 남성이 존재와 역할에서 같다고 주장 한다. 이들은 1986년 이후 ‘여성해방주의’의 동성애 지지를 반대하면서 탈퇴하여 1987년 ‘성경적 평등 기독교인’(Christians for Biblical Equality, CBE)이라는 단체를 만든다.
이는 존 스토트(J. Stott) 목사가 지원했던 ‘Men, Women and God’ 조직을 따른 것이다. 여기에 참여한 유명한 사림들이 Catherine Clark Kroeger와 남편 Richard Kroeger다. 이 단체는 여러 복음주의 진영에서 여성 사역을 극대화하고 남성과 여성들이 참여하여 활동적으로 사역을 확장하고 있고 많은 책을 출판했다.
이들은 성경에서 남자와 여자의 동등함만 찾아낸다. 이 세상에서 가부장제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나타난 것이기에 없어져야 하고 남성과 여성은 교회와 사회에서 존재론적으로 동등할 뿐만이 아니라 사역의 기회도 동등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제2차 물결’(Second-wave feminism)이라고 한다.
④ 제3차 물결(Third-wave feminism)
이 ‘복음적 여성해방주의’(Christians for Biblical Equality, CBE)에 반대하는 목사, 교수, 평신도 등 31명이 ‘성경적 남성 여성 협의회’(The Council on Biblical Manhood and Womanhood, CBMW)를 결성했는데 이를 ‘제3차 물결’(Third-wave feminism)이라고 한다. 이 단체는 1989년 1월 3일 Christianity Today 지에 자신들을 광고하면서 유명한 ‘덴버 성명서’(The Danvers Statement)를 발표했다. 이후 CBE는 또 1990년 4월 9일 자 Christianity Today 지에 ‘Men, Women and Biblical Equality’라는 글로 반박 응수했다.
이에 대항해 CBMW 측은 1991년 ‘Recovering Biblical Manhood and Womanhood: A response to Evangelical Femimsm’(Wheaton 1991)라는 책을 출판했다. John Piper와 Wayne Grudem이 편집했다. 공개적으로 집단 토론을 한 것이다.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CBMW는 CBE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CBE의 입장 사람들은 CBMW가 시대에 뒤진 전통적 여성관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평했다.
그러나 CBMW는 전통주의자들과 복음적 여성해방주의 모두를 반대한다. 예를 들면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동등과 차이’를 모두 인정한다. ‘동등’을 주장하는 것은 ‘전통주의’에 반대하는 것이고 ‘차이’를 주장하는 것은 ‘복음적 여성해방주의’를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녀동등을 주장하면서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시에 남녀 차이를 말하면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차이의 경계를 설정한다. 이런 논리는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어 두 입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글들과 토론들이 일어나고 있다.
(4) 미국 장로교회(PCUSA)
미국 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U.S.A.)는 1922년 여성에게 안수 집사직을 허용했고 1930년에 장로직을 1955년에는 목사직을 허용했다. PCUSA는 오랫동안 WCC 정회원이고 신학적으로 자유주의 노선에 서 있었다. 미국 연합감리교회(The United Methodist Church)는 1956년 여성이 목사 될 권리를 인정했고 1976년 여성 목사 제도를 법으로 제정했다.
(5) 북미 기독개혁교회
북미 기독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는 WCC 정회원이면서 신학적으로 자유적인데 1995년 여성안수를 결의한다. 1996년 교단 내 다수 교회가 여성 안수 결정 취소를 요구했으나 122:54로 부결됨으로 현재 여성 목사가 배출되고 있다. 이 문제로 교단에서 떨어져 나간 교회들이 모여 새 교단을 조직했다.
(6) 영국 성공회
영국 성공회(Anglican Church)도 일찍이 WCC 정회원이면서 1988년 여성 사제직을 허용했다. 감독에는 여성이 선출되지 못했는데 현재는 여성 감독 선출이 목표이다. 1996년 여성 안수를 위한 운동으로 ‘The Movement for the Ordination of Women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그룹도 있다. ’The Defenders of the Faith’라 불리는 단체는 여성 안수 반대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미미하고 반대하는 신부들은 교단을 떠나 로마 가톨릭교회로 갔다.
(7) 여성안수 반대 교파와 교단 (2025년 현재)
2025년 현재에도 여성 목사 안수를 공식적으로 반대하거나 제한하는 교단들이 세계적으로 존재한다. 그 입장은 성경 해석, 전통, 교회 정치 구조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정리해 보면 아래에 대표적인 교단들이다.
① 한국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예장 합동)
여성 강도사 인허는 허용했으나 고린도전서 14:34,35, 디모데전서 2:11-15 등을 근거로 여성 목사 안수는 여전히 불가하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예장 고신)
성경적 원리를 이유로 여성 안수 불허하고 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예장 합신)
‘하나님 창조 질서의 근간’이라는 신학적 입장을 바탕으로 반대하고 있다.
② 미국
▸ Southern Baptist Convention (남침례교)
여성 목사 안수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2023년 캘리포니아 Saddleback Church가 여성 목사 안수로 인해 교단에서 제명되었다.
▸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OPC)
여성 장로와 목사 안수 모두 불허하고 있다. 성경의 권위와 질서에 대한 보수적 해석을 유지하고자 함이라고 한다.
▸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PCA)
여성 장로는 일부 논의되었으나 목사 안수는 불허하고 있다.
③ 기타 기독교 교회
▸ 로마 가톨릭교회
여성 사제와 주교 안수는 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교황청은 수 차례 ‘교회는 권한이 없다’고 명시했다.
▸ 동방 정교회
여성 성직자 안수는 전통적으로 금지했다. 일부 여성 부제 논의는 있으나 목사급 안수는 불허하고 있다.
▸ 복음주의 루터교 일부 교단
루터교 미주리 시노드(LCMS)는 여성 목사 안수 불허한다.
◇ 이들 교단은 여성의 사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교육, 선교, 봉사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목사’라는 직분에 대한 안수는 성경적 질서, 교회 구조, 전통적 해석 등을 이유로 제한하고 있다.
5. 여성 직분의 한국교회에 대한 제언
(1) ‘여성과 직분’에 대한 논의 역사
한국에 선교를 시작하면서부터 여성에게 교회의 직분을 허용한 교회들이 있다. 하나님의 성회,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구세군 대학 본영, 나사렛 성결교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은사(恩賜) 사역을 강조하는 교회들이기에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교회 최초로 여성에게 직분을 허용한 교회는 ‘기독교 대한감리회’다. 이 교회는 1931년 여성을 목사와 장로 직분에 허용했다. ‘한국 기독교 장로회’는 1955년 5월 제41회 총회에서 여성에게 장로직을 허용했다. 그 후 1974년 9월 제59회 총회에서 여성에게 목사직을 허용했다. 1977년 11월 정기노회에서 양정신 씨가 최초의 한국 장로교 여 목사로 안수 받았다.
한국 장로교는 본래 1907년 첫 독노회가 창설될 때부터 목사와 장로의 자격을 “목사와 장로는 세례받은 남자이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교회 헌법에 보면 목사 자격을 27셰 이상 된 남자로 규정한다.
1930년 미국 연합장로교회(UPC)가 여성에게 장로직을 허용하자. 1932년 한국 장로교 경안노회가 이 문제에 대해 총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질의를 했다. “성경 어디에 근거하여 이런 결정을 했으며 동일한 신조를 믿는 우리 교회는 왜 저들과 다르게 해석하느냐?” 총회는 답한다. “우리는 상관할 것이 없고 우리 조선 장로교는 본 정치에 의하여 여자 장로를 세울 수 없다.” 그러나 1933년 여성 장로 제도를 함남노회를 통해 총회에 청원했지만 기각당하고 1934년 3차 시도도 실패한다.
장로교 중 통합 측은 1970년 이 후 거의 매해 총회에 여생 안수 청원을 상정했다. 여전도회의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으로 1994번 제79차 총회에서 여성에게 모든 직분을 허용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2003년 현재 약 450명의 여성 목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한국교회의 현 상황
장로교회에서는 기장(기독교장로회) 측을 제외하고는 통합(대한예수교장로회) 측이 1994년 여성에게 교회의 직분을 허용했다. 같은 한국 장로교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합동(대한예수교장로회) 측 신학교인 총신대학원애서 ‘신학지남’ 1996년 가을호 특집으로 ‘교회와 여성’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김의환 총장이 권두언 ‘교회 내 여성의 기능과 성직의 자격’에서 여성의 직분을 분명하게 금지한다. 박아론 교수는 ‘여성 목사 안수에 관련 여권주의자들의 주장과 우리의 견해’를 홍치모 교수는 ‘여성신학의 역사적 배경과 최근의 동향’ 그리고 권성수 교수가 ‘딤전 2:11-15의 관찰과 주석적 고찰’ 마지막으로 김길성 교수가 ‘여성 임직에 대할 성경의 교훈’을 기고했다. 이 같은 합동 측 교수들의 공적 반박 의견 후 아직까지 아무런 공적 반대 글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고수들이 이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총신 교수 중 여성에 대한 직분 허용에 긍정적인 교수들이 있다. 토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을 뿐이다. 모 교수 총장 시절에는 아예 반대 의견을 피력하지도 못하도록 금지 명령을 내렸을 정도였다.
2004년 ‘목회와 신학’은 ‘여성 직분’ 주제를 1993년 3월호에 다룸으로 이후 이 주제가 뜨거운 강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선뜻 이 논의에 참여하는 교수들이 없다. 권성수 교수가 1996년 자신의 글에서 밝혔듯이 한국교회에서 이 문제를 토론하는 데는 여러 가지 장애가 있다.
▸ 교단의 분위기가 학문적 토론을 저해한다.
▸ 한국적 유교문화가 학자들 간에도 입장을 달리하면 토론하 기가 곤란하다.
▸ 한국인의 정서가 합리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어서 반대 아 니면 찬성 흑백논리로 편 가르기를 하기에 토론이 어렵다.
▸ 여성 안수에 반대하면 시대적 낙오자 혹은 은사에 대한 반대 혹은 구세대라는 낙인을 찍기에 토론이 힘들다.
그러나 토론은 공정하고 냉정하게 말씀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적어도 성경을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 믿는 교회나 성도라면 성실한 자세로 이 토론에 임해야 할 것이다.
(3) 토론에 임하는 자세
논의를 위한 제안 교회에서의 ‘여성과 직분’에 대한 논의를 위하여 우리가 주의해야 할 몇 가지를 제안하려 한다.
① 문제를 일반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여성안수 반대자들은 모두 여성이 열등하거나 남성이 우월하다고 본다고 일반화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면 박보경 씨는 ‘목회와 신학’ 글에서 CBMW를 소개하면서 여성 안수를 반대하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종속적인 관계이고 우등과 열등의 관계인 것처럼 표현했다. 이것은 CBMW가 명백하게 부인하는 것인데도 여성 안수에 반대하면 무조건 그렇게 보려는 태도임에 틀림이 없다. CBMW도 전통적 가부장적 폭력과 여성에 대할 우월성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잘못된 결과일 뿐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성안수를 지지하면 무조건 모든 성경을 믿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데 그것 또한 잘못된 일반화의 한 예이다. 김세윤 교수의 글이 ‘목회와 신학’에 실린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이 일반화하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칼빈주의자들로 자처하는데 남자의 권위를 세우고 여성을 굴종시키는 일을 위해서라면 구약의 의식법에 호소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구약의 의식법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이상 구속력이 없다는 칼빈의 가르침도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구약에 근거해서 율법적 차원에서 논지를 펼치지는 않는다. 신약의 여러 성경을 해석한 결과 임에도 이렇게 일반화하는 건 잘못된 태도다. “개신교 신학 그 중 개혁신학을 보수한다는 사람들이 율법주의자들이 되고 중세 사제주의를 부활시키는 자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도 마찬가지 일반화이다. “이런 거짓 보수주의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한국 교회들과 신학교들 안에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성경의 진리를 올바르게 천명할 진정한 보수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방적으로 일반화시키는 태도는 논의에 도움도 되지 않고 발전에도 해악만 될 뿐이다.
② 상황과 실제가 원리를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
성경에는 원리적 교리가 있고 실제적 역사가 있다. 우리는 종종 역사에서 원리를 거꾸로 설명하는 과오를 범한다. 대표적인 예가 오순절 신학이다. 경험에서 성경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경험이 정당화되고 더 나아가 원리화가 되고 교리화다. 이것은 오순절 학자인 Gordon Fee도 거부한 방법이다. 성경에 여러 여성의 활동이 있었다. 구약에서도 그 활동들과 인물들을 나열할 수 있으며 신약에서도 말은 여성이 적극적으로 교회에서 활동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활동 자체가 원리적인 부분을 앞지를 수 없다. 성경에 원리적인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이 실제적인 부분을 설명하게 되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세윤 교수는 ‘목회와 신학’에서 “여성을 굴종시켜 얻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여성을 굴종시켜서 유익이 없다는 얘기다. 김해을 교수에게는 인간적인 득실의 유무가 원리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도 원리적인 부분 토론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되자 여성 안수를 찬성하는 쪽에서 상황적인 논지와 실제적인 논지를 앞세워 분위기를 이끌어가서 결국 가결하는 쪽으로 이끌어 가게 된다. 원리적인 부분은 결국 해결을 보지 못하고 실제적이고 상황적인 것이 여성 안수 가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점은 앞으로 여성 안수를 논의할 때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③ 결국에는 투표수로 결정하나 성경이 최종 권위임을 인정해야 한다.
여성안수 문제 토론자는 느긋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여성안수를 지지하는 사람은 지지하는 성경을 찾고 설명하기에 정신이 없고 반대하는 사람은 만대 성경 구절을 찾아 연구한다. 성경 신학자는 성경을 어떤 전제 없이 주석해야 한다. 해석학에서 전제 없는 해석학은 불가능하다고 하나 성경 신학자들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성실한 주석을 해야 한다.
한국교회 성경 신학자들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좋은 주석은 좋은 논의를 위해서 절대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논의가 감정적 싸움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R. T. France 교수는 여성안수를 지지하는 학자지만 상당히 객관적 주석을 하려고 하는 교수 중의 하나다. 예를 들면 김세윤 교수는 예수님 당시 여성들은 억눌리고 인간 이하 존재 취급받았음을 강조하기 위해 유대 랍비들의 문헌을 소개했다.
그러나 France 교수는 예수님 당시 여성들이 공직을 갖지 못했으나 상당한 지혜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이 재능을 통해 사회에서 의미 깊은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없었음을 직시한다. 이는 예수님 당시 어떻게 여성들이 예수님 주변에서 일할 수 있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설명해 준다. 건강하고 수준이 있는 주석을 하는 성경신학자들이 필요하다.
④ 성경이 시대의 제한을 받는가?
이런 주장은 성경이 기록된 그 시대에 제한되고 그 정신만이 오늘날 전달된다고 해석하는 경우다. 여성안수와 관련된 소워 논쟁이 되는 성경 구절들이 제아무리 원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성경이 기록된 그 시대 상황에 국한된다고 해 버리면 단 한칼에 모든 게 끝나버린다. 이는 여성에게 ‘잠잠하라!’든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구절들이 그 시대의 특별한 상황의 특별한 여성들을 향한 권면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성경이 과연 그 시대와 기록될 당시 상황에 제한받는 것인가? 성경에 그런 것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기본적으로 성경은 기록될 당시 시대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 상황을 설명하도록 돕는 역할 한다. 성경은 당시 상황에 피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시대 상황을 설명하고 섬기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바울의 여성 관련 본문이 시대에 제한(Time-bound)이 된다고 해석하기보다는 오히려 바울이 하나님의 일반적 원리를 당시 상황에 맞도록 적용한 점에서 그 시대를 섬기는(Time-serving)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⑤ 아전인수격 성경 해석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어떤 전제(前提)를 하고 성경을 해석할 때 가장 쉽게 빠지는 잘못이다. 예로서 예수님의 여성에 대한 태도다. 여성안수 찬성자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성과 대화하고 그녀를 가르친 것을 당시 사회 정황으로 볼 때 혁명적 사건으로 본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같은 해석자가 예수님은 왜 열두 제자에 여성을 포함하시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예수님이 사회에 혁명적으로 반응하시지 않고 사회적 정황에 잘 적응하신 경우라고 해석한다.
일관성 있게 해석하려면 예수님은 여성 문제에 혁명적으로 행동하셨기 때문에 열두 제자를 택하시는 데도 여성을 포함해야 옳았다고 해석해야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성경은 혼란스럽거나 상충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성경은 항상 일관된 원리로 해석해야 한다.
여성 직분에 대해 한국교회에 제언한다.
① 신학적인 제언
여성 직분 문제의 본질은 성경의 최종 권위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 성경의 원리적 가르침과 실제적 역사적 상황을 혼동하지 않 고 구분해야 한다.
▸ 특정 본문을 시대적 상황에만 제한하거나, 반대로 상황과 경험을 원리화하는 해석학적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 성경 해석은 아전인수격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성경 전체의 일관된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여성 직분 문제를 단순한 문화나 사회 흐름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성경신학적·교의학적 원리에 근거한 신학적 논의로 접근해야 한다.
② 목회적 제언
교회는 여성의 은사와 사역을 인정하면서도, 직분 문제를 두고 감정적 대립이나 일반화를 피해야 한다.
▸ 여성 안수를 반대한다고 해서 여성을 열등하게 본다거나, 여성 안수를 찬성한다고 해서 성경을 무시한다고 단정하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 목회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하나님의 은혜의 동역자로 존중하며, 서로 다른 직분 이해 속에서도 신앙 공동체의 화합을 이루는 것이다.
▸ 목회적 차원에서 지도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충실히 설명 하되, 성도들이 상처받거나 양극화되지 않도록 섬김과 사랑 의 태도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③ 한국교회 현실적 적용 제언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유교적 문화, 교단 정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 직분 문제를 충분히 건강하게 토론하지 못했다.
▸ 감정적 흑백논리, 낙인찍기, 토론 기피 현상을 극복하고, 공 정하고 냉철한 말씀 중심 토론을 회복해야 한다.
▸ 각 교단은 여성 직분 문제를 교권이나 정치적 의제로만 삼 지 말고, 성경신학적 논의와 교회의 실제적 필요를 균형 있 게 반영해야 한다.
▸ 앞으로 한국교회는 이 문제를 통해 교회 내 다양성을 인정 하고, 동시에 성경의 권위를 지키는 길을 모색함으로써 분 열을 넘어 성숙한 신학적 대화와 일치의 모델을 세워야 한다.
결론
한국교회 안에서의 여성과 직분 문제는 단순히 교단별 전통과 상황 논리에 따라 결정될 수 없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이다. 이미 여러 교단에서 여성 안수를 허용해 왔고 또 다른 교단들은 이를 여전히 금하고 있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문제는 성경적 원리에 대한 일관되고 객관적인 해석 부족 그리고 감정적·이념적 대립으로 인한 건강한 토론의 부재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논의는 무엇보다 성경을 최종 권위로 삼는 객관적이고 성실한 주석 작업을 기초로 해야 한다. 여성의 은사와 역할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원리와 상황을 혼동하지 않고, 아전인수격 해석이나 일반화의 오류를 피해야 한다. 또한 이 문제를 단순히 교권이나 문화적 관습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겸손히 경청하고 토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결국 한국교회가 여성 직분 문제에 있어 요구되는 것은 성경의 원리에 충실한 동시에 교회의 실제적 상황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지혜이다. 성경이 말하는 원리를 시대적 제한 속에 가두지 않고, 오히려 시대를 섬기는 말씀으로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할 때, 한국교회는 감정적 대립을 넘어 건강한 신학적 논의와 교회의 일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임경근 목사, 고신대학 B.A., 고려신학대학원 M.Div., 네덜란드 Kampen/Apeldoorn 교회사/교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