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편 6편)
시편 6장
3.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오늘 시편 6편은 전형적인 시편의 탄식시입니다,
시편의 시인들이 기도를 드린 4000년후 2014년 한반도의 세월호 국면에서 울려 퍼진 기도문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다,
“주여! 살아 돌려보내주시라는 저희의 기도는 원망이 되었나이다.
지난 어버이 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어버인 날을 맞았습니다.
사랑의 하느님, 살려달라고 울부짖다 숨져간 이들을 주님 안식으로 인도하시고 남겨진 자들에게는 하늘의 위로로 치유하소서. 지금 머리 숙여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에게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능력을 주소서.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시편 6편의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이후 4000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주여! 살아 돌려보내주시라는 저희의 기도는 원망이 되었나이다:라는 탄식은 오늘도 탄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탄식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시편의 탄식적 기도의 핵심적 기능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침묵과 고립을 깹니다,
시편의 기도의 시작은 출애굽의 이스라엘 처럼 단연 아우성 외침 탄식 탄원에서 시작되는데
이러한 기도의 중요한 기능은 바로 침묵을 깨고 원초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말하기 시작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가정 원초적 음성은 바로 탄식이라는것이
시편의 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성입니다,
6.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탄식은 4월 16일 고난주간 이후 계속되어 이제 초겨울에는
비정규직 카트 노동자에 이어 쿼바디스라는 영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쿼바디스’라는 말은 라틴어로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믇는 영화 ‘쿼바디스’가 개봉되었습니다.
영화 ‘쿼바디스’는 그 부제 “예수 팔아 장사하는 자들의 좌판을 뒤엎는 이야기”처럼
한국교회의 타락과 부패의 민낯을 정면으로 고발합니다.
사랑의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왕성교회, 삼일교회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와 목사들이 등장합니다. 또 장로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일했던 한국교회의 실상이 폭로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축복하는 예배의 자리에서 저들을 칭송하는 설교와 기도를 하는 한국교회 지도자 목사들의 민낯과 직면하게 됩니다.
녹색평론의 저자 김종철 선생님은 최근 경향신문에 이러한 컬럼을 쓰셨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다. 온갖 불의와 부조리, 비이성과 몰상식이 활개를 치는
사회는 갈수록 자정기능을 잃고, 병들어 썩어가고 있다.
전체 근로소득자의 절반 이상이 기아임금을 받고, 자살률은 산업국가 중 최고인데다
젊은이들은 결혼도, 가정을 꾸리는 일도,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 이 나라 ‘국민’의 생활실태이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는 이 나라 통치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점점 심해지는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법이랍시고 정규직을 보다 쉽게 해고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방안을 내놓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모든 사회적 부패와 병리현상에 대하여 최종적인 책임이 있는 ‘정치’가 지금 완전히 기능 부전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오늘 우리의 기도는
3. 주여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6.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하고 탄식하며 쿠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는 탄식과 질문과 기도로서 하나님과의 대화와 소통이 시작되어야 할때가
바로 지금 이요 지금이 바로 이러한 기도의 때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데 최근 “ 사회를 말하는 사회”가 출간되었은데
그 책에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를
1. 2장 위험사회, 분노사회, 감시사회, 과로사회 등 현대인들을 분안과 위험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2. 3장에서는 승자독식사회, 격차사회, 부품사회, 주거신분사회 등으로
1등 외에 모두 루저가 되어버리는 한국인들의 각박한 현실을 보여주며
3. 4장에서는 분열사회, 네트워크사회, 단속사회, 루머사회 등 오로지 온라인을 통해서만 접촉하는 현대인들의 민낯과 결국 소외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조명한다하거 있다고 고발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오늘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잠수와 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함께 탄식하며 기도해야할 이때에 오늘의 신앙인들이
이 탄식으로 기도를 시작하여 감사와 찬양으로 고양되어 올러가야 하는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가장 큰 문제는 잠수와 잠적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세월호 처럼 사라져 버리고 잠수를 타고 잠적하고 있디는 것입니다.
8.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9.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세월호 처럼 사라져 버리고 잠수를 타고 잠적하지 않으려면
탄식에서 감사와 찬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중요합니다,
교우 여러분!!
탄식에서 감사로 넘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시편의 절정은 바로 탄원에서 찬양으로 넘어가는 반전과 전복의 부분입니다,
1. 시편 57편을 보면
7.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2. 시편 42편 5절을 보면
여기 또하나의 탄식이 찬양으로 바귀는 반전과 전복의 시나리오가 나옵니다,
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교우 여러분 우리 인생과 신앙에서도 57편의 “내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사오니!”하는
42편의 그의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는
이러한 시편의 찬양처럼 탄식이 찬양으로 바뀌는
변화와 반전과 전복의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탄식은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의 의미를 깨닫고 각성의 힘을 주는데
찬양은 이러한 자각과 각성을 고양시키어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시킵니다,
이처럼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의 계절에 우리의 탄식을 찬양으로 고양시켜야할
기도와 찬양의 제목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교우 어려분 2014 성탄을 1주 앞에선 지금 오늘 우리에게는 어떠한 전환점이 있습니까?
어떠한 변곡점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제 2014의 상탄절은 이 탄식의 시기를 찬양의 시기로 전환과 반전시키는 시점이 되어야 될줄로 믿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 성탄의 시기 지금이 바로 이 전복과 반전의 찬양을 부를 시기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자신들이 바로 성탄의 이 아침에
마침내 반전과 전복의 찬양이 되고
마침내 희망의 시인이 되어야 될줄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