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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에 평생을 바친 老제자의 마지막 절규
“제자이자 부하직원 이장우는 죽기 전에 원상회복을 원한다.”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즈음해 신촌 연세대학교 정문 건너편에 한 시민단체의 시위가 있었다. 연세대의 제자이며 직원이었던 농업인 이장우씨와 연세대 재단이사장이며 조선일보 명예회장 방우영씨와는 이십년 가까운 소송이 있었지만 아직도 사법당국의 조치가 석연치 않아 사법피해자모임인 사법정의국민연대(이하 사법연대)가 몇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집회를 연 것이라고 한다.
사법연대의 표적은 연세대학교 당국 외에도 저명인사인 방우영씨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법연대에 따르면, 방우영씨는 재단이사 시절 故배민수 목사가 연세대의 농업개발원이 우리 농업발전에 기여하리라 믿고 기증한 삼애농장을 파괴한 후, 재단이사장이 되는데 이 사실이 방해가 될까 두려워 삼애농장의 계승 관리자인 이장우씨를 제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학교 농과대 강사겸 농업개발원직원이었던 이장우씨를 부당하게 일용잡급직으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이장우씨는 연대생들과 동등한 등록금을 내는 연세대 부속 교육기관인 농업교육원 2년과정을 1977년 수석으로 수료한 이유로 실습지도강사(조교)로 발탁되어 실습지도강의와 교직원으로 근무했다. 농업개발원을 이용만하고 ‘잔존세력’은 소탕? 연세재단과 연세대직원들이 저지른 만행은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한다. 재판에 승소하기 위해 인사고과를 허위 보고한 상관을 증인으로 내세워 위증을 하도록 하고, 인사카드를 위조하는 소송사기로 승소를 하는데 성공했다.
연세대는 대학발자취기록에도 농업개발원의 업적을 누락했다. 연세재단은 우유처리장을 강제 이관할 당시 수입원을 전액 농업개발원에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1979.3 경에 빼앗아 갔다. 그러나 한푼도 지원해 주지 않은체 농업개발원은 연대 원주분교에 낙농학과 신설 이유를 들어 농업개발원을 1990.3. 경에 폐원했다.
농업개발원은 1917년 일제하에서부터 농업교육을 시작해 연희전학교 때 부터 농학과를 시작했다. 용 백낙준박사는 그 어느 학과 보다도 농학에 심열을 기울인 결과 목축재배를 위한 초지조성을 위해 현 축구장 14,000여평 구입하였으며, 그 후 현재 본관 총장 공관 자리인 34,000여평을 목장예정지로 추가로 구입한 결과 현 연세대갬페스가 되었다.
사법정의국민연대는 이 사건을 사법부와 검찰이 무조건 강자인 대학의 편에서 판결하고 수사한 대표적 사법피해 사례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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