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뉴스와 유재무목사

                 예장뉴스와 유재무 목사

윤신영목사(동북아역사문화연구원 원장)

이 글은 예장뉴스 발행인 유재무목사(1954년)가 정년 은퇴를 앞두고 정리한 개인사다. 지난 2012년 창간한 예장뉴스를 2024년에 정리를 하면서 그간 써온 글들과 청년운동 민중교회 광산지역 일반목회 일본선교사 목회자 운동 예장뉴스서 사역한 이야기들을 후배들중 대표 정리해 출판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 글을 쓴 나는 포항에서 장청 운동을 하다가 변창배 목사의 뒤를 이어 PCK 장청 총무을 지내면서 유목사와 관계를 갖게 된다. 그후 30여년간 가까이 지내는 후배로 가족이나 유목사 지인들과도 막역한 사이다. 유목사가 평소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앞서 쓴 원고를 토대로 이후 구술을 참조하여 기록한 것이다.

 

  

 
 * 강원동노회 목사 안수식 참석자(좌로부터 강우경,박진석,임광빈,윤신영,유재무,조남호,장석숙,정태효,허춘중목사

1983년 시작한 예장 최초의 노동교회(성수삼일)
2009년 유재무목사는 일본선교사역를 마치고 귀국하여 그가 1983년에 세운 성수 삼일교회(정태효목사)에서 설교 목사로 동역하다가 2015년 경 사임한다. 당시 일본서 귀국 후 2011년 에 불거진 한기총 대표회장을 놓고 합동측과 별렸던 교권싸움에서 우리 교단까지 가세해 사회적으로도 큰 화제가 된다. 당시 우리 교단 총회장 박위근 목사와 사무총장 조성기목사는 ‘한기총’ 총회에서 퇴장한다. 이에 교계는 ‘한기총’ 아웃 ‘해산’ 등으로 압박하지만 법인의 행태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해산은 자기들이 할 일로 우리교단은 "한기총 탈퇴" 운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유목사도 합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1980년 중반 부터 시작된 예장목회자 운동이 시대적 한계에 봉착하는 데 이제 운동은 찾아가는 게 필요하다는 데 이른다. 언론지형도 레거시 미디어(전통 신문이나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사회적으로는 오마이 뉴스, 기독교는 뉴스엔 죠이등이 활동중이었다. 감리교는 이필환목가 시작한 당당뉴스, 기장교단을 배경으로 한 에큐메니안이 있었으나 우리 PCK도 이런 환경에 조응하는 미디어를 하나 만들자는 결론으로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예장뉴스라는 인터넷신문을 창간하게 된다.

PCK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신문인 예장뉴스(pck-goodnews.com)는 개혁과 진보의 가치로 과거 인권운동 사회선교 목회자운동의 정신과 유산을 계승하는 정신으로 시작을 한다. 백도웅목사를 초대 대표로 하고 류태선, 임광빈, 윤신영등이 동참하고 협동조합식으로 하자고 하지만 거기 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농목의 한경호, 제주 김인주목사등도 함께 동참한다. 그후 2대 대표는 고 이명남목사시나 별세하셔서 이상진목사가 3대 대표로 위촉했다.

2012년 총회에서 처음으로 종이신문을 만들어 배포하였으며 그해 가을에 유목사가 급성 위암이 진단을 받고 수술과 요양으로 쉬면서 임규일목사가 편집장을 대리한다. 이에 선후배들의 사랑과 으로 요양하여 빠른 회복을 한다. 그리고 다시 복귀하여 예장뉴스에 전념하게 된다. 그러나 초창기 함께 한 이들과 2014년 불거진 명성교회 세습문제로 2015년 부터는 1인 미디어로 독자 운영을 하게 된다.

   
*예장뉴스 창립/홍성현,유경재,이명남,백도웅,정봉덕,고연주,이근복,김혜란,고성휘,임규일,이강준,김인주,강우경,손은정,최욱연,임광빈,김영철,박진석,서덕석,임장철,이00,류택규,황수경

일하는 예수회(PCK-URM)

유목사를 성장시키고 이 분야에서 큰 자부심으로 활동한 데는 “일하는 예수회”(산업선교)라고 후술한다. 78년 제대후 신학교 입학전 장청활동과 이후 장신대 78기로 시대의 한 복판에서 현대신학연구회 활동을 거쳐 민중교회에 투신하는 데 1983년 성수동에 성수 삼일교회를 10월에 설립한다. 예장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노동자교회로 거기서 4년간 목회하다가 1988년 말 태백 광산지역으로 이주했는 데 후임은 정태효목사(80기)다.

서울장신 26기(1980년)로 입학을 하고 83년에 장신대 입학할 때 76기와 77기들이 “현대신학연구회”을 막 조직하였는 데 신대원 중심이였다. 목연 2학년인 유목사는 당시 3학년으로 입학한 77기도 그렇고 목연도 현신활동을 하도록 추동한다(목연은 지방신학교 출신자들로 장신대서 1년만 연수하고 나오니 3년간 공부하는 신대원 출신들처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없다. 그러나 당시 흐름은 이미 지방신학교 출신들도 그렇고 의식면에서 다를게 없어 현신을 신대원 목연 통합서클로 한 것이다.

예장 민중교회 목회자 운동

시대적으로는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대전신학교 출신 김규복 서충성 장택순 고왕곤(소천) 영신의 현순호 부산의 박맹춘 호신의 장헌권 최덕기 그리고 서울장신의 허춘중, 김일재, 이성수, 그리고 78기로는 임광빈, 하정택, 최덕기, 이강준이 있었다. 나는 77기 김영락, 안기성, 윤창현, 76기 박진석과 같이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조지송목사와 인명진목사에게서 산업선교 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은 기성 교회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였는 데 장차 영등포와 같은 센타형 산업선교를 더 이상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인명진 목사의 제안으로 전국 공단지역에 노동자교회를 세워 기존의 산선의 역할들을 한다는 것이 목적이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졸업과 훈련을 마치고 연고가 있는 지방의 공단지역으로 파송받아 노동자목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안기성목사는 고향 대구에 달구벌교회를 세워 목회하다가 서울(총회 노동상담소, 장함교회) 로 왔고 현제식목사(82기)에 이어 안미현목사(91기)가 사역하다가 경산 하양으로 이전한다. 안양에서는 박진석목사가 버린돌교회로 사역하다가 후임으로 최주상목사(80기)가 사역하다가 한무리교회로 개명하여 목회하다 2007년 여름 소천하였다. 후임은 79기 우예현목사(오산서 개척한바 있음)가 사역하다가 현재는 백창우목사가 사역중이다.

이후 박진석 목사는 안양에서 다시 청지기교회를 개척하였는데 1999년 영등포산선 총무로 가기 위해서 후배인 현제식(83기) 목사가 왔다가 시온성교회를 분립한다. 청지기 교회는 기환련 사무총장을 한 이진형 목사가 목회를 하다가 2014년 박진석목사가 다시 부임해 목회중이다. 김영락목사(77기, 기독교 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영성운동가)는 울산 양정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해 울산노동운동에 기여하고 은퇴후 영성운동가로 홍천에 계시다.

79기 박총호목사는 울산에 등대교회를 세우고 노동상담소를 시작하다가 내 후임으로 태백소도교회로 부임했고 울산은 84기 김용식목사가 이어 지금까지 활동중이다. 대전 김규복목사(77기)는 정년은퇴하고 허연목사 부부가 시무중이다. 이것이 “예장노동목회“ 의 시작이다. 그들은 한국의 공단지역과 노동자 거주지를 정하고 조사하고 준비하여 ‘노동자교회’를 세웠고 자력으로 억압의 시대와 가난 그리고 외로움과 싸우며 교회와 생활을 이어갔다.

그 보다 앞서 산선 훈련을 받고 영등포 산선 총무로 부임한 76기 이근복목사(새민족교회, NCCK 교육훈련원장)와 손은하목사(김제 이농)가 있으며 78기 강우경목사는 좀 늦게 구로동에서 야학중심의 이미 세워진 디딤돌교회를 세워 목회하다가 지난 2022년 은퇴한다. 또 79기 진방주 목사(영등포산선과 총회 국내선교부 총무)는 안양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영등포산선 총무를 지냈고 포항의 김상은목사(79)는 형산교회를 세웠으나 노동문제에 활동을 이유로 노회서 면직을 당하였다가 복권이 되지만 이전처럼 교회목회가 노동자로써 지금 까지 활동중이다.

우예현목사(79)는 오산에서 다솜교회을 개척하였다가 한민족평화연구소 연구원을 지내다가 최주상 목사가 소천하자 한무리교회에 칭빙을 받아서 목회하고 있다. 이 다솜교회는 영등포산선에서 일한적이 있는 장창완목사 부부가 부임하여 지금은 부인 오영미목사가 담임하고 있다.

그리고 황홍렬목사(79기)가 봉천동에 친구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다가 영국의 버밍헴에서 민중교회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이 교회는 오재현목사(현재 대구 청산교회)가 시무하다가 대구 회로 이임한 후 구미에서 동녘교회를 세워 목회하던 이동규목사가 부임하여 목회하다가 2012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하였다.

79기 서덕석목사는 농아인이지만 성남의 일반교회서 사역하다가 신학졸업후 산선 훈련을 마치고 성남에 열린교회를 개척해 지금 까지 목회하고 있다. 한편 1993년 장청 총무를 마친 허춘중목사(77기)는 안산의 성빛교회(기존에 설립된 노동자교회)서 목회하다 사임후 태국 선교사로 나갔다. 신학생 시절부터 남정길 목사(전북대 해직교수)가 개척한 새롬교회에서 사역한 78기 이원돈목사는 이후 부천 약대동에서 현재 까지 목회하고 있다.

구로동에는 김용복박사와 새문안교회의 청년 학생들이 세운 산돌교회가 있었는데 최승기목사(81기, 호신대 교수)와 류태선목사(85기,사회봉사부 총무)가 시무한 바 있다. 그후 이 교회는 기장교회가 되었다. 80기 안하원 목사는 부산에서 새날교회를 개척하여 지금 까지 시무하고 있다. 고 오규만 목사는 수원에서 한벗교회을 세워 목회하다가 부산진교회, 과천교회 부목사를 거쳐 안산의 고잔 평강교회을 개척하기도 하였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고 과천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소천했다.

성수삼일의 정태효목사, 김정은목사(전남 영광의 사랑방교회 개척) 가 있으며 창원의 조신제목사는 부산진교회가 100주년 기념으로 창원에 세운 교회에 부임하여 목회중인데 2023년에 경남노회 노회장을 지냈다. 고 이경노목사는 광주서 사고로 소천한 뒤 오석회목사가 이어 목회중이고 대구 구민교회는 김경태목사가 창립하여 시무중인데 아들 둘이 영신을 졸업하고 아버지 사역을 잇는 유일한 가정이 된다.

   
 *앞줄 좌 윤신영부부,송유성부부,백도웅부부,유재무,허춘중부부,장석숙,도하영,정병준,김혜경,고 오규만부부,금주섭

장청운동과 신학입문  

유목사가 장청에 처음 발을 디딘 건 78년 군 제대후 청평 호반의 집에서 있었던 장청 서울지구 여름대회를 통하여서였다. 거기서 임도현선배(새문안 뿌리깊은 나무 기자)을 만났는 데 성수동교회 친구인 홍 기(81기, 전라도 장성교회)의 인도로 그 모임 참석이후 역사와 사회를 보는 눈을 떳고 이어 기독청년의 중심적인 멤버가 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장청회원들과 1979년 YH 사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하여 우리 총회를 (총무 성갑식목사) 점거 농성한 이래 83년 전남노회의 광주 5.18 항쟁 성명서를 기독공보(사장 차봉오장로)에 유료광고 계약을 하고는 인쇄과정에 뺏다. 이에 공보를 항의방문 농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87년에는 직선제개헌을 위한 “호원철폐”을 위하여 총회 총무실(총무 주계명목사)실 점거 농성한 것까지 3번의 총회를 점거 농성하는데 주역이 되었다. 그 일로 과격한 이미지로 낙인 찍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81년에는 장청 서울지구회장을 지낸 허춘중목사 뒤를 이어 EYC 서울지구회장을 하며 당시 광주항쟁 1주년 분향소를 권진관 교수(성공회대)와 감리교 변광순과 기독교회관 707호에 설치했다가 동대문서에 잡혀 갔기도 하였고 그 다음해에 광주에서 있었던 2주년 집회에 원풍모방 노동자 유인물을 갖고 직접 내려가서 배포하기도 하였다.

당시 함께 간 성공회 류시경신부(오사카 가와구치성당)은 저녁에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잡혀 감옥을 살았다. 그 후 CCA의 아시아교회 청년들과 1994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EC에 참여하여 아시아의 기독청년들과 교류를 했는 데 CCA-URM 총무로 안재웅박사가 계셨다. 82년에는 일본의 한인교회와 재일동포들의 역사를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당시 한국에 유학와 있던 재일동포 이근수목사(전 오사카 KCC 관장)와는 지금 까지 우정을 나누고 있다.

   
                                                           * 예장목회자연대 2차 총회  

1994년 소도교회로 부임

1994년 1월 태백에서 광산지역 노동상담소와 산업재해 문제연구회 활동을 하던 유재무목사는 시내 소도교회로 임지를 옮긴 후 봄에 ‘예노목’의 10주년 행사에서 지난 10년의 예장노동목회 보고서 형식으로 글을 쓴 바 있다. 그리고 20년 후인 유목사 정년을 맞아 그 원고를 토대로 하여 정리하는 초고가 된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보수신앙에서 성장하여 장청활동을 통하여 변화된 이상과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서울장신을 26회로 장신대는 78기로 졸업한다.

그리고 장신대에서 ‘현신’과 ‘예노목’에서 만나 소중한 관계를 나누는 친구들과 동역해왔다. 허춘중, 송유성, 이근복, 류태선, 안기성, 박진석 목사가 가장 오래된 지인들로 장신대 78기 현신 동기인 서명철(서울교회 부목사) 조하무(현저교회) 지승룡(민토 대표) 최대석(일산 소망교회) 이상성(경기도 의원) 김혜란(전 요셉의 집 원장) 임광빈(의주로교회) 최덕기(전주 사선총무)를 하정택과 이강준(강동노회)과 동기다.

태백으로 가서는 광산지역 노동상담소와 산업재해연구회 운동을 한 후 소도교회에 부임하기 전 까지 자신은 생활에 있어서는 가난한 광산노동자들과 같이 민중적 삶을 산다. 그리고 신학생 때 읽은 고 장일조교수의 "욕망의 충족과 변화 체계" 라는 책자를 통하여 신학적 방황을 끝낸다. 그리고 성직자상으로는 니카라과 혁명의 산디니스트에 영적감동을 제공한 ‘에른네스토 까르디날’ 신부와 미국의 제임스 콘의 흑인신학을, 국내에서는 안병무와 서남동 장일조, 고재식, 김용복박사의 민중신학에 기초하여 자의식을 수립했다고 고백한다.

사상에 있어서는 당시 학생운동의 흐름과 사회운동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견지 하였다. 태백에서는 먼져 와 있던 현신 동지 윤창현 목사(77기)와 이상진 목사(80기)가 같은 강원동노회 태백시찰에서 “광목회”(태백 고한 함백 도계등 인근 광산지역 교회) 활동을 한다. 그후 1998년 의정부동부교회로 임지를 옮기게 되었다.

   
 

1998 겨울 태백에서 의정부로 가서
소도교회에서 사임하면서 박충호목사를 소개했는 데 박목사는 79기로 신학교 졸업후 대전 삼성교회와 울산을 거쳐 온 것이다. 그후 박 목사도 후임으로 조남호 목사(80기)를 소개해 소도교회는 3대를 현신출신이 목회한 곳이다. 조남호목사는 강원노회 고한남부교회서 목회를 하다 서울 갈릴리 부목사와 울산서 목회하다가 부임했는 데 이후 태국선교사를 지냈다.

의정부에 부임하여 남을 도우려면 규모가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역했는 데 기존의 조직교회서의 한계로 2003년 위임서 부결되여 사임한다. 가장 왕성하게 열정을 가지고 목회한 시간이었다. 이후 2004년 이치만교수의 소개로 일본 오사카 성산교회로 이임을 한다.

의정부 시무중 성수삼일 20주년 행사에 방문했는 데 설교는 김화자목사가 축사는 인명진목사, 성명옥목사가 했고 나는 기도를 하면서 옛날을 회상했다. 1983년 더 이상 산업선교를 할 수 없던 상황 속에서 공단지역의 개척교회를 통하여 노동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이런 생각을 한 인명진목사는 개신교의 특성상 목회자가 원하는 목회를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서 노동자만 모으는 노동자교회를 시작하도록 한 분이다.

삼일교회는 인목사가 300만원을 줘서 보증금으로 하여 시작한 예장의 첫 민중교회다. 노동자들만을 모으고 의식화시키고 훈련시켜 현장에 노조를 조직하고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고 동부지역의 야학을 하는 단체를 모아 지역야학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후일 동부지역 ‘기독교 야학연합회’와 동부금속 동부비정규운동들의 모태였다. 그러나 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비공개적이고 수공업적이며 미숙련 여성 하청의 노동자 의식화 교육에서 노동운동의 힘이 대형화, 기간산업, 남성중심으로 가면서 우리의 할일은 크게 줄었다.

거기서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옥순(원풍노조 총무)가 ‘서노련’ 부위원장이었는 데 당시 서노련의 회보가 장안의 화제였다. 유일한 정치비판과 노동운동, 현장 투쟁보였다. 정부는 이걸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고 인쇄는 겨우 하지만 배포가 문제였다. 배포할 곳이 없자 집사람과 원풍 노조 총무 출신으로 친구 관계로 우리 교회에 부탁을 해서 몇 번인가 배포를 하였는데 정말 손에 땀을 쥐는 시간이었다. 나중에 위원장인 김문수(전 국회의원)등은 잡혀가 고문과 옥살이를 하였다.

유목사는 성수동에서 88년에 4년동안 목회한 성수삼일을 사임하고 민중선교 영역을 다변화하고 더 현장으로 가기 위하여 자원하여 강원도 태백의 광산지역으로 갔던 것이다. 그때 뚝섬에서 함께 일했던 이들로는 기노채(서울대 80학번) 부부와 박충섭이다. 그리고 김경환, 손종원, 문현숙, 허명진과 조명심(경기북부청 노동상담)이다. 또 김태현(민노총) 김창호, 이두인, 맹성준, 김경숙 ,오시택, 차인순, 강준구등도 있었다. 우리를 도운 이들로는 청담교회 인권 변화사 홍성우 장로와 한정상집사(한완상장로 동생) 강기성집사, 신영교집사(신애라 부친)등이 있다.

삼일 후임인 정태효목사(80기)는 여러 면에서 일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시작한 공부방외에도 여성들만을 위한 쉼터도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운영하여 올해 20년을 맞으며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정 목사는 장신대 졸업반 시절에 내가 노동목회를 하도록 권유했고 훈련은 인명진목사의 지도아래 유목사가 실무를 했다. 정 목사가 여성으로 이 사역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잘감당하여 오늘의 예장냐 여성 현장 사역자가 된 것이다.

그는 예장의 조화순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 사역자로 사회선교에서 롱런을 한 사람들은 많치 않다. 특히 노동현장 고난의 현장에서 지금까지 자기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다. 특히 2013년 6월에는 여성으로는 최초로 목정평 상임의장이 되었다. 우리 교회도 그렇고 예장에서 적극 협력하여 그의 공적 사역의 뒷심이 되도록 한다. 그동안 정 목사를 도와서 함께 한 많은 실무자들과 도와준 교회와 소속한 서울노회와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수 삼일교회가 30년을 맞는 것이다.

2012년 말에 유목사는 위암 판정을 받는 다. 지난 30여년의 앞만 보고 달려온 사역과정에서의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이에 후배들이 모금도 하고 적극도와 극복하여 건강을 회복한다. 삼일에서 장신대 재학중인 박범서 목사가 졸업후 노동 훈련을 받고 소식이 없다가 의정부에서 만나 교육목사로 청빙하여 목사안수를 받게하고 태백 황지중앙교회(이상진 목사)서 부목사를 거쳐서 의정부서 목회도 하다가 현재는 여수의 한 섬에서 사역중이다.

   
                                                       * 예장뉴스 창립 10주년 기념 

결론

유목사 자녀들도 어느 정도 성장해 둘째가 먼져 결혼해 의정부에 정착하자 유목사 내외도 인근 양주 방성리로 이주했다. 그동안 교회 시무기간을 빼고는 정기적인 생활비를 아내에게 주지 못해 장석숙사모도 늘 알바를 했다. 평생 동지 장석숙에게는 꼼짝을 못하는 이유다. 유목사는 결혼 기념이나 생일을 해먹어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들의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사치로 여긴 것이다. 적으면 적게 먹었고 없으면 안 먹었다고 한다. 남을 돕지는 못했지만 이웃들에게 손해를 주고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는 자긍심이다.

유목사는 보수적인 장로교단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신학에 입문후 진보적인 신앙으로 바뀌였고 장청운동을 통하여 의식을 심화시킨 후 신학졸업후 산업선교에 투신해 민중교회(노동자목회)에 투신한다. 그리고 광산촌에서의 목회를 끝으로 일반목회를 전환하여 의정부에서 시무하다가 일본선교사로 파송된다. 선교사로써의 사역은 짧았지만 오사카 니시나리 가마가사키의 노숙자 사역을돌아보고 전통적인 기층 노동운동에서 지역과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본다

이후 다양한 목회와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하여 새롭게 시작한 목회자운동에 투신하여 이를 전하고 확산하는 매체인 예장뉴스라는 인터넷 신문에 참여하여 정년 까지 활동중이다. 여기서 교회 개혁과 사회변혁에 대한 담론을 키우고 교회의 내재적 한계의 현실과 타협하기도 하지만 공교회성의 유지와 온존이라는 제한적 기독교운동이라는 주체성을 자각한다.

약력과 학력
1954년 5월 6일생, 서울 송곡고등학교 졸업(1973), 서울장신대학교 졸업(1983)장로회 신학대학원 목연 졸업(1985), 동남아신학대학원 신학석사(South East Graduated Theological Seminary)(1999) 갈릴리신학대학원 신학박사(2018년)

훈련: 사회선교협의회 실무자 훈련 (1983) 영등포 산업선교 실무자 훈련(1985) NCC 에큐메니칼 훈련 1기(1989) C C A(Asia Ecumenical Coures) 인도네시아 훈련 참가(1993)

목 회
인천 영락교회 교육전도사(1980), 청담교회 전도사(1981-1983), 성수 삼일교회 개척(1983-1988), 태백서부교회 담임목사(1998-2002), 소도교회 담임목사(1993-1997) 의정부동부교회 담임목사(1998-2003), 오사카 평강교회 담임목사(2004-2008) 성수삼일교회 설교목사, 예장뉴스 편집장(2012-2024), 총회 언론정보통신위원회 전문위원(2023년)

경 력
총회 전도부 노동 상담소 실무자(1987) 기독교 광산지역 사회 복지회 상담소 실장(1990-97) 강원 동노회 광산지역상담소 소장(1990-97) 광산지역 산업재해연구회 대표(1996-1997) 사랑의 집짓기(헤비타트) 의정부, 양주 지회 이사(2000), 세움 공동체 이사(2000-현재),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2004-2006년)

저 서
일하다가 다쳤을 때(재해와 보상), 한국석탄산업의 실태와 노동자의 상태 석사 학위 논문 “한국장로교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동남아 신학대학원(SEGAST) “목사, 장로 임기제 연구” 갈릴리신학대학원(Ph.D)

   
* 조지송목사 7순 모임 앞중 조목사 부부,인명진,안재웅,임갑준,백도웅,고애신,이근복,김규복,이신숙,진방주,신철영,박진석,이홍정,김영철,안하원,김복실,신명자,유옥순,이원희,신미자

 

   
                                                   * 일하는 예수회가 강원 태백 소도교회로 여름 수련화를 와서 (

 

 

   
 
   
                                * 1983년에 뚝섬에 세운 성수삼일교회 청년들과  

 

   
               * 청담교회 장로였던 홍성우 인권변호사(2022년 별세)  

 

   
                                                  * 2015년 종로 5가 에큐메니칼 동지들과   

 

   
                                                  *일하는 예수회 태백에서의 수련회

뉴스엔 죠이 기고문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5658 (고은광순 글에 반박문)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2316 (세금 반대)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6129 (목회자 세금 안내도 된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0571 (기독노조가 해법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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