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보현장로(1959-2025) 소천

                       보현이 형 마지막 가는 길에 붙혀

   
                                  * 우측 왕주현 대표

왕주현 대표(왕보현 장로 동생, 장신대 교음과 출신 학생운동과 여행사 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2016년 학생운동 동지들과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사무총장 박선숙의원과 사무부총장으로 일하다 4.13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건으로 구속된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모두 무죄로 판명을 받아 석방된다.

이후 전통적인 성지순례 여행에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억압받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환기를 태마로 한 소위 Dark Tour 여행사를 운영한다. 그러나 이것도 코로나 이후 어려워지고 최근 이-팔전쟁으로 팔레스타인과 가자의 아동 학살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더 이상은 중동여행은 하지 않고 있다.

왕장로는 서울노회 청년연합회 출신으로 대전 한밭대학을 나와 수자원공사에서 일하다 정년 퇴직했다. 이후 남대문교회 역사찾기에 열중한다. 그런 관심으로 작년에 한국기독교역사 문화 아카데미 원장이 되고 서울노회 총대로 활동했다. 노령화되는 총회총대 구성을 안타까워 하며 젊은 총대들을 정책적으로 보내자는 주장을 했다.

   
 

 

 

65년, “지하철 공짠데 별로 타지도 못했어”라는 농담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삶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마지막 진정 치료 들어가기 전 주변의 많은 선 후배들이 찾아와서 위로하고 기도해주셨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래도 형은 복 받았어 아마도 나는 내일 죽는다고 해도 찾아올 친구도 별로 없을꺼야…..

젊어선 장청 운동을 하면서 가끔 집에 들려 고등학생인 저에게 이 책 저 책 보라고 추천했습니다. 그래야 예수 잘 믿을 수 있다면서요. 당시는 교과서가 아니란 위안으로 이해도 못하는 책을 읽어되곤 했습니다. 기억 나는 책은 친구 아버님이 쓰신 성경의 형성사 문고판이였습니다. 성경은 한번도 통독하지 않고 교회분반공부 시간에 들은 성경 이야기와 초등학교 시절 교양독서 대회 준비를 위해 읽은 성경 요약본 정도의 성서 상식으로는 그리 큰 감동도 문제 의식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후에 대학이란 곳에 와서 수업을 들으며 조그만 문고판이지만 예수 믿으려면 읽어야할 책이라는걸 느꼈습니다. 주로 추천 도서가 문고판이였는데 노동의 역사 등등이였습니다. 아마도 교과서보다는 불온 서적이 더 가까이 있어 평범한 나로선 서울대를 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런 책을 사러 사회과학 서점을 들락 거리다가 고 강구철 장로를 만나게 됐고 고딩때 부터 사회과학 세미나라는 것도 하고 그 바탕에 오늘의 비 주류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진정 치료 들어가기 전 의식이 있을 때 가보지 않은 본향에 대한 두려움을 예장 통합 총회에 청년, 여성 총대 의무 할당제를 최소 10%이상 만들어야하는데 못했다 교회가 다시 부흥하려면 다시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만 가능하다며 과거 부흥 시절 교회가 사화적 책임으로 담당했던 항일 민족 운동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의 기독교 역사 문화 유적지 발굴과 해설사 교육에 열심이였는데 판만 벌리고 마무리를 못했다며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신뢰 못하고 나만 가능하다는 자만 그러면서 과거의 삶을 놓지 못하는 것은 장로의 본이 아니다. 교회 어른이라는 사람이 가보지 않은 곳이라고 하나님이 예비한 본향이 무엇이 두렵다고 익숙한 과거를 못 잊는 것이냐며 아쉬움을 토로할 때마다 많이 타박했습니다. 과거의 익숙함 때문에 약속에 땅에 가지 못하고 투덜거리는 유대 민족처럼 굴지 말고 두려움이 생길 때마다 기도하라고 다그쳤습니다. 물론 저는 기도를 안하는 자이지만요.

   
 

정욕과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로 있을 때 절대로 다음 세대는 교회에 돌아 올 수 없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교회여야만 미래가 있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앞장 서야하지만 선 작업으로 청년 여성 총대 할당제를 만들어야한다. 중언 부언이고 이승에 대한 미련에 표현일지라도 의식이 있는 동안 교회를 걱정을 하며 본향을 준비했으니 천당 어딘가 말석에는 터를 잡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한명이라도 천국쪽에 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위로가 됩니다.

퇴직 전에는 회사 사회공헌팀 보직을 받아 라오스 등 동남아 지역에 정수장 건설해주는 일 의료 봉사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형이 다니던 회사 신우회분들이 그 일을 지속하고 있다니 그 또한 감사하고 형님 다니던 회사 입사한 아들이 열심히 다니고 정신 차려서 큰 아버지 담당하시던 회사 사회공헌팀 업무를 맡을 수 있다면 멋 질 것 같기도하고요.

오늘이 형님 생일 어제 저녁 늦게 형이 돌아가셨으니 만으로 65년 꽉 체우고 가셨네요. 지하철 공짜로 많이 못타서 애석하겠지만 동생이 오래 오래 살아서 공짜 지하철 많이 탈테니 편히 가시길 기도드립니다. 고생했습니다. 형님 엄마 아빠 누나 만나면 주현이가 많이는 즐겁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울하지만은 않게 잘 살고 있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래도 가끔은 주현이 꿈에 오셔서 번호도 알려 주시고 그러라는 말씀도 전해 주시고요.

   
 

부고

故 왕보현(향년 65세)장로 2025년 10월 9일 20시27분 동부시립병원서 소천
장례일정: 10월 11일(토) 5시 임종예배,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3호 
입관예배: 2025년 10월 12일(일) 오후 5시(남대문교회 주관) 
발인예배: 2025년 10월 13일(월) 오전 8시(남대문교회서)
장지 : 봉안당홈(성남) 
유가족: 부인) 이우숙 권사,
딸) 왕진경 사위)박민서
아들) 왕진수 며느리)서나래

   
 * 왕장로와는 45년지기로 서울노회 청년연합회서 활동한 후배다. 정년퇴직도 하였고 나도 은퇴라 올해
  부터 왕장로를 예장뉴스 편집장으로 내정 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짝스러운 지병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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