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언자적 부흥회는 위축 당했는가?

 왜 예언자적 부흥회는 위축 당했는가?

여러분이라면 어떤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요즘 대형교회의 목사님들, 그리고 부흥사님들의 시대를 초월하는 모습이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 뿌리는 1969년 한국의 유명 부흥사 10여명이 대집회, 대부흥회의 가능성을 가지고 <부흥사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든 데 있습니다.

   

그 부흥사 협의회의 총무가 다름아닌 목사 고영근이었습니다.

"나는부흥회 초기 시절, 신령한 점을 많이 강조하였으나 1967년부터 정치악, 경제악, 문화악, 사회악, 종교악 등을 비판하면서 불의에 항거하고 교회갱신, 사회정의를 부르짖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1969년 부흥사협의회 초창기부터 참여하여 한국교회 풍토를 개선해 보려고 온갖 힘을 다 기울인 바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흥사 협의회 서기와 총무직을 약 5년간 맡아 오면서 부흥사 위한 수련회와 부흥회를 열어서 부흥운동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며 부흥회 체질도 개선키 위해 이모저모로 노력해 봤습니다."

그러나 편법주의적 부흥회는 날로 왕성해 갔고 예언자적 부흥회는 위축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부흥협의회에 머물러 있을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1975년 소위 77년 부흥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때부터는 부흥협의회에 참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은 철저한 회개운동이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의 범죄는 물론 교계와 사회적 죄악에 대하여 뜨겁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며 또 신앙의 자세가 바로 세워지고, 더 나아가서 정치악, 경제악, 사회악, 종교악 들이 깨어지고 하나님의 정의실현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 1, 199-200)

   

한국의 10대 부흥사들과 함께 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왜 목사 고영근이 가시밭길을 가게 되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저도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목사님들과 야유회를 갔던 기억이…. 그렇게 좋은 친분 관계가 있었을지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목사 고영근은 ‘시대의 예언자’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부흥사 협의회의 목사님들과 목사 고영근. 시작은 아주 미약한 차이였더라도 끝은 너무나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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