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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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를 보다
벼르고 벼르던 영화 ‘본회퍼 : 목사, 스파이, 암살자’ 를 마침내 봤다. 지난 4월 9일 국내 개봉한 영화로 독일 출신인 요나스 다슬러(Jonas Dasler)가 주인공으로 분(扮)한 이 영화를 개봉 3주가 지나서야 겨우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에서 진행된 아나키즘학회 참석 등 이런저런 일정 때문이었다.
세계적 울림을 선사한 인물, 본회퍼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는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저술가이기도 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에서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거친 후 39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마쳤지만, 독일 사회와 기독교계, 나아가 세계에 얼마나 커다란 울림을 선사했는가를 조명한 작품이다. 그의 서거 80주년에 맞춰 개봉했다.
영화는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학자인 아버지 카를, 교사인 어머니 파울라를 주축으로 단란하고 풍족한 독일 가정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러나 곧이어 그와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 자비네가 12세 되던 해,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중 전사한 둘째 형 발터의 장례식 모습을 보여주며 불길한 앞날을 예고한다.
이어 장성한 그가 1933년 나치 정권의 등장과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기독교가 국가와 민족주의에 종속되던 상황에 맞서 싸운 역정을 따라간다.
본회퍼는 잠시 미국 뉴욕에서 유니언신학교 교수로 활동하면서 미국 교회, 특히 흑인들이 뉴욕 할렘에 세운 최초의 침례교회인 애비시니언 교회에 출석하면서 그들의 역동적인 예배 모습과 신앙에 감화한다. 그는 이 교회에서 행한 설교를 통해, 독일과 유럽의 교회가 미국 교회에 비해 적막강산이 되어버린 것을 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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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직 버리고 나치 조국 귀환
한편 고국이 나치에 의해 유린되고 있음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는 유니언신학교 교수직을 사임하고 고통의 심장부인 나치 치하의 독일로 귀국한다.
그는 “교회는 악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나치에 저항하는 고백교회(Die Bekennende Kirche)를 마르틴 니묄러 목사와 함께 설립하고, 비밀리에 지하 신학교를 운영하며 신앙의 실천을 강조한다.
이 같은 내용은 본회퍼가 SS 친위대에 의해 검거되어 감방에 갇혀 있는 모습과 간헐적으로 장면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과거 평화주의자였던 그는, 예수를 느닷없이 아리안으로 탈바꿈하고 십계명을 12계명으로 둔갑시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나치 성경’이 보급되고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는 끔찍한 현실 앞에서 침묵할 수 없었다.
마침 나치의 징집에 따라 그도 군에 가야 했는데, 군사정보기관인 해외방첩청(Abwehr) 수장 빌헬름 카나리스 제독의 배려로 정보원 신분이 되어 영국 런던에서 복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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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구출과 히틀러 암살 기도
1938년경부터 카나리스를 중심으로 한 저항 운동에 가담한 그는, 1941년 유대인들이 본격적으로 박해받기 시작하자, 이들을 방첩대 요원으로 위장하여 스위스 접경 지역으로 빼돌리는 ‘작전 7’을 감행하기도 한다. 영화에선 접경을 지키는 스위스 병사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이어 작전명 ‘발키리’로 알려진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작전은 히틀러의 갑작스런 일정 변경으로 실패하고 발각되어 본회퍼는 1943년 4월 5일 체포돼 2년간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던 삶이 심각하게 훼손되면서 겪는 신앙과 폭력 사이의 깊은 갈등,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본회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나치독일의 멸망이 코앞에 닥쳐 히틀러가 권총 자살을 감행하기 3주 전인 1945년 4월 9일 새벽, 바이에른 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그가 교수대에 올라 생을 마감하는 장면 뒤에, 이어 닥친 독일 상황을 간단한 서사 자막으로 처리하며 끝난다.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그의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였다고 한다.
초기 히틀러 편에 섰다가 본회퍼와 함께 투쟁 대열에 합류해 그와 끝까지 함께했던 니묄러 목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생존해 반핵 및 평화 운동으로 여생을 보냈다.
튀빙겐대와 베를린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신학자이자 선한 목자로, 또한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 《옥중서신》 등 34권을 저작한 저술가로 평화주의자였던 그가 왜 스파이와 암살대원이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교수대에 올라야만 했나? 그의 삶은 실패였나? 그 해답은 “교회는 악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로 귀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본회퍼의 삶과 신학》(마크 디바인 著, 정은영 譯·한스컨텐츠 刊)을 읽고 있는 중이다. 절반 정도를 읽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정독하려 한다. 그의 또 다른 저술도 기회 되는대로 접하고 싶다. 그리고 본회퍼를 다시 리뷰하고 싶다.
<蛇足>여담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거슬렸던 것은, 대사가 영어로 진행돼 보는 맛이 제대로 나질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독일이 배경이고(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이 잠시 나오지만) 본회퍼를 쏙 빼닮은 주연 또한 독일인이고 보면, 억양이 강렬한 독일어로 대사를 진행했을 경우 훨씬 실감 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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