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신앙칼럼

                                      인공지능(AI) 시대의 신앙

요즘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성형 AI가 우리 사회에 스며들기 시작할 때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챗지피티(ChatGPT)를 기본형으로 써왔고, 이후 구글 기반의 제미나이(Gemini)를 비롯해 그록(Grok), 퍼플렉시티(Perplexity), 뤼튼, 디플(DeepL), 키네마스터 등 수다한 AI의 앱을 받아 수시로 들여다보고 있다.

 

아내는 지난해 초부터 무엇이든 궁금한 것이면 챗지피티에 물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전에 AI를 몰랐을 땐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만족스러워한다. 이처럼 AI는 우리 삶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 우리 삶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으리라는 관측도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우선 지식 기반의 각종 직종에 종사하는 인력이 대거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방대한 지식의 암기를 요구하는 법조계의 경우, 논고와 변호 및 판결을 함에 있어 자칫 감성에 치우치거나 실수를 유발할 수 있는 인간에 비해, 법규를 정확히 적용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깔끔한 논고, 변호 및 판결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수 이공계 인력을 싹쓸이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의료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AI와 로봇이 공조할 경우, 질환의 종류와 환부를 정확히 짚어냄은 물론, 수술이 필요할 경우 인력보다 더욱 섬세한 손길로 집도가 가능하리라는 관측이다. 심지어 AI의 대체가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정신건강의학 분야 역시, 축적된 방대한 경우의 수를 토대로 인력보다 더 정교한 진단 및 처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인문계와 이공계의 대표 우수 인력이 대체 가능하다면 나머지 인력의 대체는 두말할 나위 없다.

 

뿐인가? 이젠 목회자들의 설교도 AI의 도움을 받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듯한 시의(時宜)에 걸맞은 제목에 걸맞은 적절한 텍스트(성경 구절), 설교 시간에 맞춘 적절한 분량을 주문하고, 전문(前文)과 멋드러진 예화(例話), 적당한 조크, 마무리 멘트 등을 명령하면 한 편의 훌륭한(?) 설교 콘텐츠가 생성될 것이다. 이 같은 추세가 일반화할 경우, 우리의 신앙은 어느새 AI의 지배 속으로 함몰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AI에 기반해 완성한 설교가 아무리 완벽한 것처럼 보여도 거기엔 커다란 허점이 있다. 바로 성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예민한 신앙 감수성을 지닌 교인이 설교를 접할 때, 뭔가 납득할 수 없는 의구심을 느낄 수 있게 되는 등의 사고가 유발될 수 있다.

 

신앙은 결코 편의성이나, 인위적 조작을 용인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 AI 시대에도 신앙은 어디까지나 아날로그여야 한다. 그것이 나날이 자동화, 인공화되어가는 세상으로부터 신앙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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