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신앙칼럼

                                   고난 없이 영광 없다(No cross, no crown)!

고난주간에 부쳐 

아파트 단지 안에 벚꽃과 개나리꽃이 활짝 피고, 인근 천변에 심어진 튤립 일부가 꽃망울을 내밀고 있는 것을 보면 “봄이 오긴 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고사성어처럼 봄이 왔다 해도 아직 봄이라 이르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없지 않다.

사순(Lent)의 막바지이기도 한 이 시기는 사순의 어원인 ‘렝텐(Lencten)’이 봄을 뜻하는 것처럼 봄바람이 휘날리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수님의 처형과 부활을 준비하는 처연함의 극치인 시기이기 때문이다.

종려주일 다음 날, 그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심으로 성전을 성결하게 하고, 이튿날 그곳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논쟁하고 종말에 대해 가르치신다. 이어 목요일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다 체포돼 온갖 수모를 당한 끝에 금요일 십자가에 달리신다.

그러니 무턱대고 상춘(賞春)에 빠지기엔 너무도 아깝고 소중한 기간이다.

신실한 성도들은 이 시기, 몇 가지 경건한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수난)에 동참하곤 한다.

우선 금식이다. 비록 1주일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금식으로 주님 당하신 고난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럼 교인 누구나 그래야 하나? 그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금식을 시작한다고 해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세끼 중 한 끼만이라도 금식한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심령과 육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기호품이나 육류 등을 멀리하는 것 또한 권할 만한 행보다. 여기에 현대인이 흔히 빠지기 쉬운 장시간의 TV 시청, 게임, 과도한 SNS 소통 등 미디어 남용과 지나친 외부 활동 등은 적어도 고난주간 동안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보다 이 기간 교회나 지역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이나 노력을 쏟아 섬기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 하겠다.

가장 긴요한 것은 기도다. 평소 새벽기도회에 출석하기 어려운 성도도 이 기간(대부분의 교회가 ‘특별새벽기도회’를 갖는다) 기도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고 새롭게 다져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크게 외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장 46절, 마가복음 15장 34절

가장 신뢰했던 성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난 중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성자 예수님은 만 48시간이 되기 전 부활의 기적으로 복음을 완성한다.

그것은 십자가의 고난이 전제되지 않으면 부활의 영광은 성취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난주간의 첫날을 보내면서 “비록 한 주만이라도 약간의 절제로 성결의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스스로 다짐을 필설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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