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신앙칼럼

진보하는 가톨릭, 퇴보하는 개신교

이달 초 로마 교황청이 가톨릭 신자에게 성모 마리아를 ‘공동 구세주’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도왔는지를 두고 수백 년간 이어온 논란이 교황청의 새 교령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교황청 신앙교리부는 이달 3일 성모 마리아에 대해 ‘공동 구세주’라는 칭호는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낳음으로써 모든 인류가 기다렸던 구원의 문을 연 것”이라며 ‘공동 구세주’가 아닌 신과 인류의 중재자로서 성모 마리아의 역할을 부각했다. 교리부는 ‘공동 구세주’ 대신 ‘하느님의 어머니’ 등 다른 표현을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

이번 지침은 교황 레오 14세의 승인을 받은 새 교령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7일 레오 14세 교황이 승인했고, 신앙교리부 장관인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의 서명으로 공표됐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원한 예수를 도왔는지를 둔 논쟁은 수백 년간 이어져 왔다. 지지자들은 마리아의 사역 참여를 신앙 교의로 선언하자고 요구해 온 반면, 반대자들은 이 칭호가 마리아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 간 일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역대 교황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진보 성향의 프란치스코 전 교황은 “성모 마리아는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아들로부터 아무것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라며 ‘공동 구세주’ 칭호를 강하게 반대했다. 보수 성향이 강했던 베네딕토 전 교황도 반대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은 ‘공동 구세주’ 칭호를 지지했었다.

페르난데스 신앙교리부 장관은 이번 지침에 대해 “일부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가톨릭 신자들이 마리아 공경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극단을 피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대다수 신자들의 관심사가 아닌 문제들, 그리고 마리아에 대한 사랑에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보태지 않는 문제들로 신앙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신자들의 신앙을 보살피고자 한다”고 했다.

가톨릭의 이 같은 진보 성향은 새 밀레니엄에도 있었다, 로마 교황청은 기독교 2000년 역사를 통해 교회가 인류에게 범했던 각종 ‘자기 과오’를 털어놓은 것이다.  로마 교황청이 2000년 3월 5일 발표한 ‘회상과 화해: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부제를 단 40쪽 분량의 문건은 유대인 탄압, 피로 얼룩진 십자군 원정, 중세의 각종 형벌, 신대륙 원주민 학살 등을 다뤘으며 당시 교황 바오로 2세는 일주일 후인 12일 바티칸 미사에서 이를 정식 공개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의 유대인 박해=교회는 수십 년 전까지 공공연히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 예수를 죽였다는 이유로 초기 기독교도는 유대인을 원수로 여겼다. 4세기 교부 크리소스토머스는 유대인을 ‘돼지 같은 백정’으로 묘사했다. 교회의 유대인 탄압이 본격화된 것은 11세기 십자군 원정 때부터였다. 이후 유대인은 전염병을 옮기고 영아 유괴나 일삼는 천민으로 취급받았다.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조차 “독살스럽고 사악한 뱀”이라고 무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 자신이 유대인이었다.

◇피로 점철된 십자군 원정=109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실지를 회복하라는 칙령을 내리면서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인류를 피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성지회복’이라는 숭고한 목적 뒤에는 너무도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베네치아 상인은 무역로를 열어 축재하려 했고 가난한 병사는 한몫 잡는 기회로, 교황은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노렸다. 첫 원정에 나선 1천5백 명의 십자군은 4년간 무려 7만 명의 이슬람교도를 학살했다.

◇마녀사냥으로 대변되는 가혹한 형벌=믿음을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자행된 각종 고문형은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2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레데릭 2세가 신앙 자백의 수단으로 처음 고문을 도입했고, 교황 이노센스 4세는 이의 사용을 승인했다. 특히 15세기 유행처럼 번진 마녀 화형식은 이후 1백 년 동안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교회의 고문형은 19세기가 돼서야 폐지됐다. 지동설을 주장한 17세기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오는 교회의 혹독한 고문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1992년 공식 복권됐다.

◇신대륙 무차별 학살 방조=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듬해인 1493년 당시 교황 알렉산더 6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신대륙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고 이들 국가의 정복활동을 옹호했다. 교회의 지원을 받은 정복자들은 선교와 이문화 척결이라는 명분을 걸고 대대적인 원주민 학살극을 벌였다. 그 결과 16세기 멕시코 원주민 수는 1천5백만 명에서 3백만 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가톨릭의 개혁적 사건을 운위하는 이유는 그것이 개신교, 특히 한국 개신교의 반개혁적 상황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개신교(改新敎)라는 멋진 한자 이름처럼 어떤 종교보다 개혁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개신교는 개혁은커녕 날이 갈수록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담임목사 정년만 해도 그렇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자수성가한 담임목사들은 교단 헌법도 무시한 채, 스스로 정년을 연장해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 역시 자리를 꿰차고 차고 노추(老醜)를 부리는 것 아닌가! 참고로 로마 교황청은 현행 70세 정년으로 인해 인사적체(부사제로 늙어 가는 신부들이 많아짐)가 심해짐에 따라, 사제 정년을 65세로 앞당길 것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한다.

▷교회 헌법을 팽개친 무리한 세습, ▷불법 집단을 방불하는 비자금 운용, ▷불륜 가능성이 다분한 총회장의 존속, ▷급기야 정치권과의 불순한 밀착으로 특검에까지 이름이 오르내리는 대형 교회 목사들 등 개신교의 퇴보는 날이 갈수록 그 도를 더하고 있다.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으로 구교를 이탈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신교(=개신교), 특히 한국의 개신교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웃 종교의 진보적인 몸짓이 왠지 부러워지는 요즘이다.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