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원 목사, 이단아인가 개혁가인가?

이길원 목사, 이단아인가 개혁가인가?

   
* 하남시 소재 새노래명성교회 앞에서 1인 시위중인 이길원 목사

올해 유난히도 무더웠던 7월 주일이면 교회를 가지 못하는 목사가 있다. 아니 가기는 가는 데 남의 교회로 간다. 무슨 사연일까? 그는 다름 아닌 지난 10년여 간 교회개혁과 관련되어 교계 뉴스의 초점이 된 이길원 목사(부천노회 면직 및 출교 목사) 다. 이후 그는 협동조합법에 의한 “세습반대협동조합”을 설립하여 활동하는 중이다.

이길원이라는 이름이 우리 교단과 교계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04년으로 이 목사가 ‘기독노조’를 설립하면서부터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226 2004년 4월 21일자 “교회와 신앙” 의 서대경 기자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교회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길원 목사에 대하여 “기독노조 설립추진 : 인천 3개 교회 부교역자·사무원 5명 신고서” 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바 있다.

기사의 내용은 “기독교 노조 설립이 추진되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인천 경인교회(이길원 목사) 등 인천지역 3개 교회의 부교역자, 사무원 등 5명은 4월 14일 인천 계양구청에 ‘기독교노동조합’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구청으로부터 신고 필증을 교부받는다면 교회를 중심으로 한 첫 번째 노조가 정식 출범하는 것이 된다” 라는 것이었다.

당시 자신의 교회에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한 경인교회 이길원 목사는 그해 4월 19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도 출연해 “부목사들을 비롯한 교회 직원들 역시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문제가 있다” 며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다면 이와 같은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당시 기독교노동조합 준비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노동법의 소개 등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으며 앞으로 노조원을 확대해 서울과 부천 지역에도 지역노조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10년전만 해도 기독교 노조 설립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특히 기독노조 게시판에는 노조 설립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교회의 섬김은 세상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배고프고 힘들고 핍박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과 종의 정신으로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길원 목사가 소속된 예장 통합 부천노회 홈페이지에는 “이 목사가 노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한시라도 빨리 노회원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올려졌다.

기독노동조합 설립자 이길원 목사에 대한 보도(http://blog.naver.com/art1669m/10005596548)

당시 연합뉴스의 기사(서울, 서한기 기자)에서는 "교회 내 노동자들이 ‘은혜’라는 명목 아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데도 불구하고 누구도 관심을 갖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직접 나서게 됐습니다."라고 밝히는 이길원 목사의 목소리와 함께 "기독교 노동조합이 설립된다. 인천지역 일부 교회 계약직 직원들은 지난 14일 인천시 계양구에 지역노조인 ‘기독교회노동조합 설립 신고서’를 냈다. 지역 노조는 신고만으로 효력을 갖는다. 아직도 ‘노조는 빨갱이’라는 식의 색깔론이 판치고 있는 보수적인 한국교회 현실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다."고 보도하였다.

"기독노조 설립을 주도한 사람은 인천시 계양구 서운동 경인교회 담임목사인 이길원(李吉遠.49)씨. 이 목사는 집사와 전도사, 부목사를 포함해 교회 관련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누구나 교회 내 노동자라고 정의하며 이들이 종교라는 이름아래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고질적인 한국적 노사관계인 가부장적, 봉건적인 풍토와 은혜와 사랑을 강조하는 교회 분위기 속에서 국가가 정한 최소한의 근로기준인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고용불안과 비인간적 대우,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라면서 아래와 같이 이길원 목사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교회내 노동자들은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불안속에서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회, 부흥회 등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종교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감수하고 살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가는 월차휴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 의해 당연히 보장되어 있는 월차 휴가를 쓰는 교회내 노동자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길원 목사는 지난 3월 기독교회노조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홈페이지(www.gdnojo.org)를 개설하며 본격적인 기독교노조 만들기에 들어갔다. 준비위는 이달 안으로 서울과 부천에도 지역노조 형태의 기독교회노조를 세우고 궁극적으로는 산별 노조를 만들어 개별 사업장 단위 조합으로 분회를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언제부터 노동법에 관심을 가졌나?

그러면 이길원 목사는 기독교 목사로서 노동조합에 대하여 언제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는 교회법을 공부하던 중 교회법이 상당히 허술하다는 점을 알게 되어 목회를 하려면 교회법을 잘 알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방통대 법학사 과정에 편입하여 졸업한다. 그리고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교회법을 전공하기를 원했지만 로마의 천주교 신학교 외엔 교회법 전공은 없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여 보니 교회법은 사회법 분야에서 다루고 있었고 다시 세분하면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당시 개교한 숭실대학교 노사관계대학원의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노동법을 공부하면서 처음에는 노조가 교회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깊이 공부하면서 교회야 말로 고용 불안, 열악한 근무환경, 신앙을 빙자한 임금착취 등이 만연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들에게 노동조합을 결성해 주기 위해 자신이 시무하는 경인교회와 인천시 계양구 내의 3개 교회가 연합하여 최초로 교회노동조합이 설립시켜 주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이길원 목사는 노조원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여러분! 노동조합 설립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사용자성을 갖고 있는 담임목사입니다만, 목사라도 사용자 위치에 서면 사용자의 이익만 보게 될 개연성이 있어 여러분들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는 다분합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는 목사라도 예외가 아니기에 노조가 동등한 관계에서 저를 견제해주시기 바랍니다.(하략)”

당시 이길원 목사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하여 비판적인 글이 적지 않았다. 기존의 기독교 노동문제 전문가 집단인 영등포산업선교회를 비롯하여 산업 선교와 노동 선교를 하던 이들도 그같은 이길원 목사의 행동에 대하여 한마디로 뜬금없는 짓이라는 조소를 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교단에서 노동자교회를 가장 먼저 시작한 유재무 목사도 당시 일본 선교사로 있으면서 이길원 목사의 기독노조에 대하여 우려와 비판의 글을 기고한 바도 있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0571

기독노조, 교회역사에서 재평가 돼야

이 목사는 기독노조를 통해 근로조건 개선뿐 아니라 교회세습반대, 대형교회의 셔틀버스 운행을 통한 신도 빼앗기나 목회자 과잉 공급문제 등 기독교회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갖가지 현안들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며 고쳐나간다야 한다는 선구자적 주장도 하였다.

절대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담임목사의 힘이 절대적인 대형교회에는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노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길원 목사는 노조가 만들어지면 담임목사의 전횡과 교회세습 등 교회개혁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목사들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상황으로 곱지 않은 시선 또한 적지 않아 상당한 진통이 지속되었다. 당시 기독교회노조준비위 홈페이지에는 "교회는 생산현장이 아니다. 그만 하라", "주님의 섬김과 사명에 힘써야 할 이들이 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이단집단과 다를 바 없다"는 등 반대 글이 줄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목사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사회로 가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민주화가 이뤄지고 있는 바 교회만 은혜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채 무한의 봉사로 힘과 임금을 희생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에도 평등한 노사관계가 하루속히 정착되어야 한다" 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젊었던 이길원 목사도 이제 60을 넘겼다. 그리고 지난 2004년 기독교노동조합 결성 이후 급증하는 노사문제로 사회적 비난과 환영의 교차 속에 있던 이길원 목사는 결국 교계의 정서와 특히 우리교단 헌법에 ‘교회 내에서의 노동조합 금지’라는 조항이 신설(제15조4항)되면서 그의 활동은 불법이 되었다.

그리하여 처음 언론의 보도로 가입했던 회원들은 삽시간에 탈퇴했고 해고가 예고되거나 해고된 근로자들을 위한 노무사 일을 사역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시대를 너무 앞서 간 것일까? 그러나 그 이후 우리교단에 기독공보, 연금재단, 소망교회 등 성직자를 제외한 청소와 시설근무자들의 노조는 계속해서 결성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교계는 이를 정서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교인들도 노조 자체를 불온 시 하거나 정상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지 않은 채 아직도 파행적으로 노조를 대하고 있다.

그후 이길원 목사는 시무하던 경인교회의 목회에 전념하기 위하여 당시 총회로부터 설교 금지 등의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소신을 접고 부천노회에서 복권 절차를 밟아 2013. 6. 16. 위임식을 갖는다. 그리고 채 1년도 안 되어 이길원 목사가 만나게 된 것은 당시 부천 노회장 곽태문 목사의 자격 시비에 대한 문제였다.

우리 총회법의 임시목사(담임목사)는 시무기간이 3년으로 그 기한 내에 시무 연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노회장에 당선된 곽태문 목사가 자신의 시무 연임을 잊은 채로 노회장이 되고 그날 이 사실을 알고 오후 정치부 보고에서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하여 연임청원을 하게 된다.

이길원 목사 억울하다는 입장

이에 대하여 교회법에 정통한 이길원 목사는 이는 불법이라고 지적을 하게 되고 노회는 기왕에 노회장에 당선된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논쟁하다가 이를 승복하지 않는 이길원 목사를 결국 재판국에 기소하여 면직 출교 처분하게 된다.

사실 이길원 목사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독노조 등 몇 년째 노회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이길원 목사를 ‘이번 기회에 아예 목사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자’는 극단적인 처분, 한마디로 괘씸죄를 적용하여 면직에 출교까지 내린 것으로 보인다.

면직에 출교는 사실 목사에게는 사형과 같다. 그러나 이길원 목사는 이 면직 출교 판결을 순순히 수용한다. 그는 자신에 세운 경인교회에서 교인들이 면직 출교와 상관없이 시무하고 설교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지만, 노회의 결정에 순복한다는 의미로 설교는 물론 자신이 섬기던 교회에도 출석하지 않고 있다. 그는 가정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혼자 기도하고 길거리 예배를 하면서 노회가 치리한 법에 순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엄청난 항거를 하는 중임을 알게 된다.

이길원 목사 다시 언론에 등장하다

이길원 목사는 그외 교회개혁을 위한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부천노회가 이길원 목사를 그렇게 몰아가고 있다. 마르틴 루터가 바티칸으로부터 파면을 당한 뒤 더욱 개혁가의 길로 간 것 처럼 말이다. 이렇게 이길원 목사가 또 다시 언론에 등장한 것은 지난 7월 24일(주일) 새노래명성교회(김하나 목사) 교회당 앞에 피켓을 들고 세습반대 1인 시위를 하면서이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은 한국교회(교단)에 대한 개혁과 정풍운동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것이고, 3번째로 방문한 교회” 라고 말했다.

첫 번째는 2015년 안양제일교회 홍ㅇㅇ 목사가 시무 중 불륜 또는 성추행으로 사임하면서 교회로부터 8억여 원이란 거액을 전별금으로 받아가지고 나가는 것을 지적했다고 한다. 사실 목사가 자의든 타의든 교회를 사임하면서 법에 따른 퇴직금이나 적절한 전별금을 사례로 준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과도한 금액으로 타협을 하여 받고 나가는 전례를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근래에 자신들의 결정적인 실책에도 불구하고 회개와 부끄러움도 없이 돈을 요구하거나 주어서 사임하게 하는 잘못된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피땀 흘려 벌어 성별하여 드린 헌금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보수적인 신앙이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금권숭배의 사회 풍조에 따라 여유가 생긴 일부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교회 돈(헌금)에 대한 경외심도 없이 함부로 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회는 물론이고 교인들의 헌금으로 설립된 기독교 기관들의 흥청망정도 이미 상식의 도를 넘어섰다.(CTS 감경철 회장 횡령구속, 서서울 YMCA의 파행 등)

두 번째로 이길원 목사가 주도하는 교회세습반대협동조합은 지난 7월 17일 부천의 처음교회(현 주예수교회)에 서 세습반대 피켓팅을 하였다. 당시에 이길원 목사가 시무했던 교회의 장로와 권사들까지 함께 한 시위였는데, 이들은 교회세습반대협동조합의 이사들이다. 관할서에 집회신고를 하고 교회세습를 반대한다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교회당 입구에서 약 4시간 가량 서 있었다.

부천 처음교회(현 주예수교회) 에는 왜 갔나?

그럼 이 교회에는 무슨 문제가 있어서 갔는가? 원래 이 교회는 합동측 교회였다가 전임자가 은퇴를 하면서 후임으로 김포에서 목회하던 윤대영 목사가 부임한다. 그후 당시 서남노회에 가입하고 열심히 목회하여 교회가 성장했고 건축을 하게 된다. 그런데 교인들이 건축 당시 약 40억 원이었던 교회 부채가 약 10여 년이 지나 거의 상환이 되었을 것으로 알았는 데 오히려 부채는 160억 원으로 늘어나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교회 내에는 “처음교회재정투명실천모임”(이하 재투모)가 결성되고 교회의 부동산 상황을 조사하니 부천제일교회를 모체로 하여 수 건의 부동산과 교회 인수 합병을 한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작은 교회 살리기 일환으로 부채에 시달라는 교회들의 부채를 떠안고 합병을 하는 일로 알려졌었는데, 부천제일교회의 이름도 처음교회로 개명하고 인근의 상동처음, 구리처음, 평택처음, 안산처음, 파주처음 교회 등 브랜드 교회를 늘려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윤대영 목사가 주도하는 “교회 살리기” 일환으로 인수합병을 한 교회 중 하나인 구리처음교회(평북노회 최욱연 목사)와의 합병이 몇 개월만에 파행되고 이 사실이 당시 MBC PD수첩에 방영되어 사회적으로 큰 망신을 당하게 된다. 윤대영 목사는 교인들에 의하여 검찰에 고발되기도 하였으나 최종적으로는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윤대영 목사는 은퇴를 하게 되고 당시 부목사였던 인광운 목사가 후임자가 된다. 윤 목사는 은퇴하였지만 여전히 설교를 하였고 실제 당회장의 역할을 하여 ‘위장 은퇴’, ‘바지사장’이라는 비아냥과 비판들이 있었다.

   
* 부천 주예수교회(처음교회) 앞에서 시위 중인 세습반대협동조합원들

그러는 중 처음교회는 여전히 각종 부채로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교회당이 경매처분 당하기 직전에 이를 매입한 사람이 다름 아닌 윤대영 목사의 둘째 아들 윤택한 목사로 드러난다. 그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온 젊은 목사인데 무슨 돈으로 그 교회당을 인수했는 지는 그의 가족과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다. 윤대영 목사의 두 아들은 모두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첫째는 그렇게 인수한 평택 처음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고 둘째는 장신대에서 청목과정을 마쳤지만 아직은 노회 허입이 되지 아니한 상태다. 

윤 목사는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에서 법적으로는 은퇴하면서 인광운 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워 자신이 섬기던 교회를 아들에게 매각하고 주예수교회로 개명함으로써 결국 교회를 자신의 아들에게 넘겨 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렇게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두 교회를 모두 두 아들에게 세습시킨 것이다.

그리고 먼저 있던 부천노회 산하의 부천 처음교회는 인근의 임대 교회당으로 이주하여 인광운 목사가 목회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교회당을 매각한 것은 당회장 인광운 목사요 매입자는 윤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에 노회법이나 사회법상 윤대영 목사는 그 어떤 법적 행위를 한 바가 없는 목사로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하겠지만 상식적으로 도덕적 책임마저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광운 목사는 멀쩡한 교회당을 팔고 쪽방으로 나앉았으니 부천 처음교회는 이제 ‘페이퍼 처치’라고 부를 만하다. 부천노회 소속의 처음교회는 교회 간판을 주예수교회로 바꾸어 독립교회가 되었고 먼저 있던 교회들을 그대로 인수받은 윤택한이 법적 대표자로 등기되어 있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목회는 윤대영 목사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실로 기발한 세습 방법이라며 모두들 혀를 찬다. 세습이 불법이기에 아들에게 교회를 세워주고 합병하는 방식으로 세습을 하는 것은 보았어도 자신이 시무했던 교회에 채무를 전가하여 경매로 가게 하고 이를 핑계로 아들이 매각하게 하여 세습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일이라는 것이다.

노회와 주변의 여론은 이 일에 대하여 윤 목사 부자가 비난받기에 앞서 부천노회와 부천 처음교회의 담임목사인 인광운 목사가 먼저 치리를 받을 일이라는 주장들이다. 자신들이 지도 감독해야 하는 산하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데도 묵인하거나 방조했고 특히 노회의 재산이 이렇게 처분된 것에 대해서도 누구도 나서서 지적하거나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렇게 은퇴 직전의 목회자들이 교회 재산을 매도하고 후임자에게는 얼마의 돈과 일부 교인들을 데리고 나가 목회하게 만드는 일이 전례가 된다면 실로 어이없는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세습반대협동조합의 열열한 회원들인 과거 “재투모” 회원들은 아직도 멈추지 않은 부천 처음교회를 둘러싼 이런 불법들을 묵과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세습반대 시위를 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하남 새노래명성교회는 왜 갔나?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를 새로 쓴 분이라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2015년 은퇴를 하면서 당시 주변에서 예상하던 대로 자신의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세습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을 하였다. 하지만 김삼환 목사는 법적으로 은퇴를 하고도 여전히 후임자 인선이 없다는 이유로 버젓이 설교와 목회를 하고 있다. 교인들이 원해서 그런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대 놓고 반대를 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교단의 현실이다.

   
 

이에 명성교회의 전적인 지원으로 김하나 목사가 인근 하남시에 개척한 새노래명성교회와의 합병을 통한 세습의 우려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분명한 ‘위장 세습’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도 새노래명성교회는 독자적인 교회라기 보다는 명성의 지교회라는 성격이 강하다. 명성교회와 새노래명성교회는 예배시간을 절묘하게 교차하여 명성교회의 대형버스를 교차 운행하고 있고, 명성교회에서 하는 김삼환 목사의 설교를 새노래명성교회에서 방영하고 명성교회의 각종 행사에 교인들이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하나 목사가 아직도 명성교회의 부목사처럼 행동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명성교회의 모든 행사에 가장 앞장서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길원 목사가 이끄는 세습반대협동조합의 타겟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지난 7월 24일 주일 아침에 이길원 목사는 직접 피켓팅을 하여 세습을 반대하다는 기치를 올렸다. 이길원 목사는 앞으로 명일동의 명성교회당으로도 직접 갈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일을 하는 이길원 목사는 교회의 이단아인가, 개혁가인가?

이길원 목사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보수적인 성결교회에서 성장하고 공군부대에서 근무하면서 신학에 대한 열망을 품었고 제대 후 서울장신대학에 입학을 한다. 양평제일교회, 국수교회의 교역자를 지내고 서울시 화곡동의 화동교회를 거친다. 그후 부천지역에서 경인교회를 개척하여 2년만에 수백 명의 교인과 함께 교회당을 건축하는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정과 헌신을 보여 왔다.

그는 고백하기를 자신은 이미 신학교 입학 전부터 25년을 계속하여 길거리 노방전도자였다라고 한다. 그는 우리 교단 최초의 인터넷 신문이라 할 수 있는 ‘유니온뉴스’를 운영한 바 있고 ‘달랑뉴스'(7월 말로 폐간)를 창립한 바도 있다. 달랑뉴스는 재투모 대표인 ㅇㅇㅇ 집사가 대표자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면직 출교 목사가 되어 길거리 목회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길원 목사 자신은 과거 노방전도를 했던 것과 현재의 핏켓팅이 하나님께 받은 같은 소명이라고 한다.

그는 "이제 나는 교단법에도 저촉받지 않는 자유인이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마르틴 루터처럼 자유롭게 개혁운동을 하라고 노회를 통하여 면직, 출교시켜 주신 것이라고 스스로 면직 출교에 대한 의미를 재해석하며 역사적으로 기성 종교세력으로부터 파문 당했던 종교개혁의 선구자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길을 가고 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이길원 목사는 교회의 이단아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는 용기있는 사람이고 500년 전의 종교 개혁가들에 버금가는 희생의 제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제도교회가 그를 면직 출교 처리한 것은 그가 교리적 이단이나, 횡령 등 범법이나 건덕상(健德上)의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나름대로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노동조합운동, 세습반대운동으로 앞서 기여해 왔다. 이처럼 누구보다 앞선 교회 갱신에 대한 주장과 실천이 제도권 교회를 불편하게 하였고 그에 대한 보복이 바로 오늘의 이길원 목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길원 목사의 교회노동조합운동은 미완에 그쳤다고 한다면, 교회세습반대협동조합을 통한 앞으로의 행보는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지금껏 그가 추구했던 가치들이 변함이 없었고, 그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축적된 그의 내공이 도리어 그에게 덧 씌워진 면직 출교 판결을 통해 우리교단에 가져올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기자의 기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의 행보를 곳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가 가는 길이 역사에 남는 진정한 개혁 촉구의 길인지 아니면 이단아의 돌출 행동인지 모든 이가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이에 내년이면 1517년 독일에서 일어나 온 유럽의 교회가 개혁의 깃발을 들게 된 교회개혁 500주년을 맞는다. 

그리고 그 개혁의 과정에서 선구적인 인물들은 마르틴 루터나 존 캘뱅 또는 쯔빙글리와 같은 분만이 아니었다. 좌파 종교개혁자로 불리면서 당시 개혁 세력들로부터도 폭도로 몰린 북부 독일의 토마스 뮌쪄나 체코의 얀 후스 등은 화형에 처해졌다. 그외 세르베데스와 같은 이단아적인 개혁가들도 있었다. 개혁은 점잖게 말이나 글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들을 온갖 죄목을 덧씌워 이단 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과 상식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온 몸을 던져서 실천하는 이가 있다면 실정법상으로 뭐라하더라도, 심지어 이단아라 하더라도 훗날 역사는 그들을 개혁가로 재평가한다는 것이 역사에서 발견하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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