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교수, ‘교단분열과 새 교단의 탄생’을 주제로 강의

                  "예장통합과 합동이 가장 큰 분열"

이만열 교수

이만열 교수는 고신측 장로이며 숙명여대 은퇴교수이다. 복음주의권의 평신도로 서울대에서 은퇴한 손봉호 교수와 함께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유일한 평신도 들이시다.  한국교회사 학회의 초석을 놓고 이 분야에 많은 후진들을 양성하시고 지금도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원로이시다. 이 강연은 비록 외부에서 한 강연이지만 고신측 인사로 비교적 중립적인 입자에서 한국교회사의 아픈 한 단면인 통합과 합동의 분열에 대하여 진솔하게 말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이덕주 교수) ‘이만열 교수의 역사강좌(해방 이후의 한국교회사)’가 1일에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담임 이재철 목사) 사회봉사관에서 개최됐다.

‘교단분열과 새 교단의 탄생’을 주제로 지난 강의에서 다루지 못한 장로교 통합과 합동의 분열, 해방 이후 새롭게 등장한 교단에 대해서 강의가 진행됐다.

이만열 교수는 “당시 고신과 기장은 소수”라고 말하면서 장로교 통합과 합동측의 분열을 “한국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분열”이라고 지적했다. 이 분열과정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문제, ▲신학교 부지와 관련된 사건, ▲경기노회 총회 대표 사건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WCC는 전 세계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는 WCC 가입문제가 교회 분열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만열 교수는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WCC 창립대회에 참석했던 김관식 목사가 한국 장로교의 WCC 가입을 제안하자 총회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서 당시 WCC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한국교회 보수 진영에서는 “박윤선 박사가 WCC에 가입하는 것은 교리적 위반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경남법통노회에 속한 교회의 후원을 받은 국회의원 22명이 WCC는 공산주의를 용납하는 기관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WCC를 둘러싼 견해차이가 더욱 분명해진 것은 제2차 WCC총회 이후이다. 한국 장로교는 김현정, 명신홍, 유호준 목사를 제2차 WCC총회가 열린 에반스톤으로 파견했다. 이 교수는 “김현정은WCC가 지향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 연합을 의미하는 ‘유니티(unity)’이지 교회 합동을 의미하는 ‘유니온(union)’이 아니라고 하면서 WCC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면서 “그러나 명신홍은 WCC가 교리적으로 혼합주의적이며 용공적이라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상반된 보고는 당시 장로교 내부에 존재하던 두 대립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10차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있는 한국교회의 혼란한 상황을 의식한듯 이 교수는 “분명히 WCC에 동유럽 교회들도 가입돼 있지만 6.25전쟁 당시 WCC는 UN 한국위원단의 보고서에 근거해 공산주의 확산 시도를 막기도 했다.“면서 ”WCC가 용공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WCC는 한국교회를 알릴 수 있는 중요한 모임이고 세계교회에 대해서 한국교회의 실상을 알리는 동시에 세계교회가 다시 연합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찬반 논란 끝에 이 운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을 느낀 제41회 장로회 총회는 연구위원을 선정하고 그 결과를 1957년 제42회 총회에 보고한다. 보고의 핵심내용은 WCC에 대한 한국교회의 선택적 참여를 권장하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에는 단일 교회를 목표로 하는 흐름과 친선과 협조를 위한 흐름이 있었다.”면서 “한국교회는 친선과 협조를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에는 참가하되 단일교회를 지향하는 운동에는 반대하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것은 상당한 고심 끝에 내놓은 절충안”이라고 말하면서 “WCC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입장 차이를 최대한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무렵에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대립을 가속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총회신학교 부지 불하와 관련된 ‘3천만 환 사건’이었다.

이 교수는 “총회신학교 건물을 일제 당시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터로 옮기고자 했던 박형룡 교장이 부지 알선을 약속한 교인에게 부지 불하를 위한 교섭, 건축허가 및 대학인가 취득을 부탁하면서 교섭비 명분으로 이사회의 재가도 받지 않고 3천만 환의 거금을 지불”한 것이 사건의 전말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교장을 사퇴할 수 밖에 없었던 박형룡에 대해 “복음주의 진영은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인 박형룡의 일선 후퇴가 보수신학의 후퇴와 자유, 진보 세력의 득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 “WCC가 용공적 자유주의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사건보다 장로교 분열에 더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경기노회 총대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경기노회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총대를 지닌 노회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에큐메니칼 측과 복음주의협의회 측으로 양분”됐었다고 말하면서 “총회가 열리자 복음주의협의회 측은 정기노회에서 선출한 총대명부를 제출했고 에큐메니칼 측은 임시노회 총대명부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두 명부 중 어느 것을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총회는 투표로 결정하기로 하고 간발의 차이로 에큐메니칼 측의 임시노회 명부가 합법적인 것으로 채택됐다. 이 교수는 “그러나 복음주의협의회 측의 일부 인사들이 임시노회 위법성을 지적하면서 총대의 재선출을 요구”했다고 말하면서 “이 부분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였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면 투표결과에 승복할줄 알아야 한다. 승복하지 않으니깐 문제가 됐다.”면서 “복음주의협의회가 임시노회의 위법성이 있었다고 한다면 투표 전에 지적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통합측을 지지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다만 원론적인 입장에서 투표결과에 승복하지 못했던 것이 성숙한 회의와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후 복음주의협의회 측 인사들이 다수였던 전직 총회장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에큐메니칼 측은 연동교회에서 독자적인 총회를 개최하고 스스로를 장로교 법통을 계승했다고 선언”했다고 말하면서 “복음주의협의회측은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했다.”고 말했다. 이어 “연동 측은 통합, 승동 측은 합동이라고 불리게 됐다.”면서 “연동 측은 서울 광장동에 신학교 건물을 새로 세웠고, 승동 측도 국제기독교협의회(ICCC)의 칼 맥킨타이어의 지원을 받아 사당동에 새 건물을 세우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된 이후, 합동은 교단이 계속 분열된 가운데 통합은 왜 분열되지 않는지를 설명했다. 이어 “통합 측은 사상적 진폭이 굉장히 넓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통합 측에는 합동보다 더 보수가 있는가 반면 기장 측 못지 않은 진보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방과 더불어 해외에서 들어온 새로운 교단들이 등장”했다고 말하면서 “대표적인 교단으로 오순절교회, 루터교, 나사렛교회, 퀘이커, 그리고 한국 주류 교회로부터 이단시 된 모르몬교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한국교회 성장에 끼친 긍정적인 면이 분명 있지만, 한국교회 타락의 큰 책임이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의 타락을 가져왔다.”면서 “기독교의 복을 예수 믿으면 돈 잘 벌고 건강해지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복의 타락은 한국교회의 타락을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면서 “복음의 순수성이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다음 주 강의는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주제로 4월 8일에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담임 이재철 목사) 사회봉사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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