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통하여 드러나는 진실

                               김인주의 "역사속의 오늘"    

 중세시대 로마 천주교의 위세는 누구도 도전하지 못할 거대한 철옹성이라 여겨졌다. 콘스탄틴 황제가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고, 큰 영토를 기증하였다는 사실이 문서로 입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이 역사적 진실일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중에 결정타를 날린 사람이 로렌조 발라(1407-1457)이다. 144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는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소설의 허점을 파고 들었다.  

   
 

 콘스탄티노플보다 로마가 더 우위에 있다는 주장은, 그 도시가 건립되어 융성한 위치에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콘스탄틴이 교황을 만났다고 하던 시기에는 아직 그 신도시가 생겨나지도 않은 때였다. 그리고 많은 용어와 문화적 환경이 500년 정도 지난 다음의 시대를 반영한다는 논증이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너무나도 쉬운 이야기다. 끝내 천주교회도 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더 버티려고 바둥거리는 추태를 수백년 동안 보여준 다음에야.

 발라의 언어와 문헌에 대한 연구는 에라스무스로 이어졌고, 성서연구에도 큰 진전을 보여주었다. 종교개혁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지식인의 의무는, 언제든지 백과사전을 고쳐 쓸 수 있다는 자세이다. 정보의 양과 유통 속도가 엄청난 시대에, 함량미달의 뉴스에 놀아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세월호, 국정원, 박근령 등등 나라와 사회가 엉망인데, 목회자연금에 관련된 이야기가 다시 불거진다. 81, 발라가 사망한 날 아침이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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