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목사의 농사일기

                  흙에 대한 성경연구 

이원영목사(고신대 음악과, 장신대, 현 총회농어촌센타 소장) 

이 글은 이원영목사가 최근 3년간 직무와 관련하여 쓴 주제나 글들을 쳇gpt에게 정리하여 나온 것이다. 이를 다시 "흙에서 예배하다" 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것을 허락을 받아 소개한다. 최근 농어촌 관련한 목회자들 조차 자리에 관심들이 많다는 지적이다. 농어촌에서 힘들게 목양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깊은 연구와 실천으로 내면을 다지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많다는 말을 안들으려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지행합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환기한다.   

   
 

머리말

오늘날 우리는 기후위기와 생태파괴, 인간과 자연의 단절이라는 심각한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 경제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땅’과 ‘흙’ 에서 멀어졌고, 이는 곧 생명의 근원과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 벗어난 삶을 의미합니다. 이 소책자는 흙, 곧 ‘땅’을 하나님의 현존이 살아 숨 쉬는 ‘예배의 자리’로 재발견하는 신앙과 삶의 길을 모색합니다. 농신학과 생태영성 신학, 그리고 실제 농촌 현장에서의 신앙 실천을 토대로, 흙과 함께하는 예배, 곧 ‘흙에서 예배하다’의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흙을 밟고 살아가면서도, 흙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흙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흙은 생명의 시작점이며, 하나님의 창조 역사의 산 증인이자 우리의 존재 기반입니다. 성서는 흙에 대해 깊은 영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흙(히브리어 아다마)으로
사람(히브리어 아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 존재의 뿌리가 흙이며, 우리는 흙과 생기로 구성된 존재임을 선포합니다. 이 구절에서 ‘흙’은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손수 만지시고 숨을 불어넣으신 창조의 자리입니다. 인간은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가며, 그 과정속에서 하나님의 숨결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성서적 통찰은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흙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영적 부르심으로 들려옵니다.

1. 흙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우리는 너무 자주 흙을 밟고 살아가면서도, 흙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흙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흙은 생명의 시작점이며, 하나님의 창조 역사의 산 증인이자 우리의 존재 기반입니다.​

성서는 흙에 대해 깊은 영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흙(히브리어 아다마)으로 사람(히브리어 아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 존재의 뿌리가 흙이며, 우리는 흙과 생기로 구성된 존재임을 선포합니다.​

이 구절에서 ‘흙’은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손수 만지시고 숨을 불어넣으신 창조의 자리입니다. 인간은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가며,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성서적 통찰은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흙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영적 부르심으로 들려옵니다. 

1) 흙은 하나님의 손길이 머무는 자리다

흙은 죽은 물질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한 줌의 건강한 흙에는 수억 마리의 미생물이 공생하며 살아갑니다. 이 미생물들이 식물을 자라게 하고, 뿌리를 보호하며, 생명 순환의 바탕을 이룹니다. 우리는 이 흙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살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유기농 농업은 바로 이 살아있는 흙을 믿고 돌보는 방식입니다. 화학비료나 농약으로 토양을 착취하지 않고, 퇴비와 작물순환으로 흙을 살리는 농업은 단지 생산 방식의 차이를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유기농은 흙을 살리는 일이자,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이 땅 위에서 구현하려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이런 점에서 유기농업은 하나님의 창조를 보존하고, 생명을 경외하며, 흙의 권리를 인정하는 실천이며, 곧 예배입니다. 우리는 밭에서 씨앗을 뿌릴 때, 그것이 단지 농작물이 자라게 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영적 행위임을 믿고 행합니다. 농사일은 땀 흘리는 노동임과 동시에, 흙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예배적 행위입니다. 

2) 농부의 손은 예배자의 손이다

농부는 매일 새벽, 흙과 함께 하루를 엽니다.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기다리는 과정은 기도하는 마음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기후의 변화, 해충의 위협, 예상치 못한 재해 속에서, 농부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농사는 인간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려야 하는 고된 기도입니다.​

흙을 만지는 손은 경건한 손이며, 농부의 발걸음이 닿는 밭은 예배당이 됩니다. 예수께서도 많은 비유를 농부의 삶과 밭, 씨앗, 가라지, 추수 등을 통해 전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는 흙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이해됩니다. 흙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체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3) 흙을 되찾는 것은 하나님을 되찾는 길이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며 흙과 멀어졌습니다. 더 이상 흙을 밟지 않고, 흙냄새를 맡지 않으며, 흙에서 나오는 먹거리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흙이 오염되고 사라질수록, 우리의 신앙도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흙을 되찾는 것은 곧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흙을 통하여 우리를 빚으셨고, 여전히 흙을 통해 생명을 공급하시며, 우리의 삶을 유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는 곧 흙으로 돌아가는 생태적 회심의 길이기도 합니다. 

2. 생태영성으로 깨어나다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이 고백은 너무 익숙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진실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창조-타락-구속이라는 세 가지 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지만, 우리는 때로 이 구도를 개인의 죄와 구원에 국한시키고, 피조세계와의 관계 회복이라는 더 큰 지평을 놓치곤 합니다. 생태영성은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창조 세계에 대한 감수성과 윤리의 회복을 요청하는 실천적 신앙입니다. 

1) 창조: 모든 생명 안에 숨 쉬는 하나님의 숨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창조는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며, 생태신앙의 뿌리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이 질서를 따라 온 우주와 생명체를 창조하셨고, 그 안에 선함과 아름다움을 부여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인간은 ‘피조물의 제왕’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해 창조 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입니다(창 2:15).​

생태영성은 바로 이 창조 세계에 대한 경외심에서 출발합니다. 숲의 바람, 꽃의 향기, 흙 속의 미생물, 새들의 지저귐… 이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숨결을 품고 있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입니다(시 148편 참조). 자연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생태영성은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영적 감각입니다. 

2) 타락: 창조질서의 파괴와 생명 공동체의 단절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창조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소비주의, 생태계 파괴와 생물다양성의 붕괴, 기후위기와 물질중독은 단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창조에 대한 불순종과 타락의 열매입니다. 성서는 타락의 결과로 인간과 자연,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깨졌다고 진단합니다(창 3장).​

생태영성은 이 타락을 생태적 회심의 요청으로 읽습니다. 더 이상 자연을 착취와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생명 전체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회개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줄이고, 먹거리를 바꾸고, 에너지 사용을 절제하는 삶은 단지 실용적 선택이 아니라 신앙적 응답입니다. 우리는 창조의 탄식을 듣고(롬 8:22), 그 고통을 함께 끌어안는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3) 구속: 생명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개인 구원의 사건을 넘어, 모든 피조물을 회복하는 우주적 구속의 사건입니다(골 1:20). 복음은 단지 인간 영혼의 구원을 넘어, 창조 세계 전체를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생태영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창조 세계를 살리는 삶을 선택하는 실천입니다.​

예수께서는 들풀과 공중의 새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26–30).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자연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읽어내는 눈을 회복하라는 초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창조 세계 속에서 자라고 있으며, 생명을 살리는 모든 실천 속에서 실현됩니다. 

4) 생태영성은 기독교 세계관을 살아내는 방식이다

생태영성은 기독교 세계관과 전적으로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독교 세계관의 실천적 차원에서, 하나님과 세계,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확장하는 관점입니다. 창조-타락-구속이라는 틀 속에서 생태적 감수성과 윤리를 회복하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따라서 생태영성은 새로운 신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래적 회복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한다면, 피조물에 대한 경외는 당연한 응답이어야 합니다. 예수를 따르며 구속의 은혜를 누린다면, 타락한 세계를 돌보고 살리는 일은 필연적인 삶의 열매입니다. 생태영성은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예언자적 순종입니다. 

3. 농사는 예배다(땅에서 나를 섬길지니라.”(출 20:24, 공동번역)

이 말씀은 단순한 제사 규례를 넘어, 인간이 땅과 맺는 관계 안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성서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농사와 예배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 몸을 이루는 영적 행위입니다. 농사는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창조 세계를 돌보며 하나님께 응답하는 삶의 형식입니다. 

1) 농경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

성서는 철저히 농경사회의 언어로 기록된 책입니다. 씨앗, 포도나무, 양식, 이삭, 추수, 포도주, 감람나무, 무화과… 성서의 상징어들은 하나같이 흙과 생명, 계절과 작물, 수확과 생존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감추인 보화이고(마 13:44), 복음은 겨자씨이며(막 4:30–32),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요 15:1).

​농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체현하는 살아 있는 신학의 장입니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기다리고, 거두는 모든 과정 속에는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질서가 배어 있습니다. 이러한 농경적 감수성은 오늘날 회복되어야 할 신앙의 리듬입니다. 

2) 농사는 생명의 신비를 돌보는 사역

농사란 무엇입니까? 인간이 씨앗을 만들지 않았고, 햇살과 비를 조절하지도 못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농부는 단지 그 생명을 돕고, 지키고, 기다리는 자입니다. 바로 여기에 농사의 거룩함이 있습니다. 생명의 흐름에 협력하는 일, 창조주의 섭리에 순응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유기농, 자연농, 생태농업은 생태영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흙을 파괴하지 않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며, 생명을 존중하는 농업은 단지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존중하는 신앙적 선택입니다. 농사는 그 자체로 예배이며, 땅을 돌보는 손길은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손길입니다. 

3) 농사와 안식, 땅의 리듬에 순응하기

레위기 25장은 안식년과 희년의 제도를 설명하면서, 땅도 쉬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땅이 안식하게 하라.”(레 25:4) 인간만이 아니라 땅에도 안식이 필요하다는 이 말씀은 생태윤리의 출발점입니다. 생산성과 효율이 우상이 된 오늘날, 농사는 끊임없이 땅을 쥐어짜는 방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농부는 땅의 리듬을 존중하며, 생산보다 회복을 우선합니다. 자급, 자립, 자존의 농업은 그 자체로 안식의 신앙입니다. 땅의 휴식, 공동체의 나눔, 생명의 재순환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입니다. 오늘날 농사는 생태학적 회복과 신학적 순종의 자리입니다. 

4) 농사는 하나님 나라의 예언적 증언이다

농사는 단순히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기후위기, 식량위기, 생태붕괴의 시대에 농사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삶을 보여주는 선교적 실천입니다. 도시의 소비문화를 넘어, 생태적 삶을 지향하며, 땅을 사랑하고 이웃과 나누는 삶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복음을 드러내는 증언입니다.​

농사는 말씀을 흙으로 실천하는 예배입니다. 생명의 연결고리를 살리고, 거룩한 노동으로 일상을 예배로 바꾸는 일입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말씀은 오늘 농사를 짓는 손에게도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밥 짓는 일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요, 풀을 뽑는 손이 곧 기도의 손입니다. 

4. 땅에서 피어나는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눅 17:21)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미래에 오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흙과 생명, 땀과 사랑의 자리에 이미 와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일구고 돌보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땅에서 시작하여 몸으로, 밥으로, 관계로 피어납니다. 

1) 밥상의 영성, 생명의 나눔

우리는 밥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관계의 상징이며 생명의 기적입니다. 한 톨의 쌀은 수많은 노동과 자연의 은총,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어우러진 은총의 결정체입니다. 밥상을 차리는 일은 예배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공동체의 밥상은 성찬의 확장입니다.​

생태적 밥상은 가능한 한 가까운 땅에서 자란 것,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먹거리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직접 키운 채소, 유기농 쌀, 생태농법으로 자란 농산물은 창조의 원리에 순응한 거룩한 음식입니다. 밥을 먹는 행위는 그 자체로 창조 세계에 대한 신앙적 응답입니다. 

2) 하나님 나라 공동체: 자급과 나눔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는 경쟁과 축적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급과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행 2:44–45). 오늘날 우리는 이 복음의 정신을 농촌에서, 마을에서, 공동체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도시교회-농촌교회 간 직거래’, ‘농촌체험과 생태교육’, ‘기후정의와 먹거리 운동’, ‘공동텃밭과 마을 잔치’, ‘예배와 강단 교류’… 이런 실천들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는 소농을 지키고, 지역을 살리며, 창조세계를 돌보는 기독교적 저항이자 희망의 증언입니다. 

3)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선교

기후위기와 생태붕괴는 단지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창조 세계에 대한 신앙의 실패이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왜곡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의 선교는 단순한 전도가 아니라 창조 회복의 영적 실천, 곧 생태영성에 기초한 삶의 전환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회심해야 할 대상은 단지 개인의 죄가 아니라 탐욕과 소비를 조장하는 문명 그 자체입니다. 생태회심은 방향의 전환이며, 삶의 근본 구조를 바꾸는 신앙적 결단입니다. 농촌에서 자급하고, 공동체를 세우고, 땅과 화해하며 살아가는 삶은 곧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구현입니다. 

4) 땅에 발 딛고, 하늘을 노래하다(“사람이 흙으로 지음 받았으니 흙으로 돌아가라.”(창 3:19)​

이 말은 저주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입니다. 인간은 흙에서 왔고, 흙에서 살아가며, 흙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므로 흙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땅을 밟고, 밥을 나누고, 씨 뿌리는 농부와 포도원지기를 비유로 드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땅에서 복음을 살아야 합니다. 흙 속에서 생명을 키우고, 밥상을 차리고, 공동체를 세우고, 찬양하며 예배하는 일은 곧 하나님 나라가 땅 위에 실현되는 기적입니다. 

5. 다시 흙으로, 다시 예배로(“먼지로 돌아가리니 너는 흙이니라.”(전도서 3:20)

인간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 순환은 단지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영적 진리입니다. 우리 존재의 뿌리는 흙이며, 그 흙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은 가장 근원적인 신앙의 자리입니다. 

1) 흙에서 배우는 겸손과 경외

흙은 만물의 근원입니다. 흙은 겸손을 가르칩니다. 거만한 마음은 흙 앞에서 사그라집니다. 땅을 밟고, 흙을 만지며, 그 속에 뿌려진 씨앗을 돌보는 행위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게 합니다. 흙은 하나님 창조의 신비를 품고 있으며, 그 신비를 존중하는 마음이 예배의 시작입니다. 

2) 예배는 삶의 총체적 회복

예배는 단지 예배당에서 드리는 의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가 사는 삶의 모든 순간에 퍼져야 합니다. 흙과 생명, 그리고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일상이 곧 예배입니다. 농사짓는 손, 땀 흘리는 이마, 나눔의 밥상,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모든 실천은 예배의 연장이자 신앙 고백입니다. 

3) 신앙과 생태영성의 만남

생태영성은 창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깊이 체험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태영성을 기독교 세계관의 틀—창조, 타락, 구속—안에서 신앙적으로 실천합니다.​

창조의 섭리 안에서 땅을 돌보고 타락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과 공동체를 회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4) 흙과 함께 세워가는 하나님 나라

우리는 농신학을 통해 ‘농’과 ‘예배’가 결합하는 새로운 신앙의 현장을 만납니다. 땅을 경작하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세상을 새롭게 하는 거룩한 사역입니다. 흙을 만지고, 밥을 짓고, 땀 흘리며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그 현장이 곧 현대의 예배당이며 선교 현장입니다.​

5) 미래를 향한 희망과 실천

기후위기와 생태 위기는 우리 시대의 심각한 도전입니다. 그러나 이 위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 예배할 때, 희망과 회복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생태영성에 기반한 신앙으로 전환할 때, 우리는 창조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더 깊이 만나고, 그분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맺음말

「흙에서 예배하다」는 단순한 농촌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 파괴된 자연과 분열된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사랑하고 돌보며 예배하는 ‘삶의 신학’입니다. 땅과 더불어, 흙과 함께, 예배와 실천의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그 길에 우리 모두 초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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