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X에 쓴 글로 인하여 이스라엘 외교부와 국내 보수 언론, 야당의 이준석, 나경원, 안철수의원등의 연일 비판이 뜨겁다. 야당이야 대통령이 뭔 말을 해도 곱지 듣지 않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고 또 반대자도 있는 게 나쁘지 않다.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인용 계정은 피해 호소 주인공인 팔레스태인이고 문제의 글이나 사진도 올리는 인플런서다. 그러나 이대통령이 할 일이 없어 올린 글은 아니다. 철저하게 계산되고 멀리 바라보고 쓴 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미국에는 직접 대항 할 수 없으나 상대적으로 전쟁범죄로 인하여 국제적 비난을 받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의 정책을 말하는 것으로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극복하거나 잊혀질 수 있는 일이다. 형식도 직접적 비난이 아닌 사실이라면 혹은 한번 생각해보자는 식이니 이런 가치평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을 담당하는 김민석 총리나 야당 대표등이 나서지 않는 것은 고도의 정치로 문제 이후를 대비한 것이다.
사실 시오니즘을 비판했다가 이스라엘이나 유대단체의 거센비판을 받고 발언을 철회하거나 사과한 인물은 한둘이 아니다. 헐리웃에 마크 러팔로(헐크 역) 영국축구 선수 리네커, 수퍼모델 하디드,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 등이 있다. 이원복이 그린 만화 ‘먼나라이웃나라’ 미국편에서 유태인 표현으로 사과하고 수정한적도 있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이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홀로코스트와 다를바 없다고 하자 이스라엘내 한인회장도 이 대통령을 비판한다.
그러나 기재부 박홍근장관이나 경기도 도지사 후보 추미애의원등은 이대통령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외 평화 시민단체나 대학교수들은 거의가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어제는 외교부 장관으로 하여금호루무즈에 30여채나 정박중인 우리국적 유조선의 정보를 이란에 통고하라는 지시를 했다. 선별적으로 이란의 의도에 따라 통과를 하게 될 유조선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계여론과 미국서도 반전쟁 분위기
미국에서도 이란 전쟁과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출신 레오 14세 교황과 설전이다. 이런 전쟁을 멈추라는 교황의 줄기찬 요구에도 아랑곳없는 트럼프는 자신을 예수에 비견하기 까지 하면서 극에 달했다는 평이다. 보수적이며 부드럽고 겸손한 성품의 ‘조용한 교황’이라고 평가받는 레오 14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문명 파괴’ 말는 위협적 언사에 대하여 결코 용납할 수 없다거나, “전능에 대한 망상”이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교황은 트럽프에게 자신과 돈에 대한 우상 숭배는 이제 그만하십시오. 권력의 과시는 이제 그만하십시오. 전쟁은 이제 그만하십시오. 라고 하자 누 구의 말도 신경 쓰지 않는 트럼프는 가톨릭 최고 지도자인 교황이 범죄 문제에 취약하고 외교정책은 형편없다면서, 자신을 비판하는 교황은 원하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핵무기를 가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교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도시의 범죄가 괜찮다고 말하는 교황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교황 레오의 팬이 아닙니다.
또, 자신이 백악관에 없었다면, 첫 미국인 출신 교황도 없었을 거라고 깎아내리며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을 합성한 AI 이미지도 공개하며, 구원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NBC 뉴스 여론조사에서 대중의 레오 14세 호감도는 트럼프를 4배 가까이 앞지르는 등 미국 내 반전 여론을 돌리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미국내 가토릭지도자들은 교황을 옹호했으며 트럼프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이다. 한편 미국내 카토릭신자들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고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옳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동을 정면으로 비판한 글로 인하여 가장 먼져 이스라엘 외교부가 즉각 반발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고 이에 반박중이다. 우리는 이 대통령의 선택이 옳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오늘 이스라엘이 다시 레바논 민간인 지역을 폭격하며, 그 판단이 옳았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때 – 홀로코스트가 가르친 것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SNS에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시신을 건물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영상을 공유하며 “우리가 문제 삼는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 문장의 핵심은 비교가 아니라 원칙이다. 위안부 강제 동원은 전쟁을 빌미로 민간인에게 가해진 반인권적 범죄였다. 홀로코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조직적인 인종 말살이었다. 이스라엘은 그 홀로코스트의 직접적 피해자이자 증인이다. 그렇기에 이 대통령의 지적은 더욱 준엄하다. “당신들이 당했던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이 타인에게 그것을 가하고 있다.” 이것이 이 대통령 발언의 도덕적 골자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홀로코스트 추모일 전야에 유대인 학살을 경시하는 발언”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를 경시한 것은 이 대통령이 아니다.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경시한 것은 이스라엘 자신이다. 이 대통령은 11일 재차 답했다. “끊임없는 반인권적 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들의 지적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다.” 이것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박정희도 이스라엘에 등 돌렸다 – 국힘과 태극기부대는 알고 있는가
야권에서는 “국익을 해치는 외교 갈등”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들이 추앙하는 박정희 대통령도 이스라엘에 등을 돌린 전례가 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과 오일 쇼크가 한국 경제를 강타하자, 박정희 정부는 그해 12월 15일 4개항의 친아랍 성명을 전격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점령한 영토에서 철수해야 하며,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주장은 존중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스라엘은 1978년 주한 대사관을 철수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더 나아갔다. 정부가 땅을 무상으로 공여하고 아랍권 국가들이 자금을 모아 1976년 이태원에 모스크가 건립됐고, 1977년 서울 강남의 도로에는 ‘테헤란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생겼다. 두 나라가 도로명을 맞교환한 것은 그 이상의 의미였다. 오일 쇼크를 돌파하고 이런 노력들이 중동 건설 붐의 가장 큰 수혜자로 한국을 만들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일본이 이길 수 없는 깊이 – 한국 정부의 신뢰와 1400년전 서사시
요즘 일본이 부산하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란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추진하고, 아베 전 총리의 이란 방문을 모델 삼아 ‘중재 외교’를 자임하며 나섰다. 일본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일본과 이란의 각별한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위기 속에서 일본이 이란 카드를 꺼내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이란의 관계를 일본이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일본의 이란 외교가 기껏해야 아베의 2019년 방문에서 시작된다면, 한국은 이미 반세기 전에서울에 모스크를 세웠고, 테헤란로와 서울로를 맞교환했다. 박정희 정부가 오일 쇼크의 파고 속에서 이스라엘 대사관 철수를 감수하면서까지 친아랍 성명을 발표하고, 두 나라의 수도에 서로의 이름을 새긴 것은 신뢰의 구축이었다.
그 신뢰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자, 한국 내 은행에 예치된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약 60억 달러가 졸지에 동결됐다. 한국으로선 받은 원유의 대금을 돌려주고 싶어도 미국 제재 탓에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손을 놓지 않았다. 달러 송금이 막히자 스위스를 중개국으로 끌어들여 유로화로 환전하는 우회로를 설계했고, 2023년 마침내 카타르 국영은행 QNB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로 자금을 이체하는 데 성공했다. 이란이 즉시 찾을 수 있는 돈은 아니었지만, 한국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그 카타르에 예치된 자금이 바로 오늘 이슬라마바드 종전협상의 핵심 선결 조건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외교적 노력이 현재 진행 중인 중동 평화의 실타래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친아랍 성명에서, 문재인 정부의 카타르 우회 송금까지. 보수든 진보든,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한국은 이란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가능한 길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신뢰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이란의 인연은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세기 이란의 서사시 ‘쿠쉬나메’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7세기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랍에 멸망하자, 왕자 아비틴 일행이 중국을 거쳐 ‘바실라(신라)’로 망명했다. 신라왕은 이들을 기꺼이 맞아들였다. 아비틴은 신라 공주와 혼인하고, 그들의 아들 페리둔은 훗날 페르시아의 폭정자를 물리치는 구국 영웅이 된다. 페르시아-신라 혼혈의 영웅이 이란을 구했다는 서사다.
물론 ‘쿠쉬나메’는 역사 기록이 아니라 구전 서사시다. 그러나 7세기 신라 고분에서 사산조 페르시아 계통의 유리 공예품이 출토된 것은 사실이고, 당시 이슬람 지리서들이 신라를 “황금의 나라, 침략받지 않는 낙원”으로 기록한 것도 사실이다. 수백 년간 구전으로 이어진 이 서사시의 전체 10,129절 가운데 무려 3,900여 절이 신라를 배경으로 한다. 페르시아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 신라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고귀한 우방”이었고, 그 기억이 서사시로 결정됐다.
이란에서 한국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의 시청률이 80~90%에 달했던 것은 이 1,400년의 문명적 친연성이 현재에도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이란인들은 한국인을 “정서적인 형제 나라”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1,400년을 이어온 신뢰의 결실이다. 아베가 한 번 방문했다고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 유럽이 먼저 말했고, 이 대통령은 그 대열에 합류했다
작년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선언하며 이스라엘로부터 원색적 공격을 받았다. 독일 메르츠 총리도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병합을 공개 비판했다. 올 4월에 스페인 산체스 총리는 이스라엘군이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 소속 스페인 군인을 구금하고 이탈리아 호송대에 경고 사격을 가한 사건을 들어 “생명과 국제법을 경시하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이탈리아도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했다. 폴리티코는 “이스라엘에 대한 유럽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서방 세계가 말하고 있던 것을 아시아에서는 처음 말한 것이다.
오늘도 이스라엘은 또 레바논을 폭격했다. 미국과 이란이 47년 만의 역사적 종전협상을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하는 바로 그 시각에,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 지역의 마을들을 연속 공습해 최소 15명을 숨지게 했다. 평화 협상 테이블 옆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미·이란 휴전 합의 직후인 8일, 이스라엘은 기다렸다는 듯 레바논 전역에 개전 이래 최대 규모의 공습을 퍼부었다. 단 10분 동안 100회 이상의 공격이 이뤄졌다. 레바논 전역에서 최소 357명이 숨지고 1,223명이 다쳤다. 난민 캠프와 민간 지역이 폭격의 예외가 되지 않았다. 레바논 주민은 말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사람들과 아이들뿐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네타냐후에게 자제를 요구했으나 폭격은 멈추지 않았다. 유럽의 유엔 평화유지군을 구금하고 경고사격을 해도 멈추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져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이재명 대통령의 비판이 단순한 외교적 감정이 아니었음을 오늘도 증명하고 있다.
원칙은 원칙이고, 국익은 국익이다 – 그런데 이번에는 둘이 일치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인권 메시지를 넘어,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문제를 둘러싼 이란과의 관계 회복을 염두에 둔 전략적 시그널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은 이 시점에 이란에 특사를 파견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1973년 친아랍 성명도, 서울-테헤란 도로명 맞교환도, 그 배경에는 오일 쇼크를 돌파하려는 국가적 실리 계산이 있었다. 그것을 두고 아무도 박정희를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견지명이라 칭찬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실리 계산보다 더 본질적인 것을 읽는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팔레스타인에서 가해자가 되어가는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서, 한국 대통령이 “인권은 최후의 보루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돼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은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라는 말은 외교적 언어가 아니라 신념의 언어였다. 결과적으로 명분과 실리가 같은 방향을 가리켰을 때, 그것이 가장 탁월한 외교다. 이 대통령은 그것을 해냈다.
국제인도법은 전쟁 중에도 민간인을 보호한다. 시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엄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에만 요구되는 기준이 아니라 모든 분쟁 당사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인류 보편의 원칙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 원칙을 말했다. 이스라엘이 반발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야권이 “국익을 해친다”고 비판하지만, 박정희도 걸었던 길이고, 마크롱도 산체스도 걷고 있는 길이다. 인권은 외교의 불편함보다 크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
강성현 (성공회대 평화월딩연구소 소장)
2026년 4월 10일 오전,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X 계정에 팔레스타인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Jvnior’가 올린 영상을 공유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 병사들이 팔레스타인인을 건물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장면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렇게 적었다. “이게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우리가 문제삼는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3시간 후 사실관계가 확인되었다. 영상은 2024년 9월 요르단강 서안지구 카바티야에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 대원을 사살한 뒤 3명의 시신을 옥상에서 떨어뜨린 장면이었다. 아동 고문이 아니라 성인 시신 처리였다. 이 대통령은 추가 게시물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신이었다는 점이 조금 다행”이라며 사실관계를 수정했으나, “시신이라도 이와 같은 처우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의 본질은 유지했다.
다음 날인 4월 11일, 이스라엘 외무부가 공식 X 계정으로 반격했다.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일 전날에 이루어진 유대인 학살 경시를 포함한 이재명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용납될 수 없으며 강력한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 이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끊임없는 반인권적 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들의 지적을 한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다.” 한국 외교부도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념을 표명한 글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반박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며 대통령의 입장을 뒷받침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구체적 행위를 반인도적 범죄로 지목하며 공개 비판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역대 정부는 중동 분쟁에 대해 ‘인도적 지원’, ‘양측의 자제’ 수준의 외교적 언급에 머물렀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0월 유엔 총회 가자 휴전 결의안에 기권했고(이후 12월 결의안에서 찬성으로 전환),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이스라엘 대통령 방한을 수용하며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공개적 비판은 없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 관행과 질적으로 다르다. 대통령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한 직접 발화라는 점, 반발에 재반박했다는 점, 외교부가 정부 차원에서 뒷받침했다는 점 모두 전례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의 의미는 한국 외교사의 이례성에만 있지 않다. 이스라엘의 반박이 작동시킨 담론 구조, 그리고 이 대통령이 위안부와 홀로코스트를 동렬에 놓은 것의 학술적 함의를 분석해야 이 사건의 전체 지형이 보인다.
이스라엘 반박의 담론 구조
이스라엘 외무부가 이 대통령의 발언을 “홀로코스트 경시”로 규정한 것은 예측 가능한 패턴의 반복이다. 이 대통령의 원래 발언을 다시 보자.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홀로코스트를 경시한 것이 아니다. 위안부와 홀로코스트를 동일한 도덕적 무게로 놓고, 이스라엘의 현재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를 ‘홀로코스트 경시’로 프레이밍했다. 이 프레이밍이 성립하려면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 홀로코스트가 다른 어떤 인류 범죄와도 비교 불가능한 절대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홀로코스트 ‘유일무이성(Uniqueness)’ 테제의 정치적 작동이다. 본래 역사학적·철학적 논쟁의 산물이었던 이 테제는, 네타냐후 정권 하에서 다른 제노사이드와의 비교 자체를 ‘상대화’로 거부하는 배타적 기억 정치의 도구로 전유되어 왔다. 핀켈슈타인(Norman Finkelstein)이 『홀로코스트 산업』(2000)에서 분석한 것처럼, 홀로코스트 기억은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기능하여,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심각한 인권 기록을 가진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피해자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스라엘의 부가적 비난도 전형적이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테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이것은 공신력 있는 국제학술지 Journal of Genocide Research(2025) 논문들이 체계화한 제노사이드 부인 기술 중 ‘책임 전가’와 ‘비판자 동기 공격’의 변형이다. 자국의 인권 침해에 대한 비판을 상대방의 ‘편향성’이나 ‘침묵’으로 되돌려 논점을 이동시키는 전형적 수법이다.
한국 외교부가 이를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념 표명”으로 재정의한 것은,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경시’ 프레이밍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보편적 인권 규범의 틀로 담론 지형을 재설정한 것이다. 반유대주의 프레이밍에 의한 비판 억압이 작동하지 않은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일본군’위안부’와 홀로코스트, 비교의 정치학
이 사건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위안부’와 홀로코스트를 동렬에 놓은 발화의 함의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전시 성폭력 사안이 아니다. 한국 법원은 여러 차례의 재판을 통해 이를 반인도범죄로 확립했다. 2021년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차 소송에서, 일본제국의 행위가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반인도범죄에 대해서는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국제법의 통상적 원칙인 주권면제를 반인도범죄의 경우 배제할 수 있다는 선례를 한국 사법부가 세운 것이다. 같은 해 4월 별개의 2차 소송에서는 1심이 주권면제를 인정하며 각하하는 상반된 판결이 나왔으나, 2023년 11월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1심이 뒤집히며 반인도범죄에 대한 주권면제 배제 법리가 재확인·확정되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수사적 병치가 아니다. 한국 사법부가 반인도범죄로 확립한 일본군’위안부’와, 국제법이 반인도범죄로 확립한 홀로코스트를 동일한 규범적 범주 안에 놓은 발화이다. 이것은 홀로코스트 유일무이성 테제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동아시아의 전시 반인도범죄를 국제적 제노사이드 담론의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일본군’위안부’ 연구자로서 나는 이 지점에 특히 주목한다. ‘위안부’ 문제는 오랫동안 한일 간 역사전쟁과 외교 갈등의 프레임에 갇혀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 법원의 반인도범죄 규정과 주권면제 배제 판결은, 이 문제를 양자적 역사전쟁이 아니라 보편적 국제인권법의 틀에서 다룰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의 효과는 바로 이 법적 기반 위에서 ‘위안부’ 문제를 홀로코스트 및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및 제노사이드 범죄 행위와 동일한 규범적 지평에 올려놓았다. 다만 이 비교가 이재명 대통령 자신에 의해 얼마나 학술적으로 정교하게 사유된 것인지, 아니면 직관적 수사인지는 알 수 없다. 발화의 효과와 발화자의 의도는 별개의 평가 대상이다.
사실 확인 부실이라는 실수
비판의 본질이 유효하다 하더라도, 초기 사실 확인의 부실은 짚어야 한다. 원래 게시물이 공유한 영상의 설명은 “아동 고문 후 옥상에서 투척”이었으나, 실제로는 2024년 9월 성인 무장 대원 시신을 처리하는 장면이었다. 이 차이는 본질적이지 않다. 시신에 대한 해당 처우 자체가 제네바 협약 위반이며, 당시 미국 백악관 NSC 대변인 존 커비는 이를 “deeply disturbing(깊이 우려된다)”이라고 평가했고 이스라엘군 자체도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실수다. 이스라엘 측에 ‘disinformation(허위정보)’ 프레이밍으로 전환할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외무부는 “반이스라엘 허위정보를 퍼뜨리는 계정”이라는 공격을 했다. 국민의힘은 “국격 추락”, “가짜뉴스 망언”이라며 발언 자체를 전면 부정했고, 개혁신당은 비판의 내용보다 사실확인 없는 소통 방식을 문제 삼았다. 비판의 도덕적 정당성이 사실관계의 부정확성에 의해 훼손되는 구조를 스스로 만든 셈이다.
삼중 포위된 네타냐후, 그리고 한국의 위치
이 사건을 네타냐후 정권의 현재 상황 속에 놓으면 더 넓은 그림이 보인다. 네타냐후는 지금 전례 없는 삼중의 사법적 포위 속에 있다. 국내에서는 뇌물수수·사기·배임 혐의 형사재판 3건이 2026년 4월 12일 재개될 예정이나, 네타냐후 측은 안보 사유를 들어 증언 연기를 신청한 상태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24년 11월 네타냐후에 대해 기아의 전쟁수단 사용, 살인, 박해 등 전쟁범죄·반인도범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서방 우방 민주주의 국가의 현직 지도자에 대한 최초의 전쟁범죄 체포영장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는 남아공이 제소한 제노사이드 소송이 진행 중이며, 세 차례의 잠정조치 명령이 발부되었으나 이스라엘은 이를 사실상 이행하지 않았다.
2025년 현재 다수의 저명한 제노사이드 학자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행위에 대해 제노사이드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역사학자 오메르 바르토프(Omer Bartov)는 “이것은 도달하기 고통스러운 결론이었으며, 가능한 한 오래 저항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학술적 전환, ICC 체포영장, ICJ 소송과 함께, 이스라엘의 반유대주의 담론 무기화가 과거만큼의 억압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 국제적 흐름 속에 위치한다. 동아시아 미국 동맹국의 현직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이 수위로 공개 비판한 것은, 일본이나 호주 등 유사한 위치의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이다. 한국은 ICC 회원국으로서 네타냐후가 입국할 경우 체포 의무를 갖는다. 이재명 정부가 이 의무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는 아직 시험되지 않은 문제이며, 이번 발언이 그 시험대의 전조가 될 수 있다. 한국 시민사회는 이미 구체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4월 11일 성명을 통해 이 대통령의 발언을 환영하면서도, 헤이그 그룹 참여, 대이스라엘 무기 거래 중단, HD건설기계 굴착기 등 중장비의 이스라엘 수출 금지 등 구체적 조치를 촉구했다. 발언이 수사에 그칠지, 정책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이제부터의 문제이다.
사실 확인의 부실은 아쉽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이 홀로코스트 유일무이성의 정치적 독점에 균열을 내고, 반유대주의 프레이밍에 굴복하지 않으며, 일본군’위안부’라는 한국 자신의 역사적 경험을 보편적 반인도범죄 규범의 수준에서 호출한 것의 의미는, 초기 사실관계 오류로 상쇄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Jvnior가 이 대통령에게 보낸 답글의 한 구절이 이 사건의 무게를 말해준다. “저희에게 대통령님은 응답받은 기도와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