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망 앞에서 은혜와 평화를 빌다
골로새서 1:1-2
골로새서 1장 2절을 읽으면서,김민기가 글을 쓰고 곡을 지은 “철망 앞에서”라는 노래가 떠올랐다.물론 평소에 듣는 노래들 가운데 하나지만, 그 노래가 마음에 강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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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미움의 골짜기로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 떼
물 위로 차오르네 냇물은 흐르네 철망을 헤집고 싱그런 꿈들을 품에 안고
흘러 구비쳐가네 저 건너 들에 핀 풀꽃들 꽃내음도 향긋해거기 서 있는
그대 숨소리 들리는 듯도 해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나뉘어서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쳐다만보네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나뉘어서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쳐다만보네 빗방울이 떨어지려나 들어봐
저 소리아이들이 울고 서 있어 먹구름도 밀려와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저 위를 좀 봐 하늘을 나는 새 철조망
너머로 꽁지 끝을 따라 무지개 네 마음이 오는 길, 길-새들은 나르게 냇물도
흐르게 풀벌레 오가고 바람은 흐르고 마음도 흐르게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녹슬은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자,
총을 내려 자, 총을 내려 자, 총을 내려자, 총을 내려 자, 총을 내려 자, 총을 내려자,
총을 내려!
전에는 안치환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는데, 윤도현을 비롯해서 여러 가수들이 다양한 음색으로 부르는 것도 색다른 맛이 난다. 어쨌든 이 노래는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한다. 이 노래는 우리가 아무 일 없는 듯이 태평하게 지내도, 남북이 대치하는 비극적인 분단상황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과연 이 세상은 평화로운가?결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 같지만, 겉으로 보기에 부요한 것 같지만, 실상은 가난하다. 본질적인 것들이 궁핍한 세상이다. 다시 말하면, 은혜와 평화가 부족한 세상이다.지금 이 시대의 키워드는 “세계화”이다. 세계화는 한마디로 말하면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는 것이다. 세계화는 피할 길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세계화는 다른 무엇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 인간들이 만들어낸다. 더 잘 살고, 더 출세하고 더 성공하려는 인간들의 본능적인 욕심이 세계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불가피하다고 해도,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어 나가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고 해도, 남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사람들이 거기에 매달려 산다고 해도 세계화가 옳은 것은 결코 아니다.
세계화는 인간들이 쳐놓은 철조망들을 걷어내고 세계를 하나로, 하나의 시장으로 만드는 것인데, 그러면서 인간들은 오히려 전에 쳤던 철조망보다 더 독한 철조망들로 자신들을 둘러치는 것처럼 보인다. 남이야 어떻게 되던 나는 더 출세하고 더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그런 독한 맘으로 철조망들을 둘러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l“우리” “함께” “더불어” 이런 정겨운 말들도 그저 상업적인 미사여구에 그칠 뿐이다.
그런 말들은 실제적인 의미를 전혀 갖지 못한다. 신발과 옷이 필요치 않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어거지로 신발과 옷을 팔고, 냉장고가 필요치 않은 사람들에게 냉장고를 팔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대단하게 여겨서 영웅시하고 그렇게 못하는 것을 한탄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 그 어디에서 은혜와 평화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세상에서 우리에게 은혜와 평화를 주시는 분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배신하고 심지어 자기를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그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 그것이 바로 은혜이다. 그리고 평화. 이 평화는 우리 주님이 주시는 평화이다. 우리 주님이 미움과 다툼, 전쟁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제 목숨 바쳐서 주시는 그 고귀한 평화, 제 목숨을 버려서 온갖 미움과 다툼을 그치게 하고, 전쟁을 막으시며, 나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시는 우리 주님의 그 사랑. 그 평화의 정신. 그것이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임하기를 사도 바울은 빈다.
이것은 그저 인사말이 아니다. 그냥 해본 말이 아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화. 이것은 사도 바울이 목숨을 걸고 전하려고 했던 바로 그 복음이다. 세계화, 무한경쟁사회.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종교인들까지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자비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주님의 이름으로 경쟁을 촉구하는 이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화는 너무도 나약해 보인다.
아니, 아무도 그런 은혜와 평화로서는 이 세계화 시대를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결코 그렇지 않다. 아니, 그렇다고해도 우리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 로마가 세계를 다스리던 그 엄청난 세계화 시대에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복음을 들고 당시 세계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녔다. 숱하게 매 맞고 옥에 갇히고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당하면서 그는 복음을 전했다.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화를 전했다.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임하길 빈다. 이 예배를 마치고 아직 쌀쌀한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길 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은혜와 평화가 주변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세계화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자들이 없기를 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기적인 철조망들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우리 주님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