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목사의 전광훈 비평서

         전광훈은 한국교회가 뿌린 씨앗을 충실하게 먹은 상한 열매이다.

1. 전광훈은 공고를 나와서 사회로 나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도원에서 ‘신적경험’을 하였다.(굳이 난 신적경험이라 하고 싶다.) 그렇게 기도원에서 생활을 하면서 기도원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다. 그의 집회에서는 북소리를 전자음화 한 소리가 많이 들린다. 그 시대에 기도원은 북을 치며 기도를 했고, 말끝마다 북을 치는 것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고취시켰다.

전광훈은 신학교에 갈만한 준비나 성적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비인가신학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추정), 자신의 기도원신앙에 토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부흥사로 사역을 시작한다. 한국교회 안에 기도원신앙 혹은 부흥사신앙이 있다. 이 신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술과 무속’을 기독교 안에 뿌리 깊게 남기게 하였다는 점이다.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부흥사들이 교회를 다니며 했던 말들이라는게 ‘목사 잘 대접해야 복 받는다’, ‘(교회건축하며) 하나님은 집도 없으신데 여러분만 배부르고 따뜻한 곳에 살고 있나?’라는 식으로 말을 하며… 하나님은 내가 뭔가를 해드리면 나에게 행하시는 분으로 가르쳐 왔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는 전형적인 무속적인 신앙고백이다. 내가 임계점을 넘도록 행했으니, 하나님은 내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이런 ‘기도원신앙-부흥사신앙-무속과 주술신앙’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형태이다. 내가 간절하면 하나님이라는 내 하위의 신이 나를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경건하게 표현할 뿐이다.

2. 83년도에 사랑제일교회를 개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도사 신분으로 개척하여 어디서 목사안수를 받았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런데 그에게는 이미 유명세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목사라 불려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목사라 불렀다.

3. 전광훈이 한국교회 저변에 알려진 계기는 ‘청교도영성훈련’이라는 세미나를 ‘금란교회’에서 김홍도 목사의 도움으로 수차례 열며 알려졌다. 

금란교회는 1세대 대형교회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대형교회운동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지 일단 해보는데 있다. 또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프로그램이 교회에 정착해서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을 목회자 대상으로 세미나를 만들어서 브랜드화를 한다. 그렇게 알려지면 또 사람이 많이 온다.
대형교회운동의 핵심은 ‘기존교회에 다니는 상처 받거나,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마케팅 대상이다. 그 시장을 차지하는 방법은 세련된 문화를 만들고, 남들이 하지 않던 말들을 브랜딩화 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장을 선점하고 차지하는 형태로 확장이 된다. 전광훈은 금란교회라는 대형교회에서 대형교회운동에 포함이 된 브랜딩화 된 인물이 되었다. 

4. 전광훈은 금란교회와 김홍도 목사에게 배운 점 혹은 연결된 점은 반공주의로 보인다. 철저한 반공주의가 교회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는 동물적 감각으로 체득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반공주의를 앞세우는게 언제나 최우선이었다. 영락교회 등 이미 대형화 되어 있는 교회들이 이북출신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공주의를 외치느라 ‘독재’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전두환에게 조찬기도회를 열어 ‘여호수아와 같은 장군’이라고 추겨 세웠다. 

5. 이명박 대통령이 될 때에 한국교회 안에 ‘뉴라이트 운동’이 시작이 되었다. 뉴라이트운동은 한국교회라는 전국적 지역망을 사용하며 확장했다. 전광훈은 이 때에 뉴라이트 운동에 상임위원장을 담당한다. 식민지사관과 이승만 찬양고무와 미국식신자유주의에 대한 것을 기초로 한국교회 저변에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전광훈은 가는 곳마다 권력다툼을 일으켰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광화문에 성조기가 함께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뉴라이트 운동의 핵심은 힘에 대한 숭배이다. 힘을 가진 자의 자유를 동경한다. 현실세상에서 힘이 가장 쎄고, 우리나라를 공산주의에서 구원해준 미국은 이들에게는 ‘아이돌’이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52번째 주가 되기를 기도하기도 한다. 청교도가 세운 미국. 힘의 미국. 반공산주의 미국이기에 이상국가는 미국이 된다. 

6. 이 때쯤 한국교회 안에 ‘음모론-세대주의’가 뜨거워졌다. 요한계시록을 세대주의로 해석을 하고,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제3성전 회복이 뜨거워졌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변승우 목사’이다. 전광훈 목사는 변승우 목사에게 내려진 이단시비를 해결해주고, 그의 도움을 받아 한기총에 나가 한기총 총회장에 당선이 된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이 말도 안되는 음모론과 한국내 간첩이 활동하는 내용들. 수 많은 가짜뉴스들이 한국교회 카톡방을 통해서 사회로 전해지는 때가 이 때이다.
왜 태극기집회에는 이스라엘 국기가 함께 흔들리는가? 이들은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회복될 때. 다시 예루살렘이 복음화가 될 때가 그들이 믿는 어떤 신(굳이 어떤 신이라 쓴다)이 재림을 하여 이 역사를 끝내는 종말론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가로막고 있는 나라들을 세계지도로 보면 놀랍게도 사회주의국가이거나 이슬람국가이다. 이들에게 사회주의와 이슬람은 예루살렘 회복을 가로막는 것이고 결국 자신들이 믿는 어떤 신이 재림할 수 없게 만드는… 재림도 자신들의 노력여부에 달린… 그 신앙을 방해하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사회주의국가와 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쏟아낸다. 왜 이들이 이슬람혐오와 공산주의혐오에 빠지는지도 예루살렘의 회복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들은 ‘태극기-성조기-이스라엘기’를 함께 흔든다. 

7. 한기총 이후에 전광훈은 정당인으로서 활동을 한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 때에 뉴스를 차지하는 인물이 되어 나타난다. 

박근혜 탄핵 때에 가짜뉴스 혹은 선동뉴스로 한국교회 많은 인물과 단체들이 보도가 되었다. 또한 많은 단체 중에 서로를 권사님으로 부르고, 기독교선교단체에 모습을 띄고 있지만 국정원에 지원을 받거나, 전경련에 지원을 받아 활동한 단체들이 보도가 되었다.(https://www.facebook.com/share/p/15yKsTtxzi/)
전광훈은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이 모든 세력을 소위 ‘태극기부대’라는 이름으로 다 통합을 하였다. 

8. 전광훈류와 어울리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기꺼이 전광훈류, 파시즘-전체주의를 가진 이들과 어울리는 건 주저되는 일이다. 그런데 기꺼이 그 연결다리가 되어 준 것이 ‘동성애혐오’이다. 차별금지법이라는 가상현실을 실제로 받아들인 이들은 기꺼이 이 파시즘단체와 손을 잡는다. 1027 집회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도 이들의 역사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교회 안에는 끊임없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는 대부분 ‘새로운 것’과 ‘특별한 지위-선민의식무장’으로 이뤄진다. ‘차별금지법 반대’라는 새로운 것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아 특별한 지위를 얻은 사람들처럼 굴었다. 전체주의 속에서 약자를 지정하고 그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정당성을 얻는 것처럼…
1027은 손현보 목사, 에스더기도운동, 책읽는사자, 트루스포럼 등이 주최를 했다. 이들의 지금을 보라. 이들은 파시스트들이다. 그럼에도 1027 집회, 그 뿐 아니라 반동성애를 통해서 이들과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많은 교회가 손을 잡게 했다. 

9. 태극기부대를 이끄는 총사령관이 되어서 그는 문재인대통령 때에 반대시위를 지속적으로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 때에 서초동집회와 광화문집회로 나뉘는 시기… 그는 보수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미.

10. 왜 한국교회는 전광훈과 결별하지 못하는가? 이미 주요교단차원에서는 전광훈은 교류하면 안되는 인물이다. 문제는 각교회에서 목사들이 전광훈류에 대한 경고를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11. 한국교회가 지나온 모든 씨앗을 흡수한 인물이 전광훈이기 때문이다.

12.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그동안 믿어왔던 것을 다 부정하는 것에 가까운 말을 할 수 있을까?

13. 지금 교회를 유지하고, 헌금하는 이들이 대부분 전광훈이 지나온 한국교회를 그대로 흡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의와 정의는 늘 생존 앞에 무의미한 단어가 된다.

14. 건전하다고 하는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조차도 "혼란스런 정국에 대해 누가 옳고 그른지 시비 판단을 유보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는 식으로 말하는 이유도… 대형교회라는 그 모습 자체가 분별할 기준을 세운 것이 아니라 유명세 아래 모든 걸 흡수하는 형태로 커왔기 때문이다.

15. 대형교회에 속한 성도들도 ‘교회는 각 교회를 다니지만 자신들이 속한 유튜브 알고리즘 공동체’가 따로 있고… 대부분 각 교회 목사님 설교를 듣는게 아니라 자신이 선호하는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다. 공동체에 주시는 말씀이나, 공공선을 추구하는 공동체로서의 메시지보다는 내가 선호하는 목사가 다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게 그게 전광훈이고, 그게 극우편향인 목사인것이다.

16. 교회는 실질적으로 ‘군주제’ 정치제도이다. 왕정에 가까운 모습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나 실천이나 제도를 경험하지 않은 채. "사람에게 순종"만 가르쳐왔다. 헌법정신이나 민주적절차성은 ‘불법’이라고 해도 가능한 이유는 ‘한 사람이 불법이라고 하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17. 무속-주술과 구분할 수 없는 기독교. 반공주의 기독교. 힘의 숭배 기독교. 선민사상 기독교. 비상식-몰상식을 특별한 메시지라 생각하는 기독교. 내 욕망을 이뤄주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사유하는 기능을 상실한 기독교의 토양에 뿌려진 씨앗이 전광훈이라는 열매를 맺게 했다. 그를 따르는 성도들도 그렇고…
18. 더 많은 자료를 준비할테이니… 매불쇼 막내작가는 나를 인터뷰하라!

   

이주헌 지음
2024년 12월 2일 출간
135*205 / 268쪽 / 17,000원
ISBN 979-11-93507-36-0 (03230)

   
 

                 그간 누구도 솔직하게 말해 주지 않은 이야기!

교회의 속살을 보여주는 쓰디쓴 이야기 한번 들어 볼래? 

건강하다고 소문난 교회를 다녀도 뭔가 불편한 마음, 훌륭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도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교회에 젊은이들이 왜 자꾸만 사라지는 걸까? 분명 하나님을 믿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왜 자꾸만 늘어나는 걸까? 아마 이들은 교회를 다닐 때, 수십 번은 될 부흥회, 수련회, 성경 공부에 빠짐 없이 참석했던 ‘순종적인’ 교인이었을 것이다. 거절하지 못해서 하게 된 수많은 교회 봉사 때문에 정작 예배 시간에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피곤한’ 교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단지, 교회와 목사가 불편할 뿐이다.

이 책의 차례만 보아도 교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질문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겉으론 신실하게 교회를 다녀도 뭔가 해결되지 않은 신앙의 문제를 마음에 품고 있으니까. “교회를 다니면서도 행복하지 않으면 어쩌란 거지? 하나님을 얼마나 더 사랑해야 충분해지는 거야? 도대체 난 구원을 언제 받는 거야? 권위에 무조건 순종하라고? 스타 목사, 그분들의 말은 다 옳은 거야? 교회에 헌신하면 취직도 잘되는 거 아니었나?……” 교회 안에서는 차마 꺼내기 어려운 질문, 우리 담임 목사님에게는 감히 여쭤보기 어려운 질문들을 이 책에서는 솔직하게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교회를 버거워하는 ‘동생’과 목회자인 친한 ‘형’이 나누는 질문과 답이라는 설정을 통해 씁쓸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쓴맛만 나는 것은 아니다. 형의 진심이 담긴 따뜻한 조언은 여전히 우리에게 교회가 희망임을 잊지 않게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교회는 성전된 한 사람으로서의 교회나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적 교회는 아니다. 목사라는 한 사람에게 의존되어 있는 교회와 사람과 돈이라는 권력이 존재하는 조직으로서의 교회를 말한다. 성도의 삶을 인질 삼아 결국 교회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잘못된 신앙의 교회이다. 많은 사람이 제자 훈련, 선교 훈련, 영성 훈련 등 교회 내 많은 프로그램에 다 참여해도 현실의 삶으로 돌아오면 구원의 확신과 기쁨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다고 고백한다. “난 이런 이야기 처음 들어”라는 제목을 보면 이 책에서는 그동안 교회가 말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자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으나 쉽게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다. 바로 목사의 권위주의와 교회 성장주의를 벗어나자는 것이다. 진작에 우리가 솔직히 마주해야 했던 이야기이다. 이렇듯 그동안 꺼려 왔던 씁쓸한 이야기, 그것을 이 책에서는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형교회를 비판하고자 함도 아니다. ‘대형교회운동’이라는 유행의 막바지에 있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습이 이렇다면,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건 확실하니까,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 참된 진리를 향해 다시 걷자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어느 순간 기쁨이 사라져 버린 신앙생활에 지친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다시금 소망이 생기기를 바란다. 

“나는 신앙에서 가장 놀라운 소식은 성육신(成肉身)이라고 고백해. 가장 높은 이의 가장 낮아진 사건, 가장 영광스러운 이의 가장 초라해진 사건, 창조주 하나님이 아기가 되신 사건,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가장 결정적인 사건, 높은 산이 낮아져 계곡을 메우는 일이 일어난 하나님 나라의 핵심적인 사건, 그리고 의로우신 예수님이 나와 같은 죄인을 찾아오시고, 그 죄인들을 찾아내신 사건, 그 사건이 나에게 일어났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야. 네가 이 신앙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좋겠어!”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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