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위 절차적 정당성 지켰나?

          재무 행정처 총무, 또 무산 

20세기 가장 유명한 미국의 정치 철학자 존 롤스는 코네티컷의 성공회계열의 켄트스쿨을 거쳐 프린스턴대학교를 1943년에 졸업한다. 그 해 입대해 남태평양서 근무하다 1945년 제대해 1950년 프린스턴에서 윤리철학 박사학위를 받는 다. 이후 프린스턴대학교, 1953~59년 코넬대, 1960~62년에 MIT를 거쳐 하버드대학교에서 강의하다 1979년 제임스 브라이언트 코넌트 석좌교수가 된다.

존 롤스는 정의론이라는 정치 철학의 창시자로 ‘공정으로서의 정의’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이전 밴담의 공리주의가 다수의 더 큰 행복으로 소수의 권리와 이익을 무시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반기를 들고 홉스의 사회계약 이론을 환기시켜 정의론을 주장하여 한 사회의 척도는 얼마나 공정한지가 척도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분들의 공로로 현대사회가 정의롭게 진보하는 데 이론적이며 지표로 보여줘 후발국가나 조직들로 하여금 이상으로 삼아 노력하게 하는 공헌을 한 것이다. 이에 현대 정의론은 발전하여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데

첫째는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로 제한된 자원을 배분(allocation)함에 있어서 그 결과가 각 개인들이 기대한 기준과 같은지에 해당하는 정의하는 것으로 그것이 그것이 부당하다고 인식되다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등의 합법성도 그렇고 사회적 통념으로 그 사회가 합의하는 정의에 반하는 것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두 번째는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로 배분등 사회에서의 의사결정 상황과 그 과정, 참여자 모집, 의견의 표출 등의 측면들에서 각 개인들의 존엄한 대우를 보장하는 것에 해당하는 정의. 절차적 정의 없이 분배적 정의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절차적 정의가 공정하지 않다면 분배적 정의도 공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기우러진 운동자론이 여기 해당한다.

세 번째는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인데 회복적 정의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의사결정 결과를 훼손한 범칙자에 대해 적합한 처벌과 사회적 질서의 회복을 요구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 이는 갈등 혹은 피해 호소인들에 대한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의다. 피해자는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를 받을 때 위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가 트라우마에서 회복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가해자에게 공감받는 것’이기에, 회복적 정의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나게 해서 대화시킨다. 서로가 서로를 인격체로 인식시키고, 감정이 있는 존재임을 체감시키고, 가해자 고통을 가해자가 느꼈을 때 비로소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회복하여 진실한 반성과 사죄가 가능하게 된다.

이것을 온정주의나 용서, 화해의  주체는 가해자가 아니라 철저하게 피해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어디서도 없던 얘기였다. 그러나 사회적 참사(세월호) 이후 부터 도입된 개념으로 절차적 정의만이 아니다. 이것은 이상주의자들의 뜬구름 잡는 이론이 아닌 것이 이태원 참사에서도 그렇듯이 회복적 정의는 우리사회의 정의지표를 말해준다.

총무자리는 정무직

올해 들어 총회 5개 상임 부서 총무 선임 규정의 2기를 맞으면서 많은 시행착오들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 어떤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총회를 위하여 유익한 일로 보여진다. 그중 이번 인선과 관련하여 제도적 개선과 아울러  제기되는 문제를 공론화한 분은 서울 북노회 원로 이정환목사(팔호교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은퇴한지가 벌써 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우리 총회에 대한 관심이나 치밀한 분석, 논리적 정당성과 함께 정의론의 관점에서 많은 점을 우리 후배들에게 제기하고 있다고 본다. 년중 한번의 글이지만 아직도 배울 점이 많아 예장의 모든 인터넷 언론을 하는 분들과 맞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분이다. 젊은이들 말대로 하면 파워 블로거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교단이 한국에서 가장 크고 또 나름 전통과 민주적 소통이 된다고 하는 곳 답게 한 사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고 비교 분석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은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가스펠 투데이를 통하여 이번에 내놓은 입장이 나와는 다르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여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정환 목사 글에 공감하지만 

이미 지적하신 글에서 지적하신 인선소위에서 나온 재무 행정처 지원자들에게 한 질문에 대해서는 예장뉴스도 같은 입장이다. 그중 몇 개만 다시 예을 든다면 “교단 산하교회 1년 총 헌금 수입(약 1조 이상), 총회재판국에 상정되는 재판 건수?, 또 반려되는 숫자, 총회 각 부처 연간 예산, 개혁교회는 좌파? 진보와 보수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등이 나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정환목사는 제109회기 총대들이나 면접관 혹은 독자들도 이 질문에 답하고 몇 개나 맞았는 지 보라는 얘기다. 응시자는 이런 지문 10개중 6가지 이상 답해야 했다고 한다. 그러자 면접 10분 만에 한 지원자는 퇴장하고 나머지 한 분이 한다고는 했지만 역부족으로 5인 인선위는 복수가 아니므로 전체 인사위에 회부하지 못하여 이번 재무 행정처 총무 공모는 또 다시 무산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사실 이런 질문은 떨어뜨리려고 하지 않는 한 너무 포괄적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런 수치나 총량을 외우는 사람이 총무를 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것은 총무가 되여서 습득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많이 아는 사람이 총무가 아니라 제시한 평균적 정무적 감각이 우선 되야 한다. 부서 총무는 사무총장과 해 부서의 업무를 잘이해하고 교단의 거시적인 담론인 장로교단 항존직자로써의 덕목이나 지도자로써의 신앙이나 인성 업무자세를 보는 것이 정상이다. 

다만 총회 인선위가 면접평가서 없이 한 것이라는 것에 진짜인가 놀라 비판적 논지를 준비하며 확인한 결과 인선위는 나름 면접기준과 평가서는 있었다는 답을 들었다. 따라서 이정환목사가 인사위원장에게 주었다는 면접평가서가 유일한 것이 아니라 더 참고하고 보완한다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선소위가 면접기준 없이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다.

결론과 평가

이 글의 서두에 정의론에 대하여 우리가 다 아는 얘기를 해놓은 것은 이정환목사는 정의의 여러 가지 관점에서 얼마든지 이런 말씀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에는 팩트를 전제로 전개가 되야 하기에 지금이라도 피인선자들이 이번 인선에서 위에 열거한 정의의 관념에서 일탈했다고 느낀다면 뒷말로가 아니라 공정을 확립하는 의미에서 제소든 감사든 의뢰하기 바란다.

그러나 인선소위나 총회에 발전적 제안이나 비평을 넘어 전체를 부정하고 음모시하는 식의 비판은 조심해야 한다. 이를 오해하면 누군가가 안되서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보인다. 우리사회도 언론 지형이 양극화되여 조중동과 한경오가 대립각과 서로 견제를 하듯이 기관이든 언론이든 발전하고 진보하려면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객관화 할 수 있는 안목를 갖아야 한다는 말은 하고 싶다. 따라서 사회서도 현져하게 사회적 통념이나 정의에 반하는 대우나 처분을 받았다면 얼마든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다른  지원자는  인선위원중 면접인지 훈계인지 구분할 수 없는(느끼는 이들에 따라 다르겠지만)것을 느꼈다면 이는  문제로 지적된다. 따라서 과도한 지문이나 고압적인 자세가 있었다면 심히 유감스러운 일로 이는 반드시 개선되야 할 문제로 보아진다. 따라서 이런 점은 면접을 하는 후배들이 가뜩이나 주눅이 들게 마련인데 인선위원들이 각별히 유념하여 임해야 할 것이다.

이제 모든 인선은 끝이 났고 재무행정처는 또 다시 무산되여 재공모하는 데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복수가 아니여도 전체 인사위원회에 올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재 공모에 관심자들이 많이 지원하여 경쟁하여 좋은 분이 선출되기를 바란다. 예장뉴스로는 5개 부서 총무에 여성이 한분도 없는 것이 이전과 비교하여 아쉬워 여성이 한분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한 바 있었다. 따라서 차기 공모에도 많이 도전하기 바란다.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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