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교회. 작은 예배.

                                작은 교회. 작은 예배.

   
 

 손성현 목사는 1980년 1월 18일 광주벧엘교회에 부임하여 2008년 12월 21일(28년 시무) 은퇴하여 원로가 되셨다. 두 아들도(원선,희선)목사로 이 글은 목포 새로운 교회를 개척한 막내사위 교회를 다녀온 단상이다.

오늘 두번째로 제 막내 사위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비하심에
힘입어 개척한지 4주째 되는 아주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린아이까지 포함하여 모두 9명이 예배드렸습니다.

요즈음 제 중보 기도의 중심에 이 작은 교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큰아들이 사역하던 교회에서 나와서 개척했던 교회는 그래도
믿고 따라온 식구가 100여명이 되어 많은 아픔이 있었지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개척을 했을때는 저는 현역이어서 주일 예배에 한번도
참여해 보지 못해서 개척의 외로움을 실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이제는 많이 자라서 중견 교회가 된것이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 저에게 이번 막내 사위가 개척을 하는 과정과 실제 개척이 되고
주일 예배를 드리는 현장에 참여해 보니 그 마음의 무거움이 여간 아니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으로 생각만이 아닌, 전해 들은 이야기가 아닌 개척의 외로움을
실감하면서 많은 기도와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 보다 더 작은 교회의 존재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새삼 성경으로 되돌아가게 됐습니다.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몇번이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익히 잘 알고 있는 바 이지만 머리만이 아닌 아파지는 가슴으로
기도하고 묵상되는 작은 교회를 향하신 주 하나님의 마음은 심히
제 심령을 깊이 찔러 오는 것이 었습니다.

여기에 저 같은 사역자들이 범하고 있는 큰 죄.
오늘 교회와 성도들이 깊이 젖어 있는 물량주의적인 교회관을
이것은 분명히 타락인데, 탄식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신구약을 통털어 교회를 크고 작음에 의해서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규모와 모양을 앞세우는것에 대해 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씀합니다.
"여호와 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미6: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1:11-12

"시바에서 유향과 먼 곳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찌함이냐.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제물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렘6:2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말1:10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예배드린다 라고 회피하면
더 큰 죄가 될것입니다.

이제 신약을 봅니다.
당연, 성전 마당에서 제물들을 엎어 버린 진노하신 주님의 모습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 딤전6: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 딤후35
"이 사람들은 물없는 샘이요" 벧후2:17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유1:12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계3:17

하나님이 자기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행20:28)의 속성은
결코 숫자나 외모나 세련됨에 있지 아니하고
거룩함에 있음에서 멀리 떠나 버린 화인맞은 양심같은
오늘의 모습을 개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차라리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난산으로 죽어
가면서 뱉어낸 외마디, 이가봇 이란 탄식은 그래도
실날 같은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엄연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성령없는 예배.
성령없는 설교.
성령없는 찬양.헌신,봉사….

이런 교회의 현실 앞에서 주 하나님께서 새삼
작은 교회, 작은 예배를 통해서 뼈저리게 탄식히시며
말씀하심을 느끼지 않을수 없는 요즘 입니다.

주 하나님 앞에서는 교회의 규모는 의미 없습니다.
예배의 세련됨과 현란한 찬양은 의미 없습니다.
그럴듯한 설교 행위는 아무런 생명이 없습니다.
 곧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없는 교회.예배는 공허하고
오히려 고통스럼을 일으킬 뿐입니다.

오늘 저는 작은 교회. 작은 예배 이지만
그곳에 소박한 임재를 느끼고 왔습니다.

우리 모두 원래의 탯자리로 돌아가야 할것입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 벌거벗음을 다시 찾아야 할것입니다.

이 글은 제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록한 것임을 끝으로
밝혀 둡니다.

2015년 3월 8일, 주일 오후에,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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