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100년 역사에 나타난 목회상담학의 흐름과 전망
한국장로교 총회 설립 100주년 기획(8)
전형준 / 백석대학교 상담학 교수
1. 들어가는 말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겼다. 한국 장로교회 100년의 역사에 나타난 한국의 목회상담학은 놀라운 성장을 거듭 하였다. 한국교회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눈부신 성장을 한 것과 같이 한국의 목회상담학도 최근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목회상담학은 다른 신학분야보다 한국사회에 늦게 소개되었으나 1990년 이후에 크게 발전하였고, 2000년 이후부터는 여러 신학대학교와 기독교대학에서 가장 많은 지원자들이 몰리는 전공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목회상담학과 관련된 협회와 학회들이 증가되고 있으며, 각 교회마다 상담센터나 상담실을 두고 교우들에게 상담사역을 제공하고 있다. 목회상담이나 기독교 상담을 제공하는 상담기관이 증가하고 있다. 목회자들 가운데 상담을 목회에 적용하여 사역하는 상담목회자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한국 장로교 역사에 나타난 한국목회상담학의 흐름을 진단하고 미래를 진단해 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역사에 나타난 목회상담학의 흐름을 살펴봄으로서 현재의 모습을 진단할 수 있고, 향후 미래에 나타날 현상을 예측함으로서 오늘의 과제를 준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고를 통해서 한국 목회상담학의 역사를 분류하고 한국 목회상담학과 관련된 학회의 흐름을 살펴보되, 2000년에 출현한 한국복음주의 목회상담학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리고 목회상담학이 급속히 성장한 요인을 분석해보고 한국 목회상담학의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한국 목회상담학의 발전을 도모하고 한국 장로교회에 목회상담학이 더욱 유용하게 사용되어 건강한 교회를 이루게 되기를 희망한다.
2. 한국 장로교회 역사에 나타난 목회상담학의 흐름
1) 한국 장로교회의 태동
한국 장로교회 100년의 역사가 흘렀다. 개신교 선교사로서 한국에 제일 먼저 방문한 사람은 1832년 7월 영국 동인도회사 요청으로 통역 겸 선의(船醫)로 군함에 동승해서 중국 한국 일본과 타이완을 순방했던 독일 출신 칼 구즐라프(Karl F. A. Gutzlaff) 목사였다. 구즐라프는 충청도 흥주만 고대 도에 한 달간 머물며 주기도문을 조선어로 번역하고 감자 심는 법, 포도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떠났다.1)
알렉산더 윌리암슨(Alexander Williamson)은 1865년 가을, 죽음을 무릅쓰고 황해를 건너 온 한국인 두 사람을 만나 그들을 로버트 토마스(Robert J. Thomas) 목사에게 소개하였다. 토마스는 윌리암슨의 후원으로 한문성경을 가지고 한국 방문길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한국에서 순교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되었다.2)
1862년 중국선교를 개시한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는 10년 후인 1872년에 존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와 존 로스(John Ross)를 중국 선교사로 파송했고, 중국에서 선교하던 로스는 1874년 청과 조선의 국경으로 양국 사이에 합법적 교역이 이루어지던 곳인 고려문까지 방문했다. 그 때 그는 자신을 찾아온 한국 상인 한사람에게 한문으로 된 신약 성경을 전해 주고 돌아왔다. 이 한국인은 그 책을 자기 아들 백홍준과 그 친구들에게 주어 읽게 하였는데 이들이 후에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수세자들이 되었다. 1876년 고려문을 두 번째 방문 한 존 로스는 평안도 의주 상인 이웅찬을 만나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1878년 봄에는 이웅찬의 도움으로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을 번역했다. 1879년 백흥준, 이웅찬을 비롯한 네 명의 한국인이 매킨타이어에게 세례를 받았다. 백홍준이 의주로 돌아가 활발한 전도와 요리문답반 운영을 시작한 결과 1885년에 18명의 한국인들이 예배 처소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의주에는 국내 개신교 최초의 자생적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3)
1879년 로스는 <한국고대와 현대사>를 출간했고, 1881년 9월에 <예수성교문답>과 <예수 성교요령>수천 권을 인쇄반포 했는데 그것은 한글 최초의 문서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 <요한복음> 3000부가 또 인쇄되었다. 1882년 10월 서상륜이 한국 최초의 권서로 대영성서공회의 파송을 받았다. 서울에서 400권의 복음서를 반포한 결과 여러 명의 개종자를 얻은 그는 로스에게 편지를 보내 서울로 와서 13명의 친구들에게 세례를 주고 교회를 조직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서울에 와 있던 서경조는 형으로부터 신약전서를 받아 소래로 돌아온 후 그 책을 몇 번 읽은 후 결신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전도를 시작한 그는 1885년 초 20여명의 세례 청원자를 얻었다. 그 해 소래로 돌아온 서상륜은 그들에게 성경과 교리를 가르쳤다. 개인의 집들을 돌아가면서 예배드리던 그들은 1886년 예배처소를 마련하여 소래에 신앙공동체를 형성했다. 이 공동체가 한국장로교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이다.4)
미국장로교회에서는 1884년 봄 의사 헤론(John W. Heron)이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 임명 되고 뒤이어 호레이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7월에 한국 최초의 목사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한국 땅에 가장 먼저 상륙했던 선교사는 1883년 중국선교를 위해 떠났던 호레이스 알렌(Horace N. Allen)이었다. 그는 한국에 상주하는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1885년 2월에 한국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했고 4월에는 그 이름을 제중원으로 개칭했다. 이 병원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었다. 1887년 알렌은 미국무성 한국 담당 서기관으로 채용되어 선교사직을 사임했다. 그리하여 헤론이 알렌의 후임으로 제중원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제중원은 1894년부터는 애비슨(O. R. Avison)이 운영하게 되었다. 애비슨은 1895년 한국 전역에 콜레라가 발생해서 서울에서만 5000명이 사망했을 때 헌신적 활약을 통해 한국인들의 신뢰와 존경을 얻었다. 그 후 제중원은 1904년 세브란스(Severance)의 기부금을 확보하여 세브란스 기념병원으로 발전했다. 1889년 호주장로교회의 데이비스(J. H. Davies) 목사와 누이가 입국했다. 그러나 데이비스 목사는 천연두로 사망했고 누이도 귀국해 버렸다. 그러나 데이비스 목사의 사망이 호주장로교회 안에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호주장로교회는 1891년 여러 선교사를 파송하여 본격적인 한국선교를 시작했다. 1892년에는 미국 남장로교회가 호남 지방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1898년에는 캐나 다 장로교회가 함경도에서 선교를 시작했다.5)
2) 한국 목회상담학의 역사
⓵ 한국 목회상담학의 태동기(1951~1979)
현대적 의미에서의 목회상담학은 미국에서 1920년대 임상목회교육의 시작과 함께 발전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루었다. 한국에서의 목회상담학은 다른 신학분야보다 늦게 도입되었다. 한국 목회상담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발전된 것은 199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6) 1951년 유학 후 돌아온 이환신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서 문의학(問議學)이란 과목을 강의했다. 이것이 목회상담학에 관련된 첫 강의였다. 그는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했던 연희대학교 임시 교사에서 강의했다. 온 민족이 전쟁으로 쓰라린 상처를 입고 있던 시절에 개설 된 문의학은 한국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목회상담학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에서 목회상담학이 한국에 소개되는 데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목회상담학에 대한 소개는 먼저 번역서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시작 하였다.7) 이환신은 1962년에 캐롤 와이즈(Carrol Wise)의 Pastoral Counseling: Its Theory and Practice를 <목회문의학>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판하였다.8) 그 후에 김관석은 폴 존슨(Paul Johnson)의 Psychology of Pastoral Care을 <종교심리학>이란 제목으로 번역하였다.9) 민경배는 시워드 힐트너(Seward Hiltner)의 The Preface to Pastoral Theology를 <목회신학원론>이란 제목으로 번역 하였다.10) 한승호는 일반 심리상담학자인 칼 로저스(Carl Rogers)의 Counseling and Psychotherapy를 <상담과 심리치료>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다.11) 마경일은 힐트너의 Pastoral Counseling을 <목회 카운슬링>이란 제목으로 번역 하였다.12) 1960년대에 소개된 위의 책들은 목회상담학, 종교심리학, 상담학의 상호연관 분야의 대표적인 책들로 한국에 목회상담학을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13)
이어서 박근원은 1979년에 하워드 클라인벨 (Howard Clinebell)의 Basic Types of Pastoral Counseling을 <현대목회상담>이란 제목으로 번역하여 목회상담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기여했다.14) 이와 같은 번역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목회상담학의 발전이 둔화되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손운산은 두 가지 원인을 지적하였다. 첫째는 목회상담학 전공 교수들이 많지 않아서 신학대학교에서 목회상담학 과목들을 많이 개설할 수 없었고, 둘째는 한국교회가 교회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사람을 돌보는 목회상담에 큰 관심을 두지 못했다는 것이다.15) 이러한 지적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원인을 더한다면, 당시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목회에서 상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였고 한국교회의 대부분이 개척교회 또는 소형교회인 소위 생존형 교회들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번역서들이 소개되는 과정에서 한국인으로서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 목회상담학 저술들이 나왔다. 황의영은 1970년에 <목회상담원론>16)을 저술하였고 반피득은 1978년에 <목회상담학개론>17)을 출판 하였다. 특히 반피득(Peter Van Lierop) 박사는 1968에 연세대학교 학생상담소를 개설하여 임상적인 환경을 조성하였고, 1974년에는 최초로 임상목회교육(Clinical Pastoral Education)과정을 개설하여 병상에서 목회상담을 실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18) 이러한 대학에서의 상담소 개설과 임상목회교육의 실시는 목회상담학 분야에서 이론적 소개뿐만 아니라 임상을 통한 실천을 시도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⓶ 한국 목회상담학의 발전기(1980~1999)
이 기간은 실천신학의 목회신학분야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던 목회상담학의 영역이 목회상담학의 영역으로 전문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전문화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목회상담학과 관련된 학회들의 창립과 연구활동이 큰 계기가 되었다. 한국목회상담협회가 1982년에 창립되어 한국의 목회상담의 기초를 다졌다. 특히 1997년 아시아 태평양 목회상담대회(Asia Pacific Congress on Pastoral Care and Counseling)를 서울에서 개최하면서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대회에 세계의 목회상담학자들이 폭넓게 참여하였고 세계에 한국의 목회상담학을 소개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19)
목회상담학회(The Korean Society for Pastoral Care and Counseling)는 1997년에 창립 되어 <목회와 상담>이라는 학회지를 창간하였고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한국기독상담심리치료학회가 1999년에 창립되어 기독교정신을 가지고 상담영역에서 사역하는 학자들과 상담자들이 모인 학회로 발전 하였다. 이 학회에서 발간된 <기독교상담학회지>(Journal of Korean Christian Counseling)는 한국의 기독교상담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 하고 기독교상담학자들의 학술적 연구들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장이 되었다.
현대적 의미의 목회상담학은 1990년대 이후 빠르게 발전하였다. 목회상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롤 받은 학자들이 많아지면서 많은 신학대학교와 기독교대학의 기독교학과에 목회상담학 전임교수들이 초빙되고, 목회상담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의 숫자가 급격히 중가 하였다. 한국교회도 상담과 치유에 대한 관심이 중대되면서 교회 상담실을 두고 많은 상담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목회에 활용하게 되었다.20)
이 시기에 목회상담학이 급격히 발전한 배경에 관하여 손운산은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진단하였다. 첫째는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이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빠른 변화는 누구도 심리적으로 감당해 내기 어려운 충격이고 위기였다는 것이다. 정치적 갈등과 혼동, 경제발전, 사회문화의 변화, 경쟁적 사회구조, 가족 구조의 변화 등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자아에 많은 상처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상처 입은 자아의 문제로 힘들어 했고, 영혼 구원에서 강조하는 죄책감의 문제보다 상처 입은 자아의 문제를 더 시급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21) 이와 같은 진단에서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목회상담의 발전부분에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나, 영혼 구원에서 강조하는 죄책감의 문제보다 상처 입은 자아의 문제를 더 시급하게 생각했다는 진단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이나 죄로 인하여 타락한 존재가 되었으므로 죄의 문제에 대하여 해결을 받았을 때 비로소 상처 입은 자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상담학의 급격한 발전에 대한 둘째 요인은 교회나 사회 모두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22)이라는 점에는 공감한다. 교회의 목회자들이 목회상담에 대하여 전문성을 가지지 못하였고 사회에서도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에 대한 관심이 부족 하였다. 이러한 때 목회상담학이 소개되어 상처 입은 개인과 가족을 돌보고 치유하는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⓷ 복음주의 목회상담학의 출현과 성경적 상담운동(2000~현재)
이 기간에는 대학과 교회 안에 상담센터들이 생겨나고 각 신학대학마다 목회상담학과 기독교상담학 과목들이 다양하게 개설되어 적극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신학대학과 기독교대학 일반대학 그리고 교회에서 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이론적인 것뿐만 아니라 임상적인 영역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여 더욱 전문화된 영역을 세워 나갔다. 이 기간에는 여러 학회에서 목회상담학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활동을 통해 한국 목회상담학이 자리매김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23)
특히 이 시기에 한국복음주의신학회(Korea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를 중심으로 복음주의 목회상담학이 출현하게 되었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는 성경적 복음주의 신학의 정립을 목적으로 1981년 14명의 신학대학 교수들의 모임으로 시작 되었다. 1997년 10월 24일 당시 학회장이던 성기호 박사의 제안에 따라 처음으로 분과학회가 창립되었는데 이때 구약신학회, 신약신학회, 조직신학회, 역사신학회, 실천신학회, 선교학회, 교육학회, 윤리학회 등이 창립되었다.
2000년 11월 목회상담학과 기독교상담학을 전공한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국복음주의기독교상담학회(Korea Evangelical Counseling Society)를 한국복음주의신학회의 분과학회로 독립하여 심리학이나 진보적인 신학에 기초를 둔 목회상담학을 탈피하고 개혁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에 근거한 목회상담학의 학술연구와 전문목회(기독교)상담자 배출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한국복음주의기독교상담학회는 2003년 11월 논문집 <복음과 상담>을 창간하고 17권의 논문집을 발행 하였다. 그 동안 다룬 <복음과 상담>의 주제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학과 심리학의 통합(제l권), 기독교 상담과 목회현자(제2권), 기독교 상담과 변화(제3권), 기독교 상담과 직면(제4권), 기독교 상담과 한국문화(제5권), 기독교 상담과 교육(제6권), 기독교 상담과 가정(제7권), 기독교 상담과 스트레스(제8권), 기독교 상담과 정신장애(제9권), 기독교 상담과 결혼(제10권), 기독교 상담과 영성(제11권), 기독교 상담과 죽음(제12권), 기독교 상담과 직업(제13권), 기독교 상담과 청소년(제14권), 기독교 상담과 중독(제15권), 기독교 상담과 폭력(제16권), 기독교 상담과 다문화 가정(제17권) 등이다. 2003년 첫 목회(기독교) 상담 전문가를 배출한 이후 해마다 목회상담 전문가를 훈련하여 배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시기는 성경적 상담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성경적 상담은 본래 미국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실천신학 교수였던 제이 아담스(Jay E. Adams)가 1966년 성경적 상담과 훈련을 위한 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White Oak Ridge Community Chapel 교회 건물에서 CCEC(Christian Counseling and Educational Center)를 시작 하였다. CCEC에서 훈련 받은 첫 번째 목사인 존 베틀러(John Better)가 Adams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다. 1968년에 CCEC를 CCEF(Christian Counseling and Educational Foundation)로 이름을 바꾸고 좀 더 적극적인 상담사역을 하게 되었다.24) 현재는 데이빗 파울리슨(David Powlison), 폴 트립(Paul D. Tripp), 에드 웰치(Edward Welch), 팀 래인(Timothy Lane)이 성경적 상담교수 사역과 상담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한국의 성경적 상담은 총신대학교의 정정숙 박사가 아담스의 Competent to Counsel을 <목회상담학>25)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하면서 처음 소개하였다. 정 박사는 총신대학교에서 성경적 상담을 가르치고 정년 은퇴하였고, 현재는 한국상담선교연구원에서 성경적 상담을 교육하고 있다. 미국에서 사역하던 황규명 박사는 1994년에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실천신학 교수인 파울리슨, 트립, 웰치 박사와 함께 내한하여 서울 횃불회관에서 성경적 상담 세미나를 개최한 후 1995년에는 수영로교회에서, 1996년에는 사랑의교회에서, 1997년에는 남서울교회에서 평신도를 대상으로 개최 하였다. 그 후 2002년에 황 박사는 총신대학교에 상담대학원(Graduate School of Biblical Counseling)이 신설 되면서 전임교수로 초빙되어 현재까지 성경적 상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998년에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대학원에 상담학과를 신설하고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상담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준수 박사를 중심으로 성경적 상담을 교육을 하게 되었다.26) 그 후 미국 한인성서교회(Korean Bible Church) 담임 목사로 시무하던 전형준 박사가 2006년 미국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상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7년 귀국하여 서울기독대학교와 숭실대학교 기독교대학원에서 성경적 상담학을 가르쳤으며, 2011년부터는 백석대학교로 옮겨 기독교학부와 신학대학원, 신학전문대학원 석사와 박사과정에서 성경적 상담학을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경적 상담학 이론과 설교를 통합하는데 성공하여 성경적 상담과 설교의 통합 형태인 성경적 상담설교27)를 함께 교육하고 있다. 2012년에는 미국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상담학 석사와 미국 보스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김준 박사가 총신상담대학원 교수로 와서 성경적 상담학을 가르치고 있다.
3) 한국 목회상담학의 학회 및 기관 흐름
한국의 목회상담학과 관련된 학회 및 협회는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발족한 것은 한국목회상담협회(Korean Association of pastoral Counselors, 1982)이다. 이는 처음 한국의 목회상담학자들의 모임이 되었다. 그 다음은 한국성경적상담협회(Korean Association of Biblical Counseling, 1995)가 창립하며 심리학 중심의 목회상담학을 지양하고, 성경중심의 성경적 상담운동을 전개 하였다. 또한 기독교와 심리학의 통합입장을 견지하는 한국기독교상담심리치료학회(Korean Association of Christian Counseling and Psychotherapy, 1999)가 생겨났다. 그리고 21세기 영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영성과 심리치료를 통합하고자 하는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영성및심리치료협회(Korea Association of Spirituality & Psychotherapy, 2000)를 설립하였고 같은 시기에 개혁신학과 복음주의신학에 바탕을 둔 목회상담학을 지향하는 한국복음주의기독교상담학회(Korea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2000)28)를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성경적 상담학자들은 한국복음주의기독교상담학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상에서 열거한 학회와 협회들은 각각 학회의 분명한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데 집중하며 학술발표회와 상담세미나와 전문상담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학회들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은 비교적 부족한 가운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학회와 협회들 간의 학문적 교류와 대화를 통하여 한국의 목회상담학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목회상담학과 관련된 기관 및 상담센터는 학교기관 교회기관 그리고 독립기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대표적 학교기관과 상담센터로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의 연세상담코칭지원센터, 백석대학교의 백석학생생활 상담센터와 백석대학원의 백석상담센터, 총신대학교의 총신상담센터,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의 기독상담센터,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영성심리치료센터,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학생생활상담소,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의 횃불상담센터가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로 교회에 설립된 상담센터로는 영락교회 상담센터, 사랑의교회 상담실, 남서울교회 상담센터, 온누리교회 두란노 상담센터, 남서울은혜교회 뉴라이프 상담실, 한밀교회 다세움 상담교육센터, 예정교회 기독교치유상담교육연구원, 소망교회 상담실, 명성교회 상담실, 새중앙교회 상담센터, 할렐루야교회 상담센터, 예심장로교회 예심상담센터 둥이 있다. 셋째로 어느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상담기관으로는 한국상담선교연구원, 피스메이커상담센터, 한사랑 기독상담실, 김영애 가족치료센터, 한국영성치유연구소, 한국정신치료연구원, 기독교여성상담소, 행복한가정연구소, 기독교집단상담센터, 서울대상관계정신분석연구소,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 하이패밀리: 사랑의가정연구소, 한국가족상담센터, 한국웃음치료복지연구소, 한국치유상담연구소, 햇살청소년신앙상담소 등이 있다.29) 이러한 상담센터들은 교육과 상담 그리고 연구 활동을 통하여 목회상담 및 기독교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3. 한국 목회상담학의 성장요인
한국의 목회상담학의 성장요인은 먼저 시대적 필요성이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더 깊은 불안과 혼돈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병들어 가고 있다. 그 결과 개인적 가정적 병리현상과 집단 이기주의로 치닫는 냉담한 현실은 인간의 삶을 소외시키고 있다. 이러한 때에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는 성장 지상주의로 인하여 한 개인의 문제를 풀어주는 일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였다. 이렇듯 개인주의, 자기중심주의, 반권위주의, 반제도록 태도가 팽배한 시대 속에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로 타락이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감정적이며 충동적 행동을 많이 할 뿐 아니라 생명을 쉽게 포기하는 경향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직장에서 퇴직한 노동자들은 핵가족화가 이루어진 후 더욱 심한 소외의식으로 고통 받으며 노년을 외롭게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현대인들은 인생을 포기하거나 불안과 초조 속에서 떨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현대를 사는 인간들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며 자신의 존재의 본질을 상실한 채 살아갔고 관계성의 위기를 겼으며 개인과 개인의 관계의 위기, 가족관계의 위기, 그리고 직장과 사회관계의 위기를 겪으며 정신적, 심리적 질병이 깊어 가게 되었다.30)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하여 목회상담의 필요성이 더욱 중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요인은 한국교회의 급격한 성장이다. 한국의 목회상담은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하는 과정 속에서 상대적으로 결핍되었던 질적인 성장에 대한 욕구에 응답하면서 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의 양적성장이 정체되었던 기간에 신자들에 대한 질적인 돌봄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성장의 또 다른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신자들에 대한 질적인 돌봄의 사역인 목회상담이 도입되어 발전하여 왔다. 이러한 목회 돌봄을 통한 질적성장을 위하여 상담세미나, 부부행복 만들기 세미나,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결혼예비학교, 신혼가정 세미나, 자녀교육 세미나 등을 통하여 교우들에게 자신들의 상태와 관계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주었다. 더 나아가 한국교회의 성장에 따라 교회 안에 상담센터나 상담실을 두면서 목회 상담사역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든든한 기초가 마련되었다.31)
셋째 한국 경제성장과 더불어 발전하였다. 한국목회상담학의 성장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서 발전하여 왔다. 한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지나친 경쟁 속에서 타인에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심리 때문에 비밀이 지켜질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아 자신의 개인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게 되었고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안식처가 필요하였다. 더 나아가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가족체계가 무너지면서 확대가족에서 담당해왔던 상담적인 기능이 어려워지면서 상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즉 지금까지 가정에서 담당하던 정서적 지지 체계가 사라지면서 상담에 대한 필요와 욕구가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1997년 IMF 위기를 겪으면서 경제적, 심리적, 영적 공황상태를 경험하는 한국기독교인들에게 목회상담은 그 필요와 요구에 부웅하여 성장 발전하게 되었다.32)
넷째 사회적 현상 요인이 있다.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다주었다. 인간은 그의 본질인 영적, 정신적 작용을 상실하게 되었고 인간도 이용성과 효율성이란 관점에서 계량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모든 것을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요청되고 기술화, 산업화가 이루어지려면 신속화, 기계화, 자동화, 분업화, 물량화, 규격화, 대중화 등이 요구된다. 그 결과 인간 경시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이처럼 현대의 문제는 과거와는 달리 너무나 심각하고 다양하며 복잡해졌다. 급격한 변화의 물결로 인해 가족 간, 세대 간 겪어야 하는 여러 갈등과 위기가 표면위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며 상대주의적인 가치관에 빠져 있다. 이러한 한국인의 가치관의 혼란의 원인은 권위의 부재 현상, 상대적 빈곤감의 문제, 급속한 사회변동으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이 나타났다. 이와 같은 사회적 현상으로 인하여 현대인들은 고통을 호소하게 되었고 이러한 현대인들에게 정체감을 갖게 하고 고통을 극복케 하기 위하여 목회상담의 필요성이 증가하게 되었다.33) 이처럼 한국의 목회상담의 급격한 발전요인은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급격한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4. 한국 목회상담학의 전망
1) 신학교육에서 목회상담학의 확산
한국에서 1980년대 이전까지는 목회상담을 가르치는 교수가 거의 없었다. 과목도 개설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설되었다고 해도 일반상담학을 가르치는 외부 교수가 초빙되어 가르쳤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목회상담학 전공으로 유학하고 들어온 학자들에 의하여 목회상담학이 급격히 발전되었고 현재는 대부분의 신학대학교와 기독교대학에서 목회상담학과 또는 기독교상담학과를 두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하여 숭실대학교 총신대학교 백석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고신대학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한국성서대학교 한영신학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성결대학교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등에서 목회상담학 전임교수들이 목회상담을 교육하고 있다. 위의 대학 가운데 여러 대학이 상담대학원을 두어 상담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신학교육에서 목회상담 전공학과와 지망생들이 증가할 것이고 관련과목들이 늘어남으로써 목회상담학이 확산될 것이다.
2) 교회목회에서 상담목회의 증가
한국교회에서 목회상담에 중점을 두는 상담목회가 증가할 것이다. 이미 어느 목회사역 보다 상담 치유 회복을 강조하는 교회들이 있다. 목회자는 치유와 회복의 관점에서 설교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심방한다. 상담목회의 관점에서는 제자훈련도 집단상담의 형태이며 심방도 목회상담사역이다. 상담사역을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실천하는 교회들이 늘어 나고 있다. 한밀교회는 목회상담을 전공한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다세움상담목회대학원을 두고 다양한 상담세미나와 상담교육을 실시하며 상담 목회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분당 구미교회도 목회상담을 전공한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상담목회에 중점을 두고 있다. 새중앙교회는 “삶에 행복을 주는 치료사역”을 교회의 섬김 사역의 중심에 두고 상담과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새중앙상담실은 50여명의 상담전문가들이 있으며 상담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정사역원을 두고 부부학교, 자녀학교,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가정사역을 강조하는 교회이다. 생애주기에 맞춘 가정사역을 진행한다. 결혼예비학교(결혼예정자), 젊은 부부학교(30~39세), 하나님의 가정훈련학교(40~65세), 모세대학(65세 이상)을 운영한다. 그 뿐만 아니라 싱글, 이혼자, 사별자, 재혼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치유, 회복, 돌봄에 초점을 두고 목회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나면서 서로 경험을 나누고 프로그램을 교환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2011년 7월에 한국상담목회자협회를 조직하여 한국교회에 상담목회의 모델을 제공하려 한다. 또한 교회 상담실올 통한 전문상담이 늘어나고 있다. 중대형 교회들은 교회에 전문상담실을 두고 운영한다. 사랑의교회의 경우 5명의 전문 상담사가 교회의 직원의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9월에는 한국교회 상담실 연합회가 창립되었다.34)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기독교대학이 아닌 고려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친 목회자들이 고대상목회35)를 조직하여 상담목회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2012년 가을 상담목회 학술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는데, 상담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목회자 정회원의 수가 60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국교회의 중대형교회의 담임 목회자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목회상담학 교수도 배출되었다. 이처럼 교회 목회로서의 목회상담은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앞으로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3) 목회상담전문가의 증가와 과제
향후 자격증을 갖춘 목회상담 전문가들은 급격히 중가하게 될 것이다. 현재 대학과 대학원에서 목회상담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목회 상담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신학생들 가운데 목회상담을 전공한 사람들은 목회에 적용하여 상담목회자가 증가함과 동시에 평신도 가운데 기독교 상담전문가들이 증가할 것이다. 이들을 위해서 중요한 과제가 있다. 첫째는 전문자격증의 제도화이며 둘째는 상담센터의 설립과 운영이요 셋째는 전문분야와 봉사영역의 확장이다.36)
먼저, 자격증의 제도화는 협회나 학회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1982년 창립된 한국목회상담협회는 자격증을 수여하고 관리한다. 1999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상담과 심리치료 연구, 교육 보급을 목적으로 창립된 한국기독교 상담심리치료학회에서도 자격증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2000년에 성경적 복음주의 기독교상담학의 정립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창립된 한국복음주의기독교상담학회에서도 자격중교육과 시험을 통한 자격증을 수여하고 관리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전문 자격증을 보유한 목회상담전문가들이 크게 증가 할 것이다.
둘째는 상담센터의 설립과 운영이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에서 상담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이 그리 넓지 않다. 특히 목회상담은 종교적 특성 때문에 더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목회상담전문가들은 교회 상담실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상담실을 설립하여 운영하기도 한다. 향후 이와 같은 목회상담소나 상담실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는 전문분야와 봉사영역의 확장이 필요하다. 목회 상담가들은 자신들의 관심과 재능에 따라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활동한다. 예들 들면 음악치료 미술 치료 놀이치료 웃음치료 가족치료 아동상담 청소년상담 노인상담 다문화상담 등의 전문분야를 통하여 활동한다. 앞으로 이와 같은 자격증을 갖춘 전문 목회상담자들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4) 한국적 목회상담의 출현
목회상담자에게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는 미국에서 발전된 목회상담을 어떻게 한국적 상황에 접목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37) 목회상담 l세대 가운데 자신들의 박사학위 논문을 한국문화 또는 한국인의 심성과 관련 시켰다. 한의 문제를 목회상담의 입장에서 다루기도 하였다.38) 한국 사람들을 고려한 목회상담은 죄의 문제가 아니라 한의 관점에서 전개했던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인의 정이나 수치심을 다룬 논문39)들도 있으며 한국 가족의 특성을 다룬 논문40)과 한국인의 하나님 이미지에 대한 연구도 있다.41) 이것은 미국의 목회상담이 주로 심리치료 이론들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과 대조되는 것이며 한(恨)을 비롯한 한국적 주제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서구의 목회상담과 구별되는 한국적 목회상담의 연구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5) 한국교회 강단에서 상담적 설교의 증가
한국교회 강단에서 상담적 관점으로 설교하는 목회자들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날 수많은 현대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회적 심리적 영적 문제 때문이다. 21세기 인류의 문명은 매우 발달하였으나 인간의 고통은 감소하지 않고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때 설교를 통하여 회중의 심령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상담적 관점의 설교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담적 관점의 설교에는 ‘상담설교’42)와 ‘상담적 설교’43), 그리고 ‘성경적 상담설교’44)가 있다. 상담설교(counse ling preach in g)는 상담주제를 설교하는 것이다. 상담적 설교(preaching of counseling)는 상담적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상담기법을 반영, 또는 발휘하여 설교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요섭은 “상담적 설교는 새로운 설교의 유형이라기보다는 종래의 강해설교의 형태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적용점을 풍성하게 이끌어 주는 설교이다”45)고 하였다. 상담설교와 상담적 설교의 공통점은 모두 심리상담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반면, 성경적 상담설교(biblical counseling preaching)는 개혁신학에 근거한 목회상담학인 성경적상담학 이론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적 상담 기법을 적용하여 설교하는 것을 의미한다.46) 이때 설교자는 설교를 듣는 청중을 대상으로 의사소통하는 집단상담자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담적 관점으로 회중을 치유하는 설교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6) 개혁주의 목회상담학의 발전
지금까지 한국의 목회상담학은 진보적 신학을 한 실천신학자나 심리학이론을 바탕으로 한 목회자와 기독교신자에 의하여 연구되고 교육되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인 2000년 이후에 반 심리학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복음주의 기독교상담학이 크게 발전 하였고 개혁신학을 이론적 바탕으로 한 성경적 상담학과 개혁주의 목회상담학이 활발히 연구되고 교육되고 있다. 향후 심리학 이론을 중심한 목회상담학과 기독교와 심리학을 통합하고자 하는 통합주의가 지속될 것이 예상되고 있으나 이와 함께 성경과 개혁신학을 바탕으로 한 개혁주의 목회상담학이 크게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5. 나가는 말
한국 장로교 100년의 역사에 나타난 한국목회상담학의 역사는 짧다. 지금까지 한국 장로교의 태동 배경과 한국의 목회상담학의 역사, 그리고 한국 목회상담학의 흐름과 성장요인, 한국 목회상담학에 대한 전망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았다. 지금까지 한국의 목회상담학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성장하고 발전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고 목회상담 관점으로 목회하는 상담목회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목회상담전문가들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목회상담학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심리상담은 치료에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심리학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성령의 활동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이며 죄로 인하여 타락한 존재이다. 인간에게 구속자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영적 문제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경적 세계관과 성경적 인간관으로 상담에 임하는 철저히 성경적이며 바른 신학에 근거한 개혁주의 목회상담학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목회상담자들은 성경에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하고 기도를 통하여 깊은 영성을 소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영혼을 돌보며 치유하셨던 사역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할 것이다. 한국에 성경적 목회상담학이 꽃을 피워 이를 통해 한국교회가 건강해지고 한국사회가 밝아지게 되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미주>
1) 양낙흥, <한국장로교회사>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8), 31.
2) 양낙흥, <한국장로교회사>, 32.
3) 양낙흥, <한국장로교회사>, 32~33.
4) 양낙흥, <한국장로교회사>, 33~34.
5) 양낙흥, <한국장로교회사>, 36~37.
6) 손운산, “한국 목회돌봄과 목회상담의 역사와 과제”, <목회와 상담> Vol. 17. (서울: 한국목회상담협회, 2011), 21.
7) 손운산, “한국 목회돌봄과 목회상담의 역사와 과제”, 21.
8) 처음 이 책은 이환신에 의하여 1962년 <목회문의학>이란 제목으로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판되었다가 1965년에 김태묵에 의해 <목회상담>이란 제목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부에서 번역 출판 되었다.
9) Paul Johnson, Psychology of Pastoral Care, 김관석 역, <종교심리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4).
10) Seward Hiltner, The Preface to Pastoral Theology, 민경배 역, <목회신학원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8).
11) Carl Rogers, Counseling and Psychotherapy, 한숭호 역, <상담과 심리치료>(서울: 지문각, 1963).
12) Seward Hiltner, Pastoral Counseling, 마경일 역, <목회카운셀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6).
13) 한국에서의 목회상담학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다음의 책과 논문들을 참고하라. 안석모 외, <목회상담이론입문>(서울: 학지사, 2009), 3-8.; 권수영 외, “한국교회 목회적 돌봄과 상담의 자취와 전망”, <한국기독교신학논총> 50(2007), 205-248.; 유영권, “한국기독교상담학의 역사와 전망”, <신학논단> 60(2010), 93-111.; 손운산, “한국 목회 돌봄과 목회상담의 역사와 과제”, <목회와 상담> 17(2011), 7-39.; 참고 <신학사상>은 97호(1997)에서 “새 차원을 열어가는 한국교회의 목회상담”이란 제목으로 한국교회의 목회상담 특집을 다루기도 했다.
14) Howard Clinebell, Basic Types of Pastoral Counseling, 박근원 역, <현대목회상담> (서울: 전망사, 1979); Howard Clinebell, Basic Types of Pastoral Counseling, 박근원 역, <목회상담신론>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87). 이 책은 원저자의 개정판을 번역 출판한 것이다.
15) 손운산, “한국 목회돌봄과 목회상담의 역사와 과제”, 22.
16) 황의영, <목회상담원론> (서울: 생명의말씀사, 1970).
17) 반피득, <목회상담학 개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8).
18) 유영권, “한국기독교상담학의 역사와 전망”, <신학논단> 60(2010): 94-95.
19) 유영권, “한국기독교상담학의 역사와 전망”, 95.
20) 손운산, “한국 목회돌봄과 목회상담의 역사와 과제”, 22.
21) 손운산, “한국 목회돌봄과 목회상담의 역사와 과제”, 23.
22) 손운산, “한국 목회돌봄과 목회상담의 역사와 과제”, 23.
23) 유영권, “한국기독교상담학의 역사와 전망”
24) 김준수, “기독교상담의 역사”, <복음주의 기독교상담학> (서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2004), 27-28.
25) Jay E. Adams, Competent to Counsel, 정정숙 역, <목회상담학>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01).
26) 황규명, <성경적상담의 원리와 방법> (서울: 바이블리더스, 2008), 44-45.
27) 참고: 전형준, <성경적 상담과 설교> (서울: CLC, 2011).; 전형준, “성경적 상담과 설교의 통합 방안-성경적상담설교의 구조를 중심으로”, 백석학원 건학35주년기념 공동 국제학술대회 개혁주의 생명신학회 제5회 및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제58회 정기학술대회 논문집: 265-288.
28) 본고에서 열거한 목회상담학과 관련된 학회와 협회 외에도 더 많은 학회와 협회들이 창립되어 활동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학회와 협회만을 기록하였다.
29) 유영권, “한국기독교상담학의 역사와 전망”, 101-103.
30) 전형준, <성경적 상담과 설교> (서울: CLC, 2011), 187-188.
31) 유영권, “한국기독교상담학의 역사와 전망”, 97-98.
32) 유영권, “한국기독교상담학의 역사와 전망”, 97.
33) 전형준, <성경적 상담과 설교> (서울: CLC, 2011), 190-192.
34) 손운산, “한국 목회돌봄과 목회상담의 역사와 과제”, 30-32.
35) 고대 상목회는 고려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목회자들의 연구 모임이다. 이 모임은 한국사회에 목회자로서 목회상담학을 처음 소개한 한숭호 목사의 아들인 한성렬 교수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상담심리학 전공 석사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상담목회자들을 배출하였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목회자는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창훈대교회 한명수 목사, 과천약수교회 설동주 목사, 구리성광교회 김회수 목사, 하이패밀리 송길원 목사, 한밀교회 심수명 목사, 동산교회 남서호 목사 등이 있고, 필자도 상목회원으로서 2008년 회장으로 섬겼다.
36) 손운산, “한국 목회돌봄과 목회상담의 역사와 과제”, 28-29.
37) 손운산, “한국 목회돌봄과 목회상담의 역사와 과제”, 26.
38) 이재훈은 대상관계이론의 입장에서 한의 문제를 다루었고 손운산과 안석모는 이야기이론의 입장에서, 김영애는 한국여성의 관점에서 한의 문제를 다루었다.
39) 오규훈은 정의문제를 다루었고 이회철은 수치심의 문제를 다루었다.
40) 김진영은 부자지간의 문제를 다루었고 홍영택은 한국가족의 문제를 다루었다.
41) 최재락은 자아실현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함께 그것을 한국적 돌봄 문화와 관련시켰고, 정석환은 생산성의 개념을 가지고 한국 중년 남성의 경험을 분석했다.
42) 상담설교를 한국에서 처음 언급한 사람은 김만풍 목사이다. 그는 남서울교회에 시무하면서 합동신학교에서 상담설교를 강의했다. 참고: 김만풍, <상담설교> (서울: 크리스천서적, 1995).
43) 상담적 설교에 대해서는 전요섭과 심수명이 연구하였다. 참고: 전요섭, “상담적 설교를 위한 상담과 설교의 통합 방안” (교육학박사학위, 단국대학교, 2005); 심수명, <상담적 설교의 이론과 실제> (서울: 도서출판 다세움).
44) 성경적 상담설교는 필자가 최초로 제안한 설교로서 성경적 상담과 설교를 통합한 설교이다. 성경적 상담설교의 구조는 다섯 단계로 나뉘는데 첫째, 상황 속에서 진입구롤 발견하라. 둘째, 마옴의 동기를 살피라.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며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라. 넷째, 말씀과 성령을 통해 새로워진 마음의 변화를 인식하라. 다섯째, 변화된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계획하라 이다. 참고: 전형준, “성경적 상담설교의 분석과 방향” (철학박사학위, 총신대학교, 2011); 전형준, <성경적 상담과 설교> (서울: CLC, 2011);
45) 전요섭, “상담적 설교를 위한 상담과 설교의 통합 방안”, 9-11.
46) 전형준, <성경적 상담과 설교>, 208-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