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들 마음 장신대와 총회는 경청해야
35년전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장신대에 입학한 신학생들에게 닥친 아픔은 아직도 이들을 옥죄고 있다. 이런 일은 세계적으로 없지 않은 데 아르헨티나와 남아공등에서 이전 정부에서 이뤄진 학살이나 인권탄압을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역사바로 세우기등으로 잘못된 역사와 정치나 교권에 의하여 희생된 이들에 대한 조사와 발굴 복권, 배상과 보상을 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교단 장신대에서도 지난 35년전에 이뤄진 어린 학생들에 대한 학교 당국과 일부 교수들의 폭력적 학생 징계에 대한 문제가 공론화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사회도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래 설립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이재호)가 과거 1970년 초부터 이뤄진 박정희 유신정권의 군사독재 연장을 반대했던 학생 시민 노동자 종교인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민주화과정에서의 역사를 발굴 기록중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기념관으로 이천에 기념공원(묘역)이 있다. 여기에는 1980년 이후 신군부에 의하여 이뤄진 또 다른 인권탄압과 비민주 절차로 인한 희생자들이 약 9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절차와 심사를 받고 개인적으로 명예를 회복받고 보상도 받은 것으로 안다. 그리고 남은 절차는 국가민주화유공자법을 제정해 보훈가족화 하여 국가를 위한 희생을 장려하고 다시는 국가로부터 이런 폭력을 근절하자는 것이 그 취지다. 독립유공자 한국전쟁과 월남전 참전용사와 같은 수준의 예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는 국가폭력이나 인권탄압은 공소시효를 없에야 한다. 그래야 언제가 되든지 반드시 재론되고 보상해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다.
장신대 학생들의 징계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반 대학에서도 없는 무자비한 대량 학살이 이뤄진 셈이다. 이로 인하여 그 개인은 물론 가족들이 겪었을 아픔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이에 우선 그 징계는 법적으로도 무효이고 더군다나 신학교로써도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학교를 떠났고 교회를 떠난 이들도 없지 않다고 한다. 또 교단이적과 정상적인 학업과 안수를 받지 못한 이들도 있다.
이는 개인들 문제가 아닌 교단의 문제요 신학대학의 문제로 학교나 총회가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억울함을 조사하고 명예를 회복해주는 일이 공적으로 필요하다. 당시 직접 징계를 받은 당사자들이 실명으로 나섰고 같은 시대 이를 목도한 동문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동역자된 이들로는 외면할 수 없는 일로 측은지심으로 함께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당징계 철회를 위한 청원 동의서!
손은정목사(영등포산선)
다음은 청원자중 한 사람인 영등포산선 총무 손은정목사 심경데 취지를 잘담고 있어 소개한다. .
오늘부터 청원동의서 서명운동을 시작한다. 이것은 장신대 학교이전 문제로 징계를 받았던 이들의 명예회복에 관한 것이다. 광나루 이전안(89년)은 학생, 교수, 직원 전체가 반대하여 91년 교단총회에서 철회되었다. 그러나 90년에 학생들에게 내려진 집단유급, 무기정학, 제적등 징계는 35년이 지난 지금도 공식적으로 철회되지 않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철회시키고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당시 학생들에게 내려진 제적의 징계 조항은 50조 1항이었다(성행이 불량하고 개전의 가망성이 없는 자) 사실 이 징계의 앞 부분을 나는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50조 1항이란 것은 기억하지 못했다.
오늘 서명 첫 날, 이 조항을 보고 분노해서 잊을 수 없었다는 한 후배가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나는 신대원 입학 시험준비했던 1995년에 학적부를 떼야 했기에 저 조항을 보게 되었다. 내 학적부에는 무슨 수형번호 처럼 학교 도장과 함께 저 조항이 찍혀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참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35년이 지난 지금 저 씁쓸한 기억을 헤집어 올리는 것은 저 조항에 묶여서 (신학과 목회의 꿈을 접고 살아가는 선배들)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당시 나를 비롯해서 몇몇은 우여곡절 끝에 복적을 했지만, 잘못을 반성하고 들어오라는 학교측의 요구에 수긍할 수 없어서 (복적 심사 자체를 거부한 선배들)이 있었다.
돌아보니 35년이 화살처럼 지나갔고 우리는 다양한 곳으로 흩어져 분투하며 살아왔다. 당시 징계받았던 이들의 다수는 이제 60을 바라보고 있고 물론 60고개를 넘어선 선배들도 있다. 그 당시 역사의 장본인들과 증인들의 기억과 삶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바로 세워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불법적인 이전이 철회되었듯 부당한 징계를 철회시키고 상처를 회복하고 더 늦기 전에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부당징계 철회를 위한 청원 동의서 : 1989-1990 장신대 이전 반대운동
우리는 1989년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학교이전 반대운동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가해진 “학부 집단유급 195명, 제적 14명, 무기정학 11명, 신대원 유급 30여명, 제적 3명”의 징계가 절차적, 내용적으로 중대한 하자를 지닌 부당한 조치였음을 확인하며, 이에 징계 철회를 요청하는 청원에 동의합니다.
- 징계의 절차적 하자
당시 징계는 피징계자의 소명 기회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적법절차’(due process)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정의를 가르치는 신학대학에서 절차적 정의가 결여된 징계는 그 자체로 신학적 모순입니다.
- 징계의 내용적 하자
학교 이전 반대운동은 사익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학교 이사회가 학교의 터를 대기업에 매각하고 지방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을 추진하자, 학생들은 신학대학의 정체성과 소명을 지키기 위해 양심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입니다. 그 행위는 ‘선지의 동산’이라는 우리 학교의 정체성에 근거한 공동체적 책임의 실천이었습니다. 돌이켜 볼 때, 그러한 행동은 징계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적으로 부적절했던 학교 이전계획을 저지하고 신학교의 정체성을 지켜낸 선지자적 양심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 징계 책임의 불균형
당시 학내 사태의 구성원은 학생, 교수,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오직 학생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여 교육공동체, 학문공동체의 정의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학업과 사역의 길에서 부당한 상처와 징계자라는 낙인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 청원의 취지
우리는 1990년의 징계가 절차적 정의를 무시하였고, 내용적으로 신학의 양심에 어긋났으며, 공동체적 책임의 균형을 잃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부당함을 천명합니다. 학교이전 반대운동과 그에 대한 부당한 징계가 가해진지 35년이 지난 시기에 이를 다시 공론의 장에 올려 정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장신대가 광나루에서 더 풍성한 역사를 이어가는 데 대한 자부심과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된 책임과 징계로 인한 좌절과 상처를 기억하고 치유함으로 후대에 교훈을 삼을 수 있기 위함입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을 요청합니다.
-. 1990년 징계조치 전원의 징계기록을 공식 철회할 것
-. 징계 철회의 사실을 교단과 동문, 학생들에게 공표할 것
-. 부당징계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할 것
우리는 위의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부당징계 철회를 위한 청원서 제출에 공동 서명함으로써 정의와 화해, 회복의 길을 함께 걸을 것을 서약합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 부당징계 철회를 위한 청원 동의자 일동
청원 동의자 대표
안성환 신학과 83학번 베트남 하노이 여행협회장
김상국 신학과 83학번 신리교회 전도사
김활신 기독교교육과 85학번 사회적경제 연구자
임종길 신학과 85학번 총회파송 선교사
이성진 신학과 85학번 만나섬김교회 전도사
정상석 신학과 86학번 터닝포인트 출판사 대표
이치만 신학과 86학번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김문석 기독교교육과 87학번 자영업 운영
금주섭 기독교교육과 87학번 세계선교협의회(CWM) 사무총장, 목사
한지연 교회음악과 88학번 호밀호두 미아점 대표
손은정 신학과 88학번 영등포산업선교회 목사
우성구 신학과 89학번 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 회장, 목사
정재현 신대원 84기 학우회장, 현 동기회장, 어진비전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