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59기(15회) 부부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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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4일(월) 우리교단 장신대 59기 재경 동문 부부 모임이 기독교 연합회관 1111호(은퇴목사회)서 있었다. 졸업후 지금까지 매월 모이는 유일한 동기들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부부동반으로 모이는 데 정치의식은 차이가 나지만 지난 세월의 신앙과 우정으로 극복하고 계시다.
이 모임의 상징은 역시 금영균목사(성덕교회 은퇴)시다. 카리스마있는 언변이 압도적이다. 장신대 졸업후 한 때 고급 요정을 운영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서울 영등포 태생으로 당산동교회 청년회 시절 전국 장청 회장을 지냈고 1950년 한국전쟁 중 해군에 입대해 군악대로 제대하셨다. 이후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에 입학하여 다니다가 장신대로 편입했다.
이정학목사님이 양평 문호교회 시무중 당산동교회로 청빙하는 데 앞장선 인연으로 조선신학교 출신 이목사 추천으로 한신대에 입학했다가 캠퍼스가 동자동에서 수유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가는 교통편이 없어 할 수 없이 그만두고 기동차(전차)가 닿는 장신대로 편입하여 59기가 된다.
월남한 세대들이 세운 조선신학교에는 김재준목사등이 교수로 진보성향이었고 서울 경기 출신들인 용재호, 차관영, 이정학, 박한용목사등이 조선신학교 출신이다. 교단 분열도 당시 대전 제일교회에서 모인 총회서 경기노회 총대권을 제한하려는 이북노회나 경상도를 배경으로 한 권장악 시도에 대한 저항을 한다.
당시 선교사들의 적극지지를 받기도 한 이들은 당시 학장 박형룡박사를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과의 한판 쌈의 상대가 바로 경기노회 총대들이다. 이들을 지원하는 선교사들을 음해하고 공작을 하는 한편 김재준목사를 제명하자 결국 경기노회 총대문제로 합동측으로 분열을 맞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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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목사는 이후 뒤 늦게 포천군 나병환자 정착촌 실로암교회를 거쳐 서노회 성덕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다가 정년은퇴를 한다. 그러나 서노회 가입도 당시 교권 장로들로 인하여 지연되다가 고 김용준목사(대현교회)의 도움으로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 총대로 활동을 하게 된다. 후임은 연동교회 출신 장청 조영식목사(19년 목회 후 은퇴)인고 현재는 김oo목사가 시무하는 데 금목사 아들이 안수집사다.
윤두호목사는 금목사와 단짝으로 단신이지만 대광고 출신의 교단에 발이 넓은 강단 있는 목사로 총회를 휘젓은 분이다. 전도부 산업선교 간사를 거쳐 전도부 총무를 지냈고 이후 북노회 공릉교회서 정년 은퇴를 하신다. 젊은 시절 부터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금목사와 김종희목사와 더불어 우리교단을 대표하는 운동권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순천서 아들이 목회중이고 부인은 우리교단 교역자부인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이원자사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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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재목사는 인천출신으로 외궁어대에 다니다가 장신대로 온 분인데 우리교단 출신으로 NCC서 사역하시면서 간사와 부장을 거쳐 총무 대행까지 했다. NCC는 이후 차선각, 임동규, 이일호, 황필규, 이근복, 김태현, 현 최규희목사가 사역했다. WCC 보세이에도 다녀왔고 이후 동성교회를 거쳐 동자동 평양노회 성광교회서 정년 은퇴를 하셨고 지금은 소망교회로 출석하신다.
59기는 평양신학교를 기준으로 세는 깃수지만 해방후 서울서 문을 연 장신대가 처음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3년 과정의 신대원 첫기라는 자부심이다. 육사 11기가 정식 4년제로 자긍심이 있듯 15기가 그렇다. 이 분들은 학창시절 부터 가는 곳엔 파란이다. 학교서는 당시 교수들 실력이 시원찮다고 데모를 하고 졸업후엔 매년 9월 정기 총회 직전 개혁 세미나를 개최한다. 그리고 총대인 동기들은 이를 헌의안으로 하여 총회의 개혁적인 일을 많이 한 분들이다.
은퇴 목사회는 1988년 부터 자료가 있는 데 회장은 이태양목사와 전군명목사(명륜중앙)오랜동안 회장으로 있었는 데 은퇴자도 많치 않아 유명무실하였다가 2004년에 현재와 같은 조직으로 개편된다. 그,후 2011년 총회가 통계를 내면서 당시 은퇴 목사 숫자가 1,259명이었고 2021년 현재 2,611명이다. 15기들이 앞장서 당시 총회로 하여금 은퇴목사에 대한 복지 활동 차원에서 사무실을 허락해 달라는 청원을 이뤄낸다.
그렇게 해서 지금 기독교연합회관 1111호를 제공받고 작년 부터는 산하에 “일본 무목선교회”(회장: 윤두호목사)와 “예장복지상조회”(pckret.com)도 만들어 운영중이다. 이사장은 김상학목사(전 총회 사무총장)이며 실무는 이신규목사(서울노회 전 총무)고 예장 은퇴목사회 현 회장은 김덕재 목사고 사무국장은 김신국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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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기 동문들
금영균목사는 재야에서도 유명한 분인데 정치감각도 대단하셔서 1985년 양김이 분열시절 진보 기독교인사들인 고 박형규, 오재식, 김동완, 인명진목사등이 YS를 지지할 때 금목사는 조남기,김상근,이재정신부, 정상복, 차선각목사등과 같이 DJ를 지지한 분이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 시민운동 대표도 하시고 인명진목사를 대변인으로 하는 데 기여하셨다.
홍성현목사는 서울대 장신대 졸업후 새문안교회 교역자 시절 한국에서는 최초로 대학부를 만들었다. 그후 미국 프린스턴을 거쳐 아메리칸대학에서 드물게 “주체사상과 기독교” 로 박사 학위를 받지만 그 제목으로는 우리교단서 교수가 되기는 어려웠다. 인천제일교회 무학교회 수송교회등 대형교회 목회를 하시기도 했지만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ACT)서울장신, 장신대교수를 지내시고 만연엔 갈릴리신학대학원 한국 원장을 지냈다.
김종희목사는 경신학교 졸업후 논산 훈련소 군종실 활동을 하다가 경신교목으로 부임하여 평생을 사역한다. 양평군이 고향으로 고모가 피어선학원 사감으로 계실 때 주선으로 농사짓다 말고 경신학교를 입학한 것이다. 당시 경기노회 여전도사 5명중 한분이었다고 한다. 유신 시절 학교에서 채플 설교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으나 무난히 은퇴하셨다.
김종열목사는 연동교회 부목사를 거쳐 독일 선교사로 파송받아 목회와 사역을 하시다가 귀국후 서교동교회와 포항 북부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다. 연동을 떠나면서 남긴 기독교사상 원고가 당시 젊은이들의 필독서였다. 영남신학대학 총장을 지내시고 은퇴후 김형태목사등과 같이 목회연구원을 운영하시다가 충북 단양에 한옥을 짓고 학술원을 운영하시다가 지금은 용문에서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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