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정신은 무엇입니까?
조선일보는 일간지로 일제하 종이신문에서 출발하여 월간조선과 인터넷판, 조선 비즈, 조선 tv등으로 나름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다. 논조와는 상관없이 한국언론사로 역사가 길고(104년) 일제하에서는 폐간까지 되는 민족지였다. 그러나 유신이후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워 메이져 매체들은 학생들과 지식인, 기층 노동자들과 야당 시민운동가들로 부터 보수와 우익, 갖은 자와 권력층을 대변하는 곳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언론사로써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갖은 자들의 역사만을 보도하고 기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 회사 설립 104주년을 맞아 한국 노동문제를 르포기사로 다루는 3월 4일자 기사를 전태일기념사업회가 공동 기획자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언론사의 판단과 요청으로 그것 차체를 나물랄 일은 아니라고 보지만 문제는 이 신문에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참여한다는 것에 대한 적절성에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어 보인다.
현재 전태일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민변출신 이덕우 변호사이고 사무국장은 학생운동가 출신 노동운동가로 알려진 한석호씨다. 그런데 작년엔 민노총도 빠진 노사정위원회 산하 모 위원회에 한석호 총장이 참석해 노동운동 주류가 빠진 가운데 구색을 맞춰준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또 청계천에 시민모금으로 서 있는 전태일 열사의 동상을 이전 혹은 새로 제작해야 하는 지에 대한 소동으로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전태삼 동지와 청계피복노조 2대 위원장 민종덕등 열사 정신을 잇는 분들로부터 큰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노동자 역사 자료실 ‘한내’ 는 비판적
그런 가운데 전태일 기념사업회와 가깝게 관계하던 노동자 역사 자료실 ‘한내’ 가 조선일보에 전태일 재단의 사무국장이라는 사람이 개인자격도 아닌 전태일기념사업회 이름으로 협력한 것에 대하여 그 처신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홈피에 내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전태일 정신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이게 보통사람들에게는 무엇이 문제인가? 할 수 있지만 전태일 기념사업회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질문은 한번 생각을 해 볼 문제로 보여진다.
[성명] 전태일 정신은 무엇입니까? 노동자역사 한내 (hannae.org)
청계피복노동조합, 전태일기념사업회 전 상임 이사 민종덕도 비판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전태일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전 청계피복노조 위원장인 민종덕 동지도 개인성명서를 냈다. 골자는 한내와 비슷한 데 전태일기념사업회가 과연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가? 하는 식의 물음이다. 당사자나 기념사업회는 공론화된 이들의 글을 개인적인 것으로 보지 말고 먼져 이 사태에 대하여 알아보고 사과할 것이 있으면 사고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민종덕 동지는 정치적 선택이나 입장은 누고도 자유롭고 한석호 사무총장도 그럴 권리가 있으나 전태일재단,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걸고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내와 같이 전태일의 가치, 역사성, 상징성 등을 사유화하는 것이 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한석호 사무총장은 전태일재단, 전태일 이름이 아닌 개인의 이름으로 주장이나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더 이상 전태일이라는 엄중한 이름을 사적인 목적에 이용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전태일재단이 이런저런식으로 사무총장이 운영자금을 만들어내는 능력 때문이고 것을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나 이는 전태일 정신, 전태일의 가치, 전태일의 역사성 보다 재단 운영자금이 더 중요하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과연 이런 기획을 사전에 이사회서 논의하고 내락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 판단인지 밝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한석호 사무국장의 이전 문제까지 겹쳐 어려움에 봉착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일보든 어디든 노동문제에 대한 보도하는 것을 돕는 것은 필요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여전하고 아직은 조선일보의 태도나 역사에 대한 신뢰가 많이 부족한 것이 아닌 가 하는 판단이다.
불안전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상임집행 위원도 비판
<조선일보의 소위 ’12:88 노동시장’ 기획에 대하여>
1. 조선일보에서 ‘12 대 88, 쪼개진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는 기기사를 내고 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은 “아니 조선일보가 이런 기사를?” 하며 놀란다. 중소영세사업장의 현실, 그리고 비정규직의 현실에 대해 다루는 기사는 그 동안 조선일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의 대우조선해양 하청투쟁이 벌어졌을 때 조선일보가 그 투쟁을 비판했던 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조선일보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이 기획은 조선일보의 기획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상생임금협의회’의 결론에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하는 사전 작업이다. 조선일보는 ‘12 : 88 사회’라고 규정하는데, 이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의 언론형 버전이다.
2. 윤석열정부는 이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강조해왔다. 2022년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면서 운영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에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등장했고, 2023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상생임금위원회’ 역시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논의체라고 소개한다. 이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을 ‘노-노 간 착취’로 간주한다. 이 때 정부가 전제하는 착취자는 대공장 정규직이며,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기득권’을 갖게 된 이들이다. 그래서 정부는 ‘노조혐오’를 양산하고, 노조 대신 상생협력의 산업 생태계 조성을 주장하며, 대공장 정규직의 기득권 해체를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로 삼은 것이다.
3. 조선일보가 예전에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비판해놓고 지금에 와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원청과 하청의 임금비교를 통해 정규직의 고임금이 마치 비정규직 저임금의 원인인 것처럼 드러낸다. 비정규직 노동자일지라도 노조로 뭉쳐 투쟁하면 ‘기득권’이라고 간주하고, 투쟁이 아닌 ‘상생협의체’가 대안이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이후 2023년 2월에 만들어진 ‘상생협의체’를 자랑스럽게 소개했지만, 거기에 노조는 배제되고 오로지 원하청 사장들만 참여했다는 현실, 하청노동자 저임금 개선을 이야기했지만 오히려 저임금을 유지 강화하는 이주노동자 고용만 확대되었고, 재하도급을 최소화한다고 했지만 이름만 바뀐 프로젝트 협력사로 전환했을 뿐이라는 현실은 말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4. 조선일보와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12:88 사회)론은 그 설정부터 문제이다. 조선일보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노동조건의 격차는 정규직의 기득권 때문이 아니라 경제위기 이후에 지속된 노동의 불안정화 전략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거나 독점적 이윤을 가진 기업과 담합한 일부 노동자들 외의 대다수가 불안정노동자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현실의 노동시장은 ‘이중구조’가 아니라 무수한 분할과 노동관계의 은폐 등 복잡다단한 고용형태를 가진 ‘불안정화’이다. 그래서 철폐연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을 쓰지 않고 “노동의 불안정화”라고 말한다.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는 원인이 아니라, 이런 불안정화의 결과이다. 그나마 나은 조건에 있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들을 배제해야 하는 상태이다. 결국 문제는 노동자 간의 격차가 아니라, 노동자 전체를 불안정화하여 분할 통치하는 기업과, 불안정화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문제이다.
5. 아마도 조선일보가 앞장서서 분위기를 띄우고 난 후 정부와 상생임금위원회가 내놓을 안은 ‘상생협의체’와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일 것이다. 중소영세사업장에 대한 대책이나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제도적 대책도 조금은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노동자들은 이미 분명한 입장을 제기해왔다. 제도적 권리에서 배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5인미만 사업장이나 가사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제외, 20인 미만이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의 각종 예외조항들 등 기본적인 권리에서 기업 규모를 이유로 배제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투쟁했다. 그리고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결하여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에 대해 계속 거부하거나 비판했던 것은 정부와 조선일보였다.
6. 이런 요구에 더해 더 나아가야 한다. 고용의 불안정화로 인해 고용관계가 은폐되고 임금과 노동시간, 노조할 권리 등 기본적인 권리로부터 배제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재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노동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그들이 말하는 상생협의체 등 원청의 시혜에 기대거나 혹은 ‘특별법’을 통해 일부 권리만 시혜적으로 주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라는 입장에 근거하여 제도를 다시 구성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 변화는 자신의 삶을 불안정함과 권리배제를 가속화하는 지금의 구조를 넘어서기 위해 뭉치고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들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 이런 기획에 이름을 같이 걸고 있는 단체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본인들이 무엇에 동조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고 있을까.
*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댓글에 올릴 링크의 글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은 정말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는가 / 장귀연”을 참조하시면 될 듯. (매우 좋은 자료이니 많이 읽으시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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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정신은 무엇입니까?
1970년 11월 13일. 봉제노동자인 전태일의 분신은 당시 한국사회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폭로하고, 노동자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한국노동운동의 가장 오래된 원칙과 기풍을 만들어낸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전태일 이후의 민주노동운동에는 언제나 전태일의 이름이 자리했습니다. 불안정노동을 확대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구조를 왜곡해온 자본과 정권의 오랜 탄압에 맞서 투쟁했던 노동자들의 모든 역사에 전태일이 함께해왔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전태일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이유는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지닌 역사성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전태일 정신은 어느 한 조직이나 개인이 사유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태일재단’ 또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간 전태일재단의 행보나 관점에 이의가 있음에도 침묵하거나 비판을 자제해 온 다수는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거느리고 있는 역사성을 존중했던 것입니다.
전태일재단은 ‘조선일보 사태’를 계기로 역사적 선을 넘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오랜시간 동안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성을 왜곡하고 노동자 간의 갈등을 부추겨 온 대표적인 언론사입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왜곡된 원인진단과 반노동자적인 해법을 유포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진영이 그간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보이콧을 벌여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물며 그런 언론사의 창간을 함께 기념하는 것도 모자라, 공동사업을 기획하는 일을 두고만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조선일보가 전태일 정신을 운운하고 평가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라는 언론사의 ‘공동사업자’로서 전태일재단이 함께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현재 전태일재단은 전태일의 역사성을 모독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뒤를 따른 수많은 전태일들을 욕보이고, 나아가서는 전태일과 함께해 온 모든 노동자에게 깊은 분노와 수치심을 안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통해 전태일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태일재단은 조선일보와의 협업을 당장 중단하고 전태일재단에 대한 동지적 존중을 보내온 모든 노동자에게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합니다. 또한 이 ‘조직적인’ 사태를 기획하고 묵인해온 관계자들은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책임을 수행해야 마땅합니다. 끝으로, 노동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입장의 여부와는 달리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한가지는 있습니다. 노동자의 투쟁은 반드시 그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사 간의 대립은 악이요 노사 간의 상생이 선인 것이 아닙니다. 노동운동의 오늘은 노자 간의 투쟁과 타협에 따른 결과이자 과정이기에, 이를 이해관계나 분배의 양상에 따라 단선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전태일 이후의 민주노동운동이 오늘날의 노동 현실을 뼈아프게 인식해온 이유는, 치열한 논쟁과 평가를 통해 더 나은 내일을 열어가기 위함이지 풀빵을 나누지 않은 사람들을 색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노동운동에 대한 공적인 평가와 비판에 조심성과 엄중함이 따르는 것 또한 전태일 정신의 역사성에 대한 존중이자 성찰입니다.
전태일 정신은 무엇입니까?
전태일 정신은 노동자역사에 대한 책임입니다. 어떤 책임은 때때로 너무나 거대하기에 직책이나 개인이 함부로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갈등하면서도 동시에 연대하고 또 끝끝내 단결하는 투쟁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열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에게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답해야만 합니다. 전태일 정신은 무엇입니까?
2024.03.06. 노동자역사 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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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역사 ‘한내’ 는
학술연구 단체로 2008년에 만들어졌는 데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 대한 자료정리 차원에서 기록과 복원을 하여 보존하는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다. 노동운동가들과 연구자들이 함께 창립해 현재는 고양시에 자체 건물에 기록관과 연구실을 갖은 한국 최초의 노동자 역사 자료와 문서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다. 또 한내는 홈피에 자신들의 모금현황 내역을 공개하는 것으로 보아 재정도 투명하게 관리하는 곳으로 현재 대표는 양규헌 씨다.
이들의 출발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해 열사정신을 계승하자는 것에서 출발했다.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를 역사의 주체로 하여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역사 속에서 박제로 변해가는 열사정신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에게 어떻게 제대로 된 역사를 공유할 것인가 라는 목표와 고민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먼져 노동운동 관련 보관을 위한 모빌랙을 설치하고, 서가, 회의실, 전시실, 노동열사전시관을 마련한다. 연구사업으로는 현대자동차노동조합 20년사 용역사업을 수주한다. 그리고 이어 <전노협 백서>와 <가스공사노동조합사>까지 많은 노동운동역사을 정리하는 전문성을 인정받는 다.
이런 내용은 2008. 4. 8 한내 준비위원회 이승원 사무국장의 기록에서 인용했는 데 이후 유경순 연구위원장, 4명의 연구위원과 양돌규 연구부장 주관으로 제1차 연구위원회로 시작으로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전노협 시기 노동운동사에 대한 연구사업을 시기별, 주제별로 진행해왔으며 앞으로 ▲ 노동운동 역사자료의 수집과 정리 ▲ 노동사 연구 지원 ▲ 청소년 교육 및 문화사업 ▲ 열사정신 계승사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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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재단 관계자들께 호소합니다(3월 6일 민종덕)
친애하는 전태일재단 관계자 여러분!
저는 70, 80년대에 걸쳐 청계피복노조에서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이후 전태일기념사업회 시절 내내 기념사업회 상임이사직을 수행하며 전태일 운동을 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오직 전태일 정신 구현에 부족하지만 매진해온 당사자로서 최근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사태를 보며 참혹한 심정으로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지난 53년 동안 이 땅의 노동자를 비롯 민중, 뜻있는 시민, 지식인들이 피어린 투쟁을 통해 이뤄낸 가치체계이며 민중 민주운동의 상징입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이 자본과 권력의 탄압에 모든 것을 걸고 맞서 싸울 때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항상 노동자 대열 선봉에서 노동자를 엄호해온 노동자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전태일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그런 이름입니다.
조선일보는 3월 5일부터 전태일재단-조선일보 창간 104주년 공동기획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조선일보가 전태일이라는 민중운동의 가치체계와 상징을 극우 보수 파시즘에 이용하는 처사입니다. 따라서 전태일재단은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극우 보수 세력한테 상납하는 행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창간 104주년을 자랑하는 조선일보는 어떤 신문입니까?
익히 알다시피 조선일보는 일제하에서는 일본 천황폐하를 찬양했으며, 해방 후에는 극우 반공주의를 지향한 신문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정권 때에는 군부독재를 지원한 반면 민주화운동을 적대시한 신문입니다. 조선일보는 단순히 극우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략적인 기사를 통해 민주주의와 사회진보를 가로막았습니다.
조선일보는 노동자의 투쟁을 색깔론으로 적대시하는 것은 다반사며 노동자 조직을 조폭으로 매도하기도 하며 분신노동자를 향해 반인륜적인 기사도 서슴없이 쓰는 신문입니다. 조선일보의 폐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자본과 권력에 편에서 노동자 민중 운동을 적대시하는 신문 조선일보와 전태일재단이 공동으로 기사를 기획한다는 것은 전태일의 이름을 심히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혹자는 조선일보라는 최대의 신문을 활용해 노동자한테 유리한 기사를 쓰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일보의 본질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조선일보는 이런 기획기사를 정략적으로 생산하는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하필이면 전태일 이름을 붙여 기획하는 목적은 그동안 민중운동이 만들어낸 전태일이라는 가치체계와 상징을 혼란스럽게 하고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기사 “쪼개진 노동시장”(이중구조 노동시장) 역시 자본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궁극적인 책임은 자본에 있지 않고 귀족노조에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도출하기 위한 것입니다.
듣자하니 이번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사태는 전태일재단 공식회의에서 논의되어 진행한 것이 아니라 한석호 사무총장이 독단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한 개인이 전태일이라는 엄중한 이름을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유화한 것뿐만 아니라 조직을 통째로 갖다 바치는 행위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적인 훼절(毁節)은 봤지만 이번처럼 조직을 통째로 갖다 바치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역사에서 나라를 팔아먹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것을 직접 보지는 않았습니다.
한석호 총장은 그동안 조선일보와 여러 번 내통해 왔고, 그 결과 조선일보는 전면 인터뷰 기사를 써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사태의 전조였습니다. 즉 상당 기간 동안 준비해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태일재단 공식회의에 부의하지 않고 음모적으로 진행한 것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나 주장은 누구나 자유롭게 할 권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선택도 누구나 자유롭게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한석호 사무총장 역시 이러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태일재단,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전태일의 가치, 역사성, 상징성 등을 특정 개인이 사유화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조직의 논의구조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석호 사무총장은 전태일재단, 전태일 이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주의 주장을 내세우고 자신에 맞는 정치를 하십시오. 더 이상 전태일이라는 엄중한 이름을 사적인 목적에 이용하지 마십시오.
전태일재단 내에서 한석호 사무총장이 운영자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한석호 사무총장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한석호 사무총장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태일 정신, 전태일의 가치, 전태일의 역사성 보다 재단 운영자금이 더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1970년 전태일 분신 직후 이소선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살리기 위해 거액을 거부했습니다. 80년대 청계피복 노동자들은 전두환 정권의 탄압에 맨주먹으로 투쟁하면서도 오늘날 전태일재단의 물적 토대를 마련해낸 저력이 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후인가는 자명한 것입니다. 전태일 정신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청계피복노조와 전태일기념사업회 전임 간부 출신 자격으로 이번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사태’에 대해 전태일재단에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을 당장 중단하시오.
둘째, 이번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사태’를 초래하게 된 전후 사정을 소상하게 공개하십시오.
셋째, 이번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사태’로 깊은 분노와 수치심을 느끼는 모든 노동자는 물론 전태일을 존경하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한테 무릎 꿇고 사죄하십시오,
냇째, 이번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사태’를 기획하고 묵인해온 관계자들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십시오.
다섯째, 이와 같은 사태의 재발 방지는 물론 전태일재단이 거듭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시오.
2024년 3월 6일
전 청계피복노동조합 위원장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민종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