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55주기 추모

 형 전태일 55주기를 맞이하여

사랑하는 나의 전태일 형!

형의 55주기를 맞이하여 지난 일들을 뒤돌아보니 많은 감회가 스치고 지나갑니다. 무엇보다도 형이 점심을 굶는 어린 시다들을 위해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평화시장에서 쌍문동 집까지 걸어가던 그 밤이 생각나는군요.  그때 형과 나는 통행금지 시간을 넘기고 맨발로 아스팔트길을 정신없이 달리던 기억이 어제 일인 듯 생생합니다. 그 밤 저 멀리 도봉산 너머에서 빛나던 무수한 별빛들은 오늘 밤에도 어느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시절 형이 품었던 별빛 같은 순결한 정신은 변함이 없을진대 인간사에 찌든 우리들은 허망한 욕망에 덧씌워져 흐려지고 나태해져 ‘풀빵’이라는 이름만 현란해졌습니다. 55년 전 형과 바보회 친구들은 노동자를 위한 법 근로기준법이 있음에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지켜지지 않아 이 법을 지키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이 근로기준법은 지켜지지 않아 노동자를 위하는 것처럼 장식품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면서 형은 함께 산화했습니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물론 그동안 수많은 전태일이 투쟁한 결과 노동자의 권익은 신장되었고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도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은 사각지대가 있는가 하면, 자본의 착취구조가 정교화 되어 노동자들은 점점 더 분화되고 개체화되어 인간성을 말살당하고 있습니다. 산재 사망률은 여전히 높고 프랫폼 노동,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일하다 지쳐서 죽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55년 전, 노동자의 인간선언을 한 전태일 정신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길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모색해야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전태일 형은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된 투쟁을 통해서 인간답게 살기를 원했던 것이지, 결코 자신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숭배하라고 젊은 육신을 불태우지 않았다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일각에서 11월 13일 전태일 기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요구를 정치권에 하는 것을 보고 유족의 일원으로써 당황스럽고 민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월 13일 국가기념일 지정 요구는 전태일 정신 실천 운동도 아니요,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몇몇 사람이 전태일 이름을 이용한 정치적 망상의 발로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만약 이처럼 추상적이고 막연한 의미를 부여해서 전태일 기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다면 그 밖의 수많은 열사, 애국 애족 지사, 위인들의 기일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고 나선다면 1년 365일이 다 국가기념일이 될 것입니다(청색은 편집자가)  

부디 무모하고 민망한 11월 13일 전태일 기일을 국가기념일 지정 요구를 거두어주실 것을 유족으로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매년 전태일 형을 잊지 않고 먼 곳까지 찾아와 주셔서 추모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불편한 말씀으로 인해 마음 상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저의 부족함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11월 13일 유족 대표 전태삼 拜

기독청년들도 전태일 추모 예배 드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김종생 총무) 교회와사회위원회(이재호 위원장)와 청년위원회(조은아 위원장)는 국내 에큐메니컬 청년·노동선교 단체들과 함께 기독청년 전태일 55주기 기념예배를 드렸다. 이번 예배는 특별히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등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 노동자들의 현실을 기억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바라며 기도하는 자리로 마련된 것이다.

현장 증언을 맡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삼성화재애니카지부 박경재 사무국장은, 회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면서도 서류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산재·고용보험·퇴직금 등 기본적인 보호에서 배제된 교통사고 조사원들의 현실을 증언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근로기준법 법전’을 상징하는 피켓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이름을 빈 페이지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법 밖에 놓여 있던 수많은 노동자의 이름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의 새로운 페이지를 우리의 연대와 투쟁으로 써 내려가겠다”는 신앙의 결단을 고백했다.

NCCK 교회와사회위원회와 청년위원회는 전태일 열사의 신앙과 삶을 기억하며, 오늘의 일터와 교회에서 노동을 존중하고 연대하는 실천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후 시신을 지킨 것은 서울대학교 법대 학생들이지만 장례식과 이를 사회화하는 과정은 한기독학생총연맹으로 이후 한국기독청년협의회(1976년)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는 데 당시 새문안교회 제일교회등 청년 대학부 학생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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