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의 거꾸로 읽는 교회사 1

                                                     한국교회사 강좌 I

   
 

정병준교수(장신대, 프린스턴석사, 멜버른신학대학 박사, 서울 장신대)

1.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역사는 “과거에 행해진 인간의 행위에 대한 탐구 혹은 기록”을 의미합니다. 즉 과거의 사건들 속에서 의미를 찾고 일정한 원리와 법칙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에서 역사가 중요하냐? 대단히 중요합니다. 역사가 없으면 기독교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역사는 기독교 신앙을 형성했습니다. 성경은 대부분이 역사적 사건을 신앙의 눈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세속역사와 기독교역사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세속역사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사건만을 다룹니다. 역사는 인간의 활동무대입니다. 인간의 진보가 역사의 의미와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속역사관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1)역사는 진보한다. 막스, 진화론자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19세기 20세기 초 많은 서양 사람들은 서양문화가 확대되면 하나님 나라가 온다고 믿었습니다. (2) 역사는 타락하고 소멸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스팽글러 같은 사람은 서구문명의 몰락을 예언했습니다. (3) 역사는 나선형으로 빙빙 돌며서 조금씩 진보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여러분 시간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순간의 연속이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시계를 차고 바쁘다고 하면서 시간을 잡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시간이 사람에게 가져오는 것은 죽음입니다. 원래 시간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로 인해 시간이 타락하면서 시간은 죽음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관은 이 역사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은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역사 안으로 들어오시면서 타락한 역사가 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역사가 하나님을 품으면서 거룩해집니다. 죄인인 이간이 예수님을 품으면서 인간실존의 참모습을 회복하게 됩니다.

무당이 굿거리 하는 것을 보면 둥그렇게 굿판을 만들고 뛰면서 돌면서 굿을 합니다. 빙빙 도는 것이 굿판의 원리입니다. 방향이 없습니다. 별을 보고 점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별자리는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빙빙 돕니다. 불교와 흰두교는 윤회사상이 있습니다. 그 원리가 도는 것입니다. 고대종교와 동양종교의 특징은 순환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연은 순환합니다. 별자리도 돌고, 하루도 아침-점심-저녁, 계절도 봄-여름-가을-겨울 돕니다. 그래서 계시 종교가 아닌 자연종교는 모두 이러한 순환의 원리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성육신 사건은 이러한 순환하는 역사에 방향을 제공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것을 알려줍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도 시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영원히 사는 소망을 줍니다. 주님의 재림은 인간의 역사가 도는 것이 아니고 완성을 향해 나간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에서 빙빙 도는 시간관을 깨뜨리고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개념을 최초로 제시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적 공허입니다.

역사의 목적은 주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입니다. 알곡이 자라듯이 하나님 나라는 자랍니다. 그러나 가라지도 함께 자랍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낙관론도 아니고 비관론도 아닙니다. 신앙 안에 낙관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역사는 성경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는 교과서입니다. ⑴ 역사를 공부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역사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 교회,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시고 구원하셨는지 배울 수가 있습니다. 과거에 선조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⑵ 역사를 공부하면 신앙이 자랍니다. 여러분 전통신앙이라는 것은 변함없이 내려오는 신앙입니다. 진리는 불변입니다. 사이비 이단들의 가르침은 역사성이 없기 때문에 자기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합니다. 역사공부는 신앙의 진리를 수호하는 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2. 한국종교문화와 기독교의 접촉

2-1. 한국의 종교문화

한국인의 종교심성은 세 가지 층이 있습니다. ⑴ 가장 바깥층은 기독교 문화입니다. 1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조국의 근대화와 동반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전 인구의 1/4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종교사회학적으로 보면 우리 국민의 심층에 있는 전통종교문화와 기독교가 만났기 때문에 이런 성장이 이루어 진 것이고, 또 일제식민지, 한국전쟁, 경제성장 같은 급변하는 외부적 요인이 교회성장에 또 영향을 주었습니다.

⑵ 한국인의 종교심성의 두 번째 층은 유교문화입니다. 유교는 이조 500년동안 사대부 신분사회를 지탱해오던 통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그래서 한국기독교가 성장하는데 장애가 되기도 했지만 또 한편, 한국교회 안에서 신분관계, 윤리구조, 정신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경전을 소중하게 여기는 전통을 한국교회에 남겨주었습니다.

⑶ 한국인의 종교심성의 첫 번째 층은 불교문화입니다.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약1,000년 동안 한국민의 종교심성을 지배해 왔고 많은 문화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불교는 한국인에게 윤회와 해탈의 구원관과 내세관을 형성했고, 자비사상과 자기 비움의 윤리관을 형성했습니다.

⑷ 한국인의 심성의 저 밑바닥에는 샤머니즘(무속신앙)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샤마니즘의 목적은 이 땅에서 물질적인 건강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샤머니즘에 의하면, 이 세상에 있는 영들은 착한 영, 나쁜 영이 따로 없습니다. 기분이 나쁘면 가난, 병, 재앙을 가져오고, 기분이 좋으면 부와 건강과 평화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무당들은 귀신을 잘 달래서 귀신과 사람 사이를 평화롭게 해주고, 또 사람들 사이에 맺힌 한도 풀어주는 것입니다. 샤머니즘에는 이승과 저승이 정확하게 분리되지를 않습니다.

샤머니즘은 한국 기독교 안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특징은 ① 기복사상이 핵심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제물도 바치고 귀신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일부 사람들은 물질적 복을 받기 위해 교회 나가고 헌금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헌금하고 기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을 조정해서 받는다고 생각을 해요. 이것은 무당종교이지 기독교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헌금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하는 것이지 복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② 종교적 의타심이 강합니다. 신(神)과 나 사이에 중재자인 무당에게 모든 것을 의존합니다. 그래서 주체적인 신앙심이 없어요. 꼭 목사가 기도해야 병이 낫고 자기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듣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에 들은 말입니다만, 시골에서는 소가 새끼를 낳는데 목사님이 오셔서 소에게 안수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기 믿음을 세우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바로 샤머니즘입니다.

목회자를 신격화하는 것도 바로 무당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단들을 쫓아다니고 기도발 세다고 소문난 사람을 쫓아다니는 것도 같은 현상입니다. ③ 복의 개념이 아주 이기적입니다. 나와 가족의 건강, 장수, 소원성취에만 소원이 국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놓고 무당 찾는 사람 보았습니까? 여러분 사극 보면 짚으로 인형 만들어 놓고 바늘로 꾹꾹 찌르면서 저주하는 것 보셨지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목적을 위해 수단을 함부로 쓰는 것 이것도 샤머니즘의 영향입니다. ④ 예언하고 신탁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신유 은사 집회에 가보면 구원의 복음, 하나님과 나 사이의 영성의 성장은 말하지 않고 자꾸 신비로운 능력, 은사를 강조합니다. 또 기도해서 개인의 미래를 점쳐줍니다. 이것도 샤머니즘의 영향입니다.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 신앙을 사용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복음은 진공상태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한국인의 종교심성 안에 떨어져 자라난 것입니다. 이제부터 기독교가 어떻게 우리민족과 접촉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2. 한국문화와 기독교의 접촉
그림 1

⑴ 기독교가 한국문화와 접촉한 것은 아마 6세기경 통일신라시대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주후 5세기경 페르시아에는 네스토리안(Nestorian)이라는 기독교 종파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기독교 이단으로 낙인이 찍혔는데 이 사람들이 중국에 최초로 선교사를 보내서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선교를 했습니다. <그림1>은 경교 사람들이 781년에 중국에 세운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입니다. 6세기경 통일신라가 당나라와 활발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졌는데, 일부 학자들은 경교가 불교문화와 접목해서그림2 한국에 소개되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 증거로 1956년 경주에서 출토된 6세기경의 돌십자가<그림2>와 여러 가지 자료를 제시했습니다.

(2) 두 번째로 한국에 기독교가 접촉한 것은 불행하게도 임진왜란 때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천주교회는 예수회를 조직했고 사비에르(Xavier) 선교사가 일본에 와서 많은 신앙인을 얻었습니다. 도요또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정벌을 위해 25만의 군사를 보냈는데 가또기요마사(가등청정)은 불교군사를 이끌었고, 고니시 유키나카(少西行長)는 18,000명이 천주교인 군사를 이끌었습니다. 이들은 침략 깃발에 십자가를 그리고 조선을 침공했습니다. 이때 종군신부였던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가 1594년 12월에 와서 경남웅천에 와서 머물렀습니다. 이 사람이 한국에 발을 들인 최초의 성직자입니다. 훗날 경남 웅천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이 태어나게 됩니다.

▶ 천주교와의 접촉

<그림3>북경북천주당16세기 예수회 신부들은 또 중국에서 선교했습니다. 그들은 서양의 과학, 천문학, 지도, 기독교 서적을 한문으로 번역했습니다. 중국에 온 조선의 사신들이 이 서적을 한국에 전했습니다. 18세기에 조선은 사색당파 싸움으로 혼란스럽던 때입니다. 이때 남인계통의 유학자들이 학문적인 관심으로 서학을 연구하다가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1784년 2월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게 됩니다. 이날이 한국천주교회의 생일입니다. 그리고 천주교가 국내에서 서서히 전파되었습니다. 그러자 정치적 반대파인 노론들이 남인을 제거하기 위해 천주교는 임금도 없고 아비도 없는 무군무부의 종교라고 몰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조상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탄압은 대원군까지 이어졌고 100년 동안 천주교회는 약 1만 명의 순교자를 배출했습니다.

예수교 선교사들은 중국문화를 포용했고 조상제사를 인정했습니다. 그 후에 프란체스카 수도회 선교사들이 중국에 와서 이것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황청은 1715년에 조상제사를 금지했고 1773년 예수회를 해산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천주교회는 조상제사를 금했기 때문에 중국정부의 박해를 받았고, 조선 천주교회도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조상제사문제로 순교자를 배출한 천주교가 지금 조상제사를 허용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일제시대 1936년 교황청은 신사참배가 우상숭배가 아니고 국가의식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회는 가장 먼저 신사참배를 시작했습니다. 신사참배는 하면서 조상제사를 금하는 것은 모순이지요. 그래서 천주교 가정에서 제사가 허용되기 시작했습니다.

▶ 개신교와의 접촉

개신교회가 천주교회와 크게 다른 점은 성경을 중요시한다는 점입니다. 천주교회는 <예전중심의 종교>라고 한다면 개신교회는 <성경중심의 종교>입니다. 한국천주교회의 생일은 이승훈이 영세 받은 날짜입니다. 즉 예전이 있어야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천주교회는 7개의 성례가 있습니다. ⑴ 성세성사는 세례인데 세례를 받아야 원죄가 없어진다고 봅니다. ⑵ 견진성사(입교)는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이 신앙고백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신부가 성령을 나누어주는 의식입니다. 개신교의 입교하고 비슷합니다. ⑶ 고백성사(죄고백)는 세례 받은 교인이 원죄는 없지만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면 신부를 찾아가서 죄를 고백합니다. 신부는 주님이름으로 그 죄를 사해주고 그 대신 특정한 공로를 쌓도록 과제를 줍니다. 이것을 보속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고해자는 그 과제를 다 수행하고 나서 양심에 자유를 얻게 됩니다. ⑷ 성체성사(성만찬)-천주교인은 매주 미사에 참석해서 예수님의 피와 살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것을 어기는 것은 큰 죄에 해당합니다. ⑸ 종부성사는 병들어 임종하기 직전에 있는 환자의 몸에 기름을 뿌려 죄사함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⑹ 신품성사는 신부에게 서품을 내리는 것입니다. ⑺ 혼배성사(결혼)는 결혼식입니다. 천주교인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7개의 성례 안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신부와 예전을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림 4 한국개신교는 선교사가 오기 전에 성경이 들어옵니다. 한국에 첫발을 디딘 최초의 개신교 성직자는 칼 구츨라프라고 하는 독일목사입니다. 그는 중국선교사로 있다가 1832년 7월 충청도 홍주 앞에 있는 고대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한국인을 위해 세 가지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1) 중국어 성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2) 생명의 양식과 함께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감자씨를 나우어주고 감자 재배법을 알려주었습니다. (3) 주기도문을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떠났습니다.

그림 5 두 번째로 성경을 전해준 사람은 로버트 토마스 목사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중국에서 한국인 천주교인을 만나서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1865년 9월에 서해안 백령도에 와서 목숨을 걸고 한문성경 200권을 나누어 주고 한국말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북경에 가서 다시 한국 올 기회를 찾다가 그 다음해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한국에 간다는 말을 듣고 통역관으로 자원해서 대동강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통상을 거절했습니다. 제너럴셔먼호는 대포와 총을 쏘면서 평양으로 접근했고 많은 사람이 살상을 당했습니다. 썰물이 되어 배가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타서 평양 관민은 불로 배를 태웠습니다. 승무원들이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토마스는 성경을 배 밖으로 던지다가 체포되어 1866년 9월 2일 27세의 나이로 참수되어, 한국최초의 개신교 순교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토마스 목사가 과연 순교자인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은 것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당시 토마스를 처형했던 박춘권은 토마스 목사가 죽으면서 전해준 신약성서 한 권을 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박춘권은 예수를 믿고 훗날 안주교회의 “영수”가 되었습니다. 영수는 장로와 비슷한 직분입니다. 박춘권의 조카 이영태는 훗날그림 6 대동강 1890년 한국어 성경번역위원이 됩니다. 그 당시는 영문주사였던 박영식은 그 성경을 찢어서 벽지를 발랐습니다. 그러다보니 누웠을 때나 일어날 때나 성경을 한자 한자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이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토마스의 피를 받은 평양은 훗날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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