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비정상의 정상화의 주체 문제

한자 불(不)의 의미는 ”아니다. 안된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비(非)자도 아니다. ”틀리다“ 라는 의미로 쓰인다. 문제는 어떤 현상이나 조건이 정상이 아니라고 할 때에 그것을 규정하는 주체의 문제가 있다. 예을 들어 질병 상태는 국가적 공인을 갖은 의료인이 판단하기에 권위가 있다. 그러나 종교안에서의 진단이나 규정은 그 주체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교파도 나뉜 것이고 교회도 여럿이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현상이나 어떤 정치적 문제에 대한 진단이나 평가는 그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백가쟁명식의 진단이 나오기에 잘봐야 한다

정당이 많은 것도 그렇고 정치나 학문도 보수, 중도, 진보에 극우, 극좌등으로 나눠지는 것으로 이 의미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이를 2024년 12월의 한국 정치 사회현상으로 갖아와 보자면 보자면 여러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인 혹은 지도자는 주관적 감성이나 이익에 우선하는 시각이 아닌 객관적인 분석에 따른 판단이 있어야지 그렇치 않으면 자신이 인도하는 교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나타난 현상을 통하여 우리 목회자들 혹은 지도자들의 인식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것들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이번 123 계엄 소동에 대하여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실제 그대로 이뤄졌을 경우를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분들이 많다. 여전히 국법상 대통령으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기에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남북대치 상황으로 인하여 국군통수권과 강력하다 못해 거의 제왕적 권위의 대통령제에 대한 폐해를 본 것이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된 영국, 프랑스, 카나다, 호주나 일본등은 거의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은 연방제 성격으로 강력한 대통령제를 유지하나 상하원제도를 둬 그나마 의회의 내부 견제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87년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아 여러면에서 한번 손을 봐야 한다는 말들이 있어 왔다. 헌법도 그렇고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비하여 너무 낡은 제도라는 비판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번에 의회를 여당이 다수였다면 이렇게 발빠르게 계엄해제 결의가 가능했을 까 하는 생각이다. 여권은 지금도 탄핵을 망설이고 있는 데 이는 국가나 국민이 우선이 아니라 자신과 당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삼권분립을 채택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한 것이다.

모두가 진보하는 시간이 되야 

이번에 돋보이는 현상은 그동안 여권을 옹호하였던 조중동마져 등을 돌렸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중파나 언론들도 앞다투워 윤석열대통령의 무리수를 비판 중이다. 여기서 까지 그런 말이나 내용은 더 반복하고 싶지 않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누구를 비난하는 것 보다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 가를 찾아보자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그동안 거대 자본에 잠식된 언론재벌들의 횡포로 인하여 국민들은 작은 인터넷언론들인 오마이나 민들레등을 위시하고 서울의 소리나 뉴탐사, 매불쇼같은 유투브에 더 관심들을 갖고 정보를 취득하고 지지자들이 되어 후원한다.

그러나 보니 진보나 보수도 자기들도 경쟁을 넘어 분쟁(더 탐사와 뉴탐사)이 나고 여기에 가세하여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도 그런 소리를 듣는 곳 중의 하나다. 분명한 것은 정치 유투버들이 생존을 위해서 래거시 미디어들이 사리는 위험하고 극한 곳 까지 접근하여 구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위험부담을 넘어 사생활 침해같은 청담동 술자리 건도 이 나오는 데 이건 당사자들의 법적인 해결이나 독자들이 판단하면 될 문제를 김용민목사가 무슨 이유로 개입하는 지 알 수 없다는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따라서 어느 언론이던지 유투버의 말이든지 듣고 참조하는 것이지 과도한 청취나 소위 신자(지지자를 넘어 돈도 내고 전파자가 되는 것)은 금물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나 평범한 교인들이 아주 편향된 사고를 하는 뒷면에는 바로 이런 유튜버들의 말이나 방송만 청취하기에 그렇다는 보고도 있다. 따라서 성경에도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  고 했듯이 들을 때도 여러 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것을 종합 판단할 수 있는 내부 장치(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한다. 그렇치 않고 자기 알량한 지식이나 경험, 성향에 의존한 감성적인 태도는 개인 의견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앙과 같은 자기 확신을 세상 이치에다 갖다대는 게 목회자들과 신앙좋은 분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 점은 보수나 진보 똑같이 비판받아야 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한마디로 말해서 독서와 인문학적 소양의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하겠다. 평범한 신앙생활에는 성경보고 그 말씀대로 살아도 그만이지 공부많이 하고 성경구절 암기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니니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믿음으로 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지도자는 그래서는 안된다 성경을 더 공부하고 깊이 있게 보고 지도해야 한다. 일반 성도들이야 그럴 필요가 없지만 지도자는 그래서는 안된다.

   
 

교회가 너무 나설 일 없다.

 

그런데 이번 123 사태후 SNS에서 가장 눈여겨 봐지는 문구가 있다. 그것은 “책 안 읽으면 누구처럼 된다 ” 라는 말이다. 계엄에 대한 법률이나 탄핵에 대한 규정이 어떻고 그걸 누가 어떻게 어겼냐? 하는 문제는 앞으로 조사해서 처벌하면 될 일이다. 이 일에 너무 과도하게 교회나 목회자들이 몰입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안할 때 그리스도인은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파수꾼과 같은 나팔을 부는 것이다 지금은 정당이나 언론 정부가 나름  잘하고 있을 때는 우리는 들뜨지 말고 일상으로 돌아와 여기서 우리 교회나 지도자들이 무엇을 얻어야 하는 가를 찿아야 한다. 지금 고등학생들 까지 나서 계엄반대나 탄핵요구 집회들를 하는데 잘한다고 하고 권할 바가 아니다.

지도자는 늘 배우고 자신은 부족하다는 목마름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되야 한다. 좋은 지도자란 폭넓은 인문 소양을 갖은 자여야 하고 반대자들 의견을 들어도 감정이 아닌 논리로 반박할 수 있는 지성을 갖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지성이 전무한 게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니 예산깍고 지 사람들 탄핵하고 믿었던 한동훈이 까지 말안들어 화김에 저지렀다는 분석도 있다. 교회 안에도 모든 것을 자기 신앙의 잣대나 성경이 뭐란다는 식으로 치환하려는 반지성주가 문제다. 교회 분쟁도 초신자나 평집사나 믿음 시원찮은 이들이 하는 게 아니고 주로 목사나 장로가 하는 데 쿠테타도 고급 장교들이 하지 하사관이나 사병들이 하는 게 아니다.

진보 기독교는 이미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하고 참여한 경험들이 있다. 거기 앞장선 분들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가인권위 그 외 다양한 국정분야에 고위직으로 참여했다. 최초의 정권 교체로 김대중 대통령은 진보기독교에게 정권을 창출했으니 도와 달라고 해서 참여했다고 했다(강문규 새마을운동) 김상근목사(제2 건국) 박형규목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재정신부(통일부 장관) 김성재목사(문광부 장관)등 이 참여를 했는 데 그 결과 진보 기독교가 정치 권력을 견제, 감시 비판하는 자리는 내려 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민운동은 몰락 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기독교는 어떤 정부가 서던 비판자의 지세로 견제자로 시민들과 함께 중도를 지켜야 한다. 

 

지식인 그 두 얼굴

 

한 때 우리시대 지식인 교수들인 김형석, 김동길 박사도 그렇고 젊은 세대 한 때 좌파 지식인이라는 강준만, 고성국박사을 보면 과연 그 말도 옳다는 생각이다. 어떤 목표가 있고 주어진 책임이 있는 자는 더 이상의 이론이나 복잡한 것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대로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타인과 논쟁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가르치려는 사람은 계속해서 공부하고 반대자 적대자들과 겨뤄야 한다. 초대교회 신학을 변증론자라고 하는 데 성경을 다른 시각이나 논리고 보거나 해석하는 것을 다시 성경을 들어 반박하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교계 풍토를 보면 예을 들어 동성애나 쿼어신학을 주창하는 사람에 대하여 신학적 논쟁에 학자들은 없고 목회자나 약사, 의사 시민운동가 들이 나서서 반대한다. 그리고 논쟁이 아닌 정죄를 하고 법을 만들어 억압하고 있다는 말들이다. 자기가 믿고 신념하는 바라면 논쟁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들어보고 반박하고 그리고 거기서 얻어지는 결론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도 그렇고 감리교서는 목사를 면직하고 온갖 규정으로 재단을 하는 데 이게 과연 최선의 길인가? 하는 생각이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 교훈을 최종의 가르침으로 받아드리되 다른 면도 면밀히 봐야 하고 특히 교단적으로는 임기를 갖은 분들이 타인을 함부로 남을 정죄하거나 영적 살인을 제도로 억압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리오를 종교재판에 회부한 일이나 종의 기원이나 지구나 우주의 역사나 생성론과 같은 깊은 과학의 지식의 세계도 그렇고 길게 보고 가야 하는 것인게 이후 모든 게 뒤짚혔기 때문이다. 너무 간단히 빨리 결정을 하려는 경향은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층에서 고 임보라목사 기념사업회을 사후 1년 만에 하자고 하는 것도 그렇고 너무 쉽고 감성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이다.

   
 

결론과 평가

이번에 123 계엄이 6시간만에 해제되고 날이 밝은 4일(수) 에 모두 어안이 벙벙한 때에 우리교단은 발빠르게 총회장 목회서신 성격으로 입장문을 냈다. 이를 두고 너무 약하다는 니 하는 말에서 부터 왜 정치에 참여하는 냐? 하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장로교단중 장자이며 지금 까지 그래도 중도에서 복음주의 교단들을 연합하는 역할을 하는 우리교단으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지라고 이를 순화하고 모두가 함께 가는 중도의 길을 가야 하는 숙명이다. 이후 성결교단 합동교단 감리교단에서 성명서가 나왔지만 이미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뒷북치는 결과라는 평이다.

우리 교단 총회장 명의의 시국진단에 대한 목회서신이야 말로 개신교단들 가운데 가장 먼져 그리고 교단의 비중에 맞게 중후한 내용을 담았다고 평가한다. 서두에 교단 헌법을 인용한 것이나 책임자을 정확히 적시하고 사과와 해명을 요구한 점도 돋보인다. 비난하기 바쁘 가운데서도 국민에 대하여 해명하고 나라 경제를 걱정한 대목이다. 앞으로도 우리교단은 이런 기조에서 역할을 해야 지 심판자로 서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참여하고 비판하고 지지하는 것은 자유이나 교단의 조직원으로는 목회자들이나 지도자들은 언행에 유의하고 총회와 함께 가기를 바란다. 

10일에는 총회장 중점 사업인 전도 정책 세미나가 청주에서부터 시작되 지도자들 250여명이 참석하는 등 성황리에 가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걸 총회장이 직접 주제하며 해 지역 노회장들과 지도자들과 대화의 자리를 갖고 경청하는 자세를 갖는 다고 하니 앞으로 남은 일정에도 많이 참석들 하여 우리 총회를 위한 발전 방향을 조언해주시고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주체(主體)라는 뜻은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일을 주도해 나가는 세력, 또는 그러한 집단“ 이라고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의 주체는 다수 국민이 아니다. 교단도 마찮가지다. 주체는 일을 주도적으로 풀어가려는 사람이 주체지 논평자들이나 방관자 비판자를 주체라 할 순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 지금이 비정상인이라면 정상화는 주장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그 주체의 것이다. 그것의 정상화를 위하여 생각하고 운동하고 일하는 사람의 것이다. 지금의 비정상의 정상화는 정치는 정치로 푸는 것이다 대의제인 우리는 지역과 비례로 뽑힌 의원들이 잘하고 있으니 지지와 격려만 해도 된다. 그런데 여기다가 개인들의 이해를 대 복잡해지는 것이다. 국힘 의원증에도 탄핵은 찬성하지만 이재명이 사법리스크를 벗어나려고 탄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계엄령 이전의 얘기에 불과하다. 반칙을 한 선수를 끌어내자는 관객들의 요구이고 권리다.

민심은 천심이듯이 어떤 유불리를 따져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막거나 지연시킬 것은 없다 윤통 스스로의 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일을 저지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재명이 유죄를 피하려고 대법 판결 전 대선을 치루려는 말을 만들어 내여 현실을 왜곡시키고 키며 지지자들과 시민들을 속여서는 안된다.  이제는  앞으로 누가 집권을 하든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오직 제도개혁만 해야 한다. 지금 경제문제나 특히 국제화 시대에 이런 리스크는 필연적으로 외환이나 여행등에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 부총리 최상목은 이 계엄을 가장 반대하고 사표를 낸다는 것은 한은 총재가 겨우 말렸다고 하는 데 이것도 두고 볼일 이다.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