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민중 총 궐기, 시청 앞에서 열려
지난 11월 14일에 열렸던 “민중총궐기” 집회이후 4주 만에 다시 2차로 열린 집회다. 백남기 농민에게 강한 불대포로 정조준하여 맞고 쓰러졌는 데도 지속적으로 물을 발사했다. 결국 그 살인 물대포는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지금 서울대 병원에서 사경을 헤메고 있다.
![]() |
||
그런데도 경찰책임자는 사과한마디 없고 대통령도 시위대를 IS에 빗대어 남의 나라 사람 얘기하듯 하였다. 이 사건은 경찰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쏜 물대포로 인한 살인이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뻔뻔스럽게 집회불가엄포와 폭력시위 타령으로 몇주을 보냈다.
그래서 제 2의 민중궐기를 위한 집회를 신고하자 경찰은 집회를 불허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평화시위를 보장하겠으니 허락을 하라고 했다. 거기다가 민변의 제소로 서울 행정법원은 경찰의 집회불허는 재량권남용으로 보고 집회를 허가했다. 결국 야당의원들 까지 나서서 관철한 집회다.
![]() |
||
혹시나 있을 경찰의 위압적인 진압이나 폭력을 방지 하지 위하여 각 종교의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나섰고 야당의 대표와 국회의원들도 직접 현장에 나섰다. 토요일 오후 3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시청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성공회 성당 앞에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상임의장 정금교 목사) 주관으로 ‘국가 폭력 중단과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는 기독교 비상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 |
||
기도회 참가자 100여 명은 대로로 나와 시청앞 집회장소로 가두행진을 하였다. 앞서 온 청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들어가자 이미 프라지호탤 도로까지 점거해서 전체 시청 앞을 메웠다. 행사는 1, 2부로 진행하였고 참가자들은 백남기 농민이 입원중이 서울대학 병원이 있는 대학로로 출발하였다. 종로의 편도를 걸어서 가는 동안 참가단체들의 퍼포몬스로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외에도 개신교와 불교, 천도교 등 5개 종교에 소속된 25개 단체는 오후 2시 30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시위대는 대학로에서 시청 앞까지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도 87년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여 6.29를 쟁취할 당시만큼 모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모든 행사와 시위에서 불상사는 없었고 평화적 시위였다. 모두 제각기 다른 마스크와 가면을 갖고 나왔고 길거리에서 가면을 파는 행상도 있었다. 그 이유는 경찰이 복면을 한자는 구속한다느니 하는 무뢰함에 저항하기 위하여 가면을 갖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시위문화가 한단계 발전하고 다양화 되는 느낌이다. 참가자들도 어른 아니 할 것 없이 다양한 계층이 참가를 한 것으로 보인다. 농민들 상당수는 마대자루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 외에도 사회적 소수자들도 깃발을 들고 발언을 하고 있었다.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는 정부와 지도자들을 향하여 광장에서 외치고 있었다. 답답하여 나온 이들 힘을 보내려고 나온 이들, 이 정부를 정신차리게 해주기 위해서 나온 이들, 백남기 농민의 쾌차를 빌기 위하여 나온 이들로 이날 집회는 약 3만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 |
||
대학로에서는 백남기 씨의 자녀들이 차에 올라 인사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닌 감사와 고마움에 대한 응답이라고 했다. 8시 30분 사회자의 부탁으로 집회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한 건의 사고도 없이 헤어졌다. 각 참가 단체와 지역에서는 자기들이 주장하는 바를 피켓으로 만들어서 가지고 나왔다. 특히 최근 정부의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구호도 많이 보였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