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송목사 평전 영문판 나와

               추모는 고인의 유지를 받는 것 

   
 

지난 2월 19일(금) 오후 3-5시 기독교회관 2층에서 조지송 목사 관련 추모행사가 열렸다. 20일(토)에는 파주 동화 경모 공원  묘역에서는 "일하는 예수회" (회장 신승원목사) 주관으로 영등포교회 김갑준권사와 도림교회 박영혜장로의 제안으로 비석에 “산업선교 목사 노동자들의 벗”  이라고 새겼다  

추모 행사 1부는 경건회로 조지송 기념사업회 대표 이근복목사 인도로 PCK 기획국 채송희목사가 기도하고 영등포산선 전 실무자 왕채숙권사가 성경 히11:4 을 봉독하였다. 그리고 장신대 전 학장 서정운목사가 "그가 죽었으나 지금도 말하느니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그리고 영산 총무을 지낸 손은하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2부 출판기념회는 이화여대 장윤재 교수 사회로 영문판 출판기념회로 번역서가 나오기 까지 고 김용복 박사의 노고가 컸다는 것과 이 일을 감당한 조지송 기념사업회 부회장 박송아권사의 경과보고가 있었다. 또예고한 대로 순서자들이 축하와 보고, 회고를 나눴다. 3부는 신영철 전 산선간사의 사회로 단국대 김이경박사가 “한국 최초의 신협 영등포 산선” 에 대하여 발표했고 호신대 교회사 교수 최상도목사가 논찬을 했다. 

   
                                                                  * 파주 동화 경모 공원 묘역  

이번 행사의 하이 라이트는 조지송목사 평전을  CWM과 영등포산선이 주선하여 영어로 번역한 후 영국 포트레스 출판사에서 낸 것을 기념한 것이다. 영문 번역은 송다윗 선생이 에티터는 호주의 시오네 하베아 박사가 했다. 하베아박사는 이번에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출판회에서 감동적인 소감을 말하고 묘소까지 참배를 했는 데 6번 이 책을 잃고 큰  영감으로 작업했다고 고백했다.

조지송목사의 영문판 출판 기념식은 CWM 총무 금주섭박사와 스위스 주재 ILO의 고용정책국장 이상헌선생, 독일인 루츠 드레서(한국명 도여수선교사)는 영상 축하 글을 보내고 행사 전남 소천하여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되여 그를 아는 분들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 또 평전 집필자 서덕석목사와 번역자 송다윗선생, 이삼열박사와 김종생 NCCK 총무, 김영걸 총회 에큐메니칼 위원장(부총회장 겸임)이 축하의 인사를 하였다.

조지송목사는 누구인가?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산증인이자 PCK 총회 전도부에서 산업전도 기관목사로 안수를 받은 바 있는 조지송목사는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분으로 김포공한 근처 미군부대서 일하면서 영어를 배우고 군목실에서 근무했다. 그후 밤에는 서울장신에서 낮에는 경기대 국문과를 동시에 졸업하고 장신대서 총회 산업선교 훈련에 참가한다. 

당시 그를 눈여겨 보고 총회 산선 간사와 연구원으로 추천한 분은 오철호목사(이후 미국에서 굿 사마리안교회 목회)였다. 전국의 청년 학생들을 모집하여 하기 수련회식의 산업전도 훈련을 시킨 분이다. 이후 태백의 광산에서 CCA산선 전도 초대 모임에 참석하고 ILO 의 추천으로 세계노동운동과 단체들을 탐방한다. 또 미국 루즈벨트대학과 시카코의 안렌스키 스쿨에서 소구룹에 대하여 훈련을 받는 다. 

경기노회와 한남노회의 파송으로 영등포산업지구 전도 목사로 파송을 받는 다. 이후 한영방직이 있던 한영교회, 영은교회등 장로교 계통의 장로 기업주들의 공장예배를 인도하면서 먼져 사역하던 강경구 전도사와 기업주 주관의 공장예배에 대한 문제을 느끼고 밖에서 평신도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활동한다. 이후 인 산업전도를 선교로 전환하여 노동자들의 인권과 권리에 대하여 깨우치는 방식의 선교를 하면서 인명진, 정진동목사를 훈련시킨다. 

당시 경기노회 관할지인 영등포는 도림교회 고 유병관, 영등포교회 방지일 당산동교회 이정학, 시흥교회 차관영, 남현교회 이정규 목사등이 산업선교 위원으로 후원과 지원을 한다. 그러나 1980년 신군부의 군사반란을 겪으면서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직을 냈으나 노회서 휴직 처리하고 청주 인근 옥화대서 요양을 하시게 된다. 그리고 년노하셔서 자녀들이 있는 판교로 이주해 8순을 넘겨 5년전 소천했다.

조목사님은 한가지 일만 하신 분

사실 조목사님은 행동반경이나 성격이 외향적이지 않고 많은 분들과 교류하기 보다는 오직 노동자들과 함께 한 분이다. 그리고 세상을 뜨기전 까지 가까운 분들과만 교류하셨지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한적도 없었다. 그러나 조목사님 사후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분들이나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던 분들에 이르기 까지 가깝게 지낸 분들과 함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조목사를 존경하는 모든 이들과 다르지 않은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조목사님과 함께 사역하시고 장례식 설교에서 인명진목사는 조목사에 대하여 말하기를 영등포산선외에서는 한번도 얼굴을 뵌 적이 없이 오직 노동자들을 만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분이라고 한 바 있다. 또 가정의 애경사는 한번도 공개하지 않은 분으로 산업선교 사역을 제일로 여기신 분이라는 말씀을 한 바 있는 데 이 말은 진실이다.  

조목사는 오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사신 분으로 지금도 초기 산선회원으로 8순이 넘은 영등포교회 김갑준권사나 도림교회 박영혜 은퇴 장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조목사님과 가장 오랜지기들이며 그 외 산선 총무를 지낸 이근복, 손은하, 박진석목사와 일하는 예수회 선배들은 직접 가르침을 받았지만 현 총무 손은정목사나 신승원목사등은 조목사님을 모시고 일하거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조지송목사는 이런 책이 나오는 것도 반대 

그러나 사후 지난 5년 동안 조지송목사님을 기리는 지송 강좌나 기념사업을 이끌어 온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가운데 조지송목사 평전이 우리들만의 노력이 아닌 한국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부터 목사로는 처음으로 그 사역이 선정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생전에 고 김용복박사와 민주당 유승희 전의원이 녹취한 태잎을 기초로 서덕석목사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이다. 

조목사님은 자신의 이런 기록이 남는 것을 원치 않으셨으나 주변의 권유로 기록은 허락은 마지 못해 했어도 생전에 출판을 반대하셔서 사후에 출판을 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CWM에 금주섭박사가 총무로 부임하여 시리즈로 회원 교단의 인물들을 시리즈로 편집 출판을 하는 가운데 원래는 김용복 박사를 선정했으나 김박사님이 자신보다는 조지송목사의 평전을 추천하여 어렵게 전기 출판 재가을 얻어 영문판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조지송목사의 소망이나 의도, 노력이 아닌 모두 제자들 지인들의 노력으로 이런 결실을 보았다는 의미에서 뜻이 깊다 하겠다. 조목사 사후에 기념사업 논의가 시작되여 현재 이근복 목사가 운영위원장에 박송아권사(영등포 산선 출신)가 부위원장으로 있다. 또 장례후 사모님이 5천만원을 기부하셔서 이게 종자 돈이 되어 지금과 같은 기념행사를 해오고 있다.

   
 

인위적인 숭배작업은 그 분의 뜻이 아냐

오늘 날과 같이 존경하는 어른이 부재하고 특히 진보 운동권에 드문 가운데 조지송목사의 유지나 정신을 기리는 것은 우리에게나 후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요즘 앞다투워 경쟁하듯이 무슨 일을 하다가 세상을 뜨셨는 지도 모르고 생전 활동이나 사역이 공감대가 전혀 안된 분들도 공개적인 추모를 하는 것은 문제다. 특히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분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을 해 볼 문제라는 지적이다. 

행사가 되면 일정한 형식을 갖춰야 하기에 인위적인 면이 가미되고 출연자들의 경쟁으로 과대평가가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본래의 뜻과 정신보다는 덧입혀지기 일쑤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지금과 같은 행사를 과연 조지송목사가 원하는 것인가? 이다. 평소 그 분이 가장 경계하신 방식으로의 추모는 아닌 지 돌아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은 교권주의자들의 구색맞추기와 보여주기식이기 때문인데 고인과 아무런 연관이나 연결이 없는 분들의 순서다. 

조목사는 일찌기 서구화 되신 분으로 자녀들에게도 어려서 부터 자신의 통장을 갖게 하는 등 자립적이고 독자적인 교육을 한 분이다. 또 생전에 누구 결혼식이든 애경사든 일체 교류가 없으셨다 이는 산업선교란 인간적 교제나 친교가 아니라 노동자들과 전인적으로 함께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몸소 실천적으로 사신 분이다. 

관장사 라는 비판 안나와야 

이에 비하여 얼마 전 고 문익환목사님이나 박형규목사님의 업적과 공적이 크시기는 하나 점점 큰 행사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분들이 있다. 그 자녀들이 성하고 교단 내 존경심이 큰 분들이 많아서인지는 모르나 형식화하고 대형화한다는 느낌이다. 예수님도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지내라고 하셨는 데 이렇게 되면 관장사라는 욕을 듣는다. 지금도 모란 공원 묘역에는 고 백기완 선생을 비롯하여 살아서도 죽어서도 힘있는 분들의 묘역은 호화롭게 치장되는 것을 보는 데 이건 아니다.

국립묘지는 사후에 모두 같은 평수로 눕는 데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에 대하여 가족이나 따르는 분들이 크고 유별나게 묘역을 꾸미고 위세를 보이는 것을 보게 되는 게 하루 빨리 고쳐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지송목사에 대한 추모나 기념도 너무 행사화 한 것을 걱정하는 분들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2틀씩이나 하고 많은 순서자를 대는 것은 자제하고 가까운 분들과 뜻을 기리는 것으로 가면 좋을 듯 하다.

천주교에서 성인으로 반열에 오르려면 몇 백년이 지나고 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면에서 작년 광주에서 세상을 뜬 고 김병균 목사 1주기를 맞이하여 벌써 기념사업회를 만든다는 소식인데 서두를 일이 아니다. 누가 추앙을 받으려면 생전의 업적도 업적이거니와 가족이나 자녀들도 검증되야 하고 모든 것이 객관화되고 밝혀질 때 까지 시간이 가는 게 정상이다. 

   
 

이런 식의 추모행사는 재고해야

군사독재 시절에야 집회 출판의 자유가 없어 어떤 이유든지 의미를 달아 모이는 일에 급급했다. 하물며 자살한 분들 장례위원회을 만들고 만장을 만들고 장례식과 추모식을 시민장으로 대중 정치 집회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진 시대에 집회나 모이는 것이 능사가 아닌 데 매년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해 하던 타령만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외국 처럼 적당히 하고 고인과 관계가 있는 조직이나 공동체, 가족들 중심으로 추모하고 전체는 별세하신 분들을 모두 모아 기리는 가문의 시제와 같이 전체를 모아서 한번에 모이는 방안이 없을 까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어느 분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어느 분은 몇차례하다가 사라진다. 우리에게 가까운 고영근목사님의 추모행사도 10년째 따님인 고성휘선생이 이끌어 오는 데 기념상에 학술발표에 추모 축제까지 하는 데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장뉴스 대표를 지내신 고 이명남목사님도 우리는 3주기를 지내면서 일반 장례 처럼 탈상을 하고 올해 부터는 가족들과 현지 지인들에게 맡겼다. 영등포산선은 추모행사나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실무자로 일찌기 세상을 뜬 고 김건수목사를 기리는 것도 그렇고 이제는 모두 가족들에게 맡기거나 알리지 말고 조촐하게 남기신 마음과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 인위적이고 보여주기식의 추모는 그만 해도 될 듯 싶다.

그러나 이책이 영문으로 번역되여 출판되여 영어권 세계와 이 분야 동역자들이 읽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산업선교(UIM)가 쇠퇴하는 가운데 한국 민중신학과 민주화운동의 프랫홈으로 영등포산선과 조지송목사의 사역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조지송의 전기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인물전에 공모가 된 것이다. 그리고 금주섭 박사가 마침 CWM 총무로 있기에 가능한 일이 된 것이다. 이제 그 분의 업적이나 교훈은 모두 그 책에 있으니 형식화된 행사를 바꿔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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