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정목사의 미국교회 방문기

            한 지붕 밑에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종단
조헌정목사(대광고, 한신대, Union Theological Seminary, NYC에서 Minjung Theology 전공, PCUSA 수도노회 노회장, 향린교회 은퇴, 전태일재단 이사장, 예수살기 상임대표, NCCK 화해통일위원장, 민플러스 대표, 한신대, 성공회대 객원교수)

   
 

소개 글/ 조헌정목사가 지난 2017년 미국의 유명한 세이비어교회를 방문한 후 쓴 글이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유행처럼 소개된 이 교회에 대한 외형이 아닌 조목사의 감각과 시각으로 바라본 미국의 교회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게 한다. 고 홍근수 목사의 뒤를 이어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교회인 향린교회 담임이지만 교회 안에 머물지 않고 민주화와 통일운동 민중운동의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강단과 우리안에서만의 목회가 아닌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목회자이며 신학자이고 실천가이다. 

어제 저녁 이곳 시간으로 10시부터 향린교회의 예배를 인터넷 동영상으로 참여했다. 자주 끊어지긴 했지만, 정현경교수의 설교 내용을 대강은 들었다. 워싱톤디시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유명한 교회가 있다. 세이비어교회라고. 미국을 움직이는 10대 교회 중의 하나로 소개되곤 한다. 모 교회는 한 5년 전엔가 50년 가까이 담임하던 고든 코스비목사가 은퇴하고나서 얼마 되지 않아 교회 재산을 팔아 8개의 분가 교회에 다 나눠주고 교인들도 이 교회들로 흩어졌다. 재산도 있었고 충성파 교인 오십 명 이상은 되었으니까 새 목사님을 모시고 충분히 운영이 가능했다. 미국에는 노인 교인 몇 명만 남아 있는 교회들도 계속 예배를 드린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유산을 교회에 남기기에 운영을 하는데 있어 경제적 어려움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교회는 내가 보기에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2년 동안 교인들이 심각하게 논의한 끝에 교회를 해체하기로 했다. 그건 예배는 진행할 수 있겠지만, 자신들도 모두 나이가 많아 교회의 근본 생명력인 선교의 관점에서 이미 효력을 다한 교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많은 한인목사들이 이 세이비어 교회를 방문도 하고 책도 읽어보는데, 주로 셀형태의 분가교회와 빈민지역선교 등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서너 번 코스비 목사의 설교를 직접 들어본 바에 의하면,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내가 들어본 미국 목사들 가운데서 미국의 군사적 세계패권주의와 물질 욕망을 자극하는 자본주의를 가장 심하게 비판하는 목사였다. 그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당시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여지없이 공격했다. 그 교회는 워싱톤 시내 백악관에서 그리 멀지 않는 대사관들이 많은 듀퐁서클에 위치했다. 난 오래 전에 이 분가교회들을 모두 한번 이상 방문하여 예배를 드린바 있다. 오늘도 그중 한 교회를 갈까 하다가 내가 있는 지역의 교회를 하나 찾아 가보기로 했다.

향린교인들이 처음 향린교회를 찾는 방식대로 인터넷에 내가 사는 지역이름과 진보교회라는 두 단어를 쳤다. 그러자 몇 개의 교회가 떠올랐다. 미국에서 말하는 진보교회의 대체적인 기준은 첫째 사회정의 추구 둘째 인종차별반대 셋째 지역빈민선교 넷째 동성애 인정 정도이다. 떠오른 몇 개의 장로교회는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진보였지만, 내 기준에 진보는 아니었다. 난 이곳 수도노회에서 16년을 목회했고, 이곳에서 동양인 목사로서는 처음으로 노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수도노회가 미국 212개의 노회 중 4번째로 크고 가장 진보적이며 그래서 미국장로교단을 대표하는 노회이긴 하지만, 이곳 장로교회들의 분위기를 대강은 알고 있다. 그런데 United Church of Christ 교회가 하나 떠올랐다. UCC 교단은 미국장로교단과 교세는 비슷하지만, 훨씬 더 진보적이다. 난 작년에 이 교단 총회에 기장교단을 대표하여 참석하여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 헌의안에 대한 교육 세미나를 인도하고 총회석상에서 기조발언을 하여 99%의 압도적인 찬성을 이끌어 낸바 있다. 그리고 작년 이 교단의 해외선교 담당 총무목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향린교회에서 설교를 한 인연도 있다.

   
 

인터넷에는 약 백 명의 교인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주차장을 들어섰는데, 차가 이백대는 넘는다. 다른 교회를 잘못 들어왔나 하고 건물 주소를 보니 맞다. 생각보다 교회 건물도 컸다. 그런데 들어가는 입구에 교회 간판이 없고, Interfaith Center, the Meeting House 라는 팻말만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종교대화의 중심, 모임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입구에 5개의 종단 이름이 새겨져 있다. Bet Aviv(유대교 개혁파), Columbia Jewish Congregation(콜럼비아 유대회중), Columbia Bapist Church(콜럼비아 침례교회), Columbia United Church of Christ(콜럼비아 그리스도교회), St. John Roman Catholic Church(성요한 가톨릭 성당). 그러고 보니 이곳 얘기를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미국 메릴랜드주의 콜럼비아라는 도시는 약 50년 전에 세워진 계획도시이다. 도시를 계획하면서 당시 종교간의 대화와 화해를 위해 일하던 성직자들이 뜻을 한데 모아 한 지붕 밑에 서로의 교회를 세운 것이다. 가서 보니 약 200명이 모일 수 있는 강당 겸 예배실이 두 개 그리고 50명 정도가 모일수 있는 예배실이 하나 더 있고, 그 외 여러 개의 교실과 사무실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스도교회는 10시 반에 시작을 하고 이미 침례교회는 10시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 11시 반에는 이 침례교회 자리에서 가톨릭 성당 미사가 있을 예정이다. 서로 예배 시간을 달리함으로 인해 서로 나가고 들어올 때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유대인들의 예배는 토요일에 있다. 이 5개의 교회가 각각의 건물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건축비와 건물 유지비용으로 얼마나 많은 돈이 소요될 것인가? 우리나라도 일년에 교회가 건축비 융자로 인해 은행에 내는 이자비용만 10조가 넘는다는 얘기가 있다.

세이비어 8개의 분가교회 중 교회 건물을 갖고 있는 교회는 단 두 개뿐이다. 그것도 둘 다 하나는 작은 집을 다른 하나는 2층 상가 건물을 개조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련회 장소를 교회로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 교회들은 모두 선교지에서 예배를 드린다. 예배 시간도 꼭 일요일이 아니다. 주중 저녁에 드리기도 하고 예배 처소가 같은 교회도 있다. 예배 형식도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담임목사를 두는 정통적인 교회는 별로 없고 공동목회를 하거나 아니면 평신도 사역자들이 돌아가며 설교를 한다. 작게는 열 명에서 시작해서 백 오십명을 넘지는 않는다.

   
 

그중 인상적인 교회 하나는 교인들을 4개의 그룹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이 분류의 기준은 헌금이다. 수입의 5%는 A, 10%는 B, 10% 이상은 C. D는 교회가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겠다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분류는 본인만 알 뿐 다른 사람은 모른다. 왜냐하면 미국사람들은 수입에 있어서는 묻지 않는게 예의이기 때문이다. 난 우리 아들과 딸이 얼마를 버는지를 모른다. 물어도 답을 하지 않는다. 나이와 수입은 묻지 않는단다. 어찌 보면 헌금으로 교인을 분류한다는게 비성서적인 것 같은데, 다시 돌이켜 생각하면 그걸 누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정하는 것이니 가장 성서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담임목사도 없는 교회이다. 1년에 서너 명이 공동 책임을 지고 운영해간다.

난 오래 전 세이비어 교회의 주말 침묵영성수련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2박 3일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일정을 소화한다. 심지어는 하루 세끼 식사를 우리 자신들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준비하는데, 이때에도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눈치로 분담을 하여 준비를 한다. 십여명이 함께 밥을 먹는데, 침묵 가운데서 먹는 것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저쪽에 떨어져 있는 소금통을 달라고 할 때 어떻게 표현하나. 그러기에 자기 밥을 먹으면서도 상대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마지막 나눔의 시간 모두 말문을 열었는데, 그 말문은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왜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모두가 울었고, 어떤 이는 대성통곡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한 백인중년 여성이 자기 얘기를 한다. 자기는 세이비어교회를 30년 이상 다니고 있고, 모든 프로그램을 다 이수를 했고, 교회의 모든 일에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는 교인이 아니란다. 왜냐하면 세이비어교회 교인 서약문에 재산을 모두 하느님 나라를 위해 쓰겠다는 항목이 있는데, 자기는 여기서 걸려 이 서약을 하지 못해 교인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서약이야 일단 하고 나중에 못 지키면 할 수 없는 것이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신앙고백의 철저함은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교인이 되려면 몇 개의 공부 과정과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최소 2년이 걸린다.

   
 

한 지붕 밑에 5개의 종단이 공존하는 교회 건물. 우리나라에서 과연 가능할까? 개신교와 불교와 가톨릭이 하나의 지붕 밑에 있고, 목사 신부 스님은 모두 같은 건물에서 사무를 보고 점심은 같이 먹고 이게 가능할까? 이들은 이렇게 예배를 드려온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그리스도교회 예배에 참석을 했다. 참석자 70여 명 중 동양인은 나 하나, 나중에 보니 흑인 남성이 한명 있다. 이 지역은 백인지역이고 교육 경제 수준이 높은 도시이다. 설교 제목을 보니 화해이다. 지금 미국은 달라스에서 일어난 백인경찰 5명이 죽은 사건으로 시끄럽다. 사연인즉 그간 흑인들이 주로 백인 경찰들에 의해 사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작년에도 여러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지난 주 이틀 연속으로 무방비 상태의 흑인 두 명이 두 개의 다른 도시에서 백인 경찰들에 의해 각각 사살되었다. 이에 달라스에서 흑인들과 백인들이 데모를 했는데, 이때 아프칸 전투에도 참여했던 흑인 한명이 경찰 5명을 조준 사살했고, 이에 경찰은 로봇을 보내 폭탄을 터뜨려 그를 살해했다. 이로 인해 지금 미국사회는 시끄럽다. 당연히 오늘은 모든 교회들이 이에 관련하여 설교를 한다. 난 이 목사가 어떻게 얘기하는지 궁금했다. 나이는 70세가 훨씬 넘어 보이는데, 제법 정력적으로 설교를 한다. 마태복음의 원수 사랑이 본문이다. 흠잡을 수 없는 내용이다. 사회정의와 인종차별 반대를 말하고 백인우월주의를 비판했다. 그런데 하나 아쉬운 것은 마태복음의 원수 사랑 본문을 다루면서 신학자 월터 윙크의 해석을 언급하지 않는다니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인 입장에서 백인들에게 안전지대에서 탈출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정도의 당부의 얘기만 있었지, 흑인들의 한의 역사 그리고 정의실현을 위한 약자들의 저항정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나이가 많아 새로운 신학 공부를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백인과 비백인을 구분함에 있어 영어로 백인은 white라고 말하고 비백인은 통틀어 colored people 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간 수없이 이 단어를 들어왔는데, 새삼스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colored people이면 백인은 color가 없는 종족인가? 그러면 white는 color가 아니라는 말인가? 흰색이 색깔인가? 아닌가? 색깔이 없으면 투명 인간인가? 그래 백인은 투명인간이 맞다. 잘 보이다가도 문제만 생기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니까? 이러면 어떨까? 우리는 colored라고 부르고 백인들은 non-colored 라고. Black이란 단어도 흑인이 쓰면 자기 정체성을 강조하는 단어가 되는데, 백인이 쓰면 차별용어가 된다. 그래서 Afro-american이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남미나 인도의 원주민 흑인들은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니 또 문제가 된다. 하여간 인종이 다양하면 복잡해지는 건 사실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면서 그간에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아니 이미 발생하고 있다.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따름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상대의 입장에서 특히 강자가 자기 자리에서 내려와 약자의 자리에 서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 백인 목사가 특이한 점은 자기 설교가 끝나자 발언 기회를 준다. 그러자 한 백인이 얘기를 하고 이어 유일한 colored인 흑인 교인이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자기 경험 얘기를 하였다. 목사의 설교보다 이 흑인의 발언이 더 감동적이었다. 친교 시간에 목사와 얘기를 하고 보니 이 목사가 나이가 많은 이유가 있었다. 자기는 임시목사로서 올 2월에 왔는데, 올해 말까지 이 교회에 시무한다고 한다. 미국은 은퇴 이후 이렇게 임시목사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인들이 담임목사를 그리 급하게 모시지 않는다.

이곳의 모든 교인들은 자기 교회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교단 혹은 종단까지 포함한 우리 교회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하느님과 하나인 것처럼 너희도 하나가 되라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는데, 우리는 하나는커녕 계속 갈라지고 있다. 나올 때 보니 현관에는 시편 133편의 말씀 ‘형제자매의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성서 구절이 영어와 히브리어로 새겨져 있었고, 선교사명서가 붙어 있었다. “우리는 신앙공동체로서 우리의 삶에 하느님께서 거하시도록 노력하며 이를 위해 함께 일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사항에 우리 자신들이 항상 새로워질 것을 결단한다. <상호존중>, <대화>, <협동>, <연대>”

   
 

                             세이비어교회(The Church of the Savior)

미국 워싱턴디시에 있다. 고든 코스비 목사가 1947년 설립한 이 교회는, 철저한 입교 과정과 고도의 훈련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교인 수는 불과 150여 명. 하지만 이 정도의 교인으로도 미국의 교계를 움직이는 혁신적인 교회로 평가 받고 있다. 메가처치 개념에 익숙한 한국 교회의 정서로 접근하면 ‘고작 150여 명’에 불과한 세이비어교회. 그런데도 대안 교회의 표본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안 교회 모델로 급부상한 세이비어교회의 목회철학은 철저한 ‘사회적 섬김’에 바탕을 둔다. △영적인 삶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추구 △예수 중심의 사회적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를 섬김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를 섬기는 일에 헌신 △용기와 희생적인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대한 헌신 등 네 가지.

이 목회철학을 바탕으로 세이비어교회는 ‘토기장이의 집’을 시작했다. 카페와 서점이 동시에 운영되는 형식으로, 지난 1960년 지역사회 사역의 일환으로 출발했다. 사역은 계속 확장됐다. “저임금 가족을 위한 주택 보급 사역을 실시하고, ‘그리스도의 집’, ‘사마리아인의 집’, ‘미리암의 집’ 등의 치유 사역을 통해 빈민지역의 주민들과 실업자, 노숙자,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들을 치유하고 재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유 목사는 설명한다.

6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세이비어교회는 7개 분야에서 45가지의 연관된 지역사회 사역을 진행한다. 소요되는 연간 예산은 1,500만 달러(한화 180억 원) 이상. 유 목사는 “바로 이런 것들이 작은 세이비어교회가 이 시대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 미래 목회에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150여 명의 교인에 18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사회적 섬김에 투자하는 세이비어교회의 역동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세이비어교회는 1950년대 초부터 소명에 관해 분별하는 사역에 집중했다. 그 핵심은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나는 이것을 감당할 것입니다.’

정식 교인이 되려면 △하루에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기도 △약 3년이 소요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학교와 서번트 리더십 학교의 훈련과정 참여와 지속적인 연장 교육에 참여 △온전한 십일조 헌금 △소그룹 사역 공동체 모임에 한 주간에 한 번씩 참여 △교회와 연관된 45가지의 지역사회 사역에 은사별로 자원봉사자로 참여 △자신의 삶의 전 지경을 포함하는 영적 자서전을 써서 공동체에 발표 △매년 각 신앙 공동체 주관 관상 기도 영성 수련회 참석 △교인의 자격을 매년 갱신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방해 동료 교인들과 함께 좀 더 깊은 공동 생활을 추구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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