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남노회 기간중 초청으로
존로스선교사는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1872년 목사 안수를 받고 스튜아트 (M.A.Stewart)와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그해 가을 중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산동과 심양에서 사역하였다. 1874년 10월에 한국과의 접촉을 위해 ‘고려문’에 가게 된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 하며, 한글로 쓰인 성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로스는 이응찬을 만나 그에게 한국말을 배운다. 그리고 이응찬과 김양선은 로스 목사와 맥킨타이어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한국 개신교의 첫 세례인 것이다. 로스는 중국 성경을 번역하여 1882년에 조선어로 된 누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를 1884년 말에는, 요한복음서와 마태복음을 출판하였다. 동시에 마가복음서와 로마서, 고린도전후서가 인쇄 중이고,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의 번역을 다시 교정하고 있었다.
1884년에 로스목사는 75명에게 세례를 주었고, 1885년에는 104명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그 외에도 조선인 1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로스는 저술을 많이 했는 데 동양 역사에 관한 책 ‘中國의 廣大'(‘The Extent of China’), ‘중국의 민족'(‘China’s People’), ‘중국인의 교육'(‘Chinese Education’)이란 책을 저술했다. 그리고 10년의 産苦(산고) 끝에 1887년 최초로 중국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신약성경 『예수셩교젼셔』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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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글 문법책과 한글 역사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가 출판한 신약성경과 쪽 복음은, 1884. 9월 에 정식으로 조선에 들어온 알렌과 1887. 4월 5일 들어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선교 사역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조선 선교에 기초석이 되었다. 존 로스는 조선인을 자기 가족보다 더 사랑했던, 순교자였다.
그는 한국어로 번역한 최초의 외국인이자 한글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신약성서를 번역하여 1887년 《예수성교전서》를 간행하였다. 로스역 성경이라 함은 1882년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와 《예수셩교 요한복음젼셔》, 1883년 《예수셩교셩셔 누가복음 데자행젹》과 《예수셩교셩셔 요한복음》, 1884년 《예수셩교셩셔 마태복음》과 《예수셩교셩셔 말코복음》, 1885년 《예수셩교셩셔 요한복음 어비쇼셔신》, 1887년 《예수셩교젼셔》 총 8권의 한글성경을 일컫는다.
글래스고 대학교와 에든버러의 신학교에서 수학을 한 뒤, 누가 동아시아의 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을 가진다. 이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해외 선교부의 총무인 맥길 박사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4년째 되는 해인 1872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의 중국 선교사로 당시 만주라고 불리던 중국의 동북부로 파송되었다.
1872년 2월 27일 스코틀랜드 장로회 인버네스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스튜어트(Strapp McFadyen, ~1930)와 결혼을 한다. 로스 신혼부부는 상해서 사역을 하다가 선양으로 사역지를 옮겨 1889년 동관문 교회를 설립하였다. 1892년 그는 한국에서 온 제임스 게일을 만났고 1910년 스코틀랜드로 귀향한 후에도 스코틀랜드-중국 협회를 돕는 일을 계속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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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스 기념교회(1747)를 재헌당
그로부터 278년이 흐른 2025년 4월 장로교의 발상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있는 존로스 선교사 기념교회인 뉴튼교회가 한 떄 문을 닫았다가 부산남노회 동래중앙교회와 박준수 목사를 통하여 4월에 재헌당식을 갖게 된다. 박준수목사는 부산남노회 소속 선교사로 이 교회 담임으로 영국 스코틀랜드교회 로시안앤보더스노회(노회장 로나 소우터 목사)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부산남노회(노회장 김오룡 목사)와 공동 집례를 하게 된다.
이 행사를 위하여 부산남노회 김오룡 노회장과 황형찬목사(세계선교부장)등이 현지에 직접 참석한 바 있다. 이들은 박준수목사가 졸업한 에딘버리대학교 신학부에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는 10월 11일(토)부터 부산남노회에 존로스 110주년을 맞이하여 그 후손들을 초청하여 제 1회 존로스포럼을 여는 데 10여명의 후손들은 영국만이 아니라 미국과 호주등에 사는 직계 후손 10여명들이 참석할 예정으로 있다고 한다.
부산남노회가 존로스 후손들을 초청
특히 이번 일정중에는 박준수목사가 사역하는 영국내 후손들중에는 그간 교회를 나가지 않은 이들중 조상인 존로스기념교회당의 재헌당으로 인하여 후손들중 회심이 일게 되고 뭉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몸으로 주고 사신 교회라는 신학적 의미가 말이 아닌 역사로 증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져히 감당할 수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역사의 시작은 바로 죤로스기념교회의 재헌당이 있는 데 문을 닫은 교회라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은 곳을 개방한다고 하여도 선뜻 외국인에게 맡기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마침 박준수목사가 에딘버리대학에서 공부하고 목회도 한 것이 선정 평가에 큰 자산이 되었지만 이미 런던에서 URG 교단 2개의 영국인 교회를 섬기는 경험을 한 것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 에딘버러대학에서 공부하며 만난 동문들과 그가 한 때 부목사로 속했던 노회서 존로스교회 재건을 위한 사역에 그를 추천하고 본국의 노회가 도와 이 역사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여러 말들이 있으나 최근 한류가 세계에 나가는 판에 우리자원이 영국을 거쳐 유럽으로도 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봐야 한다. 한편 지난 봄 존로스기념교회 오프닝에 부산남노회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에 대한 감사 답례와 존로스 탄생 110주년을 맞아 부산남노회와 코이노니아선교회, 지역교회들의 도움으로 한국방문을 한다.
그중 박준수목사가 시무하는 에딘버러뉴톤교회 존로스기념에서 문답을 하고 부산에 와서 세례를 받을 직계 5대손 2명이 동행한다. 이들은 이번 10월12일 주일에 존로스기념교회가 집례하는 지역 교인들 세례식에 로스의 4대손 마가렛 로스(에딘버러 변호사)와 그녀의 어머니 등도 오는 데 이들은 매주는 아니지만 교회에 가문을 대표해 교회에 오며 법적 자문도 해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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