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청빙의 주체는
D교회는 서울노회 소속으로 대학로에 있는 중견교회로 한국전쟁후 1952년 천막에 거적을 깔고 군목의 인도로 첫 예배를 드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 명칭은 당시 상이군인(한국전쟁 부상자)들의 모임인 ‘정양원’ 으로 시작해 54년부터 지금의 교회로 노회는 평동노회로 가입했지만 현재는 서울노회다. 이 교회의 성장과 교단에서의 위상이 크게 신장한 것은 박00목사(1978-1994)이지만 지금의 교회를 건축하고 이름이 난 것은 1995년 부임해 2022년에 원로로 추대된 서00 목사 시무 때다.
서목사 후임은 2023년에 이00 목사가 부임했는 데 현재 8대 목사 청빙 절차가 마무리 단계로 두 분의 설교 시연을 듣고 오는 8월 16일(주일) 제직회서 한분을 정하면 사임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정이 되는 후임 목사는 10월 부임한다고 하고 9월 달은 장신대 총장이 강단을 본다고 한 것을 보면 현 담임 목사는 사임하는 것인데 목사의 청빙도 중요하지만 전임자가 어떤 사유로 그만 두는 지는 몰라도 이임에 대한 일체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의외로 후임청빙에 패싱을 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래적으로 지교회 청빙에 대하여 영상을 공개한 것을 보고 배울 점도 있지만 그렇치 만도 아니어서 다뤄보려고 한다. 우선은 청빙위 구성이 당회원만이 아닌 교회 부서를 대표할 수 있는 분들이 들어 갔는 지는 모르나 보고엔 안나온다. 그러나 청빙위가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공개한 것을 보면 공정했다는 자부심과 교권 영향은 없었다고 보여져 대수의 교인들을 위한 청빙인 것으로는 보여진다.
그러나 번거로운 여러절차는 지원자들이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담이 많이 되었을 것인데 이 점은 앞으로 고려되야 한다. 청빙은 혹시 안되는 분을 위해서라도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부목사들이야 나갈 준비를 하니 소속교회로부터 양해와 지원도 받을 수 있지만 단독목회자는 그렇치 않다. 그렇게 많이 드러나게 면접이나 강단에 선다는 것은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D교회 전임 서00목사는 총회적으로도 그렇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목회를 한 분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 교회서 27년간 시무중 큰 일없이 좋은 평판을 받은 것으로 안다. 다만 은퇴와 관련해 여러소문들이 난 것으로 안다. 일반적으로 그런 정도 시무 기간이면 후임자 결정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데 그 분역시 패싱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20년 이상 시무해 원로가 되었을 것인데도 교회를 배제를 한 것을 보면 오직 교인들만 바라보고 갔다고는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통 원로가 되면 후임자 선정을 교회로 부터 부탁을 받지 않아도 자신이 정하는 경우가 일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퇴자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닌 데 본인이 사양하거나 교회가 배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가장 좋은 청빙은 어떤 것일 까? 솔찍하게 말하면 우리교단에선 정답은 없다. 교회마다 처한 형편과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빙은 지교회가 하는 것이지만 서구교회 처럼 상회(노회)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상회를 믿지 못하는 풍토도 문제인데 파송받은 당회장들도 그렇고 노회내 영향력이 있는 분들의 개입 때문이다. 그들은 지교회가 원하는 방향보다는 지인이나 제자 지연등 학연을 우선으로 하기에 그렇다. 따라서 우리도 하루빨리 서구 장로교회처럼 청빙은 지 교회 목사 한분 뽑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에 대한 이해와 공교회에 대한 소속감이 우선되야 한다. 그러나 임지는 적고 지원자는 많기에 지교회 선택권이 우선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전체 목회자 수급과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선진교회 예을 배울 필요가 있다. 청빙에서 지교회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반드시 좋은 분을 모신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아무리 잘된 청빙을 했다고 하는 곳이라고 그것은 하나의 참조가 될 뿐이지 따라야 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교단적으로 상세한 지침은 없기 때문인데 선진 해외 장로교회의처럼 지교회와 상회가 상호협력하는 좋은 모델들이 정착되기를 바란다.
청빙이랄 할 것도 없는 청빙도 존재하지만 이 교회 청빙위 활동은 그간 보아온 청빙 가운데 가장 모범적이고 볼 수 있어 보인다. 이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것의 긍정적인 면과 한계는 무엇인지 더 극복되어야 할 것은 없는 지 공론을 위해서다. 동숭교회 청빙은 위원회가 아주 체계적이고 독자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운영한 흔적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청빙 모든 내용을 공개한 것 자체가 그런 면이 있다.
많은 경우 교계나 목회자 정보가 많은 당회원들이 청빙위는 형식으로 만들어 공개하고 지원자들 추려서 한사람을 하던지 복수로 하던지 당회서 대리당회장 청해서 결정하고 공동의회나 제직회에 회부하는 게 일반적인 순서다. 그러나 청빙은 모셔오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청빙위나 당회원들이 우선적으로 보는 게 학력, 신력, 경력을 보는 것이다. 이 때 인사경험이 있는 분들은 세속적 지표들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런 것 보다 더 속깊은 인성과 신심을 알려면 서구교회 청빙을 참조해야 한다. 천주교나 성공회는 파송이니 청빙은 없이 상회에서 발령을 내지만 영국장로교서는 청빙 후보 목사가 자란 교회나 이전 시무지서의 평신도 평가서를 대외비로 요구한다. 학력이나 설교 답변 잘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과 신앙 여정이 청빙에서 평가를 받는 것이다.
요즘은 자리 구하는 목사가 자기 스팩과 홍보로 택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아예 청빙 이력서는 세속적 자기 피알로 허세난 부풀림이 없지 않다는 이유로 이력서를 내지 않는 분들도 없지 않다(전에는 그런 방식으로 목회자들을 모셨다) 그들은 소개나 추천을 받아서 간다. 그러니 광고내고 얼마가 들어왔다고 자랑하고 후보를 놓고 위원들이 선보고 설교 듣는 방식이 아니다. 다른 교회는 아예 접수받아 몰래 시무교회로가 설교를 듣기도 하고 설교는 영상으로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교회 청빙서 돋보이는 것은 지도자들이 후임 목사에 대한 교인들의 바램을 조사한 것이다. 형식적 일 수도 있지만 교인들이 원하는 목자상에 대한 의견을 중요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우리 교단 목회자로 안수받은 자라면 누가 되도 좋을 것이지만 그 교회가 처한 사정에 따른 선택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 교회나 교인들이 원하고 강조하려는 사역에 대한 조예을 갖은 분을 찾는 방향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따라서 청빙위는 철저하게 교인들을 대표하여 교회의 미래 비전을 위한 봉사자라는 의미가 있다. 자기의 신앙이나 주관은 잠재하고 교회와 교인들이 원하는 목사상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50여명을 15명으로 다시 7명으로 그리고 청빙위는 마지막으로 5명을 당회에 추천했고 당회가 최종 2인을 결정한다. 그리고 두분은 초청 설교를 듣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당회가 주도권을 갖지 않고 청빙위 중심으로 청빙을 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청빙위가 기능적인 것에는 큰 신경을 쓴 것 같지만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면을 봤는 지는 의문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정량평가, 정성평가등 인사관리의 이론적 배경을 언급하지만 결국 위원들 개인 판단이 우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교인 구성을 참조해 후보자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고령자(50세)와 젊은 세대, 해외 학위자 출신지역이나 학교를 참조를 했는 지 모르겠다. 그런 다양성 속에서 걸러지지 않고 지역이나 학교가 편중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 교회 청빙에서 한계는 최종 후보자 2명이 모두 같은 노회부목사들이다. 그러면 소속교회 당회장도 그렇고 모두 한집안으로 전혀 모르는 분들은 아닐 것이다. 년배도 거의 같아 보이는 데 교인들이 설교만 듣고 평가을 하게 되는 데 이것도 한계인게 어떤 목사라도 설교 한두편은 은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사의 인격과 인성이며 진정성인데 청빙위가 검증을 했다면 다행이다. 설교는 선을 본다는 의미로 강단언어나 전달력, 준비, 분위기라도 보자는 것인데 내용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평가는 없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최종 선택권을 교인들에게 줬기에 교인들을 위한 청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본문과 제목을 주고 공예배가 아닌 설교를 듣기 위한 시간을 마련한 것은 설교가 목사를 알리는 방식으로 소비되도 되는 가? 하는 의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청빙 설교는 겉보기에는 은혜롭고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구인, 구직 시장 논리에 기댄 것이 아니라고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후 설교 영상은 내려졌지만 설교가 본문 주석과 본문에 대한 교회사적 해석과 적용등 설교학에서 고려되야 할 것들보다 교인들에게 잘보여야 한다는 소리는 들을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교회서 청빙이 중요하지만 청빙위가 일을 너무 만들어 갈 일은 아니다. 다른 일들처럼 일상처럼 하고 알리면 되는 것이지 이런 것을 공개하고 하는 것은 조심할 일이다.
어느 교회서는 교회의 모든 회의를 공개하는 게 그렇게 하라는 법도 없고 좋은 결과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비판을 자초할 수도 있다. 특히 청빙위원들이 기도하고 신중히 했다고는 하나 목사 청빙의 신학이나 목회적의미에 대해 먼제 배우고 들었는 지 묻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칭빙은 목회적인 것은 배제된 체 오직 교회사랑을 기초로 한 청빙일 수는 있겠다.
독일교회의 경우 청빙은 상회와 교회대표가 동등한 권한을 갖는 데 교회는 공교회라는 전통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상회가 추천한 후보가 아닌 자신들이 알아본 후보자들을 놓고 결정하면 그 다음 청빙은 반드시 상회가 추천한 일정한 조건을 갖춘 후보들을 놓고 지교회가 결정한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경우 무목교회가 나면 상회서 인사위원들이 파송되 그 교회의 형편을 살피고 어떤 조건을 갖춘 분을 원하는 지를 찾는 다.
그리고 노회에 소속한 목회자들 중에 이임을 원하거나 청빙을 기다리는 목회자를 소개한다. 이들 모두 일정한 조건의 학력과 신력 안수를 받은 이들로 평균적 기준을 갖춘자들이라는 전제가 있다. 안정된 교단들의 모습으로 우리는 아직도 영세시장판이라 할 수 있다. 야심이 큰 목회자, 우선 부임부터 하고 보자는 위장 취업자, 급격한 회심으로 신앙열정이나 비전이 큰 분들을 걸러낼 수가 있다.
그들은 설교나 기도 카리스마와 영성은 뛰어나고 감화를 줄 수 있는 부흥사기질의 설교가 일수는 있지만 그런 분을 모신 교회는 이에 따른 댓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과거 지혜로운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은 교회 형편보다 더 뛰어나고 능력있는 분을 모시기 보다 기본 품성을 보고 앞으로 교회가 더 키우고 훈련시켜 좋은 목회자로 만들어 쓰기도 한다. 야심이 있는 자는 더 크고 좋은 여건이 나면 갈 분이 아닌 기본 품성과 영성이 겸비된 분을 모시는 것이 중요하다.
칭빙문화를 외국과 단순비교할 수는 없으나 다른 점은 우리는 교회를 목회자나 교인들이 원하면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노회 전도부를 통하도록 되어 있지만 거의가 임지가 없거나 개척 의욕을 갖은 개인의 결단과 조다로 시작한다. 선진 장로교인 외국의 경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일정한 살아나아 조건을 갖추면 가입을 하는 형태다. 또 성공을 하면 대주주가 되 노회중심의 지교회가 아닌 개인의 교회가 된다. 장로도 원하는 인척이나 동향인세우고 제왕적 목회와 목회 세습도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지교회들은 자신의 야망을 위하여 교회와 교인들을 객체화하여 인위적인 부흥과 성장에 목을 메고 교인들을을 닥달하는 카리스마 있는 목회자가 아닌 성실하게 양떼를 먹이는 목자의 심성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평안을 가르치면 가정을 온전한 믿음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목회자가 필요할 때다. 외국에서 공부한 박사학위자나 목회자들을 선호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상처받고 실패도 맛본 지교회들도 없지 않다. 많이 못배우고 한이 맺힌 이들로는 자기 목사라도 많이 공부하고 잘난 사람을 원했을 것이지만 이에 대한 혹독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