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였던 서경석 목사가 왜 지금 보수가 되었나?

좌파였던 서경석 목사가 왜 지금 보수가 되었나?

서경석 목사의 후배들 중 그분의 행적과 발언에 대하여 우정어린 충고와 비판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이독경이라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지 자중하지 않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글(기사 하단 참고)은 서 목사의 생애와 역사 그리고 잘못된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글이면서도 무지와 편협함으로 가득차 많은 사람들을 호도하는 대표적인 글이다. 이런 식의 애국충정을 본인은 의미 있어 하는지 몰라도 과거의 동지를과 후배들은 답답할 뿐이다.

많은 분들이 서 목사의 이런 식의 어설픈 제안은 인식의 오류와 교만에서 온다고 보고 직접적인 비난는 공개적으로 자제하지만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아마 똑같은 사람 될까봐 대응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서 목사도 자기 말에 대하여 책임을 감당할 시기가 되었다. 앞으로는 공적으로 [예장뉴스]가 그의 논평과 행적에 대하여 비평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로 하여금 이러한 주장을 하게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이 아닌 자본의 힘이 아닐까 한다. 무엇으로 변명을 해도 그 분이 하는 말이나 일을 보면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듣기 좋고 보기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누구든 자기들의 말을 대신해주면 그 사람을 지원한다. 경제인들이 국회의원에게 정치헌금을 하여 그에게 보험을 드는 것처럼 서 목사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본심이 아니라 후원을 하는 사람의 입맛을 맟추기 위하여 고비마다 시기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이것도 게속하다가 보니 이력이 나고 직업화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있어 왔다. 정부의 주변에서 산업선교는 용공이라고 비판을 하던 홍지영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유치문이라는 장로도 있었다. 이제 서 목사가 그 계보를 잇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알만한 사람이 그러니 말이다. 말로는 애국과 신앙 나라 걱정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구실이다.

앞으로 한 때 민주와 개혁의 인사라고 자처하던 사람들이 과거를 팔고 변절을 하였으면서도 부끄럼도 없이 동지들을 매도하고 모함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김진홍 목사도 예외가 아니지만은 요즘은 은퇴를 하고 조용히 ‘아침 편지’라는 것을 보내는데 두고 볼 일이다. 나이도 들었으니 조용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적절치 못한 정치 참견과 도를 넘는 비방 갈등을 유발시키는 발언을 계속한다면 교훈을 주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서경석 목사의 잘못된 인식과 오류가 얼마나 잘못인가를 비판하고자 한다.

서경석 목사는 누구인가?

서경석 목사는 한국 초대교회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서경조의 자손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초대교회인 새문안교회에서 성장한 분이다. 그의 부친과 가족이 모두 장로로 시무한 바 있다. 서울공대에 들어가 믿음 좋은 기독학생운동 출신으로 해군 군목을 거쳐서 복학을 한 후 유신독재의 극성스러운 탄압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격을 때에 학생운동의 지평을 넓히고 기독학생들과 연대하게 하므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동력을 가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한 분이다. 지금과 같은 전국적인 단위의 학생운동은 없었지만 당시의 학생운동과 기독학생운동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현재도 그렇고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학생운동의 전설인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갔고 그 동지들이 지금도 우리 정치와 사회의 과거와 현재도 사회 각 분야에게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서 목사는 그후 학생운동과 기독청년운동의 가교 역할을 하며 새문안교회 대학부와 청년부를 한국청년운동의 메카로 만들었다. 지금도 그의 많은 후배들이 활동하고 있으니 기독청년운동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당시 학생운동 지도자들이 신앙과 믿음은 없었지만 그들은 정의롭고 선한 심성을 가진 이들로 교회 안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신앙을 갖게 된 이들도 보았다. 교회라는 공간에 들어와서 보호도 받고 활동을 하면서 다시 교회 청년들을 의식화시켰고 기독청년운동이 시작되게 하였고 그런 세대들이 신학교로 목회자로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서 목사를 가까이에서 대하고 관계해 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쉬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움직이는 가히 창조적이며 정력적인 활동가로 알려져 있다. 적극적인 성격과 설득력은 한국기독청년운동을 한국현대사의 한복판에 올려놓았고 최초의 시민운동 단체인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진보적인 행적은 거기까지다. 이후 자기 방식의 시민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참여연대가 주동하여 ‘낙선 낙천 운동"을 하던 시민운동과 결별한다. 장신대 77기로 뒤늦게 입학을 하여 졸업을 하지는 못하고 미국 프린스턴으로 유학을 떠난 후 미국장로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온다. 귀국 후 ‘기사련'(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원장으로 일하면서 당시 한국의 사회운동이 열병처럼 앓던 Idesntity 논쟁과 사상논쟁에서 서 목사는 이론적으로 뒤쳐지면서 감정적인 대응으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민주화의 열망과 DJ와 YS의 단일화 실패로 인한 민주진영의 분열에 합류하지 않고 중립지대에서 ‘꼬마 민주당’에 이삼열 박사 등과 입당하여 지역구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이때 노회에서는 목사직을 사임한 것으로 보인다. 그후 다시 복직을 하였다. 서 목사가 본격적으로 타락된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조선족교회를 하면서부터다. 이 교회는 구성원들도 그렇고 자립할 수 없는 교회이며 일반 교회처럼 목회적으로 얽매이는 곳은 아니었다.

막상 목회를 하면서도 시간도 많고 열정도 컸던 서 목사는 조선족을 목회 타겟으로 삼고 이것을 비즈니스화 하기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탈북자 혹은 조선족과 국가 안보는 잘 맞는 장사다. 그래서 돈을 내고 싶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제 전향을 하고 이름과 과거를 묻어놓고 조용히 지낸다면 좋았겠지만 한발 더 나가 ‘나는 좌파에서 우파로 돌아섰다’는 고해성사를 하고는 본격적인 친 보수정부 친 자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후배들의 비난과 공격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돈 되는 일인 친 보수정부 주변에서 용공 좌파 만들기에 열중한다. ‘뉴 라이트’와 같이 기승을 부렸는데 이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서 목사가 미국에서 북한에 갔을 때 자기의 조부가 미제의 앞잡이 혹은 반민족적 인사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화가나서 전향을 했다고 하기도 하지만 여러 번 반복한 그의 발언에 의하면 자기가 본 북한의 교회는 가짜 교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 속고 있는 것이고 환상 속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을 위하여 그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북한 인권이다. 북한은 독립국가이며 엄연한 외국이다. 외국에 대하여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그들이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문명국가에서는 국제조약과 규칙에 따라서 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가 북한의 문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내정갑섭이 된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북한의 교회도 가짜라고 하는 데 교회나 복음은 처음에는 가짜에서 진짜로 가는 것이다. 의심에서 진심으로 가는 것이다.

서 목사의 말대로 이북의 교회나 예배을 선전으로 한다면 오죽했으면 교회 흉내를 내고 가짜 기독교인이 돼야 했을까? 그것을 속아 주는 것이 그렇게 힘들까?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서 목사는 북한을 돕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런 말을 해야 자기를 돕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들을 통하여 지원을 받는 일에 익숙해졌고 그런 안보 장사로 구걸해서 일하거나 먹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존형 보수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는 우리 인간들이 상상할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을 교회사를 통하여 우리는 보게 된다.

서경석목사가 말하는 종북좌파의 의미

지금 한국사회에서 종북이나 친북좌파는 어떤 용어인가? 학문적이지도 않고 법률적인 용어도 아니다. 사전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상과 한쪽에 치우쳐서 있다는 의미지만 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용어가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이는 분단시대의 아픔이다. 분단은 국토만이 아니다. 사상과 역사와 문화와 종교 소설까지 둘로 갈라졌다. 북을 이롭게 하거나 미화하거나 반대하지 않거나 비난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종북이며 친북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현재 보수 논객으로 인기가 있는 전원책 변호사가 백분토론에 나와서 한 말로 유명해졌다. "김정일 개새끼, 김정은 삼대세습을 비판 못하면 종북이고 욕할 수 있으면 통과"란다.

이것은 종복이나 친북이라는 말이 얼마나 감정적이며 아무런 생각과 철학이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우리와 다른 정치제도와 이념을 가진 나라이다. 그래서 전쟁을 해서 이겨야 한다면 그것도 이 민족의 숙명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통일을 위한 나머지 반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경계의 대상이면서 대화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그럴 필요는 없다. 지도자들이 그런 정신과 자세를 갖고 통일을 위한 정책과 외교를 해 나가면 된다. 그리고 국민은 헌법에 보장된 대로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누리면서 평화에 대한 염원을 지켜나가면 된다. 나아가 북한이 우리 보다 잘하고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북은 모든 것을 비판받아야 하고 비난해야 애국이라면 그것은 잘못이다. 경계하는 것과 비난하는 것과는 다르다. 경계는 상처를 주지 않치만 비난은 상처를 준다.

우리 사회인식에 대한 오류

서경석 목사는 한국의 경제성장의 비약적인 발전에 비하여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왜 북한이 경제적으로 뒤지고 있는가? 는 논외로 하고 그래서 우리가 북한에 대하여 두려워 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현대의 전쟁은 바로 경제력이다. 군대의 수나 정신력은 둘째다. 북의 선제적인 공격을 이유로 우리가 국방을 강화하고 있는데 그것도 다 미국 군산복합체제의 이윤 논리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친북을 하던 종북을 하던 그냥 놔두면 된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북이 좋고 북으로 가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보내는 것도 좋다고 본다. 재판정에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걱정을 하는데 그것도 쓸데없는 일이다. 그 사람의 자유이고 법을 어겼으면 벌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누구라도 이 나라 싫으면 이민을 가면 되고 좋으면 열심히 살면 되지 왜 남더러 친북파니 종북파니 하는 말로 인격을 모독 하는가 말이다. 그러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언론에 나가고 생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체면이 있고 점잖으려는 사람들은 논리의 부족으로 말을 못하니 그 대신 나팔수가 필요한 것이다. 짖는 개가 되고 물어 뜯으면 많은 먹이를 줄 것이다. 결국은 이 땅의 진보 세력과 민주화운동을 하는 분들을 흠집내고 보수적인 정당과 집권층을 위해서 자해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본다.

나는 이 나라의 법으로 허용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을 벌주고 재판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치 정당이나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바를 자기와 다르거나 집권당에 반대한다고 해서 나서서 말하는 것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교회나 열심히 목회하시든지 하면 좋겠는데 신문에 나고 싶으신지 조-중-동이 좋아하고 부자들이 원하는 소리를 골라서 하고 있다. 서 목사의 모든 비판과 비난의 결론은 결국 특정 정당의 비난으로 귀결된다. 다름 아닌 통합진보당 세력을 흠집내고 비판을 하는 것이다. 이들이 국회로 가면 나중에는 국회를 말아 먹는다는 소설을 쓰고 있다.

그렇게도 허약한 국회요 국민이요 정부요 국가라면 할 수 없다. 어찌 그런 기우(杞憂, 지붕이 무너질까 하는 걱정)를 하시는지, 이번에 10%의 지지도 받지 못한 정당이고 나라의 큰 근심을 끼친 정당이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의 합법적인 정당으로 그들의 법과 방식으로 자체적으로 정화하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엄연히 법으로 인정되고 보호받는 남의 정당의 국회의원을 제명을 하자고 하지를 않나 초법적인 발상을 한다. 나도 그들은 제명되야 한다고 보지만 그 당이 알아서 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구성을 정치학자들은 30:30:40 이라고 한다.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고 나머지는 중도인데 이 중도가 진보로 기우느냐? 보수를 택하느냐에 따라서 정권의 향배와 총선의 구도가 바뀌는 것이다. 참고로 지난 총선에서는 야당이 표로는 여당을 이겼지만 의원수에는 뒤졌다. 새누리당과 보수층이 위협을 느낀것이지만 국민의 다수는 야권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식적인 지표만 보아도 우리 나라가 얼마나 건강한 나라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니 진보도 잘 해야 하고 보수도 잘 해야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서경석 목사는 보수여당도 그 사람을 멀리해야 중도층을 끌어 않을 수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결국은 너무 나서다가 회색지대 혹은 중간지대에서 양쪽에서 버림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니 더 악이 나서 날 좀 보라고 정부도 비판하고 야권도 비판하는 데 결국은 극 보수의 사람들과 노인들, 전역 군인들, 악덕 기업가들만 남아 그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좌파였다는 고백에 대하여

아직은 내 기억이 또렷하여 말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서 목사가 자신이 관련된 통혁당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박성준 선생을 흠집내고 한명숙 전총리를 비하하고 선거에서 영향을 주려는 비겁한 일이다. 누구든지 북한 체제에 대한 연구와 동경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현재도 범죄단체로 구성될 반국가단체의 조직은 처벌 받게 되어 있다. 생각이야 무슨 생각을 못하겠는가? 당시 서 목사는 학생 신분으로 박성준 선생으로부터 공산주의 교육을 받고 이후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 데 당시 서울대생으로 총명하고 역사와 민족에 대한 미래를 생각하며 다른 나라 특히 북한에 대하여 연구하고 공부한 것은 지식인의 관심으로 탓할 일이 아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에 학습으로 무장한 박성준 선생이 민청학련에 가담하고 YH사건의 배후와 산업선교의 지지자로 활동을 한 것은 사실 기독교의 이념과 실현을 위한 일이었지 혁명적 소조나 조직활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당시 후배들에게도 기독교의 사랑과 사회책임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고 가르쳤지 다른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서 목사는 자기가 하는 현재의 일을 합리화 하고 정당화 하기 위하여 그 같은 과도한 거짓 고백을 하는 것을 보면 무섭다.

당시 젊은이들이 군사독재에 반대하고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고 나라의 미래에 대하여 공부하고 북한과 비교도 하고 통일에 대하여 연구하는 활동들을 지금 서 목사가 쓰고 있는 말인 ‘친북 좌파’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당시 안기부나 민정당이 할 수 있던 얘기인데 그는 지금 그렇게 부르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동지들을 곤경에 넣을 수가 있다는 판단으로 그런 거짓 고백을 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 사상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다. 마음으로 공산주의가 갖고 있는 제도나 복지에 대하여 동경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 개인들의 자유이다. 상상적 공산주의라고나 할까? 그것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런 상징체계나 책이나 사진 등을 소유하면 처벌받는 것으로 안다.

한 예로 나는 그 시절 선배들의 소개로 처음 한글로 나온 서울대 김학준 교수의 러시아혁명사(한국인 최초로 미국의 켄트대에서 그가 쓴 박사학위논문)이나 중국의 공산혁명에 대한 마오쪄뚱의 전기 Red star of China(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가 스노우나 그의 부인 님웨일즈가 쓴 "아리랑"(항일운동가 김산의 일대기), 베트남 공산 혁명의 지도자 “호치민” 전기, 남미 니카라과의 “산디노”나 “판초빌라”, “체게바라”,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 박갑동의 "박헌영 전기" 등 민족과 혁명 그리고 혁명가들의 전기를 읽고 마음으로 그런 혁명을 흠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최전방 철책선 정보 분야에서 군 복무를 하며 북한의 실상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적극적인 반공주의자는 아니어도 북한식의 사회주의 건설은 결코 우리의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한 지적 호기심과 독서는 관념적인 사고와 폭을 넓히고 사상적 심화로 국한되었지 어떤 조직적인 행동으로도 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민족의 역사와 미래에 대하여 어떻게 복무할 것인가에 대한 자의식과 삶에 대한 결단을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목회자가 되어서 기독교을 통하여 우리 민족사에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를 결심하고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의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서 목사는 그런 것을 우리게게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들은 모임에서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고 이미 감옥에 간 학생들 노동자들 해직교수들 신문기자들 지식인들의 책무와 역할에 대하여 결단하며 감성적으로 하나가 되어 함께 눈을 감고 우리의 조국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위하여 희생의 결단을 하도록 했었지 결코 북에 대하여 맹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배들 중 몇몇은 강고한 군사주의 체제 아래서도 두려워 하지 않고 전국적인 조직을 건설하고 활동한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친공 혹은 친북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 목사가 선배였으니 의식적으로는 후배들보다 북한에 대한 동경이 더 많았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서 목사가 그렇게 개인적으로 마음에 담은 내용을 결코 조직적으로 발설하고 가르치고 강요하고 행동한 적은 결코 없었다는 것을 밝혀둔다.

그러나 당시 서 목사의 지도를 받은 EYC 농촌 간사 출신의 한 친구가 농업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고 진보된 학습모임이나 후배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전국적인 조직을 만든 것이 빨갱이 사냥에 희생양이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농촌 간사였던 김의기(당시 서강대, 감청)는 기독교 회관에서 "시민에게 드리는 글" 을 남기고 투신자살을 했는데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죽음으로 결단하는 것은 혁명성이 있어야 하는데 혹시 김의기가 포섭 되었나? 하는 의구심을 가진 적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당시 용공 좌경 간첩단 사건은 모두 조작이나 고문으로 인한 허위로 밝혀져서 민주화운동명예회복위원회의 복권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자기는 좌파였고 용공주의자였다는 서 목사의 허위 고백은 실로 목사의 입으로 할 수 없는 말이다.

그후 전향했지만 우리사회에 노골적인 주체사상인 "강철서신" 을 쓴 김영환이나 새누리당 변희재 등은 1983년이 돼서야 출현한 이들이다. 그렇게 치면 오히려 이재오나 김문수 등이 더 친북적 활동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전향했으니 되었다고 말하겠지만…. 그 이후에 노골적인 친북단체들이나 개인이 실제로 북한을 갔거나 공작금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고 하지만 극히 소수이며 그들의 활동이나 행동 반경은 미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현재의 우리사회에는 큰 변수가 되지를 않는다.

신학교 입학과 미국방문 그리고 북한 방문 후

그후 서 목사는 늦은 나이인 1983년 장신대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된다. 그때 미국에서는 북한을 방문하는 일이 자유로웠고 그도 직접 방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지내는 동안 북한에 가서 본 것을 통하여 북한의 실상을 다본 듯이 말을 하는데 교만이다. 그런 기대를 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 중 가장 이상한 나라요 우상화와 세습정권인데 지식인이 거기에 무슨 환상과 기대를 갖는다는 말인가? 얼마나 북한을 동경하고 사랑헸는지는 몰라도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고는 그냥 보고 오는 것이지. 그리고는 전향의 첫발을 내딛었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되는 말이다. 우리는 안 가 봐도 아는 데 가 보고 알았다는 인식도 그렇고 그런 허약한 의식으로 사니 오늘날의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니면 거짓으로 자신의 일과 사업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꾸며낸 거짓말인 것이다.

1988년초 미국에서 귀국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의 원장 서리로 갔는데 후배들과의 문제가 된 것이 서 목사의 지독한 운동권 감정이었다. 그동안 미국에서 편하고 풍요한 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그는 한국의 척박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하는 후배들과 정서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는 후배들이 이미 철저하게 김일성 주체사상파가 되어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 말은 자기와 다르면 아무거나 갖다 붙이는 것과 같다. 당시 모든 사회과학 도서들은 출판이 해제되어 금기시 되던 책들이 사회주의 정치나 제도에 대하여 열병처럼 출간되고 있었다. 그것도 유행처럼 그리고 또 지나가는 것이었다.

학문을 하는 젊은이들이 학구열과 탐구열로 그리고 기사연과 기독교적인 가치로 세상을 보는 연구자들이 그런 책을 보고 토론을 하고 연구를 한 것이 무엇이 그렇게 큰 잘못인가? 오히려 서 원장 자신의 과거 권위주이적 태도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시 연구원들의 그런 태도를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서 목사는 한 걸음 더 나가 기독교 단체의 활동이나 성명서(아마 NCCK나 인권위 등)들도 북한방송을 베낀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자신도 북한 방송을 들었다는 말인지 그냥 작심하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나 이는 너무 인격을 모독하는 말이다. 국내 문제에 대하여 북한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은 말을 할 수 도 있을 것인데 억지시비를 거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이념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이것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후배들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는 철학적인 사상이나 논리 없이 기독교의 가치만을 갖고도 얼마든지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그리고 만든 것이 “경실련” 이다, 그리고 이 운동은 제한적이나마 우리사회에 대표적인 시민운동 혹은 시민단체의 맏형이 된 것이다. 그러면에서 서 목사는 사실 후배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자기가 그런 후배들을 통하여 도전받고 기독교운동의 가치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중요한 테마와 내용을 구체화 시키는 계기가 된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그들은 서 목사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데 일조한 사람들인데도 그들에 대한 복수심과 감정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지금까지 갖고 있다는 것에서 도대체 안수 받은 성직자의 품성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나는 당시 시골에서 서 목사의 이런 아픔을 듣고 위로의 편지를 쓴 적이 있었는데 직접 답장을 보내 주셨다. 그러나 이후 그 일을 훈장처럼 무용담으로 자꾸 사용하는 것을 보고 괜히 편지를 썼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낙선낙천운동도 좌파시민운동이 했다

 2000년 여야의 대결은 한국의 민주화냐 군사정권의 연장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기독교와 참여연대가 주도하여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투표 자체가 심판이지만 국민들의 알권리와 후보들의 면면을 소개하여 정치권력의 대물림과 민의를 대변하지 않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자는 의도였다고 보이지만 또 다른 방식의 선거운동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되고자 하는 것이나 안 되게 하는 것이 본질상은 같은 것으로 이제는 당선 혹은 낙선을 목적으로 운동을 못하도록 법률상 명문화 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는 고육지책으로 나온 방안으로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당시 시민운동의 낙선운동이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서 목사 외에도 이석연 변호사가 있는데 결국은 어떻게 되었나? 이낙연 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는데 앞장 섰고 그후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서 목사는 시민단체로부터 거의 불신임을 받고 퇴출되었다. 그 낙선낙천운동으로 합리적이지 않거나 거수기에 불과한 의원들, 시대와 맞지 않는 철저한 골수 반공주의자 상당수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하였다. 이 일에 대하여 서 목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제가 창립한 경실련까지 포기하고 다시 좌파와 맞서는 운동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친북좌파의 들러리가 된 좌파 시민운동?

다음 글은 당시 시민운동의 결속과 반미운동의 촉발제가 된, 미군 장갑차로 희생된 여중생들의 사건과 그에 대한 촛불시위에 관한 서 목사의 시각을 보여주는 글로 전문을 소개한다. 그의 시고가 얼마나 편협하고 조잡한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2002년말 미선이 효순이 촛불시위를 계기로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좌파 시민운동의 성격이 굳어집니다. 그 전에는 시민운동이 그렇게까지 좌파적이지 않았습니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입니다. 장갑차가 미선이와 효순이를 보지 못하고 치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총련, 민노총 등 친북좌파들은 이 사건을 성조기를 불태우는 반미운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당시 시민운동 지도자였던 박원순 변호사나 최열 사무총장은 처음부터 친북좌파는 아닙니다. 그래서 두 분은 한총련과 민노총을 비판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북좌파와 손을 잡고 반미운동을 전면에서 이끌었습니다.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종북좌파의 파도 앞에 결연히 맞서는 대신 그 파도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 결과로 한국의 시민운동 주류는 종북좌파의 앞잡이가 되었고 세상사람들이 반미친북세력을 규탄할 때 시민운동도 함께 질타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박원순 변호사나 최열 총장이 김지하 선배처럼 이들을 비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가 미군의 단순한 교통사고를 가지고 도심을 무법천지로 만드는 시위를 합니까? 만일 우리나라가 아프리카의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內戰에 참전해서 5만 명의 우리 젊은이가 목숨을 바쳤는데 그 나라에서 태극기를 불태우며 反韓시위를 했다면 우리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외에도 맥아더 동상을 끌어내린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를 좌파 혹은 시민운동의 최고 비난꺼리로 등장시켰다. 거의 우발적인 일이었는데 솜씨 좋게 ‘이것이 친북좌파들의 모습이다’ 면서 매도하기 시작하였고 정부와 조-중-동과 합세하여 호기를 만난 듯 지금까지 써먹는 단골 메뉴로 재미를 보고 있다. 이것을 비난하면 애국자요 가만 있으면 죄파라는 것이다. 또 평택 미군기기 철수 주장에서의 시위 내용의 과격성 등 자신이 무슨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과 민주운동 통일운동의 평론가가 되어서 보수정권을 돕고 자본가를 돕고 미국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먹여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거기에 고무된 서 목사는 그게 애국이고 잘 하는 일인줄 알고 길거리서 1인 시위로 모든 문제들에 개입하여 논평을 하고 장사를 하고 미친듯이 애국세력과 민주화세력을 매도하면서 값을 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왜 이명박 후보가 압승했는가? 그 이유는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과 평택 미군철수시위 때문입니다. 친북좌파에 대한 공포심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친북좌파가 설치는 꼴을 봐야 하는데 그 꼴을 어떻게 보나 하는 생각에서 BBK 의혹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이명박 후보에게 묻지마 투표를 했습니다” 라는 엉뚱한 평가를 하기도 했다. .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광우병 촛불시위 이명박 정권 출범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서 목사나 김진홍 목사, 인명진 목사는 대표적인 통합교단의 인사들이다. 공교롭게도 이 세 분은 매우 독특한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감옥도 갖다오신 분들이다. 그러나 하나같이 일신의 영달과 명예에 목말라 하면서도 애국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위장을 한 면에서는 실로 비겁한 사람들이다. ‘이제는 좀 편하게 그리고 넉넉하게 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라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김진홍 목사는 한 술 더 떠서 이명박을 노골적으로 돕고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지지하여 선거법에도 걸렸다.

그러나 인명진 목사는 좀 다르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본인이 지원을 한 것도 아니고 고사하다가 허락하게 되는데 구차한 변명이 문제다. 자기가 좋아서 한 것이고 그것도 아무나 할수 있는 일도 아니고 목사가 그런 일에도 잠시 쓰임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인데 조잡한 논리로 합리화하고 변명을 하는 것이 더 문제다 그리고 자기가 할 일을 하고 그만 두었으니 개인적으로 하는 일에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서 목사는 이와 같은 글을 보내고 발표하고 주장하니 더 큰 문제다. 비겁하게 진보진영과 민주화 세력의 동지들과 후배들을 능멸하고 있다.

그래도 이 정권이 그의 공을 인정하지 않자 이번엔 거기다가도 비난을 한다. 그럴수록 그는 자기가 애국을 하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정치권에는 존재감을 보여주려고 추파를 보내는데 그의 비판의 표적이 누구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제일 먼저 민노당의 분당 문제였는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같은 이들이 민노당 주류를 종북(從北)주의라고 비판하고 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었고 광우병 촛불시위도 종북좌파들의 작품이며 강기갑, 천영세, 박석운, 오종렬, 한상렬 등은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을 주동한 사람들이라고 실명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월드컵 붉은악마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고 촛불시위의 성공으로 종북좌파 세력이 다시 진보세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서 목사는 조선족과 탈북동포를 파는 장사꾼이다

그는 조선족 동포를 위한 단식을 하였는데 이는 같은 일을 하는 조선족 선교사역들과는 전혀 무관한 일로 혼자서 자기 것만이 제일이라는 식의 논리다. 그 단식으로 법무부가 자기의 의견을 받아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족교회를 운영하는 데 일반교회는 아니지만 노회에는 담임목사로 올라있다. 예배를 드리지만 이는 사업과 지위를 위한 간판이고 하는 일은 나라와 민족을 어지럽히는 일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목회에 전념치 않고 부교역자들이나 실무자들을 박봉으로 고용하여 모금을 하게 하는 등 비인격적인 처우로 그만 둔 후배들이 한둘이 아니다. 최황규 목사, 오필승 목사, 임장철 선생 등 실명을 댈 수도 있다. 이렇게 목회는 뒷전이고 하는 일이라고는 온 나라 일 참견에 진보운동 비난하기 등이다. 그 분의 조부와 부친은 항일운동과 민족운동으로 국민훈장 애국장을 받고 두 분 다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에 있지만 그는 조상의 이름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그 외 전교조와 심지어 야당의 대표를 지낸 야당지도자들이 종북좌파 세력과 손을 잡고 정치를 하기에 자기는 새누리당과 연대하는 것이므로 야당이 이 고리를 끊으면 중립을 지키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는데 마치 자기가 김 구 선생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진 것 같다. 특히 각종 선거시기만 되면 더욱 날뛰며 사실을 왜곡하고 그래서 이번에도 새누리당에 표를 던질 수 밖에 없다고 겁박을 주고 있다. 특히 그의 논조에는 자기 식의 탈북동포들의 대한 애정과 인권문제가 들어있는데 이는 정부로서도 아주 미묘한 문제로 결코 개인적으로 할 일이 아님에도 탈북 부추기기와 북한 인권단체 돕기 등을 하고 있어 평화통일로 가는 길목에 암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반공주의자이셨던 고영근 목사도 북한 비판과 독재비판을 50:50정도로 하셨다. 공산주의가 출몰하고 기생하는 것은 독재와 부패가 있기 때문이라는 균형있는 시각으로 사회의 경종을 울리셨다. 그러나 서 목사에게서 재벌의 집중과 도덕적 해이, 문어발식 운영, 순환출자 등의 범죄들에 대하여 지적하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고영근 목사는 탈북자이시고 징집되었던 북한 인민군을 탈영하여 반공포로가 되신 분인데도 놀라울 정도로 감상적인 반공주의에 머물지 않았는데,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하다는 서 목사는 북한을 몇 번 가보고 기획 탈북자 얘기 좀 듣고는 마치 민족의 화해자처럼 이런 저런 소리를 하는 데 이것도 탈북장사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북한의 인권은 내정갑섭이라는 것이 국제적인 합의이다. 우리로서는 북한이 나뉘어진 반쪽으로 언젠가는 통일이 되야할 형제지만 지금의 국제적 지위로는 엄연한 독립국가이다. 독립된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를 감정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음에도 도를 넘는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최근에 시작한 사업인 “탈북난민강제송환저지 국제캠페인”이라는 단체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데모를 하고 모금을 하여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미국내의 지원을 받는 장사로 전락을 했다.

북한은 국제적으로 엄연한 독립국가이다

북한의 잘못과 오류는 오류대로 비판할 것이지 감정을 갖고 대응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나 구소련과 중국, 일본이 경계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합쳐야 할 동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너무 서두르거나 자극하지 말고 국제정세의 흐름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성숙한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현 정부 들어 하는 북한 길들이기는 아주 치사한 일이다. “비핵 3000” 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소득 3천 불을 보장하는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말이다. 이는 애들 같은 일이다. 결국 받아드리지 않자 인도주의적인 식량과 농사, 어린이 의료 지원까지 끊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고 있다.

말 안 들으면 밥 안 준다는 논리다. 그것은 한 가정에서 자녀교육의 일환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라 살림을 이런 식으로 하니 남북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잘한 것도 있고 오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문제 만큼은 이전보다는 전향적으로 긴장을 해소하며 발전을 시켰다는 것이 국제적인 인정이다. 그러나 이를 평가절하하고 국제적인 조약 수준의 6.15 선언을 파기하며 이제 막 뿌리를 내린 남북경제협력이나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고 말았다. 이유가 있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이전의 대통령들의 평화통일에 대한 정책에 대한 열등감으로 남북문제의 가시적인 어떤 성과를 내려고 비밀접촉이나 하는 등 상식을 벗어난 일을 하고 있다. 국제관계 특히 남북관계는 고비에 고비를 넘어 신뢰가 다져지고 그 바탕에서 하는 것인데도 기업가식의 발상으로 만나주면 얼마 줄게 하는 식의 접근은 안 된다. 얼마 전 남북고위급 접촉에서 전례라면서 봉투(달러)을 건덴 통일부 직원과 안기부 직원에게 돌려주고 공개하는 바람에 개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남북 정상이 만나서 악수 한 번 하고 사진 나오는 것이 진전은 아닌데 그것에만 연연한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냉전시대에서 평화의 시대로 오는 시기에 군사력, 정보, 안보 분야 등의 축소가 시작되자 엄청한 정보와 장비와 권한을 갖고 있던 안보 세력들이 가공의 적을 만들거나 거짓 정보와 있지도 않은 문제를 만들어서 자리와 예산의 삭감을 막는 것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적과 내통하여 적당한 공격도 유도한다. 과거 이회창 씨는 북한에 기획공격을 유도한 혐의도 있었다. 적절한 안보의 위기는 국민의 결속을 가져오고 보수세력으로 사익을 추구하려는 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 남북의 경제력은 곧 군사력인데 약 10배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전쟁 준비를 끝낸 북한의 무기들은 노후되었고 그것을 정비할 재정이 없다. 그러니 비대칭 전력으로 핵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죽을 놈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이다. 그리고 이 핵이나 장거리 미사일은 남한을 향하여 있지 않다. 일본과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 시위용이다. 그리고 해군력과 공군력은 결코 상대가 안 된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임기 말에 공군전 FIR을 강화한다고 엄청난 군수사업을 수주하려고 하고 있다. 이미 로비자금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미국은 국제평화와 전쟁반대라는 말을 하면서도 국제분쟁을 조장하고 전쟁 분위기를 만들어서 자국의 군수산업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미 록히드나 보잉, 콘드롤 데이터등 수많은 첨단 군수산업체는 후진국이 넘보질 못할 참단무기 개발과 판매로 전환하였다. 낮에는 평화회담을 밤에는 무기판매를 하는 게 미국의 두 얼굴이다.

모든 것은 정치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서경석 목사는 총선을 얼마 앞둔 시점에 이런 글도 쓰고 있다. “우리국민은 남북간 氣싸움에서 남한이 이기도록 이명박 정부를 지지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북한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명박 사랑 – 새누리당 지지 – 북한 사랑이라는 등식이다. 새누리당을 적극지지 하면 북한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친북좌파가 되는 것 아닌가? 북한의 인권은 자국의 법으로 하는 일이니 관여할 바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집시법이나 국보법을 갖고 휘둘를 때 그에 대하여 주변국들이 거론하는 것을 정부는 내정간섭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기획탈북은 북한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으로 간주하고 최고의 긴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이나 북한 국경 근처에 물자를 나눠주고 탈북을 종용하거나 하는 인권단체들이 있는 데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수 없다. 특히 미국의 기독교 보수단체들이 그런 일을 후원하고 국내적으로도 돕고 있는 데 옳지 않은 일이다. 로버트 김이라는 재미동포가 성경을 들고 북에 들어갔다가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공황상태로 돌아온 바 있다. 남북문제는 더디 가더라도 정부가 주관하되 민간을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개인적인 관심사와 행동으로는 결코 도움이 안 된다. 이러한 한번도의 복잡하고 불행한 일들이 선후배 동지로 하여금 서 목사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마음이 아픈 것은 이것을 직업화 일상화 한 서 목사의 행태이다. 진보세력이 서 목사의 변절이나 전향을 먼저 비난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스스로 살기 위하여 나서서 이름을 내고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어 더 잘 먹고 살기 위하여 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가만히 조용히 하시면 된다. 그러면 이런 반론은 없을 것이다.

(다음은 서경석 목사의 글 전문을 올려둔다)

◇                     ◇                     ◇

 

1.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나?

 

   
 

안녕하세요. 저는 65세의 중늙은이 서경석 목사입니다. 저 같은 60대는 이러다가 나라가 종북좌파(북한추종세력)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까 하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저 같은 사람을 꼴통보수라고 말합니다. 자기들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고 이념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싫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나꼼수에 환호하고 결과적으로 나라가 좌파 손에 넘어가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나이든 사람들이 이토록 나라를 걱정하는지를 제 이야기를 통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2. 대한민국에서 황당한 일이…

어떤 분이 제게 <미꾸라지 진짜 용된 나라 대한민국>이란 소책자를 주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우리나라가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SONY를 포함한 일본의 10대 전자회사가 낸 흑자를 다 합쳐도 삼성SDI가 낸 흑자보다 못하고 세계 TV판매의 1,2등은 삼성과 LG이고 인천국제공항도 6년 연속 세계최우수공항상을 받았고 삼성전자는 영업이익 17조원으로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를 넘어섰고 IT기업 중 세계1위가 되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사와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또 한국은 세계2위의 철강대국이고 세계10대 경제대국입니다. 아프리카 53개국의 연간 GDP가 6천억불인데 한국의 연간 GDP는 6천7백억불로 아프리카 전체보다 많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김정은으로 3대세습을 했고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금수산 궁전을 짓는 동안 3백만명이 굶어죽었고, 김정일 상중(喪中)에 탈북하면 3대를 멸족시키겠다고 협박하는,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년 6월30일 수원지방법원 제410호법정에서 종북(從北)까페인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운영자인 황길경 피고는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으면서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외쳐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 작년 8월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보수 대학생단체가 북한인권문제 다큐멘타리 영화 ‘김정일리아’를 상영하고 있었는데 좌파시위대 4천명이 서울광장으로 몰려와 전선을 끊어 이 영화의 관람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 종북좌파 정당인 통합진보당은 지금 원내교섭단체를 꿈꿀 만큼 세력이 강대해 졌습니다.

3. 왜 한국에서 종북좌파 세력이 강대한가?

이 이유를 알려면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87년 6월 민주화 대항쟁 당시 민주화를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학생세력이 대부분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혹독한 군사독재 치하에서 민주화세력은 강고한 투쟁을 하기 위해 흑백논리로 무장해야 했는데 한국상황에 맞는 논리가 없었기 때문에 학생운동권은 이 논리를 맑스 레닌주의, 김일성 주체사상, 마오이즘 등에서 차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운동 안에서는 민중신학이라는 흑백논리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주체사상론(NL)이 맑스레닌주의(PD)보다 훨씬 더 유연했고 그 결과 NL파가 학생운동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민주화 대항쟁 때 한국을 민주화시킨 세력이 바로 이 從北좌파세력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종북좌파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도 아직 우리나라가 군사독재 시절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승리의 경험을 한 사람은 氣가 셉니다. 이 세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각계로 진출하여 시민운동을 좌파로 만들고, 교사가 되어 전교조를 만들고, 노동자가 되어 민노총과 민노당을 만들고 기자가 되어 언론노련을 만들었으며 학계, 정관계, 법조계로 진출했습니다. 이들은 규모도 3-40만명이 되는 대한민국 최대의 세력입니다. 그리고 기회있을 때마다 反美, 反韓 투쟁을 전개해 왔습니다. 미순이 효순이 촛불시위, 대통령 탄핵반대운동, 맥아더동상 철거사건, 평택 미군철수투쟁, 한미FTA 반대투쟁, 광우병 촛불시위, 제주도해군기지반대투쟁, 희망버스 등 대한민국을 흔드는 운동을 전부 주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주통합당도 말 바꾸기를 하면서까지 이들의 영향권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6.25때 대한민국을 구해준 미국을 적대하고 6.25를 일으킨 북한의 대남공작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4. 나도 친북좌파였다.

제가 왜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하는가? 저도 젊은 시절 친북좌파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 2학년 때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CCC 경제복지회에 가입했는데 그곳에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남편인 박성준씨를 만나 그분으로부터 사회주의 비밀지도를 받았고 그 결과 사회주의를 신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통혁당사건이 터지면서 박성준 선배는 징역 15년형을 언도받았고 저는 잡혀갔다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훈계방면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유신체제와 싸우다가 민청학련사건으로 징역 20년형을 언도받았고, 산업선교 활동을 하다가 YH사건과 동일방직사건으로 두 번 더 노동자와 함께 감옥에 갔습니다. 이러한 민주화 투쟁 속에 있으면서도 제 사고의 틀은 여전히 사회주의였습니다.

1982년 저는 미국으로 유학 가서 88년까지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 교포사회에서 는 북한방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을 한주일간 방문하는 사람은 북한의 실상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가끔가다 아들 집에 한 달간 머물다 온 노인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뉴욕 부르클린 한인교회에도 그런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한 밤중이면 아들과 단둘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아들로부터 북한의 진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할아버지가 제게 아들이 들려준 북한의 진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은 북한이 거짓으로 가득 찬 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서야 미망(迷妄)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더 이상 어두운 뒷골목에서 음모가(陰謀家)의 삶을 살지 않고 햇볕이 내리 쪼이는 개명천지(開明天地)에서 맑은 대기를 호흡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88년초에 귀국해서 운동권의 연구기관인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원장서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원에서 파악해보니 일반 학생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학생운동까지 전부 김일성 주체사상파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독교단체의 성명서들도 전부 북한방송을 베낀 것이었습니다. 대학 캠퍼스를 가면 “미 제국주의자의 각을 뜨자”는 식의 충격적인 구호가 난무했습니다. 저는 처음 6개월간 후배들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내가 이들을 의식화시켜 진보운동을 하게 했기 때문에 지금 이들이 주사파가 된 데에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운동권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후배들에게 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기독교운동은 성경말씀에 기초해서 해야지, 주체사상론에 입각해서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후배 한 사람을 몰래 불러 사회주의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화근이 되어 후배들이 저를 개량주의자라고 비판하면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 직에서 내쫓는 운동을 했고 결국은 진보기독교 진영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새로 시작한 운동이 경실련이었습니다.

저는 경실련을 시작하면서 운동권의 운동방식을 전부 뒤집었습니다. 운동권이 사회주의를 지향할 때 경실련은 시장경제체제를 주장했습니다. 운동권이 비합법운동을 할 때 우리는 합법운동을 주장했습니다. 운동권이 민중운동을 하면 우리는 보통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민운동을 했습니다. 운동권이 계급투쟁을 할 때 우리는 사회적 공공선을 추구했습니다. 운동권이 기업을 적으로 돌릴 때 우리는 기업가와 노동자를 합쳐 생산자계층이라고 한다면 생산자 계층의 편에 서서 불로소득 계층을 비판했습니다. 경실련이 주장한 경제정의는 평등이 아니라 사람들이 균등한 기회를 누리며 공정하게 경쟁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실련의 노선은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경실련이 창립된지 5년이 지난 94년에는 경실련이 한국 사회운동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94년에는 남아있던 재야운동이 시민운동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출범한 단체가 <참여연대>입니다. 그 후부터 시민운동 안에서는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주도권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합니다. 경제정의, 시민참여, 분권, 지방자치와 같은 영역에서는 생각의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문제와 노동문제가 나오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참여연대는 무조건 북한편을 들고 노동자 편을 들었지만 경실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울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하면 참여연대는 노동자 편을 들었고 경실련은 왜 시민들의 발을 묶냐며 시민의 편에 섰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경실련은 과거 운동권과 단절하고 새출발을 했지만 참여연대는 과거 운동권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5. 낙선낙천운동은 좌파시민운동의 시작

그러다가 2000년 낙선낙천운동을 고비로 참여연대가 시민운동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가 주도한 낙선낙천운동은 경실련운동의 철학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경실련은 진리는 여론조사나 투표 등 다중의 여론으로 결정되면 안 되고 양식있는 지식인들의 이성적 토론으로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는 한 번도 표결로 의사를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낙선낙천운동은 국민의 지지가 높으니 이 운동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운동권이 민주집중제라 하여 민중이 투표로 한 결정은 전부 옳다고 주장했는데 낙선낙천운동은 이러한 옛날 생각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경실련 式 시민운동은 낙선낙천운동 이후 포퓰리즘적 운동으로 대치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포퓰리즘이란 말이 낙선낙천운동 이후에 나오게 된 것도 전혀 우연이 아닙니다. 또 낙선낙천운동은 잘못된 선거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당장에는 인기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이후의 시민운동은 국민을 향해 법과 질서를 호소할 수 있는 도덕적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낙선낙천운동의 독선(獨善)이었습니다. 시민운동은 겸손해야 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도 자기가 결정하지 않고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해서 국민이 결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낙선낙천운동은 법위에 군림하고 스스로 판관(判官)이 되어 정의의 잣대를 마음대로 휘둘렀고 자기들이 정한 낙선자 명단은 무오(無誤)하다고 하여 일체의 수정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낙선낙천운동은 편향적인 특정정당 지지운동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시민운동은 그 후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시민운동이 권력화 되고 내부의 언로(言路)가 막혀 낙선낙천운동에 대한 비판이 일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시민운동 내에서 낙선운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저와 이석연변호사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낙선낙천운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직 취임을 거부당했습니다.

한국역사에서 낙선낙천운동처럼 크게 홍보가 된 시민운동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달 내내 모든 언론의 톱뉴스였으니 말입니다. 어떤 시민운동가는 묘비에 낙선낙천운동을 했던 사람이라고 쓰겠다고 말할 정도로 대성공한 운동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운동은 시민운동의 묘혈을 판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 이후 시민운동은 완전히 좌편향으로 갔고 그 결과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이 운동의 최대의 수혜자이지만 사실은 시민운동의 몰락의 책임을 져야할 사람입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국가보안법을 “아무런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교도소에 처넣어 피비린내 나는 고문으로 용공을 조작한 악랄한 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김용갑의원과 같은 사람을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낙선낙천운동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확산시켰습니다.

결국 민주화 대항쟁 때 학생세력이었던 386세대가 성장하면서 조성한 거대한 좌편향 흐름이 나중에는 경실련까지 삼키고 말았습니다. 저는 제가 창립한 경실련까지 포기하고 다시 좌파와 맞서는 운동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6. 친북좌파의 들러리가 된 좌파 시민운동

2002년말 미선이 효순이 촛불시위를 계기로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좌파 시민운동의 성격이 굳어집니다. 그 전에는 시민운동이 그렇게까지 좌파적이지 않았습니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입니다. 장갑차가 미선이와 효순이를 보지 못하고 치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총련, 민노총 등 친북좌파들은 이 사건을 성조기를 불태우는 반미운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당시 시민운동 지도자였던 박원순 변호사나 최열 사무총장은 처음부터 친북좌파는 아닙니다. 그래서 두 분은 한총련과 민노총을 비판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북좌파와 손을 잡고 반미운동을 전면에서 이끌었습니다.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종북좌파의 파도 앞에 결연히 맞서는 대신 그 파도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 결과로 한국의 시민운동 주류는 종북좌파의 앞잡이가 되었고 세상사람들이 반미친북세력을 규탄할 때 시민운동도 함께 질타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박원순변호사나 최열총장이 김지하 선배처럼 이들을 비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가 미군의 단순한 교통사고를 가지고 도심을 무법천지로 만드는 시위를 합니까? 만일 우리나라가 아프리카의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內戰에 참전해서 5만명의 우리 젊은이가 목숨을 바쳤는데 그 나라에서 태극기를 불태우며 反韓시위를 했다면 우리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후 좌파 시민단체들은 종북좌파와 한통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이라크 추가파병을 반대하고,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했습니다.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이 우호적이었고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형편없이 가혹했습니다.

7. 맥아더동상 철거시도 사건과 평택 미군철수 시위

2005년 9월의 맥아더동상 철거시도 사건도 큰 획을 그은 중대사건입니다.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 전에는 우리국민이 우리나라에 친북좌파세력이 광범위하게 존재함을 몰랐습니다. 공산권이 망하고 북한도 비참한 상황 속에 있는데 한국에 어떻게 친북좌파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북좌파는 극우세력이 진보세력을 메카시즘적으로 공격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며 수천명이 모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없었으면 한반도가 김일성에 의해 통일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분단되어 통탄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철거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 종북(從北)좌파 세력이 자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입니다.

저는 이들이 누구인지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전교조, 전농, 민노총, 민노당, 범민련, 한총련, 민중연대, 통일연대, 그리고 나중에 진보연대였습니다. 숫자도 3-40만명이 됩니다. 학생운동의 주사파가 나중에 교사가 되어 전교조를 종북좌파로 만들고 민노총을 종북좌파로 만들고 종북좌파 정당인 민노당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구(舊)좌파처럼 사회주의혁명까지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계급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세계화를 반대하고 반미친북의 입장에 서서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하고 미군철수를 주장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저는 박원순, 최열, 한완상 등 모든 시민단체 지도자들에게 메일을 보내어 맥아더동상 철거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답변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했습니다. 다음에는 나는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저도 한 달을 고민했습니다. 내가 從北좌파를 반대하면 틀림없이 후배들이 나를 보고 꼴통보수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수모를 감수하더라도 할 말을 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부터 저는 길거리에 나가 “친북좌파 척결이 시대정신이다”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그 다음부터 후배들이 저를 변절자, 꼴통보수라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좌파들이 평택 미군기지 철수를 주장하며 비무장 군인을 죽창으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평택까지 내려가서 규탄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데모에 온 사람들은 거의 다 군복을 입은 재향군인 할아버지들이었습니다. 저는 전에는 군복입고 집회에 오는 재향군인들은 극우라고 생각하여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평택에서는 그분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친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꼴통보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했다고 제가 꼴통보수가 된다면 저는 이제부터 당당하게 말하려고 합니다. 보수는 좋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자랑스런 보수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이명박 후보가 압승했는가? 그 이유는 맥아더동상 철거사건과 평택 미군철수시위 때문입니다. 친북좌파에 대한 공포심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친북좌파가 설치는 꼴을 봐야 하는데 그 꼴을 어떻게 보나 하는 생각에서 BBK 의혹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이명박 후보에게 묻지마 투표를 했습니다.

8.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광우병 촛불시위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진보진영은 종북좌파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는 영원히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변화를 시작한 곳이 민노당이었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같은 이들이 민노당 주류를 종북(從北)주의라고 비판하고 더 이상 그들과 당을 같이 할 수 없다며 뛰쳐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그때의 분위기가 계속되었더라면 우리나라에서 종북좌파가 청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광우병 촛불시위가 터졌습니다. 이 촛불시위는 종북좌파들의 작품입니다. 강기갑, 천영세, 박석운, 오종렬, 한상렬 등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을 주동한 사람들이 그대로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동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 붉은악마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이 촛불시위가 성공하는 바람에 코너에 몰렸던 종북좌파 세력이 다시 진보세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좌파 시민단체들이 다시 종북좌파의 둘러리를 서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건입니다.

저는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조선족동포를 위해 단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한국에 온지 17년이나 된 조선족들을 추방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단식 25일째가 되어서야 법무부가 내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로 청계광장에 나가 광우병 촛불시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매일 두 시간씩 두주일 동안 했습니다. 1인 시위를 하는 나에게 모멸감을 주기 위해 좌파들의 온갖 훼방을 놓았습니다. 호루라기를 계속 불어대는 사람,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 내가 연설을 할 때마다 내 앞에서 연설하는 사람, 나보고 변절자라고 소리치는 사람, 친일파라고 소리치는 사람….. 벼라 별 사람이 다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저를 보호하기 위해 서울조선족교회 교인 30명이 매일 저를 둘러쌌습니다. 이 기간 동안 모금을 했는데 삽시간에 수천만원이 걷혀 그 돈으로 아르바이트를 써서 서명운동을 했고 그 서명운동에 호응해서 1만명의 목사님들이 광우병 촛불시위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촛불시위는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변절자가 아닙니다. 변절은 좌파들이 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군사독재와 싸워 우리나라를 민주화시켰으면 그 다음에는 북한 세습독재와 싸워 북한을 민주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인권을 말하면 사람들이 꼴통보수라고 하고 변절자라고 합니다. 또 나는 친일파도 아닙니다.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중국으로 망명하셔서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국민훈장 애국장을 받으셨고 지금 두 분 다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에 모셔져 있습니다.

9. 청산되어야 할 종북좌파 세력

우리 역사에는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대로 있어도 세력으로서의 친일파는 청산되었습니다. 세력으로서의 군사독재세력도 청산되었습니다. 세번째로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종북좌파입니다. 대표적인 종북좌파가 민노당(지금의 통합진보당)과 전교조입니다. 민노당이 김정일 추종세력이었기 때문에 민노당 핵심당원들이 일심회, 왕재산사건과 같은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도 민노당은 관련자 출당이나 대국민사과와 같은 조치를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민노당은 태극기에 대한 경례도 애국가도 절대로 부르지 않는 정당입니다. 다만 유시민씨 측과 합당하면서 태극기에 대한 경례는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애국가는 절대로 부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종북좌파는 낡은 보수세력이지, 진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합리적인 진보는 손학규, 김진표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손학규나 김진표도 종북좌파와의 연대를 끊어야 합니다. 만일 민주통합당이 종북좌파와의 연대를 끊는다면 저는 즉각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정치적 중립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이 종북좌파와 연대하는 한 나는 새누리당에 표를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10. 나는 왜 북한인권문제에 관심 갖게 되었나?

저는 과거에는 북한인권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북한에 인권문제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한반도 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6.25전쟁을 치른 나라로서 전쟁방지가 우선이고 북한인권은 평화정착 후에 다루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서울조선족교회 목사로서 연변에 사는 교인들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연변에서 저는 62명의 탈북동포들이 중국공안에 붙잡혀서 북한에 강제송환되었는데 전원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한동포돕기를 열심히 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면 동포를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 자정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총살소식을 듣고는 몸이 굳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목사인 내가 이 소식을 듣고도 가만히 있으면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변에서 귀국한 후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조선족 동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지겨웠는데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조선족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참혹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날을 회개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이기주의자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평화가 우선”이라는 말은 일제시대의 가쯔라-태프트 밀약과 같은 것입니다. 이 밀약은 미국의 태프트와 일본의 가쯔라가 만나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것을 미국이 용인하고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는 것을 일본이 용인한다는 밀약입니다. 이 조약은 두 수퍼파워 간의 조약이기 때문에 세계평화에는 기여하겠지만 우리민족에게는 너무도 절망적인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가 우선’이라는 말은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하는 대가로 북의 김정일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생각입니다. 북한동포들에게는 너무도 절망적인 소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인권만을 주장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북한인권 못지않게 한반도 평화도 중요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무찌르자 김정일” 式으로 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다른 한편으로 북한인권을 말해야 합니다.

물론 북의 김정은정권은 우리의 생각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주장해야 하고 결국은 북한이 우리를 따라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당시 저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였습니다. 이 단체는 제가 창립한 한국의 대표적인 북한동포돕기운동 단체입니다. 그런데 북돕기를 하려면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친북좌파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저처럼 과거에 통일혁명당 사건에 관련되기도 했고, 독재와 싸우다 감옥도 세 번 갔고, 경실련 경제정의운동도 하고, 북한동포돕기운동도 한 사람이 나서서 젊은이들에게 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년을 고민하다가 탈북동포 돕기운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탈북난민강제송환저지 국제켐페인”이라는 단체를 창립해서 일년에 몇 번씩 각 나라 중국대사관 앞에서 동시다발로 강제송환을 반대하는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는 수없이 집회를 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 펙스를 보내어 저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압박했습니다. 실무자가 북돕기를 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해야 하는데 저 때문에 실무자의 북한방문 길이 막혔습니다. 이용선 사무총장이 찾아와 하소연했습니다. "제발 사표를 내주십시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창립자(founder)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공동대표직을 사임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본격적으로 북한인권 운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11. 언제까지 북한에 굴종하며 살 것인가?

그런데 우리나라의 진보세력은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합니다. 그런데 진보 기독교가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70년대에 박정희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위해 민주주의의 유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진보 기독교는 “우리는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했던 진보 기독교가 지금 와서 북한주민을 보고 빵만으로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중잣대이고 북한주민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70년대에 안병무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마가복음 2장 27절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구절을 가지고 설교하셨습니다. 그때 안 박사님은 이 구절이 기독교의 인권헌장이라면서 "헌법과도 같은 안식일법 조차도 인간을 억압할 때는 이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체제나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도 인간을 억압할 때는 기독교인은 이에 저항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유신헌법이 발동된 직후였기 때문에 당시 젊은이들은 이 말씀을 감옥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실제로 저는 유신헌법에 저항했다가 민청학련사건으로 징역 20년을 언도받았습니다.

저는 1998년 이후 북돕기를 위해 다섯 번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가야하는 곳이 만경대 김일성 생가와 김일성 동상입니다. 그리고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 몇 군데를 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항상 맨 뒤에서 울면서 따라 다녔습니다. 아마 안내원은 제가 감격스러워 우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아니라 제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감옥을 세 번이나 갔었는데 지금 박정희 정권보다 백배는 더 독재인 김일성-김정일 수령독재체제 앞에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식량만 갖다 바쳐야 하는 내 신세가 너무 처량했기 때문입니다. 북돕기를 하는 사람은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할 수밖에 없지만 북돕기를 하지 않는 분들은 북한인권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잘못된 체제를 용납하는 것이 됩니다.

저는 이명박정부에 대해 불만이 많지만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만큼은 확고하게 지지합니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는 김정일 비위 맞추기와 퍼주기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평화는 사이비 평화요, 거짓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한발짝이라도 인권개선을 가져오는 평화여야 합니다. 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에 남북간 평화가 깨졌나? 그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 인권을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자 그때부터 남북간 氣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은 이명박정부가 노무현정부 시대로 되돌아가기를 원했고 남한은 북한이 한국을 따라오기를 원했습니다. 이 氣싸움 과정에서 북한은 두 번의 승부수를 두었습니다. 하나는 천안함 폭침이고 또 하나는 연평도 포격입니다. 북한은 두 사건을 통해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 여론이 커지기를 바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면서 노무현정부 때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법도 제정하지 말자고 합니다. 6.25전쟁이 남침임을 북한주민에게 알리지도 말자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노무현정부 시절로 되돌아간다고 해서 천안함 폭침과 같은 사태를 피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폭침이 두려워 김정은 비위맞추기로 되돌아가면 그때부터 우리는 북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합니다. 북한은 우리가 비위를 거스른다고 생각하면 천안함 폭침 같은 도발을 반복할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의 재발을 막는 방안은 단 하나입니다. 군사적 보복은 아니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뼈저린 고통을 북에 안겨주는 것입니다. 이점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해 결연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저는 이 입장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과하지 않으면 돕지 않겠다는 입장을 끝까지 밀고갈 수는 없습니다. 북한은 절대로 사과할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정 기간 후에는 다시 대화모드로 전환해야 하는데 김정일의 사망으로 자연스럽게 국면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국민은 남북간 氣싸움에서 남한이 이기도록 이명박 정부를 지지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북한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어떤 기독교인은 우리가 북한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북한을 사랑한다면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가도록, 조금이라도 북한인권이 개선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북한이 지금의 경직된 체제를 끝까지 고집한다면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와 같은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인권문제를 말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손해보는 일입니다.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사태도 이명박 정부가 북한인권을 말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손해를 보고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인권문제를 말해야 합니다.

저는 한반도의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대가로 얻어지는 평화라면 저는 그 평화를 반대합니다. 저는 햇볕정책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북한인권문제를 외면하는 햇볕정책은 반대합니다. 저는 6.15공동선언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그 선언이 북한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저는 이를 결사적으로 반대합니다.

제주도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핵심논리는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기 때문에 해군기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주장을 가장 명쾌하게 반박했습니다. 평화를 지키려면 국방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60년대에 후르시쵸프가 큐바에 미사일기지를 건설하려 할 때 케네디대통령이 한 행동에서 배워야 합니다. 케네디대통령은 3차대전을 각오하고 미사일부품을 실은 배를 미 해군함정으로 봉쇄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평화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때로는 전쟁까지도 각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북한에 굴종하면 안 됩니다. 당당하게 맞설 수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12. 탈북난민 북송반대 운동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지금 매일 오후2시와 오후7시에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북송반대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4월9일)도 57차 집회가 열렸습니다. 2월14일 처음 집회가 열렸을 때 저는 집회가 매일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백일 쯤 되면 더 이상 집회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국민는 틀림없이 북송이 중단되는 그날까지 계속 모일 것입니다. 4월24일에는 부산의 기독교인들이 버스 5대에 분승하여 서울로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버스에 “생명버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요즈음 기독교의 각 교단총회 지도부가 돌아가며 중국대사관 앞에 모이고 있습니다. 4월10일에는 전 세계 50개 나라 중국대사관 앞에서 동시다발로 집회를 갖습니다. 이렇게 전 세계가 지속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면 중국은 언젠가는 반드시 북송중단이 국가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지금 중국에는 티베트 사태, 위그르 사태, 파룬궁사태, 천안문 사태 등 인권이슈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슈들은 전부 중국의 체제문제를 건드립니다. 그래서 중국정부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탈북자 북송문제는 외교정책 문제이지, 체제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탈북난민 북송반대운동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민족운동입니다. 첫째는 1919년 삼일운동이고 둘째가 7,80년대의 민주화운동, 그리고 세 번째가 강제송환반대운동입니다. 이 운동이 통일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동독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체코와 헝가리가 동독난민을 동독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고 서독으로 보내면서부터입니다. 지금처럼 언론이 강제송환반대 운동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의 기회를 살려내지 못하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사생결단하고 반드시 이 운동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민족의 미래가 찬란하게 열릴 것입니다.

13.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가?

저는 우리국민 앞에 네 가지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종북좌파가 더 이상 우리나라를 흔들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나이든 어르신이 제일 걱정하는 점도 이점입니다. 우리나라가 종북좌파세상이 되면 나라는 위기에 빠지고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불가능해 집니다.

둘째는 포퓰리즘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포퓰리즘의 덫에 걸려 있습니다. 여야가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알젠틴, 브라질, 체코 등 여러나라가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 주저 앉았는데 우리나라도 똑같은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시민들이 포퓰리즘과 싸워야 합니다. 특히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는 납세자운동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셋째는 기득권세력의 횡포와 독점에 의해 피해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일입니다.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고, 잘못된 재개발정책으로 원주민의 85%가 쫓겨나고, 카드수수료가 대형업소는 1.5%이지만 소상공인은 3%-4.5%인 이 불공정이 시정되어야 하고 사행산업의 막강한 로비력 때문에 도박이 조장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전관예우도 청산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인간다운 삶, 인간다운 정책이 유지되는 일입니다. 가난한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예산을 쓰고, 북한동포를 돕고, 조선족 동포를 포용하고,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약자를 돕고, 사회적 소수자의 편에 서야 합니다.

얼마 전 민간인 불법사찰문제가 불거졌을 때 MB정부가 제가 하는 시민운동을 사찰했음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보았더니 제가 정부의 재개발정책에 반대해서 체인을 감고 길거리에 드러눕는 등 극렬한 투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주민의 85%가 내쫓기는 잘못된 재개발 정책에 항의하다가 두 번이나 체포되어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저는 보수가 아닙니다. 저는 조선족동포 권익옹호를 위해 여섯 번이나 무기한 단식을 해서 동포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종북(從北)좌파는 안 됩니다. 배고파 탈북한 주민을 총살하고 3족을 멸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진보가 되려면 김정일, 김정은 편에 서지 말고 압제 하에서 신음하는 북한주민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진보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