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룡 소장이 본 이단의 정체와 기준
이단의 정체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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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2년 10월 28일 밤12시 휴거를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입니다. 이날 250개 교회 2만명이 흰옷을 입고 휴거를 기다렸습니다. 그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만호 목사가 장죠셉이란 이름으로“베르칩 숨겨진 사단의 역사”란 책을 내고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 TV 생중계까지 하여 한국교회는 망신을 하고 이 일 이후 기독교이미지는 더 나빠지고 선교의
길을 더욱 좁아졌습니다. 그 때 250개 교회 지도자들과 2만명의 성도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3. 진리는 분명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진리는 열려있어야 하고 지식에 뒷받침이 따라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자신만이 옳다라는 폐쇄적 주장을 적을 때 오히려 깊은 신앙심과 복음의 기쁨을 듬뿍 누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4. 제 담벼락에 사찰사진들이 있고 불경의 어느 부분을 인용했다하여 종교다원주의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그리스도만이 진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결코 종교적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복음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위험성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적 진리를 믿고 있다하여 다른 것에 대하여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5. 오늘은 이단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성경 아닌 것으로 진리를 설명하는 곳은 이단입니다. 또한 성경 구절을 나열하고 인용했다하여 성경적인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에서 성경 구절이 인용되고 설명되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단들도 성경을 많이 인용합니다. 그리고 줄줄이 외웁니다. 심지어 성경으로 모든 것을 풀어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이단이라 하는 것은 그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경을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많은 이단들이 요한계시록, 이 특별한 위로와 축복의 말씀을 성서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자신들의 옳지 못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설교를 하고 교회의 지도자가 될 사람은 오랜 시간 공인된 신학대학에서 신학적 지식을 충분히 쌓아야 합니다. 은혜가 깊다는 것과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그리스도의 초월적 신성을 부인하거나 예수그리스도의 역사적 인간 인성을 부인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저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해주신 이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진정한 영혼은 없습니다. 가장 거룩한 사람들은 결국 율법주의였고 가장 정의로운 사람들 그 속에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떠한 사상가 어떠한 선언들에게도 볼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깊은 삶의 발자취. 그리고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경청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로 이르게 하는 이 구원의 진리 앞에 날마다 소름끼치는 감사와 감격이 나이가 들수록 더 계속됩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이 구원을 부인하면 그것이 이단이라는 것이지요.
셋째,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인데 우리가 진화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연히 힘의 논리에 의해 적자 생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과 특별한 섭리에 의하여 태어났다라는..
그래서 우리가 영광 돌리는 것은 특정정치인도 어떤 교권주의도 아닌 하나님이여야 한다는 사실. 이것이 성부론입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자연을 주셔서 삶의 터전을 주신 것과 함께 수많은 선현을 통해서 지혜를 주신 것과 함께 결국은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다라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내 생명으로 여기는 것이 성자론입니다.
지금 이순간도 말씀과 위로와 뜨거운 사랑으로 인도해 주셔서오늘도 우리가 이 비참하고 아픈 삶의 질곡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감동을 주신 그것이 바로 성령론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우리의 고백이라는 것이죠.
넷째, 합리적이고 전통적인 교회의 질서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이익과 한 개인의 사상에 줄을 서서 오래된 교회에 가치와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모순이 있습니다. 아니 교회가 간혹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담아주는 그릇이기에 교회의 건강한 질서와 역할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또 부인하며 그것에서 일탈하는 것이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깎기고 다듬어진 공동체 생활인 교회, 그리고 지역과 나라를 넘어서 또 다른 세계에서 고백되는 공동체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교회의 연합에 대하여 인정하는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크리스찬의 생활이기에 세계적인 교회연합기구에 대하여 인정하고 함께 가려고 하는 노력을 배제하고 배타적으로 폐쇄적으로 가면 이단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해 진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사회와 더불어 가며 유익을 주고 사회를 위해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을 경시하고 자신과 지신이 속한 교회나 집단만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은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기준이 이단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기준입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초대 교회의 신학자이며 순교자였던 이레니우스가 수많은 이단들과 논쟁하며 싸운 이단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2000년 기독교 역사에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는 기본 기준이 되었습니다. 325년 니케아공의회를 통해서 세워진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 성 어거스틴과 마틴 루터, 칼빈이 형성한 핵심적 신앙이 위의 다섯 가지 상황입니다.
6.이단이란 말의 뜻은 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말하면서 더 수고하고 무겁게 하는 사람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하면서 더 폐쇄적으로 우릴 인도하는 지도자들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물량주의 비인간적 인본주의들이 바로 이단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주신 진리를 따르는 2천년의 긴 가치를 붙잡고 하나님을 향한 방향성을 따라 가는 삶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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