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마을 곳곳에서 협동조합 교육과
협동적 삶의 열기 점화 시작!!
2013 2월 26일 화요일 부천의 약대동 "담쟁이 문화원"과 "부천 ymca"와 약대동 "신나는 가족도서관" 3곳에서 각각 협동조합 강좌와 사회적 경제와 협동적 삶을 주제로한 청소년 인문학 강좌가 각각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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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부천 약대동 "새롬교회"와 "담쟁이 문화원" 그리고 "일과 사람"이 약대 5거리 담쟁이 문화원에서 공동 주최한 협동조합 강좌는 60여명이 강좌에 등록하는 등 지역과 마을단위에서의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과 열기를 확인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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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대에 "WCC 부산총회와 YMCA"라는 주제로 열린 부천 YMCA 2월 시민 포름에 주제 강사로 오신 신학자 김용복 박사님은 부천은 한국 협동운동의 메카다라고 운을떼며. 원경선 선생님, 그리고 황주석 y 전 총무님과 생협운동 등의 관련을 이야기 하며,
“ YMCA는 협동훈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북한이 열리면 협동훈련을 북한에 가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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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고통받고 영양실조가 있는 어느곳이든지 그곳에 신앙, 사랑, 정의의 연대를 맺어나가는 것이 필요하고, YMCA가 바로 그러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협동조합은 경영기법이다. 생산성, 창의성, 협동조합은 기업이고 좋은 생산이어야 한다.
나누기 위한 생산, 서로돕기위한 생산이어야 한다”라고 부천 ymca 회원들을 격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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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보다 조금 이른 시각 오후 2시경에 부천 약대동 신나는 가족도서관에서
부천 지역 현직 사회 교사이신 이성재 선생님은 ‘경제 IN 인문학’이라는 약대동 청소년 인문학 강의를 통해 우리는 어떤사회에 살고 있는가?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두 사회가 한 사회인 것처럼 경제학자들이 이야기 하여 왔지만, 1인 1표의 원리와 주식 한 주에 1표의 원리는 같을 수 없다.
자본주의가 곧 민주주의와 같거나 일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하시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적 도표와 그래프로 마치 과학적인 처럼 우리를 세뇌시키는 경제학적 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경제라는 학문과 권력이 인문학과 시민권력을 압도하는 사회에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기에… 어릴 때부터 ‘돈’을 정점으로 하는 경제 교육의 폐해를 사람이 먼저라고…바로 잡아야 한다…
라고 갈파하시면서 ….이누타섬의 아로파, 스웨덴의 라곰과 옴소리, 우리나라의 두레, 품앗이, 증여의 경제 원리..그리고 지역 경제와 협동조합… 등등 새로운 사회 경제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에겐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적 경제원리가 있음을 강조 하셨다.
다음은 부천 약대동 담쟁이 문화원에서 김신양(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학원) 교수가 행한 강연의 원고의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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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담론으로 나아가다
김신양(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학원)
나와 너의 살림과 지역을 지키는 사회적경제 ‘오래 전부터 인간은 다른 노동을 추구하고 그들의 활동에 인간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결사하였다. 사회연대경제는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고자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곳은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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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공동체
2011년 가을, ‘사회적기업과 지역사회파트너십’이라는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마을기업을 방문하고 조사하기도 했다. 그 중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마을기업의 가능성을 보여준 곳이 대전의 중세동 상추작목반이었다. 이제 노인만 남아 쇠락해가는 마을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아이와 청년, 노인 등 여러 세대가 어울려 사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마을 사람들이 마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고, 그들의 마음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계획이 필요했다.
그 때 김영현대표는 ‘마을기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의 염원을 이룰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우선 마을기업지원금으로 낙후되거나 노화된 비닐하우스를 고치며 마을분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는데 그 와중에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는 전혀 지원금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소득도 높이며 가구별 소득 격차도 줄여야 했다. 그래서 상추작목반 49명 중 연소득 천만원대의 생산성이 낮은 노인들의 땅은 생산성이 높은 청년층 – 비록 5~60대지만(^^) – 들이 임대하여 전체 소득을 높이고, 작목반을 재구성하여 개별소유 작목반 구조를 공동소유로 전환하여 소득 평준화를 이룰 계획을 세운다. 노인분들을 위해서는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하여 마을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며 마을의 노인들에게 소득창출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도 세웠다.
또 다른 열망의 현장을 만났다. ‘관저품앗이공동체’는 또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열성 아줌마들이 모인 건 이사 간 사람들끼리 끈을 놓지 않고 살기 위해 인터넷까페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품앗이 육아도 하고 강좌도 개설하며 함께 돌보고 친해진 후 급기야는 운영진 5명이 돈을 모아 공간도 마련했다. 마을기업 지원금을 받아 대여사업도 하고, 천연제품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이윤을 거의 남기지 않고 낮은 가격에 판매하며 함께 사업도 했다. 그런데 운영진 중 한 명의 가정에 어려움이 생겨 이사를 가게 되면서 탈퇴하게 되자 남은 이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우리가 이 일을 하면서 그사람에게 돈을 줄 수 있었으면 떠나지 않아도 됐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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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동 상추작목반이든 관저동 품앗이공동체든 그들이 마을기업을 시작한 이유는 다르지 않다. 그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공동체)을 지켜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다. 농촌의 경우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이 쇠퇴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활성화하고자 하며 도시의 경우 모인 사람들끼리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유지, 안정화를 위한 방안으로 경제활동을 구상한다. 개인이 시작했든 몇 명이 함께 시작했든 그 바탕에는 공동체의식이 있다. 내가 사는 마을, 내가 사는 동네, 나와 함께 아이를 키우고 돌보는 공동체, 그 곳에 대한 애착과 소속감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듯 사업이라는 것, 경제활동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달리 많은 경우 ‘돈벌이’가 동기가 되지 않으며 궁극적인 목적도 되지 않는다. 나와 너가 함께 처한 조건을 극복하고자 하는 ‘운명공동체’정신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함께 일을 도모하게 하는 것이다. 거기서 결사가 이루어진다.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사회적협동조합… 10여 년 전부터 한국사회에 등장한 이상한 기업들의 이름이다. 농협과 축협은 알고 있었지만 사회적협동조합은 들어보지 못했고, 주식회사나 공기업은 들어 봤지만 사회적기업은 들어보지 못했었다. 이것은 국가가 운영하는 국영기업도 아니고 자본가가 운영하는 주식회사도 아니다. 마을과 사회,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며 나와 너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그래서 마을기업과 사회적기업은 그 곳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고 그들에 의해 운영된다. 마을기업처럼,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드는 기업을 사회적경제조직이라고 한다. 사회적경제조직은 일반자본기업이나 공기업과는 달리 궁극적인 목적은 회원(조합원)이나 지역사회에 혜택을 주는 것이고, 자본보다는 사람과 노동을 우선하고, 구성원에 의하여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자율적인 조직이다. 이 기업들은 보통 협동조합, 공제조합, 비영리민간단체, 재단 등의 법적인 지위를 가지지만 자주경영노동조합, 마을기업, 커뮤니티비즈니스 등 제도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사회적경제는 원래 산업혁명 직후 프랑스에서 기존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 학문의 영역에서 등장했다. 그 이유는 당시 정치경제학이 어떻게 부(富)를 만들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빈곤이나 불평등과 같은 사람과 사회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공동체가 붕괴되었고 사람들은 노동을 판 임금으로 살아야했지만 빈곤을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는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시기였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지만 늘 굶주리거나 죽어갔으며, 거대한 공장을 돌리기 위해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거는 열악했으며,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보살필 공동체가 사라져 도시의 거지로 떠돌았다. 도시는 범죄가 창궐했고 농촌은 굶주렸다. 참으로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모습이 시작된 것이다. 그 참혹한 현실 앞에서 다수의 노동계층이 노동자소비협동조합과, 신용공제조합 등을 만들며 산업혁명의 거센 파도를 넘고자 했다. 노동자결사체를 만들어 임금노동을 극복하는 것이 노동계층의 이상이자 사회적경제라는 학문이 지향하는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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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위기를 부르는 경제의 위기
사회는 국가와 시장 이전에 존재하였고, 사회가 국가와 시장이라는 근대적인 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경제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며 급기야 사회까지 위기에 빠뜨리게 되었다. 외환위기를 겪은 후 한국사회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일을 한 결과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긴 터널을 탈출했지만 사회는 극심한 빈부와 소득 격차, 사회적 배제, 사회양극화 등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사회의 위기는 경제위기나 정치위기보다 더 근본적이고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가 굳건해야 경제위기나 정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만 사회가 균열이 생기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실례로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시장은 풍지박산나고 기업들은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모는데 국가는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할 수 있을 뿐 늘어나는 노숙자와 해체되는 가정을 지킬 수 없었다. 그 때 길거리의 노숙자에게 밥을 먹이고, 실업자의 생계를 지원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면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갔던 것은 지역의 풀뿌리 단체를 비롯한 전국의 시민사회단체이다. 지역별로 이들이 모여 국민과 기업의 성금을 모아 시장이 버린 이들을 추스르고 국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의 생계와 생활을 돌보았던 것이다. 그 것이 사회의 힘이고, 그 힘으로 한국은 경제위기를 극복하지 않았는가?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사회적경제는 사회의 관점에서 경제를 사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의 관점으로 경제를 사고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것은 우선 국가나 시장 의 관점에서 경제를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경제를 사고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경제라는 것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시장)을 중심으로 사고하거나 GDP 지표로 표현되는 국가를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실제 사람의 살림살이를 윤택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경제활동을 사고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국가나 시장 이전에 사회가 존재하고, 그 사회에 사는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어야 국가와 시장이라는 제도도 세울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사람이 제대로 살고, 사람들간의 관계가 끈끈해야 무엇인가를 함께 도모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제껏 국가나 시장을 중심으로 경제를 생각했었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배제하는 돈벌이가 목적이 되어 경제위기를 초래했고, 사회주의국가에서 보듯 당이 경제를 장악하면서 사람들의 살림을 통제하며 부패하여 결국 실패하게 된 것이다. 사회의 관점에서 경제를 사고한다는 것은 곧 나와 우리의 관계에 기초해서 경제를 조직하다는 것이고 그 목적은 우리의 살림을 돌보고 유지하는 것이다. 삶의 터전인 사회를 지키기 위하여 사람의 살림살이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관계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사회적경제이다. 사람의 경제이자 살림의 경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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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경제
마을이든 사회든 그건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림을 그려 보여줄 수도 없고 금을 그어 한계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바람이 우리를 숨쉬게 하고,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게 하듯 마을과 사회는 나와 너 우리이자, 우리의 삶의 터전 그 자체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간의 관계이자 자연이다. 그것은 국가나 시장과 같은 제도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거쳐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만들어 온 보이지 않는 생명줄이자 사는 방식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마을을 갖고 있지 않다. 나 또한 ‘우리 동네’라 하지 ‘우리 마을’이라 하지 않는다. 마을살이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 나 뿐 아니라 많은 도시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마을은 마을살이를 하는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마을은 곧 생활공동체이다. 그 안에서 생산, 소비, 유통과 같은 경제체계가 있었고, 협동과 돌봄이 있었다. 그것이 해체되면서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노동력으로만 살아가게 되었는데 그 노동력으로만 먹고살기 힘들게 되면서, 아니 불가능하게 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다시 마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좀 다르다. 정부의 경우 사회양극화에 직면하여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여 사회적기업육성법으로 무마하려했고, 지자체의 경우, 대기업이나 다국적 자본이 지역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상황에서 나날이 지역경제가 몰락해가는 현실에서 이런 거라도 붙들고 싶은 욕구가 작용한 것이라 판단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생활공동체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무관심한 개인이 아니라 먹고살고 돌보는 것으로 엮이는 ‘운명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몬드라곤협동조합복합체나 이탈리아의 볼로냐의 사례를 들어봤을 것이다. 나의 생활이 나만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게 되고 서로 의지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누구를 배제하거나, 고통받도록 놔둘 수 없게 된다. ‘아마존의 눈물’이나 얼마전 방송된 ‘최후의제국’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누타 섬에서는 부족민들이 병든 노인과 산모를 돌보고, 파푸아 뉴기니에선 어떤 이의 집이 없는 걸 부족민들이 수치로 여기고 부족장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된다고 한다. 이보다 더 나은 복지제도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사례는 과거나 이야기이거나 원시부족공동체에서만 볼 수 있는 있는 것은 아니다. 벨기에에는 ‘환자협동조합’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단체는 ‘의료의집’에 소속된 회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조합원들은 지역에서 서로 협동하여 병원에 가기 힘든 노인을 동반하기도 하고, 부모가 문제가 생긴 아이를 돌보기도 하며 서로 돌봐주면서 건강을 지키는 마을을 만들고 있다.
이런 걸 정부나 시장이 할 수 있을까? 요즘 서울이나 일부 지역에서 시도하고 있는 LETS를 통해서도 이런 걸 실험하고 있다. 일본 뿐 아니라 한국도 고령화문제가 심각한데 내가 좀 젊고 힘이 있을 때 나보다 더 늙은 어르신을 돌보며 다른 세대가 서로 돌보는 지역사회돌봄체계를 조직하는 것이다. 시간을 두고 일종의 서비스를 예금하는 방식으로 내가 늙고 힘이 없어졌을 때 마을 안의 나보다 더 젊은 노인이 날 보돌봐주는 세대간 호혜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경쟁보다는 협동과 연대의 가치에 기반하는 경제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을 지원하는 정책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들이 꼭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마을기업을 지원하는 목적을 경제적 효과에 치중하며 일자리 창출 효과를 부각하기도 하고 자급자족을 넘어서 일반 기업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시장화를 강조하기도 한다.
마을공동체를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일자리창출일까? 물론 주민들이 마을기업을 만들면서 서로 돌보고 우리의 살림을 책임지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활동은 노동시장에서 말하는 일자리와는 다를 것이다. 예컨대 관저동 품앗이공동체에는 30대주부들이 회원으로 되어있는데 회원들이 다 아이들을 돌보며 틈틈이 하는 거라 상근인력을 내기 힘들다. 하지만 그 마을기업이 생활상에는 많은 도움을 준다. 마을기업 중 까페를 운영하는 곳이 아주 많은데 까페도 한명의 일자리가 생기긴 하지만 그 것이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마을기업인 서울 성북동 장수마을의 ‘동네목수’도 창출된 일자리는 대표와 총무 두 개 뿐이다. 하지만 국가나 지자체도 대책없이 방치하고 시장도 개발하고자 하지 않는 그 지역에서, 도시서민과 빈민들이 원망으로 응어리지고 절망을 씹고 살다가 이제 낡은 집을 고치고, 쓰레기 더미를 치우며 마을의 공간을 만드는 일에 나서고 있다. 곳곳이 노후되어 돈잡아먹는 귀신이 되어버린 집, 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 살기엔 불편하고 떠날 수도 없었던 골치덩어리 같은 마을이 이제 이야기가 있고 이웃이 있어 살만한 마을이 된 것이다. 사회적기업도 일자리만 너무 강조하다가 다른 좋은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쇠퇴한 경우가 많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목적인지 생각해야 한다. 일자리는 부수적으로 생기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차라리 공장을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낫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는 방안이 나을 것이다.
또 누구는 정부가 마을 만들기 사업 추진과정에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성과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업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예컨대 내가 사는 성산동에는 ‘작은나무’같은 까페가 있다. 그 곳의 성과를 창출된 일자리나 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별거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에서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하다. 프랑스의 까페가 왜 유명할까? 거기서는 주인과 종업원 한 명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유럽연합 법안관련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지역의 돈없는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이 되기도 하고, 또 이민가족의 통합을 위한 공연도 열린다. 까페는 수다도 떨고, 마을 일을 의논하는 교류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정치의 공간이자 사회통합의 공간이기도 하다. 만나고 섞여야 무언가 도모할 수 있고 일이 되는 법이다. 그런데 그 까페의 성과를 하루 방문 한 사람의 숫자로 할 것인가? 이렇듯 마을기업이나 사회적경제조직의 성과는 정량적으로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곳이 문을 닫지 않고 지속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주민에게 필요한 공간이라는 것과 주민에 의해 지켜진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성과를 평가할 수 없다. 어머니의 사랑을 평가할 수 없듯이. 지원은 사업을 시작 할 때 해주고 평가는 주민들에게 맡겨야 한다. 사회투자국가라는 개념이 있듯이 지원금은 사회에 투자하는 거라 생각해야한다. 투자는 항상 리스크가 있는 법인데, 사회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또한 마을과 사회의 기업들이 지속가능해야 하지만 그것은 꼭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와 경쟁을 해야 하나? 예컨대 성산동의 작은나무 까페가 지역의 다른 까페와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나?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까페들은 기업의 논리에 따라 만들어지고 운영된 것이라 서로 경쟁하며 일부는 망하기도 할 것이다. 만약 마을기업이 대기업이 유통하는 커피를 알바생이 판매해서 손님들한테 파는 방식을 택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하고, 그 까페는 동네 사람들이 수다도 떨고 모임을 하고 서로 나누는 공간이 되고, 일자리도 알아봐주고, 마을 잔치도 기획하고 그런 공간이 되면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주민들로부터 보호를 받아 지켜질 것이다. 그것을 경쟁력이라 한다면 이해가 가지만 이들 기업에게 경쟁의 논리를 강요하기보다는 주민의 필요에 귀기울이고 지역의 다른 상인과 가게와 기업들과 협동하고 공존하는 지혜를 당부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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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노동이 우선인 호혜적 경제
다시 중세동 작목반의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그 곳을 방문하여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김은규 공적비를 세운 이유이다. 시골을 가보면 어느 곳이나 기념비가 있는데 대부분 지역유지의 업적을 기리거나(이들 중 친일의 경력을 가진 자도 꽤 된다) 마을에 뽀대나는 건물을 세운 이들을 위하여 기부한 돈에 대한 보상으로 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은규 공적비를 세운 이유는 사뭇 다르다. 김은규목사는 삼회정신(하나님사랑/농촌사랑/노동사랑)을 가진 분으로 이 마을에 상추를 전도한 분이다. 가난한 농촌마을에서 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상추를 들여와 3년간의 실패 끝에 상추 하우스재배를 안착시키신 분이다.
김영현 대표는 왜 마을사람들의 외면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적비를 추진하고자 했을까? 그 까닭은 마을을 위해 힘쓴 이들을 기억하고 이들의 활동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며 마을 주민이 공통의 역사를 가진 운명공동체임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또한 그 공적비는 위인의 역사가 아닌 상추를 심은 평범한 마을의 사람들의 역사를 기리며, 그들의 노동으로 먹고살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자식과 후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헝가리 출신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실질적인 의미의 경제란 ‘사람이 다른 사람과 자연에 의존하여 물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라 정의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에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형식적인 경제로서 이는 우리의 삶을 반영하지 못한다. 반면 실질적인 의미의 경제는 이렇듯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의 가족이나 이웃, 친구와 친척 등 사회적 관계에 기반하여 조직되는 활동이다. 그리고 그 활동은 생산을 위해 기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터전인 자연에 의존하되 협동을 통해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을 지키며 자연과 공존하는 살림의 활동이다.
사회적경제는 살림의 경제이며, 사람들과의 관계에 기반한 호혜의 경제이며, 사람과 노동을 중시하는 인간의 경제이며, 자연에 의존하며 지키는 생태적 경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