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회기 정훈 총회장 유명세 타
정훈 총회장과는 개인적으로 사귐이 없어 소회를 평하기는 이르지만 일단 뉴죠가 편집한 영상들과 언급한 기사들을 보면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전체 맥락과 놓고 얘기해야지 부문만 떼여내 보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정총회장이 총회 진행 자체나 설교 전체를 그런 기조로 한 것도 아니고 예화로 한 말이지만 그것도 자유롭지 않은 시대를 만났이니 조심해야 한다.
총회장이라고 해서 모든 언행에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라온 배경이나 성향 지역의 풍토등의 영향을 받는 다. 그러나 교권의 정점을 찍고 뭔가 이뤄 낸 분들의 한결같은 스타일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은혜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대의 경우가 많다. 대외적으로는 겸손한 태도로 부드럽게 존대를 하지만 결론은 자기 식으로 하는 게 일반인데 정총회장은 오히려 솔찍하다는 평이다. 아직은 그의 업무 스타일은 모르니 본격적인 평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정총회장이 60년대 초반들은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 교육을 받은 세대로 과거와 달리 눈치를 보지 않고 직설적이다. 개인성격까지 더해 좋게 보면 좋을 것이지만 또 다르게 보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 뉴스엔죠이가 두 번에 걸쳐서 정훈 총회장에 대하여 다룬 영상이나 기사는 찬반이 있지만 정총으로는 억울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필자만의 것은 아니다. 악의적 편집은 아니라지만 발언 일부만 빼서 해석을 붙힌 모양센데 당사자의 의도와는 다르다.
원래 언론이란 힘있는 것을 견제하고 독자들을 대신하여 비판하는 게 사명이다 하지만 이제 취임 얼마 되지 아니한 분에게 이런 스토커식 취재나 구상은 사실 너무 한 것이다. 더우기 뉴죠가 총회장을 어떤 결정이나 발언이 공적으로 어긋났거나 부합되지 아니한 것에 관한 것이면 몰라도 말꼬리 잡는 식은 지적질이라는 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총회장으로 비신앙적이거나 반 이성적 발언이나 결정, 민주적 과정을 배제한 권위조의적 밀실행정이 아닌 말 스타일로 잡을 일은 아니다.
언론들에게 종교는 늘 좋은 먹이감인데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단에 수도권에서는 나름 지명도가 높은 우리교단은 아주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중도로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젊은 층, 고학력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교단이다. 가장 쎈놈을 까야 명성도 얻고 평정이 된다. PCK에는 개혁적 비판세력들이 있어 약간만 건들어 줘도 된다. 만만한 상대는 아니고 들을 것 같지도 않치만 이게 상품성이 더 있다. 특히 개혁세력과 여성, 교권 소외구룹과 반, 비기독교에게는 좋은 먹이감이기 때문이다.
한편 사회의 유명인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중들에게 그 이름이 기억되어야 하기에 기자들에게 돈을 주고 서라고 제 이름들을 낸다. 그래서 나오는 말중에 부고 외에는 무슨 일이든 이름이 나와야 대중들이 기억한다는 것이다. 스캔들이 되었건 선행이든 악행이든 이름이 나와야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면에서 누가 총회장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교단에 비하면 정훈 총회장은 호사를 누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돈 한푼 안주고도 유명세를 누리니 감사하면 전화위복이 될 듯히다.
더 문제는 교단에서 이를 증폭시키는 것
기사중에는 지난 105회기 임원으로 활동중 언행도 언급하면서 이를 인용한 정태윤 전 명성교회 안수집사는 명성교회 김삼환원로목사와 억지 연계시켜 비난 강도를 악용하는 것이 더 문제다. 또 어떤 은퇴 목사라는 분은 어려서부터 싹수를 봤다는 식의 무책임한 평은 인신공격적이다. 또 한국기독공보 사장 취임식 설교와 연계하여 제목이 ‘비판하지 말라’ 였다고 예단하고 비판적 글을 쓴 분도 있는 데 설교를 들은 분들은 역설적이었고 107회기 서기시절 욕설은 사실무근으로 사람밉다고 말까지 지어냈다.
뉴조에서 애정이든 길드리기든 나왔으니 참고 하면 될 일인데 집안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 큰 일이라고 난 듯 말을 만들어 비난을 재생산하는 것은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궁금하여 정총회장이 실제 사석이나 임원회등 회의에서의 언행에 대하여 부총회장 권위영목사에게 물었다. 권위영 부총회장의 평으로는 "직설적이기는 하나 격의 없고 친밀감있고 의외로 부드럽다" 고 이미지상으로는 정총회장과 반대인 분의 평이니 믿을 만 한 대목이다.
그러나 설교중 나온 얘기 한 토막캊고는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 설교란 토론과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선포적 성격이라 스스로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되든지 설교 내용을 갖고 문제나 시비는 걸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끝이지 어떻게 하겠는 가? 다만 총회 여성위원회나 공식적으로 정중하게 설교자들에게 좋은 제안을 하는 것은 몰라도 듣기 불편하다고 하여 문제를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총회장에게 상처받고 문제를 제기하는 분이 아직 없다지만 언론이 지목해 문제를 삼고자 하는 한 피할 장사는 없어 보인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표적화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문제를 찾으면 나오게 마련으로 임자를 만난 것인데 역설적으로 좋게 생각하고 대승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면 득이 될 수도 있다. 언론의 속성은 권력과 권력화하려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기에 그런 숙명에 놓인 자리에 간 것이 문제라는 식으로 말이다.
평가와 결론
지도자들의 유형을 연구한 글들을 보면 카리스마형 참모형등을 언급하는 데 지금은 확실히 부성적 리더보다는 모성적 리더가 환영받는 시대라는 것을 느낀다. 과거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 라는 식이 아니라 대중들을 앞세우고 뭘하라는 식이 아니라 하고 하고 싶은 의욕을 고취시키는 지도자다. 그런면에서 우리의 지도자상도 바뀌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장로교단 최고 치리장으로써의 권위는 고정된 체 점잖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모르겠다.
따라서 언론들의 이런 요구나 지적도 들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부적절하고 불합리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니 주눅들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가는 것도 문제다. 이런 기회에 자신을 돌아보고 다지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오히려 관심을 갖고 평가 해줘 고맙다는 하는 것이 큰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속으로는 불편하고 기분도 나쁠 수 있지만 없는 말은 아니니 지도자로 좀 더 세심하고 사려깊게 훈련하는 기회로 삼으면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정치든 어떤 단체든 최고 지도자는 이제 과거처럼 영광과 명예가 아니라 욕먹고 고소당하고 힘든 자리라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시간과 돈드려서 할 자리가 아니라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좋다는 말도 나온다. 사실 해외의 경우 총회장 이런 자리는 서로 안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다. 사생활이 노출되고 말 잘못했다가는 사과하고 시비가 되는 일이 많이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살려는 분은 공직 맡지 말고 소신대로 사는 게 편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공직을 맡는 순간부터는 몇가지를 명심하면 된다. 내가 뭐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같이 세운 일꾼들과 함께 한다는 의식속에서 경청(listen)과 축복(blessing)이다. 남의 말 특히 불편한 말도 들어야 하는 게 지도자다. 그리고 지도자는 지시하고 지적하고 야단을 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특히 적대자 비판자에게도 축복의 언어로 응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적은 없어지게 되어 있다. 좋은 지도자는 만들어지는 것이지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훈 총회장은 그만의 스타일이 있으나 거기서 더 나아가는 것이지 안되는 것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참모들과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파악하고 나가면 된다. 이는 직책으로써가 아니라 직무 수행으로써의 공적 마인드와 총회 행정의 합리적 투명성에서 승부를 걸라는 것이다. 우리사회속에서 장로교단의 위상과 아울러 국제사회와 해외 동역교단들과의 교류에 걸맞는 PCK교단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역사에 남는 것이지 말부드럽게 하고 굽실거린다고 사과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