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빙, 이임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문제다.
최근 뉴스엔죠이 유 영 기자가 목사의 위임과 관련된 2개의 글로 시작하여 이번에 마지막으로 정리한 “청빙이 문제가 아니라 사임이 문제다” 라는 글이 큰 호응을 일으키고 있다. 이 기사를 통하여 그동안 목사들의 세계에 국한되었던 청빙과 이임의 공개되지 않았던 문제들을 공론화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사임과 청빙의 과정에 있는 목회자들이나 교회들에게 중요한 정보가 되었을 것이다. 예장뉴스는 유영기자가 앞서 보도한 두분의 위임목사의 사임과정의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서는 반대로 이임한 두 목사에 대해서는 반론을 폈다.
이에 대하여 예장뉴스는 그들의 처지에 대하여 이해하며 좀 다른 시각으로 볼 수는 없는 가 하는 취지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동의하는 편으로 목회자들이 교회에 들고 날 때 좀 솔찍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보통 은퇴나 사망, 당회의 합의로 사임을 결정한 경우가 아닌 목회자의 일방적 사임은 그 배경 못지않게 철저하게 비밀로 진행되고 충격적으로 발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사임하는 목회자의 경우는 교회에 대하여 원망하고 비판적인 입장에 있을 수 있다.
한마디로 좋지 않게 헤어지는 경우다. 자의 사임이든 압박이든 똑 같다. 문제는 이런 이임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장로교회의 목사인사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온다. 시행착오를 거친 서구(미국, 호주, 영국, 화란등)의 경우는 모두 계약제이다.
이 나라들의 교회는 위임목사(평생)나 담임목사(3년)가 아니라 철저한 계약관계인데 우리와의 차이는 목회자와 교회가 상처 없이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무년한을 정하고 연장을 할 것인지? 를 서로가 판단하면 된다. 그러나 위임제하에서는 위임받고 간다거나 연임을 무기로 교회가 목사를 길드리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목회를 하고서도 이임시에 도둑처럼 가버리거나 안좋게 밀려나는 방식이 아닌 서로가 계약의 해지로 이별을 하는 것이 신앙적이고 인간적인 제도라고 보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의 지위를 지나치게 구조적으로 보호하는 위임제도는 재론을 해야 할 때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목사이임은 정상적이지 않다. 목사가 정상적으로 이임하는 경우가 아니면 교인들과의 나눈 마음을 공식적으로 해소하고 달랠길이 없다. 그러니 이임을 하고도 사적으로 만난다던가 이임한 목사를 찾아간다는 등의 부작용이 유발된다.
그러나 선진 장로교회들이 채택하고 있는 상회의 파송제로 인사 주체를 노회가 갖도록 하니 이임과 부임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드리게 된다. 물론 이런 풍토는 한국적 목회의 양면성인 과도한 목회자 중심의 목회에서 그 중심을 그 교회의 평신도들에게 중심을 두는 목회로의 전환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
예을 들어 이전에 언급한바 있는 독일 주교회의 방식은 2가지를 병행하는 데 상회가 파송한 3배수의 목회자를 선택하던지 개 교회가 공모를 하는 방식이다. 첫째로 자의선택으로 정한 목회자가 사임하면 그 다음은 상회의 추천을 받는 형식이다. 그리고 상회가 파송한 방식의 다음은 교회의 선택적 방식을 교차로 택하는 것이다. 아주 민주적이고 의미있는 제도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교회 처럼 상회의 허락이나 지도 없이 목회자가 사비를 들어서 본인이 지역을 택하고 건물을 얻고 개척부터 시작하고 노회에 가입하는 방식에서는 목회가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식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기에 강한 주인의식이 생기게 되고 성공후에도 이런 의식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서는 이런 개척조차도 고비용에 장소면에서 포화상태로 쉽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은 신학교를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는 현실일 것이다. 목사의 이임 어떻게 정당하게 평가받고 아름다운 이별로 기억할 것인지를 이제는 고민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