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에큐메니칼 정책 협의회 열려

총회 에큐메니칼 정책 협의회 열려

101회 총회 에큐메니칼위원회(부총회장 최기학 목사)가 주최하는 에큐메니칼 정책협의회가 "에큐메니칼 협력선교를 위하여" 라는 주제로 지난 2월 17일(금) 오후에 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전국의 노회 임원들과 총회직원 남, 여선교회 임원, 에큐메니칼운동의 실무자들과 관심자들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부 여는 예배는 손윤탁 목사(위원회 서기)의 인도와 김주현 장로(위원회 회계)의 기도, 박종인 목사(위원)가 엡4:1-6절의 말씀을 봉독한 후 부총회장 최기학 목사(당연직 에큐메니칼위원장)이 "하나 되기를 힘쓰는 교회"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고 축도로 마쳤다.

2부 사회는 제종실 목사(위원)의 사회로 총회 사무총장 대행 변창배 목사의 인사를 받고 한국일 교수(장신대) "에큐메니칼 협력선교 패러다임 모색" 이라는 주제의 강의가 이어졌다.

   
* 개회 설교 중인 에큐메니칼위원장 최기학 목사

이후 3가지 사례발표는 다음과 같다.

   
* 좌로부터 최창덕 목사, 이규대 선교사, 한국일 교수, 고일호 목사 제종실 목사  

첫째, "인도네시아 협력선교 모델" 에 대하여 현재 25년째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는 이규대 선교사(인지 수마트라선교회 회장)가 했다. 이 선교사는 현지 아낙달람 종족 선교에 3개 교단 간의 협력선교의 사례를 소개했다.

인도네시아 중부 수마트라 잠비주아 수마트라주 열대우림의 정글 속에서 신석기적 삶을 영위하는 종족에 대한 3자 협력선교다. 이를 위하여 PCK 교사인 이규대 목사는 사역의 코데네이터를 GKY(Jesus Christ Church)는 재정지원을 GKYP(Indonesia Protestant Christian Church) 는 목회적 행정적 돌봄을 분담하였다.

이를 통하여 이규대 선교사는 국내의 후원자들을 의존하는 사역에서 탈피하는 계기가 되어 한국 선교사 주도형의 선교를 넘어 현지 교단이나 현지 교회가 동참하는 협력선교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아니다. 인구로도 4억 5천으로 세계 4번째이고 많은 교파와 교회가 존재한다. 그 교단가운데 화교가 중심인 작은 교단으로 재정적으로 넉넉한 교단이었다. 

이는 과거와 같이 주는 선교에서 협력선교를 통하여 서로가 발전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아시아국가의 대부분(35%)이 아직은 농업중심의 나라다. 그러나 발전이라는 이름하게 날로 자본화 세계화 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삶은 피폐화되고 있다.

이에 "생명을 살리는 농촌선교" 라는 태마로 한국과의 농업 연수와 협동운동을 통한 대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영주노회 봉화군 소천면의 옥방교회(천정명 목사)와 4차례나 진행하였다. 이외에도 현지 교간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한 "생명농업 세미나" 을 개회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교단의 선교사나 후보생 혹은 목회자들 가운데 농촌선교에 대한 경험과 사명을 가진 이들이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끝을 맺었다.

둘째, "영등포노회의 3자(한,독,가) 간의 협력선교" 에 대한 발표는 고일호 목사(노회 한독가위원장) 가 하였다. ‘한독가위원회’는 영등포노회의 공식기구로 위원은 공천받고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진행된 사역으로 노회시마다 사업을 보고하고 재정도 감사를 받고 있다.

사역의 내용은  2002년부터 제 1대 선교사로 14년 동안 이명석 목사(후원은 수원성 교회 안광수 목사)가 감당했다. 컴퓨터 교육과 다양한 인적 교류다. 노회의 임원들 위주가 아닌 평신도들과 청년의 교류다. 이 선교회는 원래 독일의 팔츠주교회와 아프리카 가나와의 교류였는데 한국의 영등포노회가 합류를 한 형태다.

따라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는 식의 과거 한국식 선교에서 독일교회의 경험을 배우고 나누는 기회로 보인다. 아직도 한국 선교사들은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에 대한 교육과 훈련의 기회가 없어서 본인이나 이런 방식의 관계가 아니면 고립되어 과거 서구식의 방주형 선교 혹은 구령적 선교에만 머물 수 있는 것을 극복한 케이스로 보인다.

셋째, 평양노회의 "미국 시라큐스노회와의 국제협력" 선교는 최창덕 목사(노회 에큐메니칼위원장)의 발표는 미국 뉴욕주의 문명화 된 중심부와의 교류다. 두 노회가 1999년부터 교류를 시작하여 협정문을 맺고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선교지는 아니지만 두 노회 간의 교류는 상호 방문과 홈스테이, 참전 용사 초청, 입양아 초청, 재해 구호, 북한과 중국인 돕기, 말라위 기근 돕기 등에 참여해 왔다. 그 외에도 독일 루드비히스부르크노회와의 교류와 동역으로 상호 방문과 독일교회의 날 참여를 이어오고 있다.

에큐메니칼위원회 더 문턱이 낮아져야 한다.

순서에 의하여 참가자들의 질의가 있었다. 크게 두 개로 정리를 할 수 있겠다. 첫째는 발표에 대한 비판과 제언이고 둘째는 보고만 듣고 격려와 칭찬만 하자는 입장이다.  이번에 한 개의 현지 선교보고와  두 개의 노회간 교류는 사실 특수한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노회와 교회들이 자매, 혹은 형제교회라는 식으로 봄, 가을 노회에 교류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류가 더 이상 친목과 친교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지만 여전히 쳇 바퀴를 돈다는 느낌이다.  서로에게 주고 받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교류는 많은 재정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교류만 있고 천편일률적인 보고에 에큐메니칼신학이나 운동이란 의미와 용어 자체가 배제된 일방적 교류를 더 이상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예을 들어 우리보다 역사가 깊은 교단이나 노회와의 교류에서 그들의 직제나 회의 방식과 총대 구성 등에 대해서는 왜 배우지 않는가? 사람이나 오고 가는 투어식의 방문이 아니라 목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나눠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바로 이런 경험들의 긍정과 부정이 함께 노회에서 보고되고 정리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런데도 많은 노회에서의 해외 교류는 거의가 이런 식의 보고와 외면이 공존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방문하는 이들이 그런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극복하려고 하고 발전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없다면 파트너를 바꿔야 한다. 계속 사람들이 바뀌니 오고 가는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첫 경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교류나 보고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회원들을 탓하기 전에 왜 저들이 관심이 없는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이다. 이런 교류는 거의가 노회원 상층부나 해당 부서원, 시니어들의 전유물이거나 여유 있는 교회와 인사들의 리그에 불과할 수 있다. 이런 점은 총회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까지 이성희 총회장이 해외 교회와 행사에 출국을 한 것이 아마 5회 쯤은 되는 것 같은 데 이것은 공식행사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기독공보 등에 제대로 된 해외 방문의 의미와  내용에 대하여 총회장 동정 보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파트너, 발전 없으면 바꾸어 한다.

이미 10년을 넘어서까지 이런 식의 교류를 답습한다면 시간과 재정의 낭비라고 보인다.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 이것은 이날 발표한 이들에 대한 비판만은 아니다. 미안하게도 에큐메니칼위원회에 초청을 받고 나와서 발표를 하고도 곤혹스러운 자리가 된 감이 있다.

문제는 정작 이 분들로부터의 반론이나 의견 개진이 아니라 참가자 가운데 일부 혹은 노회장이라고  밝힌 분들의 억지성 발언은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물론 발언자의 내용이 오늘 주제에서 좀 어긋난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골적으로 본심을 드러내고 발언자와 참가자들을 모욕하는 식의 발언은 총회 지도자들이 가져서는 안 되는 태도이다.

그러나 그동안 참석한 에큐메니칼정책협의회 사상 가장 뜨겁고 열띤 토론과 관심이 집중된 모임이 된 것은 사실이다. 싱겁게 그저 먼길을 오고 가기보다 모인 청중들이 끝가지 지루함 없이 모처럼 긴장감으로 마무리가 된 것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에큐메니칼은 생각과 일, 목표가 다른 이들과의 대화라고 본다면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이해할 줄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보겠다. 그런 면에서 에큐메니칼운동이란 거창한 신학이나 이론도 아니고 국제기구의 자리나 사업이 아니라 개회예배에서 부총회장 최기학 목사가 짧게 언급한 바와 같이 "겸손과 온유함, 오래 참음, 사랑과 용납" 이라는 말씀이 우리의 몸과 마음 언어에서 묻어나와야 할 것이다.

에큐메니칼위원회에 바란다.

총회 에큐메니칼위원회는 우리 교단의 많은 위원회 가운데 하나지만 이 위원회의 설립과 취지는 간단하지 않다. 지금도 에큐메니칼이라는 언어를 WCC, 교회일치, 동성애 등으로 오해하여 비판적이거나 외면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따라서 그런 인식에 머물러 있는 교회지도자들의 의식 전환과 교육훈련이라는 측면도 중요하다고 보겠다. 

그러나 그 원래의 취지는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들이 처음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를 할 때부터 협력한 것이 바로 좁은 의미의 연합사업(에큐메니칼)이다. 그리고 지금도 해외 유수한 교회들과 맺은 선교협력도 모두 바로 에큐메니칼이라는 신학과 운동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잘못된 정보로 인하여 에큐메니칼 하면 진보 운동권, 좌파라고 잘못 알고 있다.

이런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총회와 교단의 신학적 터전 위에서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큐메니칼운동과 신학을 하는 이들도 겸손할 필요가 있다. 교단 전 총회장장님들 중 가장 어른인 림인식 목사도 우리 교단의 신학은 한기총 등과 같은 짬뽕이 아니라 분명히 "에큐메니칼" 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지난 2013년 부산에서 열린 WCC(세계교회협의화)가 준비 단계와 진행, 마무리에서 드러난 많은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참가한 외국의 총대들의 평가는 다르다.  이들이 가장 놀라고 감동한 것은 우리가 직면한 저성장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렇게 모이고 건재한 한국교회의 저력에 대해서이다.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구미나 북미에서는 더 이상 현상유지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 가운데도 한국교회의 열정과 헌신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외국인들에게 놀라운 경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본국에 돌아가서 이 총회의 폐회에서 결정한 "정의와 평화를 위한 순례" 를 진지하게 실천하고 있지만 정작 개최한 한국교회에서 이것이 실천되고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지금 WCC총회 이후 우리 교단의 부산장신대학교 배현주 교수는 유일하게 중앙위원과 실행위원으로 나가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고민도 마찮가지다. 한국교회가 WCC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메머드한 10차 총회를 주최하고도 그 결과에 대하여는 자긍심을 갖지 못한다는 평이다.

일부의 주장대로 에큐메니칼위원회 구성과 정책협의회가 협소하게 총대 위주 노회 임원 등의 교권위주로 갈 경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생각하기를 바란다. 장로교회는 불가피하게 대의제를 택하고 있지만 선출된 총대 혹은 위원들이 특권적 지위를 가져서는 안 된다. 자기를 파송하고 세워준 대중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경청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소통" 이다.

소통할 것인가 불통할 것인가?

현재 이 나라의 불행이 어디서 왔는가? 측근, 실세, 불통에서 온 것이 자명하다. 이미 부총회장 최기학 목사도 부총회장 선거에서 주창한 비총대들의 의견들을 총회 정책과 사업에 참고하고 소외되지 않는 총회를 구상하여 제시한 바 있다. 정치도 그렇고 노련한 원로들도 필요하지만 끊임없이 젊은 피를 수혈하지 않으면 노쇠해지고 만다.

더 이상 자리와 직책을 완장으로 알고 기득권의 문턱을 높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자리와 기회를 개방하고 교단의 모든 이들이 하나의 가족으로 참석하고 발언하고 격의없이 토론하는 문화를 두려워하거나 불편해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참여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회의를 하려면 그렇게 하시라. 그러나 정책을 논하려면 개방을 해야 한다.

우리 총회가 더 이상 임원회, 총대, 부서장이나 위원회,  직원들의 총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질서와 절도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듣기 싫으니 우리끼리 해야 한다는 발상은 안 된다. 국가도 그렇고 기업도 더 많은 이들이 관심 갖고 참여하고 교류하기 위하여 개방하고 기득권을 포기하고 기존 질서와 규범이 일부 발전적으로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추세다. 이런 식의 사고와 자세를 갖지 않으면 지금 교회에 교회학교가 없어지고 청년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 

방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사라지는 그들을 더 이상 손님이나 관객으로가 아니라 주인으로 세워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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