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석목사의 이고이노이에(휴식의 집) 사역

오사카 니시나리 가마가사키(釜ヶ崎)는 최대 슬럼가

(100) 【西成のカメラマン】日雇い労働者、ドヤ街、バラック… 西成・あいりん地区を50年間撮り続けたカメラマン【関西テレビ・アーカイブ】 – YouTube

일본의 행정명은 한국처럼 구개념으로 오사카부 오사카시 산하에 東城구처럼 西成구가 있다. 여기는 일본 최악의 슬럼가이자 노숙자들의 근거지라고 보면 된다. 동경인근에는 요코하마에 고토부키라는 지역이 있지만 여기 만은 못하다. 이곳은 옛날부터 건설 노동자나 부두 노동자들이 모여서 살던 곳으로 일본 야쿠자들도 모여들고 이들이 운영하는 유흥가와 오락실 유곽까지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니시나리는 낮이나 밤이나 길거리에는 노숙자와 술취한 이들이 많고 사건과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침 일찍기 노점이 서는 데 중고품부터 불법적인 물건까지 판매하는 데 공통점은 출처를 알 수 없어 일명 도둑시장(泥棒市)이라 불리운다. 겉보기엔 한국의 동묘 풍물시장 일대의 좌판과 비슷해 보이나 오히려 동묘가 깨끗하게 보일 정도로 더 더럽우며 아이린 지구에서 남동쪽으로는 오래된 사창가 토비타신치가 있다.

이 때문에 보안이 생명인 대기업이나 관련업체에서는 사원들이 니시나리구 신신이마미야에서 산다고 하면 회사는 보안 문제로 이사를 부탁한다고 한다고 한다. 소매치기나 도둑질이 상대적으로 잦은 편이다 보니 중요자료가 들은 서류가방이나 전자기기가 누출되면 큰 사건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니시나리구 전체가 막장인 건 아닌 데 사카이스지선 도부츠엔마에역과 신이마미야역 주변의 비지니스 저가 호텔(대부분 고시원 쪽방 수준)이 몰려있는 대로 변, 니시나리구청 주변, 텐가차야역, 키시노사토히가시(쇼텐사카역) 일대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최근에는 오사카시도 아이린 지구의 치안을 상승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공중화장실이 적었을 때에는 노상방뇨가 많았지만 이제는 낙서를 가리고 낙후된 건물을 개보수 하는 등의 공사현장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으며 CCTV도 설치하였다. 여전히 노숙자들과 부랑자가 보이지만 2000년대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으로 2020년 7월기준 오사카시 치안 평가에서 24구 중 21위이며 이마저도 24위에서 3단계 오른편이지만 오사카 시내 범죄 발생율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니시라리가 이런 환경의 공간이 된 것은 1980년대 일본 거품 경제시절, 오사카시장으로 재임하던 니시오 마사야(무소속, 재임 1987년~1995년)는 니시나리의 유해물질을 다루는 영세한 공장들이 시 외곽으로 나가된다. 이에 거주하던 노동자들도 이주하게 되자 노동자들에게 집을 임대하던 임대인들의 공실로 인한 불만에 부동산 버블로 인해 집값상승과 높은 집세로 입주자가 없게 된 성난 민심을 잡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으로 이곳의 노숙자들에게 무상급식, 무상숙박 쿠폰을 뿌려댔다.

   
 

이렇게 되자 최소한의 시설을 해놓고 생겨난 숙박시설이 200개가 넘었는 데 이 숙박시설은 모두 임대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니시나리의 저가 호텔들의 주소지를 잘 보면 ‘XX 하이츠’와 같은 한국의 주택이름을 연상시키는 이름들이 꽤 있다. 사람들이 몰려드니 식당도 생겼고 복지혜택을 받는 노숙자들은 거액의 월세비를 내지 않고도 잘 곳이 생기니까 환영했다.

그래서 지역경제는 활성화되었고, 당장은 성공한 복지 정책이 되었으며, 오사카의 노숙자 무상복지가 유명해져 일본TV에서도 방송을 타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일본의 수많은 시민단체들과 노숙자들이 자신의 지역도 오사카처럼 무상복지를 해달라 요구하게 되자 각 시 정치인 및 공무원들이 이에 대해 예산문제를 들면서 매우 난감해했다. 그러던 중 각 시의 공무원들은 생각 끝에 각자의 관할 지방에서 노숙자 및 부랑자들에게 무상 숙박을 제공하는 대신 그냥 그들을 전부 오사카로 보내 버리게 된다. 

각 지자체들은 즉각 오사카행 교통 티켓을 노숙자들에게 제공했고, 노숙자들은 잇따라 오사카로 상경하게 되었다. 2023년 미국 텍사스에 난민이 증가하니(텍사스는 국경이 멕시코며, 남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복지 정책을 많이 하는 민주당 정치인 도시(뉴욕 등)에 난민들을 버스로 태워서 떠넘긴 사례가 있다.

   
                  * 그리스도가 죄에서 구원하고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성경귀절  

처음엔 오사카의 노숙자들로도 숙박이 충분한 양이었는데 수만 명이 몰려들자 쿠폰 지급에 차질이 생기고, 결국 쿠폰 지급이 중단되고 말았다. 노숙자들은 무료 숙박쿠폰을 나눠주고 잘 수 있었던 니시나리구에 많았는데, 갈 곳이 없어지자 그곳에 판잣집을 만들고 생활하게 된다. 당연히 범죄가 늘어났고, 원래 니시나리구에 살던 주민들은 다른 구 혹은 다른 시로 피신을 갈 정도로 난장판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니시나리구에 일명 아이린 지구라고 불리는 오사카 최대 치외법권 지역, 즉 슬럼이 생겼다. 이 지구 안에 있는 공원들에는 노숙자들이 판자촌을 짓거나 점거하였기에 니시나리구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보통 이런경우 일본 경찰이 치안을 강화해야하는데 노숙자들의 숫자가 많아서 단속하려고 하면 폭동을 일으켜서 저지하는데다 경찰들도 숫자에 밀려 함부로 단속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 지역의 경찰서 자체가 마치 요새처럼 디자인되어있다.

오사카가 이런 복지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마쓰시타 전기 등 일본의 주요 대기업들이 몰린 도시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특히 니시오 마사야 시장 재임기는 거품경제 시기라 일본 전자산업의 최전성기이기자 일본 역사상 최전성기 였기 때문에 시 당국에서도 많은 세금을 걷어 복지가 가능했다고 하는데, 2000년대 이후 거품이 꺼지고 나서 이런 혼란상이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2020년에 발생해 전세계를 강타한 COVID-19로 인해 노숙자들이 지금까지 폐기된 도시락으로 먹고 살던 자였지만 이젠 이마저도 막혀버리자 거리가 흉흉해졌다. 게다가 긴급사태 선언으로 인해 일본 정부에서 지급한다는 긴급재난지원금 10만엔 대상자의 조건중 살고있는 집이 없어 주민등록이 거부되는데 이 때문에 오사카 시청까지 가서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니시나리 타마데에키 인근의 타마데(玉出) 슈퍼마케트는 24시간 운영하는 데 특징은 일본 마트치고도 매우 저렴하다. 야쿠자가 하는 마트라고도 소문이 났지만 늘어가는 중국인들로 인한 마트로 식자재 전문 마트로 박리다매로 마치 한국의 업소형 마트처럼 많은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니시나리에서의 노숙인 사역

이러한 이고이노 이에(いこい, 憩い家) 휴식의 집 이라고 해보야 아주 작은 2층 집이다. 바닥이 아마 4평쯤 된다고 보면 된다. 그 문에 이고이에 이노라는 아주 작은 명패같은 간판이 붙어있다. 여기서 지역의 노숙인들을 돌보는 사역을 가장 먼져 시작한 분은 동지사대학을 졸업하고 일본기독교단의 목사가 된 가나이목사다. 그는 일본기독교단 니시나리교회(西成敎會)의 목회자지만 교회보다는 이고이너 이에 라는 작은 건물을 중심으로 노숙인들을 돌보는 사역이 주였다.

니시나리 교회는가나이 목사의  뒤를 아들이 목회를 하는 중이고 이고이노 이에(안식의 집)의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은 한국인 최정석목사다. 그가 2024년 12월 성탄을 맞아 이고이노이에의 광야교회 교인들에게 올린 글에서 최초 설립자 가나이목사에 대하여 회고 하는 글을 올려 소개하려고 한다.

최목사는 한국에서 신학을 졸업하고 안수를 받은 후 화천 시골교회 임락경목사가 속한 교단에서 파송을 받아 이곳에 정착했다. 박회진사모는 오사카단기여자신학원을 졸업하였고 함께 사역중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매주 수요일 전국에서 보내온 생활용품을 노숙인들에게 나누는 오전바자를 운영한다. 그리고 삼각공원에서 스프나 삼각김 밥(오니기리)을 만들어 나눠준다. 추운 겨울에는 저녁을 먹지 못하거나 추운 상태로 노숙하는 노숙인들에게 김밥과 내의등 잠버와 담요를 공급한다.

그리고 성탄과 같은 절기에는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는 데 이번 성탄절에는 봉사 학생들과 650명 분의 선물을 나눴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에는 노동이 가능한 노숙자들과 와카야마에 있는 일본 아이농 회원이 계신 농장에 가서 농사를 짓고 귀농, 귀향훈련도 한다. 한국 정농회 임락경목사와 홍성의 주영로선생, 풀무원 설립자 고 원경선 선생의 사위인 김준권선생(포천 평화농장) 등과 교류하는 일본의 아이농과의 가교역할도 하는 중이다. 그리고 최목사 부친은 동아방송 성우출신 원로 연극인으로 향린교회에 출석하셨다. 

   
                     * 1990년경 최목사, 고 이병일, 윤창현목사와 필자가 큐슈의 오리오교회(당시 이근수목사)를 방문했다

필자도 2004년 부터 약 6년간 오사카 재일대한기독교단서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니시나리에 수요일 아침 봉사를 나가기도 하였고 함께 와카야마 일본 애농회 회장인 오우라상(장로)의 농장에 가기도 했었다 최목사와는 일본에 가기전 친구들과 함께 일본 전역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 데 그 후 최목사가 먼져가서 사역을 했으니 한 25년 정도 되고 나와는 근 35년이 된 갑자라고 보면 된다.  

듣기로는 이곳을 가마가사키(かまがさき, 釜ヶ崎)라고 부르는 데 부산이라는 가마 부자에 사키가 선자로도 해석되  ‘가마 솥이 먼져다’ 가 되는 데 옛날에는 이사나 피난 때도 철이나 양은 솥을 꼭 가지고 다녔는 데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도 먹을 것과 땔감등 다른 것은 다 구할 수 있어 끓여 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마 솥은 귀하여 아무데나 구할 수 없기에 이사나 여행시 노숙시 반드시 가마솥을 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 니시나리서도 지금은 콤비니의 도시락이나 정부나 봉사단체의 급식이 있지만 그 이전엔 아마 가마솥이 없이는 음식을 끓이거나 데울 수 없으니 가마가 먼져다 라는 말이 생긴 것으로 안다.

   
 

             오사카 니시나리쿠 광야교회 교우분들께

2024년 12월 30일(월) 최정석 박회진 올림

샬롬! 2024년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연말을 맞았습니다.

한 해가 또 이렇게 빨리 지나갑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행사에는 이번에도 애진학교 애농학교 학생과 교사 모두 15명이 이틀간 함께 지냈습니다. YMCA를 비롯하여 각 교회에서 모아진 도시락과 선물을 나누는 것 만 아니라 가마가사키(노동자 마을)를 배우기 위해, 많은 학생들과 봉사자들이 다녀갑니다. 올 해도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연말연시를 이 마을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맞이하기 위해 대청소를 합니다.

올 해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유기농업인들의 교류회도 있었습니다. 마침 크리스마스여서 함께 잠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함께 찬송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도시락과 선물을 나눈 후에 식당에서 읽는 편지를 오늘 새롭게 읽어 봅니다. 28년 전 아래의 편지를 쓰고 10년 후 가나이 목사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식당에 새로 온 이들에게 들려주는 가나이 목사님의 편지를 읽으며 광야 교회 교우분들께도 약 10년 전 같은 편지를 나눈 적이 있지만, 다시 한 번 나누고 싶어 소개 합니다.

도시락은 각 교회가 주먹밥 만들러 식당에 오는 대신 12월만 도시락으로 선물과 함께 나눕니다. 특별한 행사가 아니고 각 교회의 마음을 도시락과 선물로 모아 식당에서는 전달해 드립니다. 크리스마스 전에 다녀가신 광야교회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아들이 함께 동행해서 저희들 동네에 방문해 주셨습니다. 각 선교지의 편지를 모으고 있고 관심있게 읽어주고 저희들의 편지도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꼭 가나이 목사님 편지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주 아주 오래 전의 편지이지만 지금 들어도 새로운 가나이 목사님의 편지를 함께 나눕니다. 

   
                                                  * 생전의 가나이 아이메이 목사

1996년 12월 20일 교단 뉴스에 실린 크리스마스 멧시지(가나이 목사)

가나이 아이메이 “이웃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가마가사키 한 켠에서 삼십여 년 동안, 병도 들고, 무엇인가를 하려 하기보다는 한 명의 주민으로 살며 가능한 침묵을 지키며 어떤 조직에서도 멀리 하며 살아왔다. 떠들썩한 잡담 속에서도 고요한 정적의 소리를 들으며 보낸 세월이기도 했다. 올해도 12월의 소리를 들으며, 노숙하는 동료와 주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준비에 들어간다. 세상의 가장 가난하고, 낮은 곳에 오신, 잘 곳도 없고, 크리스마스 밤에 케잌은 커녕 밥조차 입에 대지못한 이가 가난의 극치를 걷게 된 이들과 함께 주의 성탄을 집안이 아니라 공원이나 가드 아래에서 맞이하는 것을 생각하고 싶다.  

크리스마스 카드와 도시락과 함께 선물용 일상용품 비누, 양말, 수건을 아주 친한 친구나 교회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 천삼백인분을 만든다. 24일의 얼어붙은 밤의 크리스마스 축하 모임은 사각공원에서 모닥불 옆 각 공원이나 가드 아래에 자고 있는 노동자에게 전달한다. 멍석을 깐 추운 하늘 아래에서의 크리스마스이다. 작년에도 구급차가 와서 우리 친구를 몸을 말은 멍석에서 병원으로 옮겨갔다. 배고픔에 잠을 못 잔다는 하소연을 들어본 적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씁쓸하게 들을 것이다. 포식 시대에 새삼 무슨 소리냐고 할 테지만. 이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맛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 소에게 맥주를 먹이는 시대이니까. 세계의 대부분은 굶주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야말로 세계는 기아의 시대이다. 그 쌀 파동 때 배식 할 쌀이 없어 난감할 때, 생각다 못해 백 명에게 ‘쌀을 주세요’라는 편지를 썼다.

언젠가는 보내 주려니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바로 속달, 등기로 세 명의 친구가 쌀 티켓을 보내 왔다. 놀라기도 한 이 사실이 너무나도 기뻐서 친한 친구에게 알렸더니, 속달로 보내오는 사람들의 「배고픔」에 대한 공감, 아픔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은 관념적인 배고픔은 있어도 「위속」의 아픔은 없었다. 고 쓰여 있어, 다른 친구에게 호소해 주었다. 

   
                                                                * 와카야마 농장에서의 고추농사 

나에게 왜 가마가사키에 들어 왔는지, 세례는 몇 명 받았는지 질문을 마구 해 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순순히 대답한 적이 없다. 한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무신경한 신경을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카마가사키 안에서 “성경을 듣고, 모두와 함께 주의 기도를 행하고 있다”고 대답하기로 했다.

신학교를 나와 새로 만들어진 간사이 노동자 전도 위원회(URM) 전임자가 되어 조직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옛날 군대에 신 산업지대 형성이 시작될 무렵이다. 조직 운동의 가장 성수기였다. 1964년부터 65년에 걸쳐 위원회로부터 파견되어 미국, 유럽의 산업사회, 도시문제 시찰을 간 적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영향으로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 특히 이스트 할렘의 체험은 나에게 전환기가 되었다.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해서 떳떳하지 못하고 마음이 무거웠으나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되었다. 무리하게 간 듯한 여행이었으나 노동자 전도에서 가마가사키 전도로 관심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본 회퍼는 나중에 유니언 신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이스트할렘에 있는 흑인 교회에서 예배를 하며 영혼 속에 울려 퍼지는 찬송가를 함께 부르며 배우던 것을 그리워하던 기사를 읽으며 자신의 뜻을 다졌다. 이스트할렘은 가을에서 겨울의 가장 힘든 계절이었지만 크리스마스 예배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다. 특히 성찬식은 하나의 잔으로 돌려 마시는 방법으로 감격스러웠다. 우리 교회에서도 예배, 성찬식 등에 참고하고 있다.

   
                                                         * 일본기독교단 니시나리교회 앞에서 

신세진 분께 초대받아 교외의 교회캔들서비스에 갔다. 예배 참가자들은 백인이었고 아름다운 교회였다. 예쁘게 차려 입은 성가대에서 몇 곡 흑인영가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 복잡하고 슬픈 생각이 들었다.

일본교회에서도 누구나 교회에 들어오시라는 벽보가 붙어 있는데, 노동복으로 가마사키 아저씨가 나타나면 어떻게 대할지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귀국하고 나서 나는 카마가사키에 갔다. 처음가는 카마가사키였다. 전혀 아는 이도 없어 혼자 갔다. 그동안 조직노동자가 강해지면 미조직노동자가 조직화된다는 상식적 조직론에 서 있었기에, 가마가사키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 속에 있지 않았다. 문제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단순한 슬램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마가사키에서는 삼조짜리 단칸방에서 공동화장실, 공동수도방을 빌려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크리스마스 때 읽은 성경이 누가복음 10;25~37절이었다.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는 곳이다. 교토 다이토쿠지 관장이 이제 가마사키에서 시작하려는 목사에게 이웃이라고 쓴 종이를 보내 온 것은 뜻 깊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는 모임 때마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읽으며 이웃에 대해 배우고 있다. 내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이웃인가를 묻고 있다. 최근 ‘노숙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책이 카마가사키에 자원봉사자로 와 있는 부인들에 의해 출판되었다.

노숙자가 된 이의 생활력과, 공모한 ‘홈리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모은 것이다. 편지는 공모로 접수된 600통 중에서 선택된 것으로 따끔한 비판도 있다. 그 중에는 무지로 인한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 찬 글도 있다. 문제는 노숙자가 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일용직 생활을 하면서 나이가 들거나 병으로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이 있으면 일하고 싶다는 진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니시나리의 아이린 센타

이곳은 JR 신이마미아역이나 하나죠노역, 도부츠마엔역(동물원), 에스쵸역등 사철등이 있어 접근로도 좋다. 그런데 지난 12월 2일 순 일본 오사카지방법원이 폐쇄 중인 니시나리의 노동자 쎈터인 “아이린 종합센터” 점거한 노숙자 전원을 강제로 내쫓으며 퇴거 과정에는 부 직원 및 경찰 기동대원 500명가량이 동원됐다고 한다.

아이린지구는 과거 일본 최대의 일용직 노동자 밀집 지역으로 가마가사키라고도 불리는 데 생활 곤궁자 지원에 주력하는 단체 ‘가마가사키 지원기구’에 따르면 이 지역 노숙자 수는 1990년 일평균 1만명가량이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최근엔 10분의 1 수준이다. 과거 노동자였던 이가 늙어 생활보호를 받으며 사는 경우도 있지만 부랑자도 모여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은 배경 탓에 가마가사키는 일부 현지인과 여행자에게 ‘슬럼’ ‘위험지역’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센터는 오랜 기간 이 지역 노숙자들의 ‘안식처’였다. 중앙정부와 부·시가 1970년 설치한 이곳은 일자리 소개소와 샤워실, 병원 시설, 시영주택이 함께 자리한 복합시설이었다. 아사히는 “고용 및 복지 대책의 핵심 시설이었다”고 평가했다. 흐름이 바뀐 건 2012년 당시 오사카 시장이던 하시모토 도오루가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니시나리 특구 구상’을 내놓으면서다.

   
                                             * 노숙인들에게 나눠줄 삼각김밥(오니기리) 

지역에 새로운 노동시설, 주민과 여행객이 모이는 공간 등을 설치한다는 구상에 따라 지방정부는 노숙인에게 복지 지원을 대가로 이동을 유도했다. 2019년엔 센터마저 노후화 등을 이유로 폐쇄했다. 일부 노숙인들은 “(센터가) 유일한 생활 거점”이라고 주장하며 건물 셔터 앞에 이불을 가져다 놓고 농성했다. 오사카부는 노숙인들이 폐쇄 건물을 불법 점거하고 있다며 오사카지법에 명도소송을 제기해 올 5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니시나리 지역을 오래 취재해온 언론인 오타니 아키히로는 현장에서 강제집행 상황을 지켜보며 “한 시대가 끝났다”고 아사히에 말했다. 그는 “내년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엑스포)를 앞두고 노숙자는 행정 체면 때문에 배제됐다는 생각이 커지지 않을까”라며 집행 시점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