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만 목사 “인구 소멸 상황에서 영원한 이웃의 삶 결단해야”

올해로 8번째 열리고 있는 태택시 성시화 행사가 태백 황지교회(김종언목사0에서 열렸다. 여러 행사중 태백을 대표하는 목회자중의 한분인 최준만목사(태백연동교회 원로)가 발표한 내용을 보도한 뉴스파워 기사를 소개한다.  
 
지난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열린 82026태백성시화 여름축제‘ 둘째날 오후 황지교회(담임목사 김종언)에서 태백을 알고 태백을 위해 기도하자는 취지로 태알태기 성시포럼이 열렸다이날 포럼에서 정종옥 (태백시기독교연합회장·장성감리교회 담임목사)는 태백 기독교 역사를 정리해 발표했다이어 최준만 목사(태백연동교회 원로)가 태백시민을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발표를 했다.

▲ 2026태백성시화 여름축제 성시포럼에서 최준만 목사(태백연동교회 원로목사)가 “태백시민을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최 목사는 발표를 시작하면서 태백과 관련한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그는 열 살 때 광산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태백으로 이사했으며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이주했다.”고 했다.  이어 대학(연세대 경제학 전공)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늦게 군대에 입대했고군대를 마치고 신학교(장로회신학대학교신대원)에 입학했다.”며 “1983년도에 목사 안수를 받고 황지교회 부목사로 부임했다그리고 1990년도 광산지역 복지선교회 총무로 부임했다.”고 밝혔다.

또한 “1996서울연동교회의 후원으로 태백연동교회를 개척해 선교지향의 목회를 했다.”며 목회 20년이 되던 2016년 목회를 은퇴하고원로목사로 지내면서 지역을 섬기는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목사는 가장 먼저 세상 속의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요한복음 17장 4절 아버지께서 내개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세상 속 교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라며 방법은 이웃 사랑을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다여기에는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희생시킨 것 같이 교회의 희생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선교의 글로벌 모델로 미국 켄터키에 소재한 CAP(Christian Appalachia Project)를 소개했다.

▲ 최준만 목사가 회선교의 글로벌 모델로 미국 켄터키에 소재한 CAP(Christian Appalachia Project)를 소개하고 있다.  

CAP는 1950년 캐톨릭 신부 Ralph Beiting 설립했으며지난 2025년 설립 75주년을 맞이했다. CAP의 사역 원칙 세 가지는 ▶희망을 세우고(Building Hope) ▶삶을 변화시키고(Transformig Life)▶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눈다(Sharing Christ’s Love)이다.

특히 일회성보다 스스로 자립하도록 돕는 것이며사역의 종류는 ▶ 식량 및 생필품 지원 ▶ 주택 수리 ▶ 재난 구호 ▶ 노인 돌봄 ▶ 아동청소년 역량 강화 ▶ 가족 상담 ▶ 기업 기부 품목 나눔이다.

최 목사는 제가 CAP를 모델로 소개한 것은 유학시절 여러 번 방문했고석사 논문에 소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태백지역에서 교회의 활동을 소개했다최 목사는 “1933년 태백지역에서 탄광 개발이 시작되었다. 1950년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문을 열었다. 1966년 연 200만톤 석탄 생산을 했다그리고 1981년 태백시가 설립됐다.“고 했다.

또한“1988년 광산 전성기로 전국 347개 광산 운영에 근로자는 6만 5천명이었다.”며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탄광이 폐광하기 시작했다. 2024년 태백의 유일한 광산인 장성광업소 폐광했다.”고 했다.  

태백시 인구 상황을 보면 1954년 2만명, 1962년 4만명, 1981년 11만 4천명, 1987년 12만 1천명으로 탄광산업과 함께 인구가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그런데 폐광 이후 인구가 감소하면서 지난해 인구는 3만 7천명이었다.    

참고로태백성시화운동본부가 설립된 2016년 5월 태백시 인구는 46천명이었다. 10년만에 1만 명이 감소했다지금도 감소하고 있다인구 감소는 교회의 교인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태백의 교회들이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1937년 태백 최초의 교회로 장성감리교회가 설립되었으며, 1948년 장성중앙교회가 최초의 장로교회로 설립됐다강원도는 감리교 선교지역이었는데장성감리교회 성도들 중 일부가 나와 장로교회를 세운 것이다이어 장로교회인 황지교회가 1951년 설립 됐다.  

그리고 1984년 광산지역복지선교회가 설립됐다그 뒤를 이어 192년 성공회 태백교회가 설립되면서 태백에서 사회 선교가 시작되었다. 1963년에는 황지중앙교회가 설립되어 환경과 자연 치유 활동을 했다현재 태백시 62도계와 사북고한에 40개 교회 등 100개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최 목사는 교회의 역할인 예언자적 말씀 선포한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 전도지역의 거룩함을 이루는 기도 사역 등은 제외하고사회선교사역(이웃 돌봄과 섬김)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장성중앙교회와 황지교회의 사회선교를 소개했다장성중앙교회는 1961년 성경구락부(장성 고등공민학교, 1961)와 태백 최초로 태백 유치원을 개원했다황지교회는 1961년 성경구락부(황지 고등공민학교)와 1982년 고등성경구락부(실업학교), 황지유치원을 개원했다.

▲ 광부들의 삶의 애환 보존한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 뉴스파워

또한 1984년에는 광산지역 복지선교회가 설립되어 주도적으로 사회복지선교를 감당했다▶교육한글반주부교실노인학교 ▶어린이탁아소어린이 전용 도서관 ▶노인 시설무료 양로원전문 요양원 ▶청소년 시설청소년 공부방 ▶의료병원 선교광산직업병 관리센터 개설 ▶광산 근로자 지원근로자 모임가족 부업 사업노동 상담소 ▶생계 보호자전국 최초로 사랑의 도시락 사업을 했다.

성공회 태백교회의 사회선교사역도 소개했다▶태백시 최초로 산업 선교와 사회 선교 현장 사역을 했으며불량 청소년 돌봄과 의료 사역(나병환자 돌봄), 계몽의 집 운영을 했다특히 1963년 개교한 황지중학교 설립을 후원했다이와 함께 젖소 보급(육우 보급으로 바꿈)과 산악 농지 개간 사업을 후원했다.

이어 황지중앙교회의 사회선교사역을 소개했다▶노숙인 쉼터 운영 ▶경로대학과 노인 섬김 ▶광산지역 환경 연구소 ▶태백 생명의 숲 가꾸기 운동 등이다.

최 목사는 산업선교의 시작은 1979년 병원선교를 시작했다.”며 예장(통합총회의 협력으로 태백병원을 중심으로 광산근로자 인권 회복 운동이 시작됐다.”고 했다이후에는 1966년 태백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사업 시작되었다고 했다.

▲ 최준만 목사 담임목회를 했던 태백연동교회 

최 목사는 태백연동교회가 중심이나 지역교회의 연합과 전국 교회의 후원으로 14년간 사랑의집짓기사역을 진행해 62세대를 완공했다.”며 “2001년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이 태백을 방문해 만남을 가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인 이웃 섬김은 혼자서는 어렵지만 함께 하면 된다.”며 한 교회는 어렵지만 지역교회가 연합하고 한국교회가 연합하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탄광산업이 문을 닫으면서 급격히 변화되기 시작한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태백지역사회에서 사회선교활동도 소개했다.   

최 목사는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지역사회는 새로운 변화가 절실했다.”며 지역이 살아남기 위한 것입니다. 1995년 탄광지역을 살리기 위해 폐광지역 특별법이 제정이 되었다.”고 했다.

이어 이 특별법에 근거하여 카지노 사업이 승인이 된다내국인이 출입 가능한 카지노 사업이 시작이 되었고, 2000년도에 카지노는 문을 열었고 계속하여 발전을 거듭했다.”며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카지노는 기대보다는 엄청난 폐해를 가져오면서 지역 사회는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고 했다.

또한 이러한 폐해를 알리고 계몽하고 교육하기 위하여 가톨릭 성직자와 개신교 목회자들이 모여 2005년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들의 모임’(도걱성)을 결성하게 된다.”며 지난2025년 도걱성 20주년을 맞이했고도걱성 20주년 백서를 발간했다.”고 했다.

도걱성은 ▶ 중독 방지 및 회복 사역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 모임 발족(2005▶중독자 예방 교육 ▶중독자 회복과 치유 사역 ▶도걱성 주관의 치유 예배 등을 진행했디.

또한 ▶카지노 노숙인 응급 보호 사역 ▶노숙인을 위한 도시락 나눔 ▶응급 구호 네트워크 가동 ▶노숙인 장례 도움을 했으며▶영성 및 작은 자 섬김 사역으로는 ▶지역 아동 센터 ▶경로대학 ▶인문학 강좌 개설 등을 했다.

최 목사는 탄광산업이 번성하던 시기에는 열악한 구조임에도 대한민국을 살리는 산업 전사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다.”며 그러나 강원랜드는 다르다카지노의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본성은 지역 전체를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변질시키고 있으며이것은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한 도걱성’ 20주년 백서 내용을 소개했다그러면서 이것이 태백이 당면한 오늘이라면서 태백의 미래를 위한 지역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최 목사는 “1937년부터 2000년까지의 교회의 역할은 고달픈 탄광촌 주민에게 위로자치유자소망을 심어주는 선한 이웃의 역할을 했다.”고 했다.

이어 “2000년부터 2026년을 넘어 앞으로의 역할은 소멸되어가는 도시에서 두려움과 불안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두려움 속에서 가나안을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하신 하나님을 보면서연합과 공의와 영생의 삶을 살아냄으로서 영원한 이웃으로 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발표를 마무리했다.

 

정순미 사모 신경정신과 개업의로 기여 

 

한편 최준만 목사와 정순미 사모는 지난 2024년 10월 이자익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 류철랑 목사)가 주관하는 이자익목회자상을 수상했다이 상은 이자익 목사의 정신대로 헌신하며 목회하는 농촌목회자나 선교사 개인 또는 공동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이자익 목사는 전북 김제 ㄱ자 교회당으로 널리 알려진 금산교회 출신으로 금산의 부자인 조덕삼의 마방(馬房)에서 일하는 머슴이었다조덕삼으로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장로 선거에서 조덕삼과 함께 후보로 선출되어 교인들의 투표 결과 이자익이 선출되었다이 일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면서 교회는 크게 부흥했다.

조덕삼은 이자익 장로를 학비와 기숙사 비용을 지원해 평양신학교에 보냈다이자익이 전북 임실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조덕삼은 이자익 목사를 금산교회 목사로 2대 목사로 청빙했다조덕삼은 고 조세형 전 국회부의장의 할아버지다.

이자익 목사는 일평생 농촌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분열 이전 장로교단의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고충청전라경상지역에서 모두 노회장으로 헌신하면서 20여 교회를 개척했다.

최준만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광부들과 소외 이웃을 섬기는 한편 정순미 사모는 정신과의원을 개원해 정신적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치료했다태백성시화운동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최 목사는 은퇴 이후에도 샘가교회를 개척해 정신적으로 힘겹게 지내는 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정순미 사모는 태백의료원에서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을 상담하고 치유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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