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재(蓄財)와 축제(祝祭), 그 천양지차(天壤之差)
이종록 교수 칼럼
축제는 “축(祝)과 제(祭)가 포괄적으로 표현되는 문화현상”이고, “기득권적 권력, 불평등적 모순, 억압과 갈등, 어두움과 희미함을 걷어내고자 하는 것”이며, “비일상적인 전도현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회인류학자이자 상징인류학자엿던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이러한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을 ‘리미날리티(Liminality) 단계’라 칭하고 이러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나 공간을 ‘코뮤니타스(Communitas)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축제에 대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종교문화적 차원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들을 풀어내려는 시도이다.
그런데 현대적 상황은 종교적·문화적 차원에서 볼 때, “축제 부재” 또는 “축제 빈곤”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 까닭은 항상 축재가 축제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조각상 만드는 과정을 예로 들면서, 조각하기 이전에 대리석은 그 전체가 유용한 가치를 갖지만, 조각하기 시작하면 그가 만들려 하는 모양 이외의 것들은 깎여 나갈 것들, 즉 쓰레기가 되는데, 이렇듯 “쓰레기의 분리와 파괴는 현대적 창조의 비법이 되었다”고 말한다. (少數)선택과 (多數)배제 원칙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을 정상적인 삶에서 제외하고 추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 그 중에서 특히 퇴출과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다.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는 까닭은 시장(市場)이 신적인 능력을 갖는 만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신격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다. 장하준이 말하는 대로,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분명 축재(蓄財)의 시대이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축제마저도 축재를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축제는 범람하지만, 리미날리티와 코뮤니타스의 부재로 인해 진정한 축제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만국박람회 이후 자본주의는 축제를 변질시켰다. 그래서 뒤비뇨는 축제가 끝났다고 한다. “축제들은 이윤의 제국주의에 의해 휩쓸려 가버렸고, 나선적인 종교적 탐닉 속에 섞여버렸다.” 그리고 중세 시대의 바보 제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하비 콕스는 “오늘의 제축이나 환상의 형태는 예외 없이 위축되어 있고 절연(絶緣)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하면서, “오늘의 축전(祝典)은 만유질서(萬有秩序)의 역사 행렬과, 인간의 정신적 탐구를 담은 위대한 역사에 우리를 관련시켜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류가 축재를 위해서 축제를 버렸다고 말하면서, 제축의 쇠퇴가 신의 죽음과 필연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더욱 축제가 필요한 시대이다. 이런 점에서 성서적 축제를 살피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