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연구와 논의없는 총회 결정 유감

  •           성결교단 총회의 유신진화론 이단 규정에 대한 비판론  

신학자 목회자들 우려, 반과학 반지성을 선언한 셈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장 이기용 목사) 제120년차 총회 마지막날인 28일 지난해 상정됐다가 부결된 바 있는 ‘유신진화론 이단 결의 청원’이 긴급동의로 상정돼 최종 통과됐다.  서울 신길교회에서 열린 이번 총회에서는 유신진화론 이단 결의 건의안이 서무부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재적 523명 중 476명의 찬성으로 긴급 동의안으로 채택된 후 기립투표 끝에 2/3(382명)의 찬성에 따라 결의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 해임과 이단 결의에 가장 앞장 선 서울신학대학교 전 이사장 백운주 목사가 발의한 후에 6명의 찬반 토론이 이뤄지기도 했으나 유신진화론 이단 결의를 뒤집지는 못했다. 유신진화론 이단 규정의 건이 올해 통과됨에 따라 기성 교단은 전 세계적으로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결정한 예장합신 교단의 뒤를 잇게 됐다.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결의한 이번 교단의 결정에 둘러싸고 교단 안팎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이신건 박사(서울신대 은퇴교수)는 이  결의 직후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유신진화론을 거부하는 것은 진화론 자체를 거부하는 셈이고, 그래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완전히 반과학적, 반지성적인 교단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다”라며 “오늘부터 가톨릭 교황은 물론, 유명한 개신교 인사들(맥그래스, 스토트, 그래함, 샤르뎅, 몰트만, 판넨베르크 등)이 우리 교단의 이단 명단에 오른 셈이 되었다. 내가 저렇게 유명한 인물들과 한 대열에 올라서 있다는 사실이 도리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신건 박사(튜빙겐 대 조직신학 박사) 는 이번에 소속 교단 총회서 깊은 숙의 없이 가결된 총회의 결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단상으로 그 심경을 남겼다. 보수적인 성결교단 신학자로 몰트만 제자이자  세계적인 연구자인  이신건 박사는 교단의 이러한 결정에 대하여 정치 교권의 남용으로 해석한다. 이미 시작된 서울신학대학 박00교수의 이단시비가 이뤄지지 않차 반동성애에 이어 보수인사들이 이러한 지성적인 신학에 대한 반감에 그 연장선상으로 들고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강신덕목사와 지형은목사도 총회의 이런 결정에 우려를 표현하였다.

이신건 박사의 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에서 유신진화론 이단결의 건의안이 서무부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재적 523명, 476명의 찬성으로 긴급 동의안으로 체택되었다. 박영식 교수 해임과 이단 결의에 가장 앞장 선 서울신학대학교 전 이사장 백운주 목사가 발의한 후에 6명의 찬반 토론이 이루어졌고, 기립 투표에 따라서 2/3(382명)의 찬성에 따라서 유신진화론이 마침내 이단으로 결정되었다. 전 세계에서 교단적으로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결정한 교단은 오직 합신 교단 뿐이라고 한다. 우리 교단이 지금까지 자랑할 만한 대단한 업적을 내세우지 못했는데, 이것도 세계적인 업적이라고 자랑할까?

유신진화론을 거부하는 것은 진화론 자체를 거부하는 셈이고, 그래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완전히 반과학적, 반지성적인 교단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가톨릭 교황은 물론, 유명한 개신교 인사들(맥그래스, 스토트, 그래함, 샤르뎅, 몰트만, 판넨베르크 등)이 우리 교단의 이단 명단에 오른 셈이 되었다. 내가 저렇게 유명한 인물들과 한 대열에 올라서 있다는 사실이 도리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강신덕 목사의 입장 

방금 내가 소속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가 회무 기간 마지막 시간에 ‘유신진화론 이단 규정안’을 긴급 상정해 통과시켜 버렸다. 성결교회 목사인 것이 부끄럽고, 현대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교단의 폐쇄적인 모습에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성서적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일과, 현대 과학기술 사회의 흐름 속에서 선교적·학문적 토론의 장을 유지하는 일 사이에는 분명 균형점이 있어야 한다. 건강한 교단이라면 그 둘 사이의 창조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의지를 가졌어야 했다. 결국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신학적 똘레랑스(관용)’로 품으며 대화하려 했던 여러 분들의 노력은 무색해지고 말았다.

‘신앙의 순수성 수호’라는 명분을 선점한 이들의 호전적인 태도가 이번 결의를 이끌었다고 본다. 이러한 행태는 작금의 한국 교회를 넘어 세계 개신교계가 마주한 급격한 우경화 및 반지성주의적 맥락과 닿아 있다. 저들은 급변하는 세상에 맞선 ‘순수 신앙의 저항’이라 자부하겠지만, 그 호전적인 배타성 어디에서도 복음의 순수함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기독교는 다가오는 시간이 두려운 것일지 모른다. 시대와 세상이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대상을 ‘적’으로 규정하게 만들고, 적에 대한 반발과 혐오를 조장할 뿐이다. 혐오가 난무하는 곳에 건강하고 지적으로 진중한 대화가 존재할 리 없다. 이는 결국 기독교 스스로가 무지의 종교로 전락하는 길을 재촉하는 일이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안에서 학문적·선교적 대화와 성경적 신앙 옹호 사이의 건강한 보완 관계가 사라진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총회를 이끄는 지도자들 사이에 이 관용을 품을 수 있는 이가 그리도 없단 말인가. 마음이 무겁고 부끄러운 오늘이다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은퇴)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 120년차 총회(2026. 5. 26~28) 마지막날인 28일 오후 3:30 정도에, 교단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작년 총회에 올려서 부결된 ‘유신진화론 이단 결의 청원’이 긴급동의로 상정되어 결의되었다. 이른바 유신진화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공식적인 연구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총회대의원들에게 유신진화론 내용에 관한 유인물 한 장도 없이 교단이 걱정스럽다 

5. 28. 오후 8:23에 아래의 내용을 추가합니다.

  1. ‘이단 판정’은 신앙의 영역에서 아주 중대한 일이다. 구원에서 아예 배제된다는 뜻이다. 중세의 파문과도 같다. 어느 종교단체가 이단 판정을 한다고 해서 현대 사회에서 이것이 직접적인 피해를 주진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진지한 일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한다. 이단 판정을 교권의 정치적 목적이나, 어떤 것이든지 이해관계를 따라서 진행하면 안 된다. 신앙적으로 이런 태도나 행동은 신성모독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떤 것을 정죄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교단 총회는 그 교단의 최고 상회다. 그래서 총회의 이단 판정은 아주 중대한 일이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120년 차 총회에서 ‘유신진화론은 이단이다’ 하고 판정하면서 전 세계의 수많은 교단을 이단으로 취급했다. 한국의 교단 중에서, 내가 아는 범위에서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세계의 교단들 중에서도 ‘유신진화론은 이단이다’ 하고 교단의 공식 결의로 판정한 곳은 우리나라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하나다. (이에 관해서 다른 팩트 정보가 있으면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두 번째가 되었다.

 

  1. ‘유신진화론’은 신학 영역에서 보면 아직 명확하게 그 내용이 확정된 단어가 아니다. 유신진화론이라는 이름 아래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가장 넓은 범위로 보면 신앙(또는 신학)과 현대 과학이 서로 대립하거나 상충하지 않고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 이른바 모든 유신진화론의 기본 전제다. 장신대 총장을 지내신 김명용 박사님은 양자역학이 창조론을 설명할 수 있는 도구라고 본다. 나도 이분의 글을 읽고 배우면서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서울신학대학교 발 유신진화론 논쟁’이 신학계와 일반 학계 그리고 목회 현장까지 한창 번지고 있을 때 내가 ‘김명용 박사의 이론도 유신진화론의 범주에 속한다’고 어디에 글로 표현했는데, 김 박사님께서 ‘나는 유신진화론자가 아니다’ 하셨다. 내가, ‘저는 유신진화론이란 개념 정의를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는 신학적 논의 중의 하나로 본다’고 하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1. 유신진화론의 범주에 포함될 내용 중에 보수 정통 신앙에서 가장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종간(種間) 진화다. 물고기라는 종이 육식 동물의 어느 종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의 범주에 들어가는 신학적 이론 중에선 종간 변화를 인정하는 견해도 있다. 어느 조직신학자의 논문에 나온 글을 예로 든다. (논문에는 한글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린 곳이 여러 곳인데, 고치지 않고 두었다.) “두 번째로, 생명의 기계론적 설명과 연관해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우연과 설계사이의 차이이다. 다윈의 자연도태설은 찰스 하지가 올바로 본 것처럼 이 모든 세계가 지적설계자로부터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명료화 시켰다. ‘우연은 하나의 완벽한 설계를 생성할 수 있는가?’라는 논점이 새로운 논쟁으로 번져가는 것이다. 우리는 꼭 하지처럼 설계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우리는 그 생성의 과정이 더 큰 섭리 속에 있을 수 있음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진화를 하나님의 창조의 긴 과정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세 번째로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기준에 닿게 되는데 즉, “종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학설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성서의 신학적인 진리와 상응하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우리가 이 세계의 다양한 종들 사이의 변화와 상호 간섭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쓸데없는 창조-진화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수준에서는 수없는 간섭이 일어나고 있으며 실제로 우리는 그것을 조류 독감 등에서 날마다 확인하고 있다.)” 위의 글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는 이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창조와 진화에 관한 논의에서 대립되는 두 개념, 곧 ‘우연’과 ‘설계’를 잘 생각하면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 대신 우리는 그 생성의“라는 표현으로 시작되는 다섯 번째 문장부터는 이해가 쉽다. 종간 변화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위의 글은 현재 성결교단의 교단 신학 교육 기관인 서울신학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황덕형 교수의 글이다. 이 글은 황덕형 교수가 각주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 것이다. 글의 출처는 「조직신학연구」 2014년, 81~104면에 실린 황덕형 교수의 논문 “창조와 계약으로 본 바르트 신학”에서, 86~87면의 각주 12번이다.

 

  1.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2026년 5월 28일의 교단 총회에서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판정했는데, 그렇다면 황덕형 총장부터 조사해야 한다. 시급한 일이다. 교단 신학교의 총장 아닌가. 황 교수 논문에 있는 위의 글은 아주 명확하게 유신진화론에 포함된다. 그것도 수많은 유신진화론의 스펙트럼에서 아주 과격한 쪽 이론이다. 나는 지금 황덕형 총장의 신학적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논하는 것이 아니다. 신학적 논의에 충분한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신학의 임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시대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 경제적 상황이 바뀌는 등 사람 삶과 자연을 포함하여 존재하는 세계는 늘 변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신학이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AI)의 문제, 유럽과 중동에서 현재 진행되는 큰 두 전쟁, 세균과 바이러스 등을 포함하는 생물학의 발전, 양자역학과 그 영향, 기후 위기의 문제, 큰 틀에서 제2차세계대전 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세계 정치와 경제 구조의 종말과 새로운 질서의 문제, 우주 탐사의 엄청난 진전으로 지구 외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등, 신학은 존재하는 모든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 현대의 진화 과학, 우주에 관한 새로운 발견과 이론들, 양자역학을 비롯한 물리학의 새로운 이론들도 마찬가지다. 유신진화론은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유신론(有神論)’이니까. 그런데 진화 과학을 비롯한 모든 과학 기술의 발전과 신학적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면서 그것을 추구하는 시도 중의 하나가 ‘유신진화론’이다. ‘진화(進化)’라는 단어는 말하자면 진화 과학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과학 기술의 발전을 포괄하는 뜻도 갖고 있다. 보통 사람은 ‘진화’ 하면 으레 다윈의 진화론을 떠올리고,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것으로 생각한다. 유신진화론이란 이름 자체가 갖는 문제다. 그래서 요즘은 진화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다른 명칭들도 사용한다.
  2. 아무튼, 황 총장의 글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것 외에 다른 글도 여럿이다. 특히 우리 교단에서 아주 중요한 사중복음을 폄하하는 정도의 논문 글도 있다. 사중복음은 우리 교단의 헌법에 내용까지 명시된 것이다. 유신진화론은 창조론에 관련된 것인데, 창조론에 관한 것은 교단 헌법에 구체적인 내용까지 있지는 않다.) 그 외에도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 가운데, 유신진화론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글(논문이든 칼럼이든)과 말(설교든 강의든)에 관해서도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서울신대의 다른 조직신학자도 관련된 글이 있다. 총회의 결의가, 그것도 이단 판정 결의가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지 않은가. 불행한 쪽으로 흐른다면, 교단적으로 평지풍파가 일 수 있다. 교단 총회라는 장에서 ‘내용이 무엇인지 명시적으로 밝히지도 않은 채’, 그저 유신진화론이라는 단어 표현을 놓고 ‘이단이다’ 하고 결의했다. 그러면, 유신진화론의 내용이 무엇인지 누가 결정하는가? 그래서 총회에서 나온 얘기가, 유신진화론의 내용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검토한 후에 이단 논의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총회장을 지낸 어느 목사님은 ‘나는 개인적으로는 유신진화론을 이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단 총회에서 이에 관해 이단 건을 다루는 것은 반대다’ 하셨다. 이분의 생각이 깊다고 본다. 

  3. 이번 결의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교단법적인 문제다. 교단 재판이든 일반 사법 재판이든, 법정 소송으로 간다면 이 문제가 핵심이다. 이번의 이단 결의에서 긴급동의 발의자가 서울서지방 증가교회 담임목사인 백운주 목사인데, 서무부가 절차 미비로 반려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청원, 곧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판정해 달라’는 것을 다루자는 것이 발의 내용이다. 그런데, 우리 교단에 이단사이비 관련 법 조항들이 있다. 이단으로 판정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절차들이 규정돼 있다. 예컨대, 어떤 사안을 단번에 이단으로 판정할 수 없다. 주의나 경고, ‘이단성’ 판정 등을 거쳐야 한다. 이단 판정의 절차와 필요한 조사 등에 피해자 적시에 관한 내용도 있다. 이번에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서 이런 법 조항을 건너뛰었다. 그래서 서무부가 반려한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총회 회무 중에 지난 서무부장이 명확하게 설명하며 발언했다.) 교단 정치에서 많이 인용되는 우리 교단의 헌법 12조 2항, 곧 헌법과 제 규정을 위반한 모든 결의는 무효라는 내용에 명확하게 해당한다. 만일 이 건이 교단 재판위원회에 제소가 된다든지, 일반 사법으로 가게 되면 이번 결의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 사법에서 신앙적인 내용은 판단하지 않지만, 해당 교단이나 종교단체의 규정이나 정관(교단법) 등에 명시된 절차에 관한 부분은 검토해서 판단하고 판결한다.

  1. 어느 교단이나 비슷하지만, 우리 교단도 총회대의원에서 목사가 절반, 장로가 절반이다. 장로님들이야 자신의 직업이 따로 있고 또 신앙과 신학의 문제에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유신진화론에 관하여 깊이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 아픈 것은 목사 대의원들의 상황이다. 목사는 전임 직업이다. 한국 교계나 신학계의 상황, 오늘날 세계의 기독교 상황에 관해서 이 정도로 관심이 적고 그래서 무지한 것은 큰 문제다. 유신진화론은 우리 교단에서 이미 몇 년 동안 관심사였고 우리 교단에서 출발해서 한국 신학계와 일반 학계 그리고 목회 현장에까지 주목받은 사안이다. 그렇다면 교단의 목사로서, 더구나 총회대의원 정도라면 유신진화론에 관해서 정보를 알아보고 공부도 해야 마땅하다. 장로 대의원까지 포함해서 전체 총회대의원으로서는, 무엇보다 의사 결정 과정에 관해서 상식적인 판단도 하지 않은 것이 큰 문제다. 신학적인 문제 아닌가. 유인물 한 장도 배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시간을 갖고 상식적으로 심도 있는 논의와 검토를 거쳐서 교단법의 절차대로 진행해야 한다. 총회가 교단법 위에 있지 않다. 총회 결의도 명확하게 교단법을 위반한 것이면 무효다.

 

  1. 나로서는 이번이 마지막 총회였다. 다음 달 하순에 담임목사 사임서를 내면 22년의 성락성결교회 사역을 포함한 42년 목회를 마무리한다. 교단이 걱정된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가 무섭게 대립하고 인터넷의 알고리즘 때문에 자기 편향적 확신이 강화되는 오늘날 ‘제도로서의 교회와 교단’을 지키는 길은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것을 피하는 것이다. 이천 년 교회 역사에서 이어져 온 제도로서의 교회는 거의 대부분 보수적이었다. 중대한 결정일수록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그래야 한다. 이번 총회의 이단 결의는 이런 것과 상반된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라는 제도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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