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슬러 목사 유골 안장 못해

            양화진 선교사 묘역 이대로는 안된다.  

다음 글은 1년 전에 소천하신 킨슬러(권오덕)목사의 사모 수 킨슬러(신영순)선교사 페이스 북의 글이다. 년전 은퇴후 함께 사시던 시에틀에서 먼져 세상을 뜨시고 현지에서 화장후 유골을 장남 권요한교수가 예비된 양회진묘역에 안치하기 위하여 갖고 왔다. 그러나 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관리하는 100주년 기념교회측이 없던 규정을 이유로 선교사들 유골을 더 이상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대한 문제는 10여년전으로 올라가는 데 그곳에 내한 선교사들과 가족들이 모이는 예배처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사업회 법인(김경래장로)이 종로 여전도회연합회관에 있던 이재철목사가 세운 100주년 기념교회에게 임의로 관리 권한을 이관하며 이전한다.

이곳에 100주년 교회가 오기전에는 선교사들이 모이는 예배처가 주역이었지만 100주년 교회 교인들이 늘어나 점유하게 되고 분쟁이 일어 언더우드 후손등 모이던 이들이 법정싸움에서 패소해 예배공동체가 쫒겨나는 일이 발생한다.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고 한경직목사가 앞장서 조직된 곳이고 김경래장로는 실무자였는 데 한목사님 세상 뜨시고 그 법인이 김경래장로 소유처럼 된 것이다.

그후 기념사업회 권한을 100주년 교회에 이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몇년전 설립자 이재철목사는 은퇴하였고 후임에 우리교단 목사와 전도사들이 동사 목회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양화진 묘역에 대한 법적 권한이 100주년 교회로 이관된 후 묘역에 연고가 있는 분들이 안장을 하고자 하나 새로운 규정을 들어 막고있는 사실이 신영순 사모를 통하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묘역은 고종황제가 선교사들에게 하사한 것으로 그동안 래한 선교사들의 묘지로 오랜동안 사용되였고 공간도 예배처로 쓰였는 데 법적으로 권한이 넘어 간 것은 법이라고 하여도 그 곳에 대한 역사와 의미는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100주년  교회는 독립교회이기는 하나 래한 선교사들이나 그 묘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자들에 한해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막지 말아야 할 것이다. 

   
 

4월 20일 부활절은 남편 권오덕 (Arthur W. Kinsler )목사님의 생신이기도 합니다! 남편이 2024, 9,25 소천하시고 맞이하는 첫번째 생신을 추모하며 19일 아침 양화진에 아들 권요한 (John Francis Kinsler) 와 며느리 이서와 함께 우리는 시부모님 권세열 (Francis Kinsler) & 권도희 (Dorothy Kinsler)가 묻힌 묘지에 가서 함께 기도하고 왔다!

가슴 아픈것은 남편 킨슬러 목사님이 부모님 옆자리에 오래전 부터 준비된 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4년 11 월 추모예배를 드렸는데 아직도 유골 함은 아들 요한이 집에서 영화진에 자기 자리에 묻히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소천 후 몇달이 지나도록 양화진에 안장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 100주년기념교회 L 목사가 양화진에 유니온 교회를 빌려서 100 주년 기념 교회를 개척한다고 유니온 교회 건물을 사용하다 교인들이 늘어나자 유니온 교회 건물도 빼앗아 유니온교회 교인들을 내쫓아 냈습니다!

그리고 4 대째 언드우드 가 에서 관리하던 외국인 묘지 관리권도 법원에 고소를 하여 재판을 하여 이재철목사는 백주년기념교회가 관리하도록 관리권을 빼엇고 그동안 선교사님들이 관리 해오던 기록과 전례에 모든 것을 무효화하였습니다!

고종황제가 조선에 와서 사망한 외국인들을 위해서 하사해서 미국 장로교 선교사님들이 관리 하여 100 을 넘게 묘지를 관리를 해오던 묘지와 한경직 목사님께서 한국선교 백주년을 기념하시기 위해서 선교사들이 초 교파적으로 예배를 드리던 유니온 교회를 위해 새로 건축해서 기념교회로 서울 유니온 교회에 1995년 예배당을 기증한 것이다.

그런데 이재철 목사가 빼앗아버린 것은 선교 140 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이재철 목사가 김경래 장로과 결탁하여 야비한 행위로 행한 유니온 교회 강탈과 외국인 묘지 관리권을 대한얘수교장로교 총회가 관리 하도록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려 놓는 것이 진정한 140 년 선교 역사에 선교사들이 평생를 이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한 노고에 감사와 진정한 선교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될 것 입니다!

남편 권오덕( Arthur Woodruff Kinsler) 는 1934 년 평양에서 권세열(Francs Kinsler) 선교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7 살 까지 평양에서 살다가 일제 말기 1940년 미국으로 철수 했다가 1948 년 한국에 다시 왔으나 2 년후 6.25 동란으로 일본으로 어머니와 삼남매가 피난을 가고 시부 권세열 선교사는 대구 안동에서 북에서 내려오는 피난민들을 도와 주시며 전쟁 으로 정규 학교들이 다 문을 닫았다

그러나 청소년 성경구락부를 다시 남한에서 시작하시어 교육에 기회를 주시고 고아들과 전쟁 마망인들을 위해 살길을 마련해 주시고 고통받는 한국 민족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1970년 까지 선교사로 신학교 교육과 교회 를 도우셨습니다! 남편 권오덕 목사와 저는 1972 년 부터 2011 년까지 미국장로교 선교사로 일했고 남편은 산업선교 국내 선교부 해외 선교부 일과 영어예배 를 최초로 할렐루야교회, 온누리교회, 명성교회, 서울교회에 시작 하였습니다!  

권오덕 목사님은 생전에 양화진에 2002년 부모님의 유골을 안장하시면서 그 옆에 2자리를 허가받아 평생 관리비도 냈는 데 그 한 자리는 한국에서 태어나 뇌막염으로 장애인이 된 딸 일래인과 또한 자리는 2 대에 걸쳐 한국에 선교를 남과 북에서 해온 남편과 제가 함께 묻힐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권오덕목사가 세상을 뜨신 지 1년이 다되도록 한국백주년기념교회가 이재철 목사와 김경래 장로에 의하여 만든 규정으로 안장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 한경직 목사님을 배신하는 일이고 선교사들에게 이 묘지를 하사한 고종황제의 결정도 무시하는 행위로 보인다.

당연한 외국인 묘지 리권을 교묘하게 빼앗아 자기 네 멋대로 말도 안되는 법을 만들어 더 이상 선교사들의 유골이 양화진 묘지에 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와 결정을 뒤집는 것으로 국가와 한국교회와 미국교회에 대하여 신의를 저버린 행위로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라 반드시 원상회복 해야 할 것입니다.

남편 킨슬러 목사님이 하루 속히 자기 자리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 갈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합께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부활절을 맞아 킨슬러 목사 소천 후에 첫번째 맞이하는 기일을 맞아 저의갈절한 소원을 한국교회 앞에 호소하는 바입니다.

   
 * 시부 권세열박사 부부 묘역 앞에서 신영순사모와 장남 권요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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